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017. 필요한 입맞춤방금 전까지 누군가 문밖에 서 있었다.그런데 이제는 입을 맞춰야 했다.상황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나는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오차는 삼 분 정도 있습니다.”레오니스가 열린 셔츠 단추를 정리하며 나를 봤다.“삼 분 뒤에 해도 된다는 뜻인가?”“가능은 합니다. 다만 늦출 이유는 없습니다.”“그대가 그렇게 급한 줄은 몰랐군.”“계약 안정화를 말하는 겁니다.”나는 기록지를 들었다.“지난 동기화 이후 열두 시간이 지났고, 오늘은 황후궁에서 거리 제한이 여러 번 흔들렸습니다. 방금은 보조문자까지 동시에 반응했습니다. 따라서—”레오니스는 끊지 않았다.평소라면 중간에 한마디쯤 던졌을 텐데 끝까지 듣고 있었다.그래서 오히려 말을 더 빨리 하게 됐다.“이번 동기화에서는 평소보다 반응 시간을 정확히 재겠습니다.”“끝났나?”나는 입을 다물었다.“끝났습니다.”“그럼 하게.”말은 간단했다.문제는 거리를 누가 먼저 줄이느냐였다.처음에는 사고였다.그다음에는 필요 때문에 내가 먼저 다가간 적도 있었다.하지만 방금 캐노피 안에서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던 탓인지 한 걸음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나는 먼저 움직였다.딱 한 걸음.레오니스와의 거리가 절반쯤 줄었다.그는 기다렸다.그대로.내가 더 오기를 재촉하지 않았다.잠깐의 정적 끝에 그가 반 걸음을 움직였다.나머지 거리가 사라졌다.누가 전부 다가간 것도 아니었다.서로가 중간을 채웠다.그게 이상하게 이전과 달랐다.나는 시계를 볼 수 없어서 손가락으로 시간을 세었다.입술이 닿았다.처음보다 덜 놀랐다.그렇다고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레오니스는 힘을 주지 않았다.내가 물러나려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을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그래서 오히려 시간을 더 정확하게 셌다.하나.둘.셋.계약선의 열기가 줄어들었다.검푸른 빛도 가라앉았다.필요한 시간이 끝난 순간 거의 동시에 떨어졌다.누가 먼저였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나는 바로 기록지로 돌아갔다.“
016. 누가 복도에 있습니다발소리가 멈춘 순간, 손끝부터 굳었다.내 손은 여전히 레오니스의 셔츠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심장 가까이 이어진 보조문자를 더듬던 자세 그대로였다. 손등에는 그의 체온이 닿아 있었고, 벌어진 셔츠 사이로 검푸른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문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래서 더 이상했다.노크도 없었다.부르는 목소리도 없었다.누군가가 그저 문 앞에 서 있었다.나는 아주 천천히 손을 빼려 했다.그 순간 손목의 계약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동시에 레오니스의 가슴 위 문양이 짧게 번쩍였다.그가 숨을 삼켰다.아주 짧은 소리였다. 평소라면 놓쳤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나는 움직임을 멈췄다.“전하.”입술만 거의 움직였다.레오니스가 문 쪽을 한번 보고는 낮게 말했다.“이쪽으로.”그는 내 손목을 잡아 끌지 않았다.대신 침대 쪽 캐노피를 손끝으로 가리켰다.문과 반대편. 두꺼운 커튼이 기둥과 벽 사이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나는 바로 이해했다.문을 잠그는 건 더 위험하다.지금 누군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방처럼 보여야 한다.나는 셔츠 안쪽에서 손을 빼고 먼저 움직였다.캐노피 안쪽은 생각보다 좁았다.침대 기둥과 벽 사이에 겨우 한 사람 반이 설 만한 틈.내가 먼저 몸을 넣자 레오니스가 뒤따라 들어왔다.커튼이 닫혔다.빛이 거의 사라졌다.가까웠다.방금 전보다 더.그의 셔츠는 아직 열린 채였고, 내가 풀어 둔 단추 사이로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커튼이 무거워 어깨를 조금만 움직여도 천이 스쳤다.문밖에서 옷자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아직 있다.나는 숨을 줄였다.레오니스도 말이 없었다.그의 손이 내 허리 옆으로 올라왔다가 멈췄다.닿지 않았다.커튼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다가 발뒤꿈치가 침대 기둥에 걸렸다.균형이 무너졌다.그때에야 그의 손이 허리를 받쳤다.단단한 손바닥이 천 위로 닿았다.잡아당기지 않았다.