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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JL그룹

Autor: 유영실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6-15 12:55:30

차는 도심 한복판,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 앞에 멈췄다.

빌딩 꼭대기에는 세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JL'. 자산 규모 국내 5위, 세계 30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그룹.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었다.

"오시는 길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중년 남자—비서실장 한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지안은 창밖의 빌딩을 올려다봤다.

"10년 만이네요."

10년 전. 그녀는 JL그룹 창업주의 외동딸이었다. 하지만 후계 자리를 놓고 벌어진 친척들의 암투 속에서, 아버지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그녀를 '평범한 사람'으로 숨겼다. 이름도 신분도 지운 채, 작은 동네로 보냈다.

"네 능력을 스스로 증명하기 전엔 돌아오지 마라. 사람을 보는 눈도, 밑바닥의 삶도 모르는 채로는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서지안은 신분을 숨긴 채 해외에서 작은 무역회사를 차렸다. 남편도 시댁도 모르게. 그 회사는 5년 만에 매출 1조를 넘겼고, 작년 JL그룹의 핵심 자회사를 통째로 인수했다.

이제 그녀는 단순한 창업주의 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장. 그 안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JL그룹의 다음 회장은 내 딸 서지안이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임원 수십 명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을 뵙습니다."

서지안은 천천히 회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상석, 비어 있던 그 자리에. 10년 만에 그녀가 앉았다.

"오래 비워뒀네요."

그녀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제부터, 제가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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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6화 — 이틀의 휴가

    이상하게도, 며칠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강윤서 쪽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서지안을 긴장시켰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의 침묵이란, 대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 팽팽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뜻밖에도 강도현이었다."지안아. 이틀만, 나한테 줘."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꺼낸 말에, 서지안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이틀이요?""여행 가자. 멀리 안 가. 차로 세 시간."서지안이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난처하게 웃었다."선배. 지금 상황 아시잖아요. 강윤서 씨가 뭘 준비하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자리를 비우면…""폭풍은 어차피 와."강도현이, 그녀의 말을 조용히 잘랐다."네가 책상에 붙어 앉아 있어도 오고, 바다에 가 있어도 와. 오는 걸 못 막는다면, 오기 전에 이틀 정도는 숨좀 돌려보자. 나는 십오 년을 기다렸어, 지안아. 너랑 나의 사이를 세상에 다 알린 다음에도 회의실에서만 얼굴 보는 건, 좀 억울하잖아."서지안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억울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이 남자는 십오 년을 그늘에서만 지켜 왔고, 지켜 온 값을 한 번도 청구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요구한 것이, 겨우 이틀이었다.그날 저녁, 서지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등을 밀어 준 사람은 딸이었다. 마침 서아는 다음 주에 이 박 삼 일 학교 수련회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엄마도 놀러 가!"일곱 살짜리가, 아주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나도 수련회 가는데 엄마만 회사 가면 불쌍하잖아. 아저씨랑 사이좋게 지내야 돼. 싸우면 안 돼.""…엄마가 언제 싸웠어.""그리고 엄마."서아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나 이제 아저씨한테 뭐라고 불러야 돼?"서지안의 말문이, 잠깐 막혔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아이가 그것을 먼저 궁금해했다는 사실이,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데웠다."…천천히 생각해도 돼. 서아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는 거야."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5화 — 독이 든 초대

    강윤서가 다시 움직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이번에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자금도 지분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훨씬 은밀한 칼이었다.어느 날, 서지안에게 한 통의 익명 제보가 도착했다. 강도현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과거, 강윤서와 약혼했던 시절에 오간 편지와 사진들. 그리고 그중 몇 장은, 지금 보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것들이었다. 다정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강도현이 강윤서에게 보낸, 젊은 날의 안부 편지.물론, 서지안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집안끼리 맺어진 정략혼의 흔적일 뿐이라는 것을. 강도현의 마음이, 단 한 번도 강윤서에게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그러나 강윤서의 노림수는, 서지안이 아니었다.같은 자료가, 몇몇 언론사와 재계 인사들에게도 은밀히 뿌려졌다. 'TK그룹 강도현 회장, 옛 약혼녀와의 밀회설.'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의혹의 안개만 피워 올리면, 사람들은 알아서 최악을 상상할 테니까. 그것은, 서이든이 쓰던 수법과 똑 닮아 있었다. 어쩌면 강윤서는, 서이든의 몰락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방식을 배웠는지도 몰랐다.강도현은, 크게 분노했다."…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이야. TK 법무팀을 움직여서, 당장 대응하겠어."그러나 서지안은, 그의 팔을 잡았다."아뇨. 강윤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예요."그녀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선배가 발끈해서 소송을 걸면, 그 자체가 기사가 돼요. '밀회설에 발끈한 TK.' 부인하면 할수록, 없던 의혹도 진짜처럼 보이죠. 그렇다고 제가 나설 수도 없어요. 세상은 아직 우리 사이를 모르는데, JL이 남의 그룹 회장 스캔들에 끼어들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요. 강윤서는 지금, 우리 둘 중 누구든 흥분해서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어요.""…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서지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옅게 웃었다."이번엔, 정면으로 가죠. 부인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진실을 먼저 내놓는 거예요. 강윤서가 안개를 피우려 한다면, 안개가 무의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4화 — 아버지의 그늘

