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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바람노래
서하는 은혁의 기분이 왜 가라앉아 있는지 알고 있었다. 동생 성우와 레나의 약혼 문제 때문일 것이다.

가슴이 더 쓰라려 서하는 은혁의 손을 뿌리치고 이불을 젖혀 일어난 뒤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손님방에서 잘게.”

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서하의 손목을 붙잡고 거칠게 끌어내렸다.

“난 싫어.”

서하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를 좀 존중해 줄 수 없어?”

“난 당신 남편이야. 지금 내가 원하고 있어. 나를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 당신이 하자는 걸 거부한 적이 있었어? 내가 반항하기라도 했어?”

두 사람의 자세는 가까웠지만, 방 안의 공기는 이미 얼음처럼 차가웠다.

은혁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떨궜다. 눈빛엔 불만이 가득 서려 있었다.

“나랑 하는 게 그렇게 괴로워?”

그 말에 서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

욕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하는 몇 초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켜 손님방으로 향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서하는 손님방에서 잠을 잤다. 은혁 역시 더는 서하를 찾지 않았다.

곧 토요일, 배씨 가문과 민씨 가문의 어른들이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은혁은 서하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줬지만,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레나의 부모까지 도착했는데도 서하는 보이지 않았다.

은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롭게 소매를 정리했다. 길게 뻗은 몸매가 단정히 빛났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레나도 따라 일어섰다.

“저도 보고 올게요.”

은혁이 레스토랑 문 앞에서 서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서하는 끝내 받지 않았다.

레나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서하 언니... 혹시 저한테 불편한 감정 있는 거 아니에요?”

은혁은 마음속 불쾌함을 눌러 담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니야. 그런 거 없어. 괜히 신경 쓰지 마.”

“근데... 저 속상해요.”

레나는 눈물이 맺힌 채 은혁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저 사실... 좀 무서워요.”

“뭐가 무섭다는 거야?”

은혁이 물었다.

“성우가... 우리 약혼했으니까 이제 저도 본가로 들어가서 살라고 했는데...”

레나는 말끝을 흐리다가 은혁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의지와 애착으로 가득했다.

“오빠... 서하 언니랑, 그냥 본가에서 지내면 안 돼요?”

은혁의 눈가가 순간적으로 떨렸다.

그는 레나를 바라보며 온기를 띤 시선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하는 아직 차를 세우지도 않았는데, 그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작은 새처럼 은혁에게 기대어 반짝이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은혁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레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부드러운 빛이 서려 있었다.

차를 세운 서하는 곧장 은혁 쪽으로 걸어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길에서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은혁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아?”

서하의 목소리도 차갑게 떨어졌다.

“길이 막혔어. 폰은 무음으로 해놨고.”

서하는 곁에 서 있는 레나를 힐끗 바라봤다. 시선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나는 웃으며 서하에게 다가섰다.

“서하 언니, 오셨네요. 이제 얼른 들어가요. 다들 기다리고 계세요.”

서하는 더 말하지 않고 곧장 레스토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레나와 은혁은 한발 늦게 걸어 들어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눈에는 두 사람이 오히려 부부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채우자,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곧 약혼 이야기가 오갔다.

서하는 마치 방관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자기 앞의 음식만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은혁 오빠랑 서하 언니도 본가로 들어와 같이 지내면 좋겠어요. 사람이 많아야 집이 더 따뜻하잖아요.”

순간 서하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결혼 당시 굳이 본가에서 나와 살게 된 것도 은혁의 뜻이었다.

‘솔직히 신혼은 따로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자유로운데...’

배 씨 본가로 다시 들어가라고?

‘가고 싶지 않아. 절대로.’

배효산은 그나마 무난했지만, 주인정은 은혁의 새어머니였고, 배성우는 이복동생이었다.

게다가 레나는 곧 이 집안의 예비 며느리인데...

‘민레나는 배은혁의 첫사랑이잖아. 그런 사람이랑 같은 지붕 아래서 산다고?’

서하는 견디다 못해 은혁을 바라보았다.

모든 시선이 은혁에게 쏠려 있었다.

서하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은혁은 망설임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서하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

‘뭐라고? 배은혁이 승낙했다고? 어떻게 나랑 상의 한마디도 없이...?’

