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Author: 바람노래
주인정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 혼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고, 그래서 은혁이 방해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은혁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없어, 차갑게 굳은 은혁의 얼굴은 못 본 척하며, 배효산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여보, 아니면 이번 주말 어때요? 성우가 먼저 선물 챙겨서 레나네 집에 다녀오고, 그다음에 양가가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거죠.”

배효산이 막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서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하는 재빨리 전화를 받더니 일어나 식탁 위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재희 씨, 무슨 일이에요?”

서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고운 눈매는 전화를 받으며 멀어져 갔다.

은혁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서하를 바라봤다. 눈빛에 의문이 스쳤다.

주인정이 중얼거렸다.

“바쁘겠지, 뭐.”

그때 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때 같이 식사해요. 은혁 오빠도 오세요.”

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로 성큼 걸어 나갔다.

배효산이 불러 세웠다.

“어디 가? 밥 다 안 먹었잖아!”

레나도 뒤이어 소리쳤다.

“오빠!”

그제야 은혁이 돌아봤다.

“괜찮아. 너희끼리 먹어.”

잠시 뒤, 서하가 전화를 끊고 돌아왔을 땐 이미 은혁이 보이지 않았다.

레나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물었다.

“성우야, 은혁 오빠가 이 혼사 반대해서 화내고 나간 거야?”

‘그럴 만도 했지. 첫사랑이 친동생의 약혼녀가 된다니...’

‘배은혁으로서는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을 거야.’

서하의 가슴은 더 아프게 조여 왔다. 눈앞의 식탁이 뿌옇게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성우가 입을 열었다.

“설마... 게다가 내 결혼 문제인데 형이 가타부타 말할 일도 아니잖아.”

식탁 위 사람들은 번갈아 레나를 달래며 위로했다.

모두가 말을 마친 뒤,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천천히 드세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리고, 도련님, 약혼 날짜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미리 선물 준비해 둘게요.”

레나는 온화하게 서하를 바라보며, 눈길에 승자의 미소를 담았다.

“고마워요, 서하 언니.”

서하는 잠시 레나를 바라보다가 돌아서 나갔다. 마침 연구원에서 데이터에 문제가 생겨 마음이 복잡해진 터라, 곧장 연구원으로 향했다.

처리 과정에서 엉킨 데이터가 하나 있어 본능처럼 재희를 떠올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재희는 이미 어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서하가 일을 마쳤을 땐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복잡한 수식을 곱씹으며 계단을 내려오다 그만 발을 헛디뎌 크게 휘청였다.

“아...”

서하는 절뚝이며 간신히 버텼다. 발을 디딜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

결혼 후, 서하와 은혁은 ‘구름바다’에 살면서 주말에만 본가에 들렀다.

H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 중 하나, 땅값이 금싸라기인 곳이었다.

두 사람의 집은 ‘구름바다’의 전원주택 구역에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창밖으로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그날 밤, 거실의 전면 유리창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은혁은 현관에 들어서는 서하를 곧바로 보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한참을 참고 걸어온 덕분에 서하의 발목 통증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조심스레 발을 디뎌 보니 걸을 만했다.

걸음은 느렸지만, 겉으로는 발목을 다친 게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혁은 서하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다음 순간, 서하는 현관 벽에 그대로 밀쳐졌다.

남자에게서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은혁은 말 한마디 없이 몸을 기울여 서하의 입술을 덮쳤다.

서하는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밀어냈지만, 은혁은 서하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남녀 사이의 힘 차이는 분명했다.

결국 서하는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혁은 그제야 서하에게서 입술을 떼었다. 곧은 자세로 서하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친 입맞춤 탓에 서하의 머리칼은 흐트러졌고,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만큼은 차갑고 또렷했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온 거야?”

은혁의 목소리는 낮고 울림이 있었지만, 따뜻함은 묻어나지 않았다.

서하는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아. 배은혁의 첫사랑이 약혼을 앞두고 있는데, 마음이 편할 리 없겠지.’

‘그렇다고 왜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지?’

서하는 힘껏 은혁을 밀쳐내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디딤돌 같은 고통이 발목을 파고들었다.

“읏...”

날카로운 여자의 신음과 함께 몸이 휘청였고, 은혁이 서하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 버텼다.

“발목, 왜 그래?”

은혁의 목소리에는 잠시 걱정이 스쳤다.

곧 몸이 붕 뜨며 서하는 놀라움에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은혁이 단번에 안아 올린 것이다.

“다쳤으면 억지 부리지 마.”

굳은 얼굴로 서하를 안은 채, 은혁은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서하를 눕힌 뒤, 은혁은 곧 전화를 받으러 방을 나갔다.