    서지안이 찾아낸 약점은, 강윤서 자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 HW그룹의 강 회장이었다.강 회장은, 자수성가로 HW를 일군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힘겹게 세운 회사가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뿐인 딸에게 회사를 맡기려면 딸이 '경영자'로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강윤서의 모든 힘은, 결국 그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HW의 자금도, 이사회의 실권도, 세상을 향한 그 오만한 여유도. 전부 강 회장이라는 뿌리에 매달린 가지였다. 강윤서 자신은 그 사실을 잊고 살았지만, 서지안은 놓치지 않았다.바로 그 지점을, 서지안은 파고들었다.그녀는 강윤서의 대성정밀 지분 매입 과정을 낱낱이 정리했다. 이사회 승인을 건너뛴 점, 회사 자금을 사적 목적에 유용한 정황, 그로 인해 HW가 떠안게 된 리스크까지. 그리고 그 자료를, 언론이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 조용히 전달했다. 강윤서의 아버지, 강 회장에게.메시지는 간단했다. 따님이 회사 자금으로, TK그룹 강도현 회장 개인을 겨냥한 사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HW의 신인도에 흠집이 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협박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고에 가까운 배려였다. 그리고 그 배려는, 강 회장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건드렸다.며칠 뒤, 강윤서는 아버지의 호출을 받았다."…네가, 대성정밀 지분을 사들였다고?"강 회장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강윤서는,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회사 돈으로, 그것도 이사회를 건너뛰고.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남의 사업을 흔들었다는 게, 사실이냐.""아버지, 그건…….""내가 너한테 HW를 물려주려고 한 게, 이런 짓을 하라고 한 줄 아느냐."강 회장의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3화 — 판을 읽다

    서지안은, 곧바로 한무현을 불렀다."대성정밀 건, 정면으로 붙으면 이길 수 없어요. 강윤서가 최대주주인 이상, 단가든 공급이든 저 사람 손바닥 안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다른 걸 봐야 해요."그녀가, 서류를 펼쳤다. 서이든이 넘긴 정보와, 한무현이 밤새 파낸 자료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강윤서가 대성정밀 지분을 사들인 자금. 그 출처를 추적해 보세요."한무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자금 출처를요? HW의 돈이면, 문제 될 게 없지 않습니까.""그게, 이상한 지점이에요."서지안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HW는 강윤서 개인 회사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세운, 엄연한 상장사죠. 그런데 강윤서가 개인적인 앙갚음을 위해 회사 자금을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였다면. …그건, 배임이 될 수도 있어요."한무현의 눈이, 커졌다.며칠에 걸친 추적 끝에, 그림이 드러났다. 강윤서는 대성정밀 지분 매입에 HW의 자금을 끌어다 썼다. 명목은 '전략적 투자'였지만, 실상은 강도현을 겨냥한 사적인 공격이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강윤서는 이사회의 정식 승인을 건너뛰고 있었다. 아버지의 신임을 등에 업은 실권자였기에 가능한, 오만한 독주였다.한무현이, 자료를 정리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확실히, 절차상 하자가 있습니다. 다만 회장님, 이걸 언론에 흘리면 HW가 발칵 뒤집힐 텐데요. 강윤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언론에, 흘릴 생각 없어요."서지안이, 담담하게 답했다."저는, 진흙탕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강윤서를 세상에 망신 주는 게 목적이었다면, 벌써 그렇게 했겠죠. 제가 원하는 건, 강윤서가 이 손을 스스로 거두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려면, 이 자료가 닿아야 할 곳은 언론이 아니라 다른 곳이죠."한무현은, 그녀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지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다만 그 서늘하고 정교한 눈빛에서, 이번 싸움도 이미 서지안의 손안에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약점이, 있었네요."서지안이, 나직이 말했다."강윤서는 자기가 모든 걸 쥐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2화 — 무너지는 발밑

