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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Penulis: 서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허함산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이 불효 자식! 당장 무릎을 꿇어라! 기껏 키워줬더니, 이딴 식으로 보답해?”

하지만 허정안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소매에서 종이 뭉텅이 하나를 꺼냈다.

“그만 화내시고, 제가 쓴 송서부터 읽어보시지요.”

그러자 허함산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이며 읽어 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삽시에 먹구름이 끼였고, 이내 하인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물러가 있어!”

그의 명령에 하인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밖으로 빠져나갔고, 분위기가 급히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허정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이때, 허함산의 손에서 종이를 건네받은 허 부인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글을 마저 읽지도 않은 채 바닥에 내던졌다.

“지금 스스로 남장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출정한 것을 관에 자백하겠다는 것이냐? 우리 가문을 멸문시킬 작정이냐!”

허함산도 격노하며 소리쳤다.

“감히! 네까짓 게 지금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내겠다는 것이냐!”

허정안은 그런 두 사람을 검은 두눈으로 바라보았다. 휜칠한 얼굴에는 분노와 처참함이 쓰여져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가문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지 않아도, 명진이가 제대로 입단속을 하지 못하면 진짜 파멸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네 동생이 그럴 리 없다!”

허 부인이 악이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허정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반박했다.

“오늘 명진이가 저한테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 자신이 어리지만 않았어도, 딸인 제가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 대신 출정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허함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 부인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둘은 예전에도 자주 이 일로 얘기를 나눴었는데, 허명진이 몰래 엿듣고 고스란히 허정안에게 말한 모양이었다.

“허정안, 네가 감히 날 모함해!”

허명진이 이를 악문 채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곁에 있던 허유진도 나지막이 거들었다.

“명진이는 절대로 입이 가벼운 아이가 아니에요. 언니가 안 계실 땐, 이런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 없어요.”

허 부인 또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명진이를 몰아붙였지!”

허정안은 시선을 허함산에게 돌렸다.

“아버지, 명진이가 저한테 이런 말 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 누나니까, 얼마든지 봐줄 수 있어요. 하지만 명진이는 순방사에도 들어간 장래가 창창한 아이죠. 언젠가 폐하 곁에 서는 날도 올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명진이가 이런 말실수를 폐하 앞에서 한다면요? 그러면 우리 가문은 모두 몰살당할지도 몰라요.”

허씨 가문에 내려진 공훈과 부귀가 모두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위협, 그 말을 들은 허함산은 즉시 안색이 달라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허명진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입이 달렸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다녀?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우리 집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아버지, 전... 전 그냥 저 여자가 자극해서....”

허명진이 억울한 듯 말했다.

“겨우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앞으로 네 앞날에 모두 축하만 건네줄 것 같으냐? 누군가가 널 시기해 함정이라도 파놓으면, 그때는 어쩔 것이냐? 또 이번처럼 못 참고 입을 함부로 놀릴 것이냐? 널 믿고 온 가족의 목숨을 걸 수는 없다.”

“네가 사고 치는 걸 지켜볼 바엔, 차라리 내가 직접 관에 자백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

허정안은 당장이라도 나갈 듯 몸을 돌려 문을 향했다, 당황한 허함산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종이를 화로에 던지며 불태웠다

허정안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버지?”

허함산이 먹구름이 가득 얼굴로 허명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네 잘못이다. 어서 네 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거라.”

“제가요? 아버지, 저 여자가 절 이렇게 만들었다니까요!”

허 부인도 옆에서 거들었다.

“부군, 이제 왜 명진이 잘못입니까?”

“어서 사과해!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허함산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하고도 강했다.

허명진은 겨우 열일곱의 어린 나이였고, 신책장군 덕분에 가문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진 뒤로는 항상 오냐오냐 떠받들리며 살아왔다. 당연히 무릎 꿇고 사과하는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다.

그의 자존심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허정안은 그 모습을 보며 회귀 전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자존심 상할까 봐, 다칠까 봐 늘 허명진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던 자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허명진은 그녀가 봐준 것도 모르고 자신이 강한 줄 착각했다. 그는 밖에서 화난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 돌아와 늘 그녀에게 분풀이했다. 봐주면 봐줄수록 그는 더 오만해지고, 우월감에 도취해 점점 그녀를 더 짓밟으려 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결국 허명진은 허함산이 내뿜는 위압감에 못 이겨 이를 악문 채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허함산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머리를 박으며 사과하거라!”

허명진은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는 이 집의 유일한 아들로서 항상 귀한 취급만 받았기에, 이런 취급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하지만 허정안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조용히 비웃었다.

만약 처음부터 양보하지 않았다면, 허명진이 지금처럼 위세 등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무릎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허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다.

“됐어, 그만해도 돼. 이제 충분해.”

허정안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명진아, 넌 내 친동생이야. 그러니 네가 내게 했던 모욕적인 말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게. 나에게 있는 것들 얼마든지 너에게 양보할 수 있어. 하지만 만약 오늘처럼 또 함부로 입을 놀리면, 정말 너뿐만 아니라 이 집에 재앙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건 명심해.”

그렇게 말한 뒤, 허정안은 부모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나가자마자, 허 부인이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공훈을 미끼로 온 집안을 휘두르려 들다니.”

허명진 또한 더는 못 참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당장 저년을 이 집에 쫓아내 주세요! 꼴도 보기 싫다고요!”

“안돼. 장 공주마마가 지켜보고 있는데, 함부로 내보낼 수 없어. 그런데 넌, 하루 종일 사고만 치고 다니는구나!”

허함산이 이마를 짚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경고를 덧붙였다.

“지금 허정안을 자극해 괜히 진짜 관에 가기라도 한다면 좋을 것 없다.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진 얌전히 있거라. 너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진짜 가만 안 둘 것이다.”

그렇게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허유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히 자극했다.

“하긴 그래도 명색이 장녀인데, 아버지도 편애할 수밖에 없겠지.”

그 말에 허명진은 또다시 열등감이 폭발했다.

“허정안, 이 망할 년! 아버지도 다 속고 있는 거야!”

“쉿! 아버지가 또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런데 허정안이 돌아온 뒤로, 집이 조용할 날이 없구나.”

허 부인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허유진이 옆에서 그녀의 손을 주물러주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허 부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절대로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 차라리 좋은 집으로 시집보내는 것이 낫지. 그럼, 자기도 군말 못 하지 않겠어?'

딸의 혼사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었다. 그녀가 거절한다면, 약이라도 먹여 재워서 보내면 그만이었다.

허정안이 이 집을 떠나게 되면, 점차 사람들 사이에 그 존재가 흐릿해지며 자연스레 허유진이 이 집안에서 살게 되는 것에 명분이 생기게 될 것이다.

'지금 우선은 유진이를 우리 허씨 족보에 올리는 것부터 해야겠어.'

허 부인이 허유진의 손을 쥐며 말했다.

“허정안이 무얼 하든 간에, 일단 너의 이름을 내 아래에 걸어놔야겠구나.”

입양은 입양일 뿐, 정식으로 사당을 열고 족보에 올리기 전까진 진짜 가족이 된 것이라 볼 수 없었다.

허유진의 뽀얀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언니가 반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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