남겨진 서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얼음을 챙겨 나오고, 욕실에서 수건을 찾았다.

새 수건은 분명 이 안에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통증을 참으며 이곳저곳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서하는 낡은 수건에 얼음을 싸서 다친 발목 위에 올려두었다.

안방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몇 분 뒤, 노크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은혁이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뼈에 이상 없는지 좀 봐주세요.”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다. 단순한 염좌라서 서하에게 냉찜질 하고 파스를 붙이면 내일쯤 많이 나아질 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를 배웅하고 돌아온 은혁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레나야, 아까는...”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에, 목소리는 곧 희미해져 서하에겐 들리지 않았다.

‘역시. 조금 전 전화도 민레나였던 거구나.’

그러나 서하의 가슴 한구석이 날카롭게 찔린 듯 서늘해졌다.

은혁은 레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시선을 침실 쪽으로 두고 짧게 대답했다.

“그래.”

...

다음 날, 서하는 연구에 하루 종일 매달렸다.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발목이 아직 편치 않다는 걸 느꼈다.

잠시 걸음을 옮기며 상태를 살핀 뒤, 견딜 만하다 싶어서 그녀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친 서하는 곧장 침대에 몸을 누였다. 머릿속은 여전히 어수선했지만, 눈을 감으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왜냐하면, 내일은 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니까.

그때 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서하가 그대로 누워 있자, 곧 매트리스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뜨거운 체온이 그녀의 등 뒤로 밀려왔다.

남자의 팔이 어깨를 감싸고, 손길은 팔을 따라 흘러내려 가느다란 서하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서하는 급히 그 손을 붙잡았다.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아.”

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생리야? 아직 말일도 안 됐잖아.”

“아니, 그거 아니야.”

서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냥... 하기 싫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곧 낮게 떨어진 은혁의 목소리.

“하지만 난 하고 싶은데.”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401화

    민석의 옆에는 눈에 띄는 젊은 여자가 붙어 있었다.큰 키와 곧은 몸 선에,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무용 전공자 특유의 느낌이 났다.서하는 마침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었다.옆에는 신애와 강민이 함께 걷고 있었다.신애는 서하가 연구팀 명의로 직접 영입한 인력이었다.해외 연수 기회는 놓쳤지만, 전공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무엇보다 서하와 호흡이 잘 맞았다.그래서 서하는 연구팀 구성원으로 신애를 데려왔다.“언니, 저쪽 남자분 되게 잘생겼어요.”신애가 서하의 팔을 살짝 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하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겼다.민석이었다.먼저 서하를 알아본 쪽은 민석이었다.캠퍼스 안에서도 서하 같은 분위기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민석 옆에 있던 여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석의 팔을 흔들었다.“오빠, 어디 봐요?”민석은 태연하게 말했다.“아름다운 게 보이면 보는 거지.”“우리 학교 교수님이래요.”여자가 덧붙였다.“이혼했고, 애도 있다던데요. 오빠 취향은 아니잖아요?”민석은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여자가 재빨리 말했다.“담배 냄새 싫어요.”민석은 여자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싫으면 좀 떨어져.”여자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더 말하지 않았다.여자가 민석 곁에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돈이었다.민석이 진심으로 마음을 주면 더 좋겠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그래도 민석은 늘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인색하지 않았다.여자에 대한 민석의 씀씀이는 나쁘지 않았다.서하를 확인한 민석은 턱으로 여자를 가리켰다.“이제 가.”민석은 요즘 꽤 오랫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그 이유를 따지자면, 결국 구아정 때문이었다.아정은 나이가 어렸지만,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민석이 여자를 만나면, 아정이 나서서 하나씩 관계를 깨뜨렸다.겉으로는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존중해 달라’는 이유였다.민석은 애초에 아정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예전처럼 가볍게 사람을 만나며 지낼 수 있을 거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400화

