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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바람노래
서하가 손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와.”

강채아가 웃으며 달려와 손에 든 두유를 건넸다.

“얼른 마셔, 아직 따뜻해.”

채아 역시 서하와 함께 연구원에서 일하지만, 중요한 핵심 연구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먹고 왔어.”

서하는 채아를 끌어 앉혔다.

“며칠 쉬더니 어때? 좀 괜찮아졌어?”

집안일로 휴가를 냈던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정리됐어.”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채아가 망설이듯 서하를 바라봤다.

서하는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맛있어. 먹어 봐. 그리고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왜 그렇게 망설여?”

채아는 시선을 떨구고 낮게 말했다.

“어제... 배은혁 봤어.”

서하는 순간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이름에 놀라 눈길이 흔들렸다.

“그 사람을? 어떻게?”

은혁은 보통 회사에 있거나, 외부에서도 회원제 장소만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민레나랑 같이 있더라. 두 사람... 완전 연인 같았어.”

레나는 기쁨이라는 작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다.

서하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채아는 그 표정을 보고 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런 얘기, 사실 나도 하고 싶진 않았어. 근데 너희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배은혁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서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채아가 주름진 이마로 서하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서하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왜...”

서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다 알고 있었어. 너도 휴가 내고 쌓인 일 많을 텐데, 얼른 가서 마무리해.”

“그럼 점심 같이 먹자.”

...

점심시간, 채아는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서하는 마음을 두지 못한 채 건성으로 듣고만 있었다.

결국 채아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나한테 말해도 되잖아.”

서하는 잠시 멍한 눈빛으로 채아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채아, 넌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좋은 사람이지!”

채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우리 서하가 최고야.”

“그게 아니고... 난 실력 말하는 거야.”

“실력? 그것도 두말하면 잔소리지!”

채아는 단호했다.

“연구원에서 네가 제일 어린데도,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가장 주목받잖아. 네 자리는 누구도 대신 못 해.”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제대로 못 하는 일도 많은걸.”

“그건 당연하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잠시 침묵하다가, 서하가 낮게 말했다.

“나... 박사과정 하고 싶어.”

“뭐?”

채아는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진짜 마음이 바뀐 거야?”

서하는 열여섯에 대학에 들어갔다. 최고 학부의 최고 물리학과였다.

그녀는 성적도 뛰어나서 교수 눈에 들어 대학원까지 곧장 이어졌고, 석사 졸업을 앞둔 해에는 박사 과정까지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서하는 거절했다. 결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지도교수는 크게 화를 냈다. ‘이기적이다’, ‘사랑밖에 모른다’라며 서하를 몰아붙였다.

그 뒤로 두 해 동안 서하는 연구원에서 나름 성과를 내긴 했지만, 지도교수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자신은 지도교수의 그 기대를 저버려서 감히 다시 그분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던 서하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히려 연구로 향하는 갈망이 점점 더 커졌다.

서하는 이혼하고 싶었다. 자신은 다시 시작해야 하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학문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응.”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를 냈다.

채아는 서하를 잘 알았다. 평소엔 순하고 다정하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잘 된 거야. 기중환 교수님은 학계의 권위자시잖아. 그분 밑에서 배우면 분명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근데... 교수님이 날 다시 받아주실까?”

“당연하지!”

그러다 문득 채아의 눈빛이 흐려졌다.

“나 같은 사람은 안 받아주실거야... 넌 달라. 넌 어디서든 교수님들이 먼저 모셔가려고 할 거야.”

서하는 채아의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소리야. 우리 채아나 나나 똑같지.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채아는 억지로 웃었다.

“서하야, 꼭 해내. 좋은 소식 기다릴게.”

잠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프로젝트팀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채아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은 혼자 남았을 때 서서히 사라졌다.

...

서하는 결심을 굳히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기중환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서하는 다시 전화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으신 걸까... 직접 찾아뵈어야 하나?’

오후 5시쯤, 은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단 한 줄이었다.

[돌아와서 이사해.]

서하는 손에 쥔 일을 보며 답장을 보냈다.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

폰을 내려놓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 순간, 벨이 울렸다.

레나가 새로 단체 채팅방을 만든 것이었다. 시댁 식구들이 전부 들어와 있었다.

이어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은혁이 세면대에 세면도구를 올려놓는 모습.

레나는 그 순간을 찍어 올리고는 서하를 태그했다.

