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005. 떨어지면 더 심해진다
문밖의 목소리는 황태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시종이었다. 문제는 황태자가 지금 문을 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열면 안 되는 상태였다. 레오니스는 커튼을 허리에 두른 채 나를 봤다. “아르델 경.”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빨리 해야 한다는 걸요.” 말하고 나서야 문장이 이상했다는 걸 깨달았다. 에드윈이 시선을 내렸다. 저 사람은 정말 좋은 비서관이었다. 듣지 않아야 할 말을 들었을 때 존재감을 지우는 능력이 뛰어났다. 문밖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전하?” 나는 더 미룰 수 없었다. 레오니스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선택할 자리를 남겨 뒀다. 그래서 내가 먼저 셔츠 대신 남아 있던 그의 어깨 쪽 천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대도.” “저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군.” 낮은 웃음이 들렸다. 그 웃음이 끝나기 전에 입술을 맞췄다. 처음에는 정말 접촉만 했다. 마력파가 겹치는지 확인하기 위한 최소 거리. 그런데 금빛 계약선이 예상보다 빠르게 뜨거워졌다. 손목에서 시작한 열이 팔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레오니스의 호흡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한 박자 더 기다렸다. 계산상 필요한 시간. 하나. 둘. 셋. 그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추 하나가 미세하게 떠올랐다. 성공했다. 입술을 떼고 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 레오니스의 셔츠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떨어졌던 단추와 풀렸던 장식이 금빛 마력에 휩싸여 제자리로 붙었다. 허리띠도 다시 고정됐다. 에드윈이 처음으로 안도한 얼굴을 했다. “됐습니다.” 나는 손목을 확인했다. 계약선은 안정적이었다. 레오니스는 자기 셔츠를 내려다보더니 손끝으로 단추 하나를 눌렀다. “이게 유지되나.” “지금은요.” 문밖 시종이 다시 물었다.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레오니스가 대답했다. “괜찮다. 돌아가라.”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연구실로 돌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손이 멈췄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다. 자료도 필요했고, 술식을 다시 뜯어보려면 내 연구실이 훨씬 편했다. “별궁에 있겠습니다. 적어도 오늘은.” “오늘만?” “수정 방법을 찾으면 내일부터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레오니스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뒤. 내 생각은 틀렸다는 게 증명됐다. *** 방을 나와 별궁 복도를 세 걸음쯤 갔을 때였다. 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대로 멈췄다. 에드윈도 멈췄다. 천천히 돌아보자 레오니스의 셔츠 두 번째 단추가 바닥을 굴러오고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셔츠 앞섶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입맞춤으로 마력파는 맞췄다. 옷도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방을 나가자 다시 풀렸다. 굳이 같은 현상을 여러 번 볼 필요는 없었다. “들어오십시오.” 에드윈의 목소리가 먼저 굳었다. 나는 곧장 문턱을 넘었다. 세 걸음도 가지 않았다. 레오니스와의 거리가 줄자 남아 있던 세 번째 단추의 떨림이 멈췄다. 동시에 그의 목 아래 검푸른 선 하나가 피부 밑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옷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었다. “가슴이 아프셨습니까?” 레오니스가 잠깐 침묵했다. “조금.” “언제부터요?” “그대가 문을 나선 뒤.” 바로 가까이 갔다. 손끝을 그의 손목에 대고 맥을 짚었다. 조금 빨랐다. 단순히 옷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레오니스 사이에 만든 대체 계약 자체가 거리를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손목을 놓고 셔츠 깃 아래를 확인했다. 검푸른 선은 가까워지자 이미 가라앉고 있었다. “밖으로 더 나가 볼 필요는 없겠군요.” 