    은혁은 신호등이 바뀌지 않고 빨간불이 조금만 더 오래 켜져 있길 바랐다.차가 막혀서 속도가 더 느려지기를 바랐다.그러면 서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테니까.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줄였어도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서하가 차에서 내리며, 컵도 함께 들고 내렸다.컵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맛있었어. 고마워.”은혁도 차에서 내려 서하 앞에 섰다.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그 강민 학생은... 졸업하지 않았어?”‘오늘 왜 학교에 있었던 거지.’‘게다가 서하랑 그렇게 오래, 전문적인 얘기를 하고.’서하의 표정은 차분했다.“아, 강민. 앞으로 나랑 같이 과제 연구에 참여할 거야.”“같이?”은혁의 눈빛이 즉각 굳어졌다.“강민이 당신 좋아하잖아.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일 되겠어?”서하가 바로 대답했다.“강민은 일과 개인감정을 섞는 사람이 아니야.”“난 강민이...”서하는 은혁의 말을 끊었다.“이건 내 일이야. 지금은 강민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될 수도 있어.”은혁은 말문이 막혔다.서하는 이어서 말했다.“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 근데 배 대표님도 일 바쁠 텐데, 앞으로는 굳이 나 데리러 안 와도 돼.”서하는 손을 내밀었다.“차 키 줘.”은혁은 그 말에 담긴 거절을 분명히 느꼈다. 급히 말했다.“나 지금 그렇게 바쁘지 않아. 아까 한 말도, 다른 뜻은 없었고...”“알아.”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그냥 매일 데리러 오게 하는 게 미안해서 그래. 차 키 줘.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출퇴근할게.”서하의 손은 그대로였다. 거두지 않았다.은혁은 알았다.오늘, 자신이 일을 그르쳤다는 걸.강민을 보는 순간, 은혁은 평소의 이성을 전부 잃었다.은혁은 서하를 천천히 다시 얻을 생각이었다.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없었다.하지만 서하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리고 서하 또한 은혁의 의심과 불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당신을 못 믿는 건 아니야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99화

    소진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응, 나중에 다시 만나면 다른 사람 찾을 거야. 하선우보다 몸 더 좋은 사람, 말도 잘하는 사람으로. 진짜 열받게.”졸음이 듬뿍 묻은 목소리였다.서하는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자. 자.”소진은 금세 잠들었다.방 안이 조용해졌지만, 서하는 오히려 쉽게 잠들지 못했다.서하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하나씩 떠올렸다.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난도가 높았지만, 서하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문제는 따로 들고 있는 또 하나의 과제였다.예전에 서하가 동경하던 한 과학자도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과제 연구에 투자한 비용도 상당했고, 결과적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무엇보다 장비가 문제였다.연구에 필요한 기계들을 사는 데에는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들었다.그래서 지금 당장은 엄두를 내지 않기로 했다.다만,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자료와 데이터 정도는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생각을 거듭하다가, 서하는 한참 뒤에야 잠에 들었다.잠들기 직전, 은혁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 것 같기도 했다.하지만 그 생각이 정말 스쳐 지나간 건지, 아니면 아예 떠올리지 않았던 건지, 서하도 확신이 없었다....강민이 서하에게 고백했던 날 이후, 강민이 서하의 손목을 붙잡았던 그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친 적이 없었다.그래서 서하는 월요일 아침에 기중환 교수의 연구실에서 강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기중환 교수는 서하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고, 강민 역시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재였다.두 사람이 함께하면 연구 효율이 훨씬 올라갈 거라는 판단이었다.기중환 교수는 강민이 서하에게 품고 있는 개인적인 감정까지는 알지 못했다.순수하게 연구적인 판단이었다.강민이 걱정했던 건 하나였다.서하가 사적인 감정 때문에 자신과 거리를 두지 않을까 하는 점.하지만 다행히도, 서하는 철저히 공과 사를 구별하고 업무적으로 움직였다.강민과 함께 향후 일정과 역할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98화

    서하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소진은 여전히 이한 옆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이한은 해외에서 자랐고, 서하는 어릴 때부터 이한에게 이중 언어로 교육했다.영어 그림책 정도는 이한에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다만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이한이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훌쩍 넘겼고, 낮에 이것저것 많이 놀아 피곤한 상태였다.잠깐 낮잠을 자긴 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졸려 보였다.서하가 옆에서 소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한의 작은 머리가 점점 앞으로 쏠렸다.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새처럼, 천천히, 반복해서.서하와 소진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이한을 침대에 눕히자, 이한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소진은 그날 집에 가지 않았다.밤은 서하와 함께 보냈다.불을 끄고 누운 뒤에야, 서하가 물었다.“하 변호사님은 언제 돌아온대?”“돌아와서 뭐 하게.”소진이 나른하게 대답했다.“외국에 있으면 얼마나 편한데.”‘내가 쪼아대는 일도 없고, 집안 어른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그렇게 말하지 마.”서하가 조용히 말했다.“너랑 하 변호사님이 잘 지내면, 해결 못 할 문제가 뭐가 있어. 그러니까 하 변호사님이 나간 거잖아.”“넌 생각이 너무 단순해.”“네가 ‘예스’만 하면 되는 문제 아니야?”소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하선우 어머니가 나 찾아온 적 있어.”서하의 눈이 커졌다.소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헤어지라고 하신 건 아니야. 근데 며느리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더라. 결혼하면 집안 돌보고, 남편 내조하고, 밖에서 일하면 안 되고, 3년 안에 아이 둘.”서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소진이 그런 삶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이 문제를 떠나서, 일을 그만두라는 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소진은 타고난 일 중독자였다.소진 인생의 절반 이상은 일이 주는 성취감으로 채워져 있었다.“그 얘기, 하 변호사님한테는 했어?”서하가 물었다.“해봤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97화

