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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作者: 눈빛 속의 약속
조원철은 침묵이 내려앉은 마당을 무섭게 가로질러 갔다.

서유가 숨을 죽이고 슬쩍 고개를 들어 보니, 바람에 나부끼는 도포 자락과 흙먼지 묻은 가죽 장화가 눈에 들어왔다.

끼익!

조원철이 안채의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자, 서유는 소스라치게 놀란 듯 재빨리 곁에 엎드린 청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지금은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처지야.”

청류는 짧은 몇 마디만 던지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강유영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두가 입을 모아 주군을 기만한 꼴이 되었다.

오늘 마당에 엎드린 자들 중 성한 몸으로 걸어 나갈 이는 없으리라.

다들 꼼짝없이 형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원철은 느릿하게 문지방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탁자 위의 다구들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방 안은 그녀가 처음 머물렀던 그때와 다름없이 깨끗했다.

마치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린 듯했다.

조원철의 눈빛이 무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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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9화

    이곳은 강유영의 처소였으니, 가장 먼저 의심의 화살이 향한 곳은 당연히 강유영이었다.조원철도 깊고 짙은 눈동자를 들어 강유영을 응시했다.강유영은 일찍이 대비해 둔 터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써 긴장을 늦추지 않고, 까맣고 투명한 눈동자를 굴리며 짐짓 놀란 기색을 꾸며냈다."어찌 이런 일이....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그녀는 이 일이 이화의 짓이라고 섣불리 폭로하지 않았다. 한씨가 직접 캐내게 두는 편이 훨씬 나았다.말이 많으면 꼬투리를 잡히는 법이다.괜히 입을 열었다가 오히려 한씨의 의심만 살 뿐이었다."어멈, 당장 낱낱이 조사하거라!"한씨가 분노한 목소리로 호령했다.진국공부의 안살림을 물려받은 이후, 그녀는 안주인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느라 이토록 크게 화를 낸 적이 드물었다.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뼈를 파고드는 다리의 고통만으로도 이미 짜증이 치솟는데, 자신이 이 꼴이 된 것이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자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여태껏 그녀가 남을 쥐락펴락했으면 했지, 그녀를 상대로 이런 음모를 꾸민 자는 없었다."예, 부인."풍씨 어멈은 곧바로 강유영을 향해 허리를 살짝 굽히며 말했다."유영 아씨, 결례를 좀 범해야겠습니다. 여봐라, 저기 있는 네 사람 모두...."이 요월원에는 강유영을 포함해 총 네 사람뿐이었다.조사를 하려면 당연히 강유영 일행을 모두 가두고 심문해야 마땅했다.강유영은 입을 꾹 다문 채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아직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풍씨 어멈은 주종 네 사람을 모두 잡아들이라 명했다. 믿는 구석이라곤 당연히 한씨의 권세였다. 그녀가 뒤를 봐줄 사람 하나 없는 처지라고 대놓고 얕보는 것이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한씨라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잠깐."조원철이 풍씨 어멈의 말을 끊었다."세자"풍씨 어멈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청운."조원철의 부름을 들은 청운이 앞으로 나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8화

    조원철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 시녀를 바라보았다.강유영도 의아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진국공에게 변고가 생겼다니?한씨가 집안의 첩실 중 누군가에게 손을 쓸 것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진국공에게까지 손을 뻗쳤단 말인가?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역시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무슨 일인데 그리 체통 없이 소리부터 지르느냐!"풍씨 어멈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엄한 목소리로 시녀를 꾸짖었다.한씨의 상태가 걱정되어 속이 타들어 가던 참이라, 시녀가 뭐라 외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이거 좀 놓고 저 아이한테 말해 보라 하거라. 나으리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게냐?"한씨는 고통 속에서도 풍씨 어멈을 밀쳐내고 계단 위에 주저앉았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정신만은 유난히 또렷했다. 시녀의 말을 듣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픔을 불사하고 물은 것이다."나으리께서 이 부인의 처소에서 무언가를 드시고는 갑자기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이 부인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 의원을 모시러 갔습니다...."시녀가 황급히 대답했다."어찌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터진단 말이냐."말을 마친 한씨는 강유영을 힐끗 쳐다보았다.연씨 쪽은 왜 잠잠한지, 어쩌다가 진국공이 탈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진국공이 복통을 앓는 것이 연씨가 아픈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컸다.나중에 노부인이 부른 도사가 와서 입을 떼면, 강유영이 액운을 몰고 와 집안 전체에 화를 미친다는 가설이 사실이 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씨는 조원철을 힐끗 보았다. 아직 강유영에게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는데 벌써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지금 당장 그가 자신과 강유영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변명한다 해도 믿을 수 없었다.이번에야말로 기필코 강유영을 내쫓아 후환을 없애버릴 것이다.그 생각을 하니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리의 통증마저 잊히는 듯했다."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7화