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015. 오늘 밤, 셔츠를 풀어야 합니다별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시녀복부터 벗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황후궁에서 누가 따라붙었을지 모른다.나는 그대로 연구실로 쓰는 작은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책상 위에는 어젯밤 베껴 둔 계약문이 펼쳐져 있었다.레오니스가 맞은편에 앉았다.“아르망.”내가 먼저 이름을 썼다.“고대 황실 봉인술 기록에서 세 번 나옵니다.”“공작가가 직접 저주를 걸었다는 뜻인가?”“아직은 아닙니다.”나는 문장 옆에 선을 그었다.“술식의 계보가 같습니다. 누가 사용했든 뿌리가 아르망 계열일 가능성은 높아요.”레오니스가 의자에 기대었다.“확인하려면?”나는 펜을 멈췄다.방법은 있었다.문제는 방법이 너무 직접적이었다.“가슴 쪽 문양을 다시 봐야 합니다.”“봤잖나.”“그때는 옷이 갑자기 풀린 상태였습니다. 전체 구조를 정확히 기록하지 못했습니다.”“그대가 천장만 봤으니까.”나는 펜을 내려놓았다.“그 상황에서 전하를 계속 보는 편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지금은 볼 건가?”대답이 잠깐 늦었다.레오니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휘었다.“연구를 위해서라면 봐야 합니다.”“그럼 보면 되겠군.”왜 저 사람이 더 태연한지 모르겠다.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침실로 가시죠.”***밤이 깊은 뒤에야 준비가 끝났다.마리벨과 에드윈도 바깥 동선을 확인하고 물러났다.황태자 침실.낮에 내가 공격했던 침대는 이제 멀쩡했다.레오니스는 창가 쪽 의자에 앉았다.검은 셔츠.목까지 단추가 잠겨 있었다.나는 작은 마력등과 기록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푸십시오.”레오니스가 나를 봤다.“내가?”“전하에 셔츠가 아닙니까?”“그대가 확인해야 한다고 했지.”“확인과 탈의는 별개입니다.”“손을 내려 두면 더 잘 보일 텐데.”이상한 논리였다.그런데 맞는 말이기도 했다.내가 직접 풀면 단추 사이마다 문양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나는 결국 그의 앞에 섰다.거리는 팔 하나보다 짧았다.“움직이지 마십시오.”
014. 차를 따르다 손이 닿았다“비비.”세라피나는 식사가 끝났는데도 나를 보내지 않았다.“차를 새로 가져오렴.”“예, 폐하.”“레오니스가 마시는 약차로.”시험이다.그 생각부터 들었다.약차의 종류는 여러 가지였다.황태자가 평소 마시는 건 체온과 마력 순환을 안정시키는 청색 잎차. 물이 너무 뜨거우면 성분이 깨지고, 식으면 쓴맛이 강해진다.나는 주전자를 받아 손바닥으로 온도를 쟀다.조금 높다.마법으로 낮추면 티가 난다.차가운 물을 섞으면 농도가 흐려진다.잠시 기다렸다.세라피나가 물었다.“왜 따르지 않니?”“지금 따르면 향이 지나치게 날아갑니다.”말하고 나서 깨달았다.너무 전문가답다.세라피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차를 잘 아는구나.”“전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시녀가?”“필요해서요.”대답이 또 너무 명확했다.마리벨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조금 흐려도 돼요.나는 뒤늦게 덧붙였다.“주인께서 차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세라피나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찻잔을 손끝으로 밀었다.“그럼 네가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 따라 보렴.”잠시 뒤 주전자를 들었다.잔 높이를 맞추고 기울였다.맑은 청색 차가 얇은 줄기로 떨어졌다.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정확하구나.”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나는 잔을 받침과 함께 들어 레오니스 쪽으로 옮겼다.손목은 아까보다 안정적이었다.그와 세 걸음 안쪽.이제 익숙해진 거리였다.“전하.”잔을 건넸다.레오니스가 손을 뻗었다.받침 아래를 잡을 줄 알았다.그런데 그의 검지가 내 손가락 끝에 닿았다.순간 손목 안쪽의 검푸른 선이 서늘해졌다.뜨거워지는 것과 반대였다.계약이 완전히 안정됐을 때만 오는 감각.그는 잔을 받았다.받았는데 놓지 않았다.내 손은 아직 받침 아래에 있었다.레오니스의 손가락이 가장자리 가까이에 닿아 있었다.반 박자.정말 그 정도였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하게 길었다.나는 먼저 손을 뗐다.그제야 잔이 그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