에드윈이 물었다. “거리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까?” “숫자는 의미 없습니다. 전하의 상태와 마력 사용량에 따라 허용 거리가 바뀔 겁니다.” 레오니스가 낮게 물었다. “그럼 기준은.” 나는 펜을 들고 식을 쓰다가 대답했다. “제가 가까이 있는 겁니다.” 그의 눈이 들렸다. 말하고 나서야 표현이 이상했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계약이 안정될 정도로요.” “방금 쪽이 더 이해하기 쉬웠는데.” “정확도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레오니스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 표정을 무시하고 결론을 적었다. 상호 인식. 직접 접촉. 거리 제한.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문장 하나. “전하와 제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안 됩니다.”043. 엘로이즈 드 라베른다음 날 아침, 별궁에 꽃이 들어왔다.흰 장미와 옅은 금빛 리본.황실에서 허락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색이었다.“누가 보낸 겁니까?”내가 카드에 손을 뻗자 에드윈이 먼저 이름을 읽었다.“라베른 공작 영애입니다.”레오니스가 보고서에서 눈을 들었다.“엘로이즈가?”이름을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다.나는 어제 일을 떠올렸다.오래 알면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다.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었다.“오늘 오후에 방문하겠답니다. 황후 폐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에드윈은 마지막 문장을 조금 무겁게 말했다.허락이라기보다 지시일 가능성이 컸다.라베른 공작가는 황후의 친정과 가까웠다. 그리고 엘로이즈 드 라베른은 오래전부터 황태자비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거절하시겠습니까?”“거절할 이유가 없다.”레오니스는 다시 보고서를 봤다.나도 꽃을 옮겼다.이유가 없는 일은 하면 된다.이유가 너무 많은 일보다 간단했다.오후 세 시, 엘로이즈는 약속 시간보다 한 치도 빠르거나 늦지 않게 도착했다.밝은 금발은 햇빛을 받은 비단처럼 정돈돼 있었고, 연청색 드레스는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았다.걸음은 가벼웠고 미소는 정확했다.나와는 모든 게 반대였다.“오랜만이에요, 레오니스.”전하도, 저하도 아니었다.레오니스는 놀라지 않았다.“귀국했다는 말은 들었다.”“그런데 먼저 보러 오지는 않았죠.”“바빴다.”“여전하네요.”엘로이즈가 웃었다.레오니스는 웃지 않았지만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둘 사이에는 설명할 필요 없는 시간이 있었다.나는 차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엘로이즈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새 시녀인가요?”“전속 시녀다.”레오니스가 바로 대답했다.어제 학회에서 했던 말과 같았다.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다른 의미로 들렸다.“이름은요?”“비비라고 합니다.”내가 예를 갖추자 엘로이즈가 고개를 기울였다.“예쁜 이름이네요. 전속 시녀를 두지 않던 사람이 마음을 바꾸게 할 만큼 유능한가 봐요.”“필요해서 두
042. 필요의 뜻필요하다.그 한마디 뒤로 마차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나는 먼저 계약을 확인했다.문양 없음.거리 안정.의복 고정 정상.당장 처리해야 할 위급 상황도 없었다.“무슨 일에 필요하십니까?”레오니스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그제야 그도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별궁에 도착하면 말하지.”“지금 말씀하기 어려운 일입니까?”“그대는 질문이 많군.”“정확한 업무를 알아야 준비합니다.”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조용히 있을 준비를 해.”말이 되지 않았다.그러나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황태자가 일을 만들겠다면 별궁에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릴 수 있었다.문제는 내가 이상하게 안도했다는 점이었다.데미안과 남아 자료를 보는 편이 연구에는 훨씬 유리했다.그런데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돌아오는 길이 싫지 않았다.나는 그 감각을 피로 항목에 넣었다.별궁에 도착하자 에드윈이 현관에서 우리를 맞았다.“예정보다 두 시간 일찍 오셨군요.”“일정이 끝났다.”“학회 쪽에서는 방금 추가 자료 반출 승인서를 보냈는데요.”