    강윤서의 수는, 만찬이 끝나기 무섭게 모습을 드러냈다.며칠 뒤, 강도현이 이끄는 TK·JL 합작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핵심 부품을 독점 공급하던 협력사 '대성정밀'이, 돌연 납품 단가를 대폭 올리겠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그것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말이 됩니까. 계약 기간이 아직 이 년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단가를 올린다니요."합작 사업단 임원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보고했다. 강도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대성정밀 지분을, 최근에 누가 사들였는지 확인해 보세요."결과는, 예상대로였다. HW였다. 강윤서는 몇 달에 걸쳐 대성정밀의 지분을 조용히 사 모았고, 어느새 최대주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힘으로 협력사를 움직여 강도현의 합작 사업을 정조준하고 있었다.단가를 받아들이면, 합작 사업의 수익성이 무너진다. 거부하고 공급처를 바꾸면, 새 부품을 검증하는 몇 달 동안 생산 라인이 멈춘다. 어느 쪽이든, 강도현의 합작 사업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대성정밀은, 이십 년 넘게 JL과 손발을 맞춰 온 오랜 협력사였다. 그 오랜 신뢰가, 지분 하나로 하룻밤 사이에 뒤집혔다. 대성정밀 대표도 곤혹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최대주주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업이라는 세계에서, 지분을 쥔 손의 힘이 얼마나 냉정한지를. 강도현은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절묘한 함정이었다. 강윤서는 강도현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딛고 선 땅을, 소리 없이 파냈을 뿐이었다.만약 서이든이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았더라면, 서지안도 이 공격의 실체를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을 것이다. 강윤서는 그만큼 조용하고 은밀하게 판을 짜 두었다. 새삼, 그 사냥꾼의 치밀함이 서늘하게 다가왔다."…역시, 서이든의 말이 맞았네요."보고를 받은 서지안이, 낮게 중얼거렸다."선배를 곤경에 빠뜨린 다음,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 그게, 저 사람의 그림이에요."바로 그때, 강윤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도현에게 직접 걸려 온 전화였다."도

  • 버린 아내가 그룹 회장이었다   제91화 — 만찬에 온 손님

    JL그룹 창립 기념 만찬은, 해마다 그룹의 얼굴이 모이는 자리였다.올해는 유난히 이목이 쏠렸다. 서영애의 몰락과 서이든 사태를 연달아 이겨 낸 서지안이, 회장으로서 처음 여는 공식 행사였기 때문이다. 홀에는 협력사 대표들과 재계 인사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카메라 플래시가 쉼 없이 터졌다.행사를 서지안과 함께 이끈 것은, JL의 합작 파트너인 TK그룹 회장 강도현이었다. 국내 최대 그룹 중 하나를 이끄는 그가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재계의 이목이 쏠렸다. 서지안은 회장 자격으로 짧은 환영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두 사람 모두 웃을 수 있는 자리였다.환영사를 앞두고, 서지안은 잠시 홀 한쪽에서 숨을 골랐다. 강도현이 다가와, 그녀에게 물잔을 건넸다."떨려?""조금요. 이런 자리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익숙해질 필요 없어. 그냥 너답게 하면 돼.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강도현의 낮은 목소리에, 서지안은 옅게 웃었다. 며칠 전 한강의 밤이, 아직 두 사람 사이에 온기로 남아 있었다. 오랜 싸움 끝에 겨우 찾아온 이 평온을, 서지안은 조심스레 만끽하고 있었다.그 평온에 균열을 낸 것은,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의 등장이었다."어머, 분위기 좋네요."홀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렸다. 진홍빛 드레스를 걸친 강윤서가,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등장만으로, 홀의 공기가 미세하게 팽팽해졌다.강도현의 얼굴이, 굳었다."…강윤서 씨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어쩐 일이라뇨. 저희 HW가, JL 협력사 두 곳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창립 만찬에 얼굴 한 번 비추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강윤서가, 생긋 웃으며 초대장을 살랑 흔들어 보였다. 협력사 자격으로 정식 초청을 받아 낸 것이다. 명분은 완벽했다. 그 누구도, 그녀를 내쫓을 수 없었다.강도현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서지안이 조용히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손해 보는 쪽은 이쪽이었다. 서지안은 담담하게 앞으로 나섰다."오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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