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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바람노래
주인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 혼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고, 그래서 은혁이 방해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은혁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없어, 차갑게 굳은 은혁의 얼굴은 못 본 척하며, 배효산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여보, 아니면 이번 주말 어때요? 성우가 먼저 선물 챙겨서 레나네 집에 다녀오고, 그다음에 양가가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거죠.”

배효산이 막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서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하는 재빨리 전화를 받더니 일어나 식탁 위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재희 씨, 무슨 일이에요?”

서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고운 눈매는 전화를 받으며 멀어져 갔다.

은혁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서하를 바라봤다. 눈빛에 의문이 스쳤다.

주인정이 중얼거렸다.

“바쁘겠지, 뭐.”

그때 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때 같이 식사해요. 은혁 오빠도 오세요.”

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로 성큼 걸어 나갔다.

배효산이 불러 세웠다.

“어디 가? 밥 다 안 먹었잖아!”

레나도 뒤이어 소리쳤다.

“오빠!”

그제야 은혁이 돌아봤다.

“괜찮아. 너희끼리 먹어.”

잠시 뒤, 서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을 땐 이미 은혁이 보이지 않았다.

레나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물었다.

“성우야, 은혁 오빠가 이 혼사 반대해서 화내고 나간 거야?”

‘그럴 만도 했지. 첫사랑이 친동생의 약혼녀가 된다니...’

‘배은혁으로서는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을 거야.’

서하의 가슴은 더 아프게 조여 왔다. 눈앞의 식탁이 뿌옇게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성우가 입을 열었다.

“설마... 게다가 내 결혼 문제인데 형이 가타부타 말할 일도 아니잖아.”

식탁 위 사람들은 번갈아 레나를 달래며 위로했다.

모두가 말을 마친 뒤,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천천히 드세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도련님, 약혼 날짜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미리 선물 준비해 둘게요.”

레나는 온화하게 서하를 바라보며, 눈길에 승자의 미소를 담았다.

“고마워요, 서하 언니.”

서하는 잠시 레나를 바라보다가 돌아서 나갔다. 마침 연구원에서 데이터에 문제가 생겨 마음이 복잡해진 터라, 곧장 연구원으로 향했다.

처리 과정에서 엉킨 데이터가 하나 있어 본능처럼 재희를 떠올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재희는 이미 어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서하가 일을 마쳤을 땐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복잡한 수식을 곱씹으며 계단을 내려오다 그만 발을 헛디뎌 크게 휘청였다.

“아...”

서하는 절뚝이며 간신히 버텼다. 발을 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

결혼 후, 서하와 은혁은 ‘구름바다’에 살면서 주말에만 본가에 들렀다.

H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 중 하나, 땅값이 금싸라기인 곳이었다.

두 사람의 집은 ‘구름바다’의 전원주택 구역에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창밖으로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그날 밤, 거실의 전면 유리창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은혁은 현관에 들어서는 서하를 곧바로 보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한참을 참고 걸어온 덕분에 서하의 발목 통증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조심스레 발을 디뎌 보니 걸을 만했다.

걸음은 느렸지만, 겉으로는 발목을 다친 게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혁은 서하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다음 순간, 서하는 현관 벽에 그대로 밀쳐졌다.

남자에게서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은혁은 말 한마디 없이 몸을 기울여 서하의 입술을 덮쳤다.

서하는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밀어냈지만, 은혁은 서하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남녀 사이의 힘 차이는 분명했다.

결국 서하는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혁은 그제야 서하에게서 입술을 떼었다. 곧은 자세로 서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친 입맞춤 탓에 서하의 머리칼은 흐트러졌고,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큼은 차갑고 또렷했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온 거야?”

은혁의 목소리는 낮고 울림이 있었지만, 따뜻함은 묻어나지 않았다.

서하는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아. 배은혁의 첫사랑이 약혼을 앞두고 있는데,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

‘그렇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지?’

서하는 힘껏 은혁을 밀쳐내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디딤돌 같은 고통이 발목을 파고들었다.

“읏...”

날카로운 여자의 신음과 함께 몸이 휘청였고, 은혁이 서하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 버텼다.

“발목, 왜 그래?”

은혁의 목소리에는 잠시 걱정이 스쳤다.

곧 몸이 붕 뜨며 서하는 놀라움에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은혁이 단번에 안아 올린 것이다.

“다쳤으면 억지 부리지 마.”

굳은 얼굴로 서하를 안은 채, 은혁은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서하를 눕힌 뒤, 은혁은 곧 전화를 받으러 방을 나갔다.

남겨진 서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얼음을 챙겨 나오고, 욕실에서 수건을 찾았다.

새 수건은 분명 이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통증을 참으며 이곳저곳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서하는 낡은 수건에 얼음을 싸서 다친 발목 위에 올려두었다.

안방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몇 분 뒤, 노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은혁이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뼈에 이상 없는지 좀 봐주세요.”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다. 단순한 염좌라서 서하에게 냉찜질 하고 파스를 붙이면 내일쯤 많이 나아질 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를 배웅하고 돌아온 은혁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레나야, 아까는...”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에, 목소리는 곧 희미해져 서하에겐 들리지 않았다.

‘역시. 조금 전 전화도 민레나였던 거구나.’

그러나 서하의 가슴 한구석이 날카롭게 찔린 듯 서늘해졌다.

은혁은 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시선을 침실 쪽으로 두고 짧게 대답했다.

“그래.”

...

다음 날, 서하는 연구에 하루 종일 매달렸다.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발목이 아직 편치 않다는 걸 느꼈다.

잠시 걸음을 옮기며 상태를 살핀 뒤, 견딜 만하다 싶어서 그녀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친 서하는 곧장 침대에 몸을 누였다. 머릿속은 여전히 어수선했지만, 눈을 감으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니까.

그때 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서하가 그대로 누워 있자, 곧 매트리스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뜨거운 체온이 그녀의 등 뒤로 밀려왔다.

남자의 팔이 어깨를 감싸고, 손길은 팔을 따라 흘러내려 가느다란 서하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서하는 급히 그 손을 붙잡았다.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아.”

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생리야? 아직 말일도 안 됐잖아.”

“아니, 그거 아니야.”

서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냥... 하기 싫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곧 낮게 떨어진 은혁의 목소리.

“하지만 난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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