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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작가: 아오
호위 몇 명이 성큼 앞으로 나서더니 거친 손길로 강채안을 탁자 위에 눌러 결박했다.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늙은 태의가 단검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서슬 퍼런 칼끝이 강채안의 심장 부근에 천천히 닿았다.

푹!

살점을 가르는 날카로운 감촉과 함께, 울컥 뿜어져 나온 뜨거운 선혈이 은대접 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강채안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키려 입술을 가차 없이 깨물었다.

뚝.

똑.

한 사발, 두 사발, 세 사발...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귓가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이 이명처럼 끈질기게 맴돌았다.

네 사발째 피를 모두 받아내었을 때, 강채안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거처에 짐짝처럼 내던져져 있었다.

가슴팍의 상처를 돌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검붉게 굳어버린 피딱지가 옷자락과 생살을 한데 짓이겨 붙여놓은 탓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뼈를 깎아내는 듯한 극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강채안은 이를 악물고 상처에 엉겨 붙은 옷 조각을 한 뼘씩 뜯어내기 시작했다. 천이 생살에서 떨어져 나올 때마다, 둔탁한 칼로 심장을 후벼 파내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차가운 식은땀이 이불을 축축하게 적셨으나 그녀에게는 신음 한 자락 내뱉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간신히 상처를 추스른 강채안은 이내 혼탁한 의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굶주림이 사납게 몰아치던 일곱 살 그해로 돌아가 있었다.

얼어붙은 설산 위에서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쥔 채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던, 그 까마득한 겨울로.

쾅!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소지환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강채안!”

그가 침상 위의 강채안을 거칠게 움켜잡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출정하기 전, 서하를 극진히 보살피라 그리도 단단히 이르지 않았더냐! 네년이 감히 저 아이를 겁박하여 내 탕약에 쓸 심두혈을 억지로 내놓게 하였단 말이냐?”

억세게 잡아채인 탓에 가슴의 상처가 터져 나갔다.

극통이 번개처럼 온몸을 훑었으나, 강채안은 그저 묵묵히 소지환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서하가 제 공을 가로채고 도리어 누명을 씌웠음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령 사실대로 낱낱이 고한다 한들, 소지환이 믿지 않을 것임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말 하거라!”

소지환이 그녀의 턱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도대체 누가 시켰더냐? 누구의 사주를 받아 그리 방자하게 군 것이냐?”

“소인...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강채안의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죽을 죄를 지었다 하였느냐?”

소지환의 안색이 한층 더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렇다면 당장 구층탑(九層塔)으로 가 형벌을 받도록 하거라!”

강채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구층탑.

왕부의 모든 암위들이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츠리는, 공포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아홉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그곳에는 층마다 각기 다른 혹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 발로 들어가 살아 나오는 자가 열에 하나도 채 되지 않는 생지옥이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강채안은 가까스로 침상에서 내려와 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구층탑 내부는 음습한 냉기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일 층의 채찍은 그녀의 살점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이 층의 인두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채 등판을 지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새겨 넣었다. 삼 층의 은침은 손톱 밑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뼈를 찔러댔다.

그렇게 칠 층에 이르렀을 때, 행형수가 그녀의 손가락을 마디마디 꺾어 부러뜨렸다.

눈앞이 아찔하게 무너지는 극통 속에서 문득 과거의 기억이 스쳤다.

구천세의 손아귀에 붙잡혀 독개미 떼에게 손가락 살점을 뜯기며 하얀 뼈를 드러내었던 그 끔찍한 날.

그때는 오직 소지환, 그 한 사람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이를 악물며 버텨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조차 떠올릴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윽고 꼬박 하루가 지난 후에야 강채안은 구층탑 밖으로 끌려 나올 수 있었다.

핏물과 살점이 뒤엉겨 처참하게 짓이겨진 몸 위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저만치 뒷짐을 진 채 서늘하게 서 있는 소지환의 윤곽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제 네 죄를 알겠느냐?”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온몸에 성한 살점 하나 없이 흙바닥에 엎드린 채, 강채안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소인... 깊이 뉘우치고 있나이다.”

“다음은 없다.”

소지환이 그녀의 앞에 약환 하나를 툭 던졌다.

“목숨을 부지하게 해줄 약이니, 먹고 거처로 돌아가 몸을 추스르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강채안은 머리를 조아린 뒤, 떨리는 손으로 약환을 집어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약은 사뭇 썼으나 가슴속에 고인 고통의 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거처로 돌아온 강채안은 홀로 상처를 꿰매고 약을 발랐다.

몸속의 가사약은 날이 갈수록 그 기운을 더해가며, 그녀의 맥박을 점점 끊어질 듯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약을 건넨 자가 말하길, 복용한 지 이레째 되는 날이면 마침내 숨통이 끊어질 것이라 하였다.

강채안은 손꼽아 날짜를 세었다.

이 고통스러운 생에서 마침내 해방될 그날만을.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하의 생일이 돌아왔다.

왕부에는 귀한 손님들이 몰려들어 성대한 연회가 펼쳐졌다. 강채안은 그림자 같은 암위의 신분으로 화려한 연회장 구석진 음지에 소리 없이 서 있었다.

한편, 강서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비단 옷을 걸친 채 꽃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빈객들은 저마다 진주와 마노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을 하례품으로 바쳤다. 소지환이 내놓은 것은 황금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봉황 비녀였는데 그 만듦새와 가치는 가히 성 한 채와 맞먹는다고 했다.

강서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비녀를 머리에 꽂고 빈객들 사이를 유유히 거닐다가, 이윽고 강채안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언니.”

강서하가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를 위한 선물은 무엇을 준비하였어?”

강채안은 침묵했다.

주군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암위에게 내어줄 재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것도 없는 거야?”

강서하는 짐짓 실망한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그렇다면 선물 대신... 언니가 멋진 무예라도 선보여 연회의 흥을 돋우는 건 어떨까? 듣자 하니 왕야의 암위가 될 때 수천 명의 무인들과 피 터지는 사투를 벌여 살아남았다면서? 불행히도 나는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였으니.”

그녀가 여우처럼 눈꼬리를 접었다.

“마침 후원에 굶주린 늑대 떼를 키우고 있지 않아? 언니가 그 늑대들과 맨몸으로 싸워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건 어떨까?”

바로 그때, 강채안은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소지환을 바라보았다.

소지환 역시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리며 아주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

“왕야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관두겠사옵니다.”

강서하가 짐짓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이며 소지환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소지환이 즉시 강서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다만 그 격투가 지나치게 잔혹하여 네 여린 심성이 놀랄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왕야께서 제 곁에 계시거늘, 신첩이 무엇이 두렵겠사옵니까.”

강서하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으로 사뿐히 파고들었다.

이윽고 소지환의 서늘한 시선이 강채안에게 닿았다.

“... 가거라.”

지극히 덤덤하고 짤막한 한마디.

그것은 그녀를 향한 사형선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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