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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바람노래
서하는 등을 곧게 펴고 당당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곧게 서 있는 서하의 길고 매끈한 목선은 한 마리 우아한 백조를 떠올리게 했다.

은혁이 다가오는 걸 보며, 서하는 차갑고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꾹 닫았다.

레나가 흐느끼며 말했다.

“저 때문이에요. 언니 탓 아니에요. 오빠, 제발 언니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서하는 아래로 시선을 떨구며 울고 있는 레나를 보았다.

“비켜. 길 막지 말고.”

은혁과 레나는 복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레나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서하는 몸을 틀어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은혁의 손이 곧장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서하는 곧장 눈을 들어 은혁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차갑고 두려움이 없었다. 단 하나, 서하에 대한 애정만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은혁은 그 시선 속에서 평소와는 다른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여보, 당신은 성우 형수잖아. 예비 동서한텐 양보하는 게 맞지 않나.”

‘끝났구나.’

서하의 마음속, 이미 금이 간 자리는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있었다.

한때 가득했던 사랑과 마음도 그 파편들과 함께 피처럼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스며들었다.

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곧 뜨며 마음을 다잡았다.

‘곧 이혼할 거야. 이 집안도 떠날 거고. 더 얽힐 필요 없어.’

그를 자극해 봤자, 은혁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서하는 다시 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개가 날 물었잖아. 비켜.”

그녀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였지만, 가까이 보면 눈물이 아니었다.

그건 차갑고, 담담하며, 단호한 무언가였다.

은혁은 잠시 얼어붙었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마음 한쪽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서하는 이미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갔다.

여자의 은은한 향기가 스쳐 지나가며 은혁의 코끝을 맴돌았다.

서하는 계단을 올라가 모퉁이에 다다랐다.

그때, 레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따라왔다.

“언니...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기쁨이 잘 훈련할게요. 언니는 저한테 뭐라 하셔도 돼요. 제발 기쁨이한텐 화내지 말아 주세요... 네?”

서하는 피식 웃으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배효산이 급히 말했다.

“아유, 별일도 아닌데. 레나야, 울지 마. 서하도 신경 안 쓰잖아.”

주인정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큰며느리 얼굴 좀 봐. 꼭 누가 큰 빚이라도 졌다는 것처럼 굳어 있잖아.”

은혁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문을 열자, 서하는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여보, 우리 얘기 좀 하자.”

먼저 입을 열어 이야기를 꺼낸 건 은혁이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하고 묵직했다.

“무슨 얘기? 내 잘못 아닌가?”

서하는 눈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를 대하는 태도 좀 바꿀 수 없어?”

은혁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밖에서도 이렇게 빈정대고, 차갑게 대하나?”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는 유하를 압박하듯 말했다.

“충고 하나 할게.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스스로 관리 못 할 거면... 아예 일 그만둬. 자기 신분을 생각해야지.”

서하는 지금까지 꾹 눌러왔던 감정을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조용히 드러냈다.

“배은혁. 지금 당신 태도는 너무 역겨워.”

은혁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그 말은 마치 천둥처럼 쿵 하고 내려앉아 귀를 울렸다.

“뭐라고 했어?”

그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지만, 서하는 다시 말할 생각이 없었다.

‘더는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방금 그 말은 이미 내 안에서 수천 번 되새긴 끝에 나온 거야.’

한때 마음 깊이 품었던 은혁.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미 처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감히...”

핏발 선 눈으로 은혁은 서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욕실 문에 몰아붙였다.

서하는 몸으로 은혁을 강하게 밀어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저항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다가오는지 너무나 뻔히 알 수 있었다.

“나 건드리지 마.”

흑과 백이 또렷한 눈동자가 은혁을 향했다.

그 안엔 분명한 거부와 싸늘한 거리감만 있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서하는 목소리를 눌러 삼키며 분노 섞인 음성으로 내뱉었다.

“존중이 뭔지 알기나 해?”

은혁은 비웃듯 낮게 답했다.

“몰라. 당신이 가르쳐 주면 되겠네.”

이어지는 말은 더욱 차가웠다.

“허리에 매달려 놓지 않으려던 건 늘 네 쪽 아니었어? 여보.”

그제야 서하의 눈이 흔들렸다. 목 끝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 이혼해.”

서하의 목소리는 거칠고 떨렸지만 분명했다.

“배은혁.”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톤은 낮고 담담했지만 목은 쉬어 있었다.

은혁은 결국 그녀를 놓고 돌아섰다.

서하는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우리... 이혼하자.”

공기가 순식간에 옥죄어 왔다.

방 안은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답답하게 가라앉았다.

“이혼?”

등을 돌린 은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나 그 톤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금 이혼하자고 했어?”

서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결혼, 이제 무슨 의미가 있어? 할아버지도 안 계시는데, 이제 누구 보여주기 위한 연극 그만 해.”

은혁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서하를 꿰뚫었다.

“이혼하고 싶다고? 난 동의 못 해. 임서하, 제발 멋대로 굴지 마.”

그 말과 함께 그는 욕실로 들어갔고,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얼마 후, 은혁이 나왔을 땐 방 안에 서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은혁이 내려오자 주인정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희 둘 사이 무슨 일 있니? 서하는 한마디도 없이 그냥 나가던데.”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참, 예의도 없어.”

은혁의 얼굴은 더 굳어졌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주인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발 싸우진 마라. 이혼도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만 지내.”

‘은혁 같은 조건에다 또 든든한 집안 며느리라도 들어오면...’

‘우리 성우는 기회조차 못 잡을 텐데...’

...

밤늦게 뛰쳐나온 서하는 ‘구름바다’에 있는 집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곳은 어디까지나 은혁의 집이었다.

하지만 친정으로 가는 것도 불편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게 뻔했으니까.

결국 서하는 연구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작은 휴게실, 좁은 침대에 몸을 눕히고도 한동안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몸은 여전히 떨렸고, 심장은 작게 웅크린 듯 아프게 조여왔다.

‘이혼... 언젠가 얘기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어.’

‘차분하게 대화할 때 꺼내려 했는데...’

하지만 이렇게 최악의 대치 속에서 속마음이 터져 나온 건, 그녀도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서하는 한때 믿었다.

자신과 은혁은 서로 존중하며, 끝까지 함께할 거라고.

비록 은혁이 차가운 사람이지만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은혁은 서하를 존중하지 않았고, 서하의 감정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무시했다.

‘이런 결혼에 더는 어떤 의미도 없어.’

그러나 은혁은 동의하지 않았다.

‘왜? 왜 그 사람은 동의하지 않는 거지?’

서하는 깊은 혼란과 고통 속에 잠겼다.

밤이 깊어지자, 서하는 결국 지쳐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은혁은 회의 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다 핸드폰을 꺼냈다.

길게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진짜 급한 일 아니면 너 죽었어. 아침부터 사람 잠 깨우고, 너 진짜 예의 없네?]

은혁은 핸드폰을 움켜쥔 채 이마를 찌푸렸다.

“아직 안 일어났어?”

[지금 몇 신데?]

유민석은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너는 밤에 할 일 없다고 다들 똑같이 사는 줄 아냐? 난 어제 우리 하니랑 밤새 전쟁 치렀거든?]

그의 지저분한 무용담 따윈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은혁은 곧바로 말을 끊었다.

“화난 여자... 어떻게 달래?”

민석은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더니 침대 머리맡에 기대 담배를 물었다.

[여자? 네가? 누굴 달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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