    은혁이 걸음을 멈췄다.“그럼 왜?”은혁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했다.이 일은 이제 내려놓자고, 더 붙잡지 말자고.하지만 그날 봤던 서하의 단호한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여전히 아렸다.서하가 말했다.“그때 화공 공장에서 연락이 왔어. 방사선 수치가 아주 높은 장비가 가동됐다고. 그날 내가 그 공간에 있었고,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어. 그래서... 임신중절수술이 유일한 선택이었어.”‘그래서였구나.’은혁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하지만 곧이어 다른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그때 나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서하는 이혼을 원했지.’‘게다가 서하는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오해하고 있었고.’‘나를 이혼하게 만들려면, 완전히 마음을 접게 해야 했을 거야.’‘임신중절수술은... 나를 무너뜨리기에 가장 확실한 선택이었겠지.’서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은혁의 가슴은 조금 가벼워졌다.‘서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어.’‘선택지가 없었던 거지.’“알겠어.”은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그때 당신을 오해해서... 미안해.”서하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방사선 문제 이후에 있었던 일들.수술대에 누운 뒤에야 알게 된 사실들.그날 실제로는 공장에 가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착오까지.그 착오 덕분에 이한은 살아남았고, 세상에 태어났다.하지만 이 이야기를 은혁에게 할지 말지는, 아직 서하 자신도 정하지 못했다.지금은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다.은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이한이 아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서하가 대답하지 않자, 은혁은 말을 덧붙였다.“물론,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안 물은 걸로 할게.”서하는 고개를 저었다.거짓말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하나의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말을 덧붙여야 한다는 걸 서하는 알고 있었다.“말하고 싶지 않아.”은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그럼,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물어봐.”“당신 마음에 아직 이한이 아빠가 있어?”서하는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96화

    “다 네 생각이잖아. 난 네 편이야.”소진이 말했다.“어쨌든, 너 스스로한테 상처 주는 선택은 하지 마. 알겠지?”소진은 늘 그랬다.서하에게 인생의 교훈을 늘어놓지도 않았고, 서하가 은혁과 다시 시작하는 걸 말리지도 않았다.다만 하나뿐이었다. 서하가 억지로 참지 않기를 바랐다.서하가 은혁과 다시 만난다고 해서 뭐가 문제일까?배은혁은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외모도 훌륭했다.소진의 기준에서는, 서하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서하만 괜찮다면, 배은혁 쪽은 뭐든 상관없지.’소진은 그렇게 생각했다.저녁을 먹은 뒤, 소진은 이한과 함께 게임했다.서하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소진이 말을 덧붙였다.“천천히 얘기해. 분위기 좋아지면, 바로 옆에 호텔도 있잖아. 여자는 자기 욕망을 절대 억누르면 안 돼. 피임만 잘하면 돼.”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배은혁... 다른 건 몰라도 몸은 진짜 좋잖아. 근데 말 나온 김에, 배은혁 기술은 어때?”소진과의 사이가 아무리 깊어도, 서하는 이런 이야기까지는 쉽지 않았다.서하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야!!”서하는 소진을 한 번 노려보고는 그대로 현관 쪽으로 향했다.소진은 끝까지 따라와 현관에서 서하를 배웅했다.“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남자랑 여자 사이 일은 밥 먹는 거랑 똑같아. 배은혁은 보기 드문 요리야. 공짜로 먹게 해주겠다는데, 왜 거절해?”서하는 소진을 밀어냈다.“말 좀 줄여. 나 간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서하의 시야에 은혁이 들어왔다.은혁의 손에는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말 그대로 딱 한 송이였다.깔끔한 포장지에 싸인, 막 꺾은 것처럼 신선한 붉은 장미.“많이 사면 부담스러울까 봐.”은혁이 꽃을 내밀었다.“이 정도면 괜찮지?”대부분의 여자가 그렇듯, 서하 역시 꽃을 싫어하지 않았다.한 송이라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서하는 꽃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아파트 단지 안에서 좀 걸을까?”은혁이 물었다.“아니면 밖으로 나갈까? 방금 보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