    한씨는 극심한 고통에 바닥에 쓰러져 다리를 부여잡고 큰 소리로 신음했다.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일반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국공부 안주인으로서의 체면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다리를 껴안고 바닥을 나뒹굴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러니 강유영의 물음에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유영 아씨, 어서 사람을 보내 의원을 모셔오게 하십시오! 어서요!"다급해진 풍씨 어멈이 엉겁결에 강유영을 살짝 밀치며 재촉했다.강유영은 그 거친 손길에 밀려 비틀거렸다.다행히 눈치 빠른 서유가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서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아씨, 소인을 보내지 마십시오. 저는 아씨 곁을 지키겠습니다."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강유영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만에 하나 아씨의 몸에 생채기라도 나는 날엔, 세자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어머니의 시녀들도 이리 많은데, 어찌 제 사람을 보내라 하십니까?"강유영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딱 잘라 말했다.그녀는 제 사람을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한씨 수하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이미 일이 벌어진 마당에 괜히 나섰다가는 꼬투리를 잡히기 십상이었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나중에 의심을 덜 살 것이다."너, 어서 가서 의원을 모셔오너라!"풍씨 어멈도 지금은 강유영과 옥신각신할 여유가 없었기에, 근처에 있던 시녀에게 호통쳤다.지목당한 시녀가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다."부인, 조금만 참으십시오. 소인들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풍씨 어멈은 의원이 당도했을 때 한씨가 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체통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녀들을 불러 부인을 방 안으로 옮기라 명했다.강유영은 뒷걸음질을 치며 멀찌감치 자리를 비켜주었다.문득 일전에 왕연령이 낙마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주제넘게 왕씨 집안사람들에게 부상자를 함부로 옮기지 말라고 참견했었다. 당시에는 순수한 호의로 건넨 조언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상대의 모욕과 원망뿐이었다.그러니 이제 와서 풍씨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6화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다.갑자기 걸음을 멈춘 한씨가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네 할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강유영은 겁먹은 듯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어머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으니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노부인의 뜻을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저들은 그녀가 조원철을 홀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런데 어째서 한씨는 그 돌판 쪽으로 가서 넘어지는 시늉을 하지 않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무언가 낌새라도 챈 걸까?이화가 꽤나 감쪽같이 손을 써두었기에,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허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보는 눈도 이리 많은데, 기어코 내 입으로 말해야겠느냐?"한씨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문제의 돌판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강유영은 마음이 불안해져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한씨의 뒤를 따랐다.어차피 그녀는 늘 이렇게 겁 많고 유약한 성정이었으니,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그런데 한씨가 문제의 돌판을 그냥 지나친 것이 신경이 쓰였다.정말로 뭔가 눈치라도 챈 것일까?순간, 강유영의 마음속에는 실망감과 안도감이 교차했다.그동안 공들여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실망스러웠으나, 한씨가 다치지 않았으니 더 이상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었다."네 오라비의 혼사에 대해서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한씨가 불쑥 물었다.강유영은 짐짓 놀란 척 대답했다."오라버니의 혼사야 당연히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께서 뜻을 모아 정하실 일 아닙니까. 어찌 갑자기 제게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한씨는 이미 그녀와 조원철이 부적절한 사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또 이런 간보는 말을 꺼내는 걸까?"네 할머니께서 널 의심하고 계시니, 스스로 오해를 해명해야 하지 않겠느냐?"한씨의 얼굴에 온화한 기색이 떠올랐다."네 할머니께 가서 네 오라버니와 우리 외가쪽 사촌누이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말씀드리거라. 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5화

    강유영은 회랑의 난간밖으로 상체를 살짝 내밀며 이화를 불렀다.해 질 녘의 붉은 노을이 가냘픈 자태에 금빛을 흩뿌려 그녀의 고운 얼굴에 평소보다 한층 단아하고 위엄 있는 기색을 더해주었다.종종걸음으로 밖으로 향하던 이화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문밖에 좀 다녀오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씨, 제게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켕기는 게 있으니 소인이라 자칭하는 것마저도 잊어버렸다.바닥 돌판에는 이미 손을 써둔 터였다.강유영이 거기를 밟기만 하면,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더라도 발목을 삐어 보름은 꼼짝없이 누워 지낼 것이다.지금 지난밤에 쓴 도구들을 내다 버리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강유영 주종 세 사람은 무언가 눈치라도 챈 것처럼 번갈아 가며 그녀를 감시했다.탁자를 닦고 마당을 쓸라 하질 않나, 화초를 다듬으라 하질 않나, 도무지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이참에 겨우 짬이 나서 물건을 처리하려 했건만 강유영이 또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이리 와보렴."강유영이 손짓했다.서유는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씨?"이화는 감히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강유영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공손해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네 자수 솜씨가 제법 뛰어나다고 들었다."강유영은 자수틀을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내게도 수놓는 법을 좀 가르쳐주겠니?"그녀의 맑고 빛나는 눈빛이 이화의 두 눈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조원철은 늘 그녀에게 윗사람은 응당 윗사람다운 자태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흔들림 없이 당당하고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아야 아랫사람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지금 그녀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이화는 강유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세에 눌려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그녀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자수틀을 받아 들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64화

