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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바람노래
레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려견 기쁨이 서하를 보더니 갑자기 사납게 짖어댔다.

레나는 당황한 듯 기쁨을 조심스레 안아 들며 서하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기쁨이를 잠깐 밖에 두고 올게요.”

레나는 황급히 기쁨을 문밖에 두고 다시 들어왔다.

그 사이 서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배효산이 분위기를 수습하듯 말했다.

“서하가 막 왔으니까, 기쁨이가 아직 낯설어서 그런가보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주인정이 덧붙였다.

“근데 참 이상하네. 다른 사람한텐 안 그러는데, 왜 서하만 물려고 달려들지?”

성우도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우리 기쁨이 원래 얌전한 애잖아요.”

레나는 잠시 서하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강아지들은 원래 영물이래요. 누가 자기한테 진심인지, 누가 악의를 품고 있는지 다 느낀대요. 서하 언니, 기쁨이 싫어하지 말아요. 우리 기쁨이 정말 착한 애예요.”

서하는 처음부터 레나의 억지에 장단을 맞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레나의 말에 굳이 참을 이유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기쁨이가 날 물려고 했어. 따지고 보면, 강아지를 잘못 가르친 주인이 문제 아닌가?”

레나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언니... 기쁨이는 원래 사람 안 물어요. 진짜 착한 애라고요.”

서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당에 CCTV 있잖아. 기쁨이가 처음부터 날 공격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만해.”

서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끊고 들어왔다.

남자의 차가운 시선이 서하에게 꽂혔다. 눈빛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밥 먹자.”

은혁이 말하자,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이 답답하고 억울한 건 서하였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서하는 더 이상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들 식사하세요. 전 먼저 갈게요.”

은혁의 손가락이 젓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잠시 후, 그도 일어섰다.

“천천히 먹어.”

레나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기쁨이가 걱정돼서... 보고 올게요.”

잠시 후, 은혁이 차를 몰고 나오자 대문 앞에서 레나가 기쁨을 안고 서 있었다.

붉어진 눈이 금세 눈에 띄었다.

은혁은 차창을 내리고 말했다.

“기쁨이 잘 돌봐. 걱정 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까.”

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네, 오빠. 제가 잘 돌볼게요. 오빠도... 운전 조심하세요.”

은혁이 떠난 뒤, 레나는 기쁨의 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서하는 연구원에 도착해 맡은 일을 먼저 정리한 뒤 팀장을 찾아가 휴가를 신청했다.

전날 밤, 기중환 교수의 부인 이청애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오늘 오전 교수님이 집에 머문다는 걸 이미 확인해 둔 상태였다.

서하의 목적은 기중환 교수를 찾아뵙는 것이었다.

이청애 여사는 반갑게 웃으며 점심까지 함께하자고 권했다.

한량대학교는 국내 명문으로, 최근 몇 년간 물리와 화학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며 여러 대학 중에서도 선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서하는 이청애 여사가 좋아하는 체리 한 상자와 애플망고 한 상자를 준비했다.

아파트 아래에 도착해 가방을 가로 메고 트렁크에서 과일 상자를 꺼내려 몸을 숙였다.

그때, 무거운 과일 상자를 들었던 손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들게.”

한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햇살이 남자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은은한 후광처럼 퍼졌다.

곧게 선 자세에 기품이 배어 있었고, 마치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가 풍겼다.

그는 도시현이었다.

준수한 외모, 따뜻한 성품, 겸손한 태도까지.

몸에 잘 맞는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가 시현에게 기품을 더했다.

“선배...”

서하가 조심스레 부르며 그의 손에서 상자를 가져오려 했다.

“제가 하나 들게요.”

“괜찮아.”

시현은 자연스레 피하며 말했다.

“가자. 교수님이랑 사모님 기다리고 계셔.”

“선배... 제가 오늘 여기 올 거 아셨던 거예요?”

“사모님이 어젯밤에 전화 주셨어.”

시현이 고개를 숙이며 서하를 바라봤다. 긴 속눈썹이 감춰버린 눈빛 속엔 읽기 어려운 감정이 스쳐 갔다.

“너한테... 얘기 좀 해보라고 하시더라.”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졸업하고 학교를 떠난 뒤, 지도교수님께도... 선배에게도 오랫동안 연락도 하지 못했는데.’

그의 침묵에 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마. 지금은 그냥... 친한 후배로만 생각해.”

서하는 그제야 눈을 들어 시현을 바라봤다.

맑고 곧은 시선이었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시현은 시선을 피하며 낮게 웃었다.

