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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Penulis: 서담

이건 절대로 호의적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눈치 빠른 소영이 재빨리 문으로 다가가 열리지 않도록 발을 걸었다.

“둘째 도련님, 큰 아가씨께선 아직 세안도 마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금 들어가시면 안....아악!”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명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분노에 찬 기세에 소영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비틀거렸다.

바닥에 넘어지려던 찰나, 허정안이 발을 뻗어 의자를 밀었고 소영은 자연스레 바닥이 아닌 안락한 의자 위로 안착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허명진이 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동시에 벌어진,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 그가 머리를 내밀었을 때, 허정안의 손에 들려 있던 젓가락 중 한 개가 슉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그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명진이 고개를 돌려보자, 젓가락은 이미 벽에 깊게 꽂혀 있었다.

그는 더욱 격분했다.

“허정안, 이 나쁜 년! 젓가락이 나한테 맞았으면 어쩌려고, 감히!”

올해 열일곱인 허명진은 이미 순방사에서 활약 중이었다. 비록 당장은 주 업무가 순찰이긴 하지만,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궁중 수비를 담당하는 황실 친위대로 배치될 수도 있었다.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친위대 총령으로 된다면 그야말로 천자의 근신.

그만큼 순방사는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고, 세 단계로 진행되는 무과 시험을 전부 통과해야만 입문이 가능했다.

허명진은 열다섯부터 이 시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하지만 신책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허함산이 위국공으로 봉해지고 나서야 특별히 채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그의 첫 근무일로, 그가 집에 없었던 이유였다.

허정안은 여전히 탁자 앞에 앉은 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 다물어. 내가 나쁜 년이면 넌 뭔데?”

“흥! 감히 너 따위가 나와 비교해? 어머니한테서 다 들었어. 돌아오자마자 집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지? 어제 내가 없길 다행으로 여겨! 안 그랬다면 넌 진작에 쫓겨났을 테니까!”

허정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쯧쯧 찼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노골적인 경멸이 깃든 그 얼굴은 허명진의 자존심을 긁어댔다.

“감히 날 무시해? 경고한다, 허정안. 집에 돌아온 것은 그렇다고 쳐도, 다시는 유진 누님을 괴롭히지 마. 그리고 앞으로는 쥐 죽은 듯이 살아. 부모님께 괜히 폐 끼치지 말고. 안 그러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는데?”

허정안이 태연히 죽을 떠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태도에 허명진은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안 그래도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 그는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미친년이...! 정말 뻔뻔해도 유분수지!”

이성을 잃은 허명진이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러나 그녀에겐 너무나도 어설픈 공격, 팔을 가볍게 드는 걸로 쉽게 막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역으로 그의 힘을 이용해 허명진의 손등을 가격했다. 허명진은 그 충격에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나다 귀퉁이에 있던 가구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치며 고통스러워했다.

허정안이 여유롭게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느려. 어떻게 이 실력으로 순방사에 들어갔지?”

그녀는 진심으로 의아했다. 허명진은 전혀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허명진이 충혈된 눈으로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맹수처럼 포효하며 허정안의 복부와 심장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허정안은 예상했다는 듯이 민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움직임을 피했다. 허명진은 결국 그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겁쟁이! 피하기만 하지 말고 반격해 봐! 누가 위인지 겨뤄!”

허명진이 분한 얼굴로 외쳤다. 하지만 허정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식탁을 덮고 있던 보를 가볍게 당겨내고는 마치 한장의 그물망마냥 허명진의 머리 위로 뿌렸다.

허명진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벗어나기는커녕 허정안에 인해 식탁보에 누에고치처럼 둘둘 감싸졌다.

허정안은 망설임 없이 그의 복부를 일곱여덟 차례 주먹을 내리꽂았고, 그는 힘없이 나가떨어져 내상을 입고 피를 토했다.

겨우 오 할도 되지 않은 힘이었지만, 허명진에겐 너무나도 버거웠다.