[서하 언니, 은혁 오빠 짐 다 옮겼어요. 언니는 언제 오실 거예요?]

가족 단톡방에 당당히 사진과 메시지를 올린 레나의 태도는 숨김도 거리낌도 없었다.

서하는 피식 웃으며 폰을 내려놓았다.

...

일을 마치고 나니 밤 8시가 다 되었다. 서하는 황급히 짐을 챙겨 ‘구름바다’로 향했다.

사실 챙길 것도 많지 않았다. 세면도구와 평소 입는 옷 몇 벌뿐이었다.

그것들을 작은 캐리어에 담아 본가로 향했다.

그녀는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부터 연이어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레나가 키우는 강아지, 기쁨이었다. 온몸이 하얗고 북슬북슬한 털을 가진, 여우처럼 예쁜 작은 개였다. 몸집도 크지 않아 작고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기쁨은 서하를 향해 악에 받친 듯 짖어댔다. 소리에는 분명한 적의와 거부감이 섞여 있었다.

‘난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데... 얘는 왜 이렇게 사납게 구는 거지?’

서하는 얼어붙은 듯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도 기쁨은 더 거세게 짖으며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서하는 한발 물러섰다.

그 순간, 기쁨이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물기라도 할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어 올렸다. 작은 발길질이 나갔고, 기쁨은 몇 걸음 굴러떨어져 나갔다.

체중이 5~6 킬로밖에 안 되는 작은 개라 금세 바닥에 나뒹굴었다.

서하가 힘껏 걷어찬 건 아니었다. 단지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을 뿐이었다.

“기쁨아!”

서하가 고개를 들자 레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은혁의 차가운 시선이 따라왔다.

레나는 급히 강아지를 안아 들고 꼼꼼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눈가가 붉어진 채 서하를 바라봤다.

“언니, 저한테 불만 있으면 저한테 말하면 되잖아요. 기쁨이는 이렇게 작은데... 설마 죽이려고 한 거예요?”

서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직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애완견이라면 원래 사람을 그렇게 쉽게 공격하지 않을 텐데... 왜 나를...’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저 강아지가 날 물려고 했어.”

은혁이 성큼 다가왔다.

“강아지 하나 갖고... 당신 왜 이렇게 겁이 많아진 거야?”

레나는 곧장 기쁨을 품에 안고 은혁 쪽으로 다가갔다.

“오빠, 지금 그런 말 할 때 아니에요. 기쁨이부터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해요.”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서하는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서하는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옆으로 열 뼘쯤 더 옮겼다.

폭이 2미터 가까이 되는 큰 침대 위에서, 서하가 차지한 공간은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은혁이 돌아왔다.

서하가 얌전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남자의 표정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곧 서하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침대 끝에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은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말없이 침대에 올라 누웠다.

서로의 사이에는 사람 하나쯤은 더 누울 수 있을 만큼의 간격이 있었다.

서하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두 사람이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낼 때는, 서하가 아침에 눈을 뜨면 은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서하의 허리께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은혁의 손바닥이 피부 위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서하의 손끝 너머로 전해지는 감각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것은 은혁의 가슴이었다.

서하가 눈을 뜨자, 눈앞에 남자의 넓은 가슴근육이 드러났다.

이어서 고개를 더 올리자 곧장 은혁의 시선과 마주쳤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서하는 얼른 몸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은혁은 서하의 손목을 움켜쥐며 곧장 그녀를 눌러 눕혔다.

“뭐 하는 거야?”

서하는 당황해 목소리가 떨렸다.

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부라면 마음과 사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랑 없는 관계라면, 그건 짐승과 뭐가 달라?’

그러나 은혁에게서 감정과 욕망은 분명히 따로 존재했다.

은혁의 입맞춤을 받으면서도, 서하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잠시 후, 은혁은 동작을 멈췄다.

남자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하를 베어냈다.

“이런 태도는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의도지? 내 아내이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 몸을 지키는 거야?”

말을 끝낸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서하는 조용히 몇 초간 누워 있다가 이불을 끌어 올려 자신을 감쌌다.

‘내가 뭔데...? 정식으로 아내라는 이름을 갖고도, 나는 대체 뭐지...’

‘아무것도 아니잖아. 아마도 배은혁 마음속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거겠지.’

...

본가에서는 아침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했다.

서하가 내려왔을 때 식탁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서하를 보자 레나의 얼굴이 곧장 굳어졌다.

“언니, 제발 기쁨이 발로 차지 마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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