“왜 그래. 연인은 못 돼도... 선후배로 지내는 것도 어려워?”

‘가슴이 찡하다...’

서하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입을 열었다.

“선배...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시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울면 안 돼. 사모님이 보시면 나에게 뭐라고 하시겠어.”

서하가 한때 거절했던 사람.

그 뒤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한동안 모든 연락을 끊었던 사람.

다시 마주하게 된 시현은 담담했고, 온화했다.

그런 태도 덕분에 서하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

두 사람은 기중환 교수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청애 여사가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올 거면 그냥 오지, 뭘 이렇게 들고 왔어?”

기중환 교수는 철저히 연구에만 몰두하는 학자였다.

까다롭고, 원칙적이면서도 재능 있는 제자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서하를 3년간 지도하며 그녀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하가 더 학문을 이어가길 바랐는데, 서하가 결혼을 선택하자 아쉬움이 컸다.

이제 다시 돌아온 그녀를 보는 기중환 교수의 얼굴에 기쁨이 서려 있었다.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고, 자리를 뜨려는 서하에게 교수는 몇 권의 책을 건네며 말했다.

“꼼꼼히 읽어보게.”

집을 나선 뒤, 시현이 옆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이제... 내 번호 차단 해제할 거지?”

서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선배, 그때는...”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시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이젠 다 지난 일이야.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서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 선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눈빛이 너무나 맑아, 시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서하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바로 무언가를 눌렀다.

“그럼 선배 힘내요. 빨리 선배 결혼식에 초대받고 싶으니까!”

시현의 손이 무심코 그녀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이내 스스로 멈추고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그래. 우리 꿀이, 걱정 마. 선배도 열심히 할게.”

‘꿀이. 내 어릴 적 별명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좋아요!”

이 순간 서하의 미소는 진심으로 편안하고 환했다.

“앞으로는 선배 절대 차단 안 할게요.”

서하의 차가 멀어져 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시현은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갔다.

“입금했어. 확인해 봐.”

...

연구원으로 돌아온 서하는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오후 업무를 마친 채아가 찾아왔다.

서하의 들뜬 표정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학교에는 다녀왔어? 일은 잘 풀렸고?”

“응. 이제 마음 정했어. 이미 등록도 했고, 교수님이 책도 주셨어. 거기다... 선배도 만났어.”

“선배?”

채아의 눈이 커졌다.

“설마... 시현 선배?”

“맞아.”

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오랜만에 봤어.”

채아가 성급히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그 선배... 아직 널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불편해지는 거 아니야?”

서하는 급히 손을 저었다.

“무슨 소리야.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어.”

그제야 채아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네.”

...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서하는 본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민레나도 마주쳐야 하고... 밤엔 또 배은혁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하고...’

차라리 기중환 교수가 건네준 책을 꺼내 읽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을 때야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여덟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시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박사과정 지원과 관련된 몇 개의 파일이었다.

서하는 감사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교수님이 널 원하시는 건 맞지만, 절차는 밟아야 해. 정원은 두 자리뿐이니까,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실력을 보여줘야 해.]

서하는 천천히 글을 입력했다.

[선배, 저 해 볼게요. 고마워요.]

그러고 나서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차에 올라 본가로 향했다.

...

저택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배효산이 흐뭇하게 말했다.

“레나가 오고 나서 집안이 훨씬 밝아졌어. 은혁이도 매일 들어오고. 참 좋다.”

주인정이 맞장구쳤다.

“내가 사람 잘 본 거지. 레나야, 성우 바쁜 거 끝나면 성우랑 여행 다녀와.”

레나는 환하게 웃었다.

“이모, 저야 삼촌이랑 이모랑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은혁 오빠도 그렇고, 다 가족 같아서요.”

기쁨은 레나 발치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현관 쪽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은혁이 시선을 잠시 보냈다가, 대답 대신 짧게 ‘응’ 하고 소리 냈다.

레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서하 언니는 왜 안 와요? 은혁 오빠보다 더 바쁜 거 아니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만히 있던 기쁨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네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며 현관으로 달려갔다.

짖는 소리는 높고 또렷했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고, 서하가 들어섰다.

기쁨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날카롭게 짖어댔다.

서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들었다. 거실엔 식구들이 다 모여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나는 황급히 달려가 기쁨을 안아 올렸다.

“서하 언니, 죄송해요. 왜 기쁨이가 언니만 보면 이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서하는 신발을 갈아 신고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도 모르지. 아마... 개가 주인을 닮았나 보지.”

순간, 레나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눈가가 붉어지며 떨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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