“이 미친년이! 감히 날 때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그가 악을 쓰며 비명을 질렀다.

허정안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냉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버틸 수 없을 거다.”

허명진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가... 감히! 공로 좀 세웠다고 유세냐! 그때 내가 어리지만 않았어도, 너 따위가 출전할 기회가 있었을 것 같아? 내가 나갔으면, 더 큰 업적을 세웠을 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서둘러 품에 챙기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 그가 더 이상 헛소리하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허정안은 그런 소영을 아주 잘했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밖으로 내던져라.”

허명진은 힘이 풀린 상태였고, 소영의 손에 잡혀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하인 몇몇이 들어오더니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그를 어딘가로 옮겨갔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소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어르신과 부인이 아시게 되면... 또 노하실텐데....”

허정안은 다시 덤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

“괜찮아. 지켜보자,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올지.”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서 급하게 밥을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차근차근 헤쳐 나가야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숟가락도 잡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손바닥을 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허명진을 죽일뻔했다.

살기가 너무 강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말렸기에 다행이지, 조금만 더 진지했더라면 방금의 젓가락은 벽이 아니라 그의 머리를 뚫었을 것이다.

허정안은 주먹을 꽉 쥐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하는 거야. 너무 빨리 죽여버리면, 고통을 못 느낄 테니.'

과거 그녀가 귀가했을 때도, 허명진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처음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열네 살, 집을 떠날 때만 해도 가지 말라며 붙잡던 동생이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것 또한 허유진이 원인이었다. 너는 정말 네 누나보다 못해, 네가 더 뛰어났으면 네 누나가 나설 일도 없었겠지, 그렇게 그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그에게 허정안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산이었고, 가문의 공훈을 독차지한 존재였으며, 여자임에도 아들인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과거를 떠올리는 와중에, 소영은 방을 청소해 나갔다. 다른 것은 쓸고 치우고 하면 됐는데, 벽에 꽂힌 젓가락을 빼내는 것은 꽤 고역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젓가락을 꽉 쥔 채 발로 벽을 밀어서야 겨우 그 젓가락을 빼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 식사를 마친 허정안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서예 연습을 시작했다.

서예는 마음을 다스리고 살기를 줄이기 위한 최고의 수련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정오가 되었고, 허 부인 쪽 하녀가 그녀를 찾아왔다.

“큰아가씨, 어르신과 부인이 안채로 오라십니다.”

소영은 책상 옆에 앉아 허정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의 말이 전해졌음에도 허정안은 여전히 서예에 열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향 하나가 거의 타들어 갈 때쯤이었다. 좀 전에 왔던 하녀가 다시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큰 아가씨, 제발 움직여 주시면 안 될까요? 어르신과 부인께서 아가씨를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제가 이번에도 혼자 돌아가면 어르신께서 저의 껍질을 벗기겠다고 합니다!”

허정안이 담청색의 옷을 입고서는 고고하게 문 앞에 서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은 하연이라고 합니다....”

허정안은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하녀는 허 부인을 모시는 이등 하녀였으며, 그녀가 유주로 강제로 시집보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조심스레 뒤에서 그녀를 옹호하는 말을 꺼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사실이 허유진 귀에 들어갔고, 하연은 원인도 모른 채 싸늘한 주검으로 우물에서 발견되었다.

허정안은 소영에게 하연을 일으켜 세우게 한 뒤, 안채로 향했다.

그러자 하연이 눈물을 닦으며 재빨리 따라 붙어 속삭였다.

“아가씨, 둘째 도련님께서 토혈하셨습니다. 어르신께서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화나셨는지 찻잔까지 내던지셨어요. 언쟁은 가능한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허정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채에 들어서자 멀찍이 허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재앙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저희가 무얼 그리 잘못했단 말입니다? 도대체 왜 명진에게 이런 짓을!”

허함산도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이번엔 가만히 있지 않겠소. 오면 다리를 분질러 버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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