013. 황후 앞에서는 시녀입니다 황후 세라피나는 웃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긴장됐다. 차가운 얼굴은 경계하면 된다. 웃는 얼굴은 어디까지가 친절이고 어디부터가 칼인지 계산해야 한다. “레오니스.” 세라피나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식사하는데 표정이 너무 굳었구나.” “평소와 같습니다.” 레오니스가 그녀의 손등 위에 형식적으로 입을 맞췄다. 세라피나의 눈이 그를 지나 내게 닿았다. 딱 한 번. 짧았는데 옷 안쪽까지 훑긴 기분이었다. “그 아이가 새 전속 시녀인가?” “그렇습니다.” “이름이 비비라고 했지?” 나는 배운 대로 한 걸음 나가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목소리를 낮추고 끝을 짧게 했다. 세라피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동안에도 시선이 느껴졌다. “얼굴을 들어 보렴.” 이건 교육에 없었다. 고개를 들었다. 눈을 바로 마주치면 안 된다. 그래서 코끝과 턱 사이쯤에 시선을 두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스물셋입니다.” “전에는 어디서 일했니?” 대답을 준비했다. 그보다 레오니스가 먼저 말했다. “내가 직접 데려왔습니다.” 세라피나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단다.” “비비의 이전 근무지는 황후궁 식사와 상관없을 겁니다.” “전속 시녀를 새로 들였다니 궁금해서 그렇지.” 부드러운 대화였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 공기가 얇게 굳어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세라피나가 웃었다. “그래. 식사부터 하자꾸나.” *** 문제는 자리였다. 황후와 황태자가 긴 식탁 양쪽에 앉았고 시녀들은 벽 쪽에 섰다. 정해진 위치대로라면 나는 레오니스에게서 일곱 걸음쯤 떨어져야 했다. 처음 두 걸음까지는 괜찮았다. 세 번째에서 손목이 따뜻해졌다. 다섯 번째에서 열이 뚜렷해졌다. 정해진 자리까지 가면 안 된다. 나는 물병을 들었다. 잔
012. 시녀는 귀족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가문은 없습니다.”나는 아주 조금 늦게 대답했다.문 앞의 시녀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런데 말투가 귀족 같아서요.”역시 들렸다.마리벨이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비비가 전에 귀족가에서 오래 일했거든요. 주인 말투를 따라 하는 버릇이 있어요.”“아.”시녀는 납득한 듯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레오니스가 그때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궁금한 게 많군.”낮은 목소리 하나에 세 사람의 허리가 동시에 굽었다.“죄송합니다, 전하.”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마리벨이 나를 돌아봤다.“큰일 났어요.”“넘어갔지 않습니까?”“오늘은요.”그녀는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자세부터 낮췄다.“비비 씨는 시녀처럼 말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말은 그냥 말 아닙니까?”“아니에요.”“같은 제국어인데요.”“그게 문제예요.”***한 시간 뒤.나는 별궁 작은 응접실 한가운데를 다섯 번째 왕복하고 있었다.“허리를 조금만 풀어요.”마리벨이 말했다.“풀었습니다.”“전혀요.”“더 풀면 자세가 무너집니다.”“시녀는 검술 대련하러 가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걸음을 멈췄다.옆 소파에 앉은 레오니스가 문서에서 시선을 들었다.그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굳이 볼 필요가 없는 교육을 처음부터 끝까지.“전하께서는 왜 안 가십니까?”“내 전속 시녀 교육 아닌가.”“환자분이 참견할 일은 아닙니다.”“지금은 고용주이기도 하지.”“아닙니다.”“내 궁에서 서녀 옷을 입고 뒤를 따라다니는데?”나는 회색 치맛자락을 내려다봤다.반박하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 말한다.마리벨이 손뼉을 한 번 쳤다.“말투도요. 비비 씨는 질문을 받을 때 너무 정확하게 대답해요.”“부정확하게 답하라는 겁니까?”“조금 흐려도 돼요. 그리고 사람 눈을 그렇게 똑바로 보지 말고요.”“왜죠?”“시녀가 황족이나 고위 귀족 눈을 오래 마주 보면 도전적으로 보여요.”불합리했다.상대 얼굴을 보지 않고 어떻게 표정과 마력 흐름을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