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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作者: 서담

소영이 정문을 밀고 막 들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몇몇 하녀들이 튀어나와 그녀를 밀치며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소영은 그 힘에 못 이겨 휘청이며 바닥에 넘어졌다.

“감히 아가씨 거처에 손을 대려 해? 어림도 없다!”

하녀들이 매우 매섭고도 사나운 눈빛으로 말했다.

소영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며 허정안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하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영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벌떡 일어나 한편에 놓여 있던 돌을 집어 들어 하녀들을 향해 던졌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것들! 너희들이야말로 감히 이 집의 진짜 아가씨를 보고 뭐 하는 짓이냐!”

소영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고, 하녀들은 그에 놀라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안으로 돌진해 사정없이 이곳저곳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허정안은 그런 소영을 아주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곳은 결코 안일한 마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다. 자칫하면 뼈까지 흔적도 없이 집어삼켜질 수도 있는 마귀의 소굴, 소영 또한 허정안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 정도도 못 이겨내면 허정안 곁에 남을 자격이 없었다.

한편, 본채 안방.

허 부인과 허유진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 만약 제가 마지막에 기절한 척하지 않았다면 오늘 살아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시 보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유, 가여운 내 딸. 얼마나 힘들었니? 아무 말 말고, 일단 푹 쉬거라.”

“하지만... 언니가 절 받아주지 않았는데... 더 이상 민폐를 끼치기 싫어요. 차라리 절 다른 곳으로 보내주세요.”

“안 돼!”

허 부인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네 집인데, 어디로 간다는 말이니? 그런 말 말거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구나.”

그러자 허유진이 다시 허 부인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을 터트렸다.

허함산 또한 옆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 맞장구쳤다.

“정말 생각도 못 했네. 정안이가 이토록 규칙없이 굴 줄이야. 변방에서 죽은 척 도성으로 돌아온 것도 모자라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다니, 우리만 완전히 우스운 꼴이 됐잖아!”

그러면서 도무지 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옆에 있던 탁자를 내리쳤다.

이대로 10년만 더 유지했다면, 명예직인 위국공이 아니라 삼공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태부나 태사같이 실권을 가진 관직에 올라 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허정안이 아무 말도 없이 돌아와 버렸다. 그것도 상의 하나 없이!

허 부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미 돌아왔고, 스스로 돌아갈 길도 모두 끊어버렸어요. 이제 와서 변방으로 다시 보낼 수도 없는 법, 차라리 제 친정집이 있는 기주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허함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돼. 이미 장 공주께서 정안이가 정한이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것을 안 이상, 지금 딴 곳으로 보내버리면 우리가 말을 들을것이 뻔해.”

“그러면 어떡해요?”

허 부인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와서 유진이를 내보내요? 말도 안 되잖아요. 이 아이는 우리와 함께 십 년을 보냈어요. 당신 다리도 이 아이 덕분에 나은 거잖아요.”

하지만 허함산은 말없이 뒷짐을 진 채, 방안을 왔다 갔다 고민에 빠진 얼굴로 걸어다녔다.

이때, 허유진이 조심스레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언니가 그냥 이곳에 머무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분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가 정말 조심할게요. 언니의 것을 욕심내는 일도, 절대로 없을 거예요.”

그러자 허 부인의 눈가가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안할 수 있다면, 전 뭐든 참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가족인데, 좋은 모습을 보여야죠.”

결국 허 부인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허유진을 더 세게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만, 다들 그만 울어!”

허함산이 단호히 말했다.

“정안이 돌아온 게 무슨 큰일이라고.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 주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붙여 잘 감시하도록 해.”

허 부인이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문밖에서 한 하인이 달려와 무릎을 꿇으며 다급히 알렸다.

“큰일 났습니다. 큰아가씨께서 유진 아가씨의 거처를 다 부수고 계십니다!”

“뭐라고?”

허함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러자 허유진이 서둘러 그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 언니한테 화내지 마세요. 그 거처는 제가 양보할게요.”

그러나 격분한 그는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행패라니,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본때를 보여줘서 제대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그리고는 하인에게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한 뒤,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허 부인은 허유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됐다. 너도 더 이상 말리지 말거라. 공주마마 앞에서 네 체면을 무너뜨린 벌은 받아야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언니가 원망스럽지 않아요. 괜히 언니를 너무 심하게 벌하면, 공주마마께 또 전해질까 봐 걱정도 되고요.”