나는 레오니스를 봤다.그는 외투를 벗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내일 보면 된다.”에드윈이 서류를 넘겼다.“그보다 전하, 오늘 남은 일정은 없습니다.”역시 없었다.나는 손을 내밀어 레오니스의 외투를 받았다.시녀의 일이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그런데 외투를 놓는 순간 그가 말했다.“차.”“지금 준비하겠습니다.”“서재로.”그게 업무의 전부였다.나는 차를 끓이고, 온도를 맞추고, 서재 탁자에 내려놓았다.레오니스는 보고서를 읽었다.십 분이 지났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전하.”“듣고 있다.”“저를 부르신 이유가 차입니까?”그가 펜을 내려놓았다.“전속 시녀에게 차를 부탁하는 게 이상한가?”“학회 연구를 중단시킬 만큼 급한 일은 아닙니다.”“그 남자가 아니어도 자료는 볼 수 있어.”“데미안은 금고 출입 권한이 있습니다.”“이름을 편하게 부르는군.”나는 멈췄다.그
042. 필요의 뜻필요하다.그 한마디 뒤로 마차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나는 먼저 계약을 확인했다.문양 없음.거리 안정.의복 고정 정상.당장 처리해야 할 위급 상황도 없었다.“무슨 일에 필요하십니까?”레오니스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그제야 그도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별궁에 도착하면 말하지.”“지금 말씀하기 어려운 일입니까?”“그대는 질문이 많군.”“정확한 업무를 알아야 준비합니다.”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조용히 있을 준비를 해.”말이 되지 않았다.그러나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황태자가 일을 만들겠다면 별궁에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릴 수 있었다.문제는 내가 이상하게 안도했다는 점이었다.데미안과 남아 자료를 보는 편이 연구에는 훨씬 유리했다.그런데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돌아오는 길이 싫지 않았다.나는 그 감각을 피로 항목에 넣었다.별궁에 도착하자 에드윈이 현관에서 우리를 맞았다.“예정보다 두 시간 일찍 오셨군요.”“일정이 끝났다.”“학회 쪽에서는 방금 추가 자료 반출 승인서를 보냈는데요.”나는 레오니스를 봤다.그는 외투를 벗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내일 보면 된다.”에드윈이 서류를 넘겼다.“그보다 전하, 오늘 남은 일정은 없습니다.”역시 없었다.나는 손을 내밀어 레오니스의 외투를 받았다.시녀의 일이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그런데 외투를 놓는 순간 그가 말했다.“차.”“지금 준비하겠습니다.”“서재로.”그게 업무의 전부였다.나는 차를 끓이고, 온도를 맞추고, 서재 탁자에 내려놓았다.레오니스는 보고서를 읽었다.십 분이 지났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전하.”“듣고 있다.”“저를 부르신 이유가 차입니까?”그가 펜을 내려놓았다.“전속 시녀에게 차를 부탁하는 게 이상한가?”“학회 연구를 중단시킬 만큼 급한 일은 아닙니다.”“그 남자가 아니어도 자료는 볼 수 있어.”“데미안은 금고 출입 권한이 있습니다.”“이름을 편하게 부르는군.”나는 멈췄다.그
041. 비비는 내 전속 시녀입니다데미안은 회의가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았다.정확히는 내 옆에서 책을 세 권째 펼치고 있었다.“이 문장도 보세요. 계승 계약에서 수락은 한 번인데, 유지 의사는 반복해서 확인합니다.”“주기가 적혀 있어요?”“월식마다.”나는 주석을 빠르게 베꼈다.데미안이 종이 한쪽을 눌러 줬다. 오래 함께 일할 때 하던 버릇이었다.“글씨는 여전하네요.”“알아볼 수 있으면 됩니다.”“본인만 알아보잖아요.”“그러니까 제 기록이죠.”그가 웃었다.맞은편에서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레오니스는 조금 전부터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나는 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짧은 판례문 세 개가 전부인 페이지였다.그가 읽는 속도로는 이미 열 번도 넘게 넘겼어야 했다.“전하, 필요한 부분을 찾지 못하셨습니까?”“찾는 중이다.”“어떤 단어를 찾으시는지 말씀해 주시면—”“비비.”학회에서 들을 이름이 아니었다.주변 연구자들의 펜이 잠깐 멎었다.나는 레오니스를 똑바로 봤다.그도 실수를 깨달은 듯했지만 말을 고치지는 않았다.“잠깐 와.”데미안이 나와 레오니스를 번갈아 봤다.“비비?”“황궁에서 쓰는 가명입니다.”“가명까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입니까?”“그래서 국가 기밀이라고 했잖아요.”나는 펼쳐 둔 자료를 정리했다.데미안이 종이를 놓지 않았다.“저녁까지 계실 거면 금고 자료도 꺼내 드리죠. 아르델 경 혼자서는 반출 허가가 안 날 겁니다.”맞는 말이었다.지금 끊기에는 아까운 실마리도 있었다.“그럼 부탁할게요.”“안 된다.”대답은 레오니스에게서 나왔다.데미안의 눈썹이 올라갔다.레오니스는 그제야 책을 덮었다.“오늘 자문은 여기까지다. 아르델 경은 황궁으로 돌아간다.”“전하, 아직 예정 시간이 남았습니다.”“별궁에서 처리할 업무가 있다.”처음 듣는 업무였다.나는 그를 살폈다. 문양은 보이지 않았고 옷도 멀쩡했다. 거리 제한이 흔들릴 만큼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데미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급한 일