    "춘화는 노부인께서 보내주신 사람입니다. 정말 이대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풍씨 어멈이 조심스레 물었다.과거 노부인은 산으로 떠날 때, 수족처럼 부리던 춘화를 한씨의 곁에 남겨두고 갔다. 며느리의 안살림을 도와준다는 명목이었다.지금처럼 고부 사이에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춘화는 노부인이 안방에 심어둔 첩자와 다름없었다.제비집 보양식에는 약이 들어 있었다. 연씨가 먹고 나면 머지않아 병증이 나타날 것이다. 한씨가 굳이 춘화를 시켜 심부름을 보내는 이유는, 혹여나 일이 커질 경우 춘화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되면 강유영에게 액운이 끼었다는 헛소문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동시에 눈엣가시 같은 춘화마저 자연스레 제거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묘안이었다.다만, 행여나 노부인이 이 일로 노발대발하며 판을 엎어버릴까 두려울 뿐이었다."그쪽에서 내 체면을 안 봐주는데 내가 그 늙은이의 사람을 곁에 둘 이유라도 있어?"한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시어머니가 먼저 야박하게 나오니 자신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그녀는 안살림을 갓 물려받아 이리저리 휘둘리던 과거의 새며느리가가 아니었다. 지금의 진국공부 안채는 안팎으로 모두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굳이 늙은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들 이유가 없었다."예, 알겠습니다."풍씨 어멈은 곧바로 문을 열어 춘화를 불렀다.춘화는 아무런 의심 없이 찬합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섰다.한씨는 평소 처세술에 꽤나 능한 안주인이었다. 별일이 없을 때면 종종 집안의 첩들에게 값비싼 보양식이나 비단, 장신구 따위를 하사하며 관대한 안주인 행세를 했다. 그러니 오늘 같은 일도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연씨는 집안에서 가장 진국공의 총애를 받는 첩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 다른 첩들은 아예 뒷방 신세로 전락해 집안에서 거의 존재감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춘화 너 어디 가니?"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조사예가 춘화를 보고 말을 걸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82화

    결국 강유영은 주먹을 꽉 쥐고 차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억누룰 수밖에 없었다.“유영이 너 왜 그러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인자하게 휘어진 한씨의 눈매 뒤에는 날카로운 의심이 숨어 있었다.‘저 요물 같은 것이 아무 연고도 없이 얼굴을 붉힐 리가 없는데?’한씨는 강유영이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조원철을 홀리려고 은밀히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어머니.”강유영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송구하옵지만, 저는 이만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77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유영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명을 받들겠습니다, 어머니.”“어머니께서는 집안을 늘 이런 식으로 관리하십니까?”한씨가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얼음장처럼 서늘한 조원철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원철아, 네가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냐?”고개를 돌린 한씨는 서슬 퍼렇게 굳어 있는 아들의 안색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찔리는 속내를 감추며 서둘러 말을 건넸다.소은경 역시 조원철의 수려하면서도 서늘한 얼굴을 마주하자,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분명 바빠서 저택을 비웠다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74화

    “부드럽군.”마치 귓가를 스치는 봄바람처럼 감미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강유영은 가슴이 두근거려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다시 한번 그를 밀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비록 그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긴 하지만, 어쩌다 입을 열면 참 당혹스러운 말을 내뱉고는 했다.“가만히 있거라.”조원철이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경고하듯 말했다.그 사이 밖에서는 소은경이 대문을 부술 듯 두드려대고 있었다.강유영이 밖을 살피려 고개를 내밀자, 조원철은 그녀의 머리를 다시 제 품 안으로 눌러 넣었다.강유영이 거부하려 발버둥쳤지만 그의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73화

    강유영은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던 소만이었는데 어찌 이리도 갑자기 돌변한단 말인가.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녀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소만은 소은경의 심복이지만 아무리 잘나도 한낱 노비에 불과했지만, 도경진은 달랐다.그는 탐화랑 출신에 어엿한 관직을 지닌 몸이었다. 그의 첩실이 된다면 어찌 되었든 반쪽짜리 상전 대접은 받을 터이니, 소은경 밑에서 시녀 노릇을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터였다.더군다나 도경진은 인품도 훌륭하고 외모도 수려한 사내이니, 이런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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