‘본가로 들어가면, 결국 배은혁과 다시 같은 방을 쓸 텐데.’

주인정은 은혁이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는 눈치였지만, 곧 서하 쪽을 흘긋 보고는 싱긋 웃었다.

“그것도 괜찮지. 나중에 서하가 임신하면 내가 잘 돌볼 수 있잖아.”

‘아이 문제는 나와 배은혁이 이미 못 박아놨는데...’

‘지금은 아이 갖지 말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면서... 무슨 임신?’

서하는 속으로 너무나 화가 났다.

반대로 레나의 얼굴은 환해졌다.

“은혁 오빠, 서하 언니랑 같이 들어와 주시면 저도 덜 외롭고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민레나는 배은혁 마음속 첫사랑이지.’

‘민레나가 부탁하는 걸 배은혁이 어떻게 거절하겠어?’

‘오히려 같은 집에서 지내는 게 배은혁이 바라던 일이겠지.’

서하는 속으로 더욱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 따윈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자리에서 서하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맞아. 집안도, 배경도 없고, 남편도 내 편이 돼주지 않는데 누가 날 존중하겠어?’

‘지금 내가 싫다고 말한들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이번 식사는 서하만 빼고 모두가 흡족했다.

헤어질 무렵, 레나는 환한 얼굴로 은혁을 향해 웃었다.

“오빠, 빨리 들어와 같이 지내요.”

“내일 바로 들어갈 거야.”

은혁이 대답했다.

서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곧장 자기 차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목이 불시에 붙잡혔다.

모두가 자리를 뜬 뒤, 남아 있는 건 은혁뿐이었다.

남자의 눈매는 깊었지만 표정은 전혀 없었다.

“내 차 타.”

“나 차 갖고 왔어.”

서하는 은혁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그리고, 난 이사 안 해. 돌아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서 가. 왜 내가 따라가야 하는데?”

본가로 들어가면 서하는 결국 은혁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님방에서 따로 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 안 되는데?”

은혁은 눈을 내리깔며 낮게 내뱉었다.

“장인어른 수술비 내가 냈어. 그리고 당신한테 집까지 사줬고.”

말이 끝나자, 서하의 안색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은혁은 곧 고개를 돌리며 짧게 덧붙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서하의 손끝이 떨렸다. 가슴 한복판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혼...’

두 글자가, 서하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이 결혼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서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충분해. 당신이 한 말이 맞아. 이사할게.”

그 말을 남기고, 서하는 뒤돌아섰다.

은혁은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움직임 없는 실루엣은 마치 서늘한 칼 같았다.

...

집에 돌아온 서하는 씻을 마음조차 없었다. 더구나 은혁과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늘 모범생이었다. 특히 이과 과목에 강했고, 치밀한 계산과 명확한 논리로 마주치는 위험을 피해 왔다.

하지만 단 하나, 자기 마음만큼은 통제할 수 없었다.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은혁에게 깊이 빠져버린 감정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은혁은 이미 넘치도록 뛰어난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다. 더구나 스스로 어마어마한 사업으로 제국을 일군 남자였다.

그런 남자는 누구라도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서하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하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고자 했다. 순종적이고 조용히 뒷받침하는 여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혁은 단 한 번도 서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완전히 포기해야지. 나도 내 인생을 찾아야 해.’

결심을 굳힌 서하는 손님방 문을 닫았다.

어쩌면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반항의 표시였다.

...

다음 날 아침, 서하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잠시 멍하니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수를 했다.

그녀는 손님방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은혁이 아직 집에 있었다.

그는 아마 막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듯, 회색 운동복 차림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늘 차갑고 완벽한 대기업의 총수 이미지와는 달리, 그 순간만큼은 왠지 젊은 대학생 같은 기운이 스쳤다.

서하는 곧 시선을 돌렸다.

“오늘 오후에 짐 정리해.”

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들어간다.”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거야?’

‘그래, 첫사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 오후엔 시간 없어.”

서하가 말하자 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서하는 곧 덧붙였다.

“저녁에 하자.”

“도와줄까?”

은혁이 물었다.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은혁은 더는 아무 말 없이 곧장 계단을 올라갔다.

서하는 혼자 밥을 먹고 연구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막 자리에 앉자, 문 쪽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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