“역시 네가 생각이 깊구나. 내가 가서 상황을 좀 살펴보마.”

그 시각, 소영은 허정안의 지시에 따라 방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 그렇게 어느새 방에는 간단한 탁자 하나와 의자, 침상 틀만 남게 되었다.

회초리를 든 허함산과 허 부인이 들이닥쳤을 때,허정안은 그 한가운데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 버릇없는 년이...!”

그런데 그가 소리치려던 순간이었다. 허정안은 굳은 얼굴로 찻잔을 들어, 탁소리가 나도록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 어머니... 제게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함산은 순간 얼이 빠져 자리에 멈춰섰다. 그러는 와중에 소영은 눈치빠르게 소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허정안이 다시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양딸을 들이기로 하셨다면, 제게 가장 먼저 언질을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제야 허함산이 정신을 차렸지만, 좀 전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얼버무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전선에 있는 네게 말해 괜히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알리지 않은 것뿐이다.”

허정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공주마마께 저희 집에는 딸이 저 하나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아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저도 공주마마께 뭐라 설명드려야 할지 몹시 난처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허함산은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다고 네 동생이 쓰던 거처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돌아오자마자 이런 소란을 일으키다니, 너는 도대체 애가 어떻게 된 버르장머리야?”

그러자 이번에는 허 부인이 그녀를 나무라며 나섰다. 하지만 허정안은 이번에도 흔들림이 없는 또렷한 눈빛으로 허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수지 않으면요? 아까 공주마마께서 하셨던 말 기억 안 나십니까? 공주마마께서는 그 아이가 제가 누릴 것들을 누리며 이 집에 얹혀사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만약 그분이 다시 추궁한다면, 그 뒷감당은 두 분이 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 말에 허함산의 표정이 굳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허 부인이 머뭇거리며 변호했다. 그러자 허정안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좀 전에 이 문 앞을 지키던 하녀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제게 함부로 아가씨의 거처를 훼손하려 들지 말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저 아이를 언제부터 키우셨습니까? 어떻게 하인들까지 제가 아닌 저 아이를 이 집 아가씨 취급을 하죠?”

허 부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변명했다.

“그 아이가 배운 의술 덕분에 너희 아버지 다리가 나았다. 하녀들도 그 일 때문에 고마워서 그러는 것일 거다.”

하지만 곧 태세를 전환하며 비난하듯 허정안에게 말했다.

“처음엔 몰랐다고 쳐, 그 뒤엔 알려줬잖니? 네 동생이라고. 그런데도 공주마마 앞에서 그런 망신을 줘? 어떻게 언니가 되어서 그럴 수가 있어!”

그러나 허정안은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제가 그 아이더러 붉은 망토를 입으라 시켰습니까?”

허 부인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허함산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진짜 본심을 꺼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죽은 척하고 도성으로 돌아온 것이냐? 이럴 거면 최소한 우리와 상의라도 했어야지!”

“상의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조금만 더 늦었다면, 폐하께선 저와 공주의 혼인을 추진하셨을 거예요. 그러면 저는 장가를 가야 됩니까? 시집을 가야 됩니까?”

허정안이 담담하고도 차가운 말투로 받아치자, 허씨 부부는 점점 창백해졌다. 조금 과장되어 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황제에게 그런 조짐이 있다는 한표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황제는 조금씩 불안에 휩싸였다. 아무리 신책장군의 덕을 크게 봤다고는 하지만, 백성들 사이에 그 위세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분란이 일어날 터, 어떻게든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분란을 없애려면 애당초 그 씨앗을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황제는 그를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딸 중 한 명을 택해 신책장군에게 시집을 보내려 했다.

허정안은 명예나 권력보다 늘 가족이 우선이었다. 회귀 전, 그녀가 망설임 없이 신책장군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음이 그녀를 각성시켰다. 허정안은 더 이상 인생을 가족에게 걸었던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허함산은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말을 꺼냈다.

“그래... 잘했다. 이번 일은 네 판단이 옳은 것 같구나.”

그런데 이때, 허정안의 눈에 회초리가 들어왔다.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쾌한 듯 물었다.

“아버지, 설마 그 손에 들려 있는 회초리... 저를 때리려고 가져오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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