040. 그 남자는 왜 웃게 합니까“비비안.”그 이름을 학회에서 듣는 건 자연스러웠다.문제는 부른 사람이 너무 자연스럽게 가까이 왔다는 점이었다.데미안 로셰르.왕립 마도학회 계약술 연구원.몇 번 같이 검증 작업을 했고, 한 번은 내 의뢰인이기도 했다.그는 회의실 문에 기대 서서 웃고 있었다.“황궁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맞았네요.”나는 펜을 던질 뻔했다.“잡혀간 게 아닙니다.”“그럼 왜 한 달 가까이 학회에 얼굴도 안 비쳤습니까?”“국가 기밀입니다.”“그 말이 더 잡혀간 것 같은데.”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데미안은 예전부터 말을 저렇게 했다.진지한 얼굴로 쓸데없는 결론을 내리고, 내가 반박하면 더 즐거워했다.“로셰르 경.”에드윈이 먼저 황태자를 소개하려 했다.데미안이 뒤늦게 레오니스를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전하. 결례했습니다.”“괜찮다.”레오니스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그런데 나는 알았다.조금 더 짧았다.데미안은 내 옆에 쌓인 자료를 봤다.“계승 계약 문법?”“비슷한 겁니다.”“‘선택’ 때문에 왔죠?”손이 멈췄다.“어떻게 알아요?”“아르델 경이 이런 낡은 판본까지 뒤질 때는 보통 단어 하나가 마음에 안 들 때니까.”그가 책 한 권을 꺼냈다.“이거 봤습니까?”내가 찾던 문법 주석서였다.“어디 있었어요?”“내가 빌려갔죠.”“반납일 지났잖아요.”“그래서 직접 가져왔습니다.”“연체료 내세요.”“연구자끼리 너무하네.”“규정입니다.”데미안이 웃었다.나도 따라 웃었다.책을 받으려 손을 뻗는 순간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그 책이 꼭 필요한가?”레오니스였다.나는 그를 봤다.“네. 지금까지 찾은 것 중 가장 정확합니다.”“그렇군.”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데미안이 책을 내게 건넸다.손가락이 잠깐 닿았다.아무 일도 없었다.계약도 반응하지 않았다.당연했다.그런데 레오니스의 시선이 그 짧은 접촉에 머문 걸 봤다.“전하?”“왜.”“문양이 불편하십니까?”“아니다.”“그
039. 비비안의 세계왕립 마도학회에 들어서는 순간 걸음부터 달라졌다.시녀 비비처럼 반걸음 뒤에 설 필요가 없었다.고개를 숙일 이유도 없었다.회색 시녀복 대신 짙은 남색 로브를 입고, 머리도 평소처럼 높게 묶었다.가슴에는 정회원 표식.비비안 아르델.내 이름이 제대로 적혀 있었다.레오니스는 정식 자문을 받는 황태자 자격으로 함께 왔다.에드윈이 외부에 공개할 명목도 만들었다.황실 고대결계 문법 검토.실제 목적과 아주 멀지는 않았다.학회 문이 열리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잉크.마석 가루.오래된 종이.그리고 누군가 태운 실험약 냄새.문지기가 내 정회원 표식을 보자 별다른 확인도 없이 문을 열어줬다.“오랜만입니다, 아르델 경.”“삼 주밖에 안 됐습니다.”“여기서는 사흘만 안 보여도 실종입니다.”그 말에 옆의 레오니스가 나를 봤다.나는 못 본 척 걸음을 옮겼다.별궁에서는 내가 사라지면 계약이 흔들렸다.여기서는 사흘만 안 보여도 동료들이 찾는다.같은 ‘필요’인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아르델 경!”복도 끝에서 한 연구자가 달려왔다.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실험실 또 태웠어요?”“이번에는 제 방 아닙니다.”“그 말은 누군가의 방은 태웠다는 뜻이네요.”주변에서 웃음이 났다.나도 웃었다.아주 자연스럽게.그제야 레오니스가 옆에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개를 돌리자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호박색 눈이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왜 그러십니까?”“아니.”대답이 짧았다.나는 더 묻지 않았다.학회 안쪽 회의실에는 고대 계약어 자료가 준비돼 있었다.내가 요청한 건 ‘선택’과 ‘계승’을 함께 쓰는 옛 문장 사례였다.황실 계약이라고 밝히지 않았다.그럴 필요도 없었다.연구원들은 문법만 보면 된다.나는 로브 소매를 걷고 바로 책을 펼쳤다.“이 판본은 틀렸어요.”맞은편 연구원이 당황했다.“첫 장도 안 보셨는데요.”“서문 연도가 안 맞습니다.”책을 뒤집어 판권 기록을 보여줬다.“후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