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집사는 송하나의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을 보자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물을 한 잔 따라 들고 돌아오던 길, 그녀는 심성빈의 방 앞을 지나게 되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안에서 낮고 차분한 남자의 통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심성빈이 쉴 틈 없이 전화를 이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그 소리를 듣는 송하나의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어젯밤, 고열에 시달리는 자신을 곁에서 지키느라 한숨도 못 잤을 텐데 지금은 제대로 쉬기는커녕 쉼 없이 업무를 처리하며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으니까.그녀는 더 이상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점심때가 되자 리조트 직원이 담백한 영양식을 가져다주었다.식탁 위에는 영양 균형을 맞춘 속 편한 음식들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병을 앓고 난 뒤라 입맛이 없던 차였는데 하나같이 딱 먹기 좋은 것들이었다.송하나와 심성빈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남자는 자연스럽고 익숙한 손길로 그녀를 위해 따뜻한 쌀죽을 떠주고 이어서 담백하고 부드러운 반찬 몇 가지를 앞접시에 세심하게 덜어주었다. 제스처마다 송하나를 위한 다정함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가에 피로가 짙게 드리운 남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말을 고르더니 마침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성빈 씨, 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아직 많이 남았죠?”그녀는 맑고 진지한 눈빛으로 심성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물었다.“저 이제 열도 내렸고 몸도 괜찮아졌으니 계속 곁에 붙어 있을 필요 없어요. 괜히 저 때문에 업무 그르치지 말고 급한 일 있으면 우선 회사 다녀와요.”혹시라도 자신을 혼자 이곳에 두고 가는 것에 대한 남자의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듯 그녀가 부드럽게 덧붙였다.“만약 제가 혼자 이곳에 있는 게 걱정된다면 짐 싸서 같이 돌아갈게요.”심성빈은 숟가락을 쥔 손끝에 힘을 주었다.그녀가 자신을 배려하고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회사로 데리고 가는 것은 절대 불가
다행히 비서실장 공수현은 노련했다. 백지유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심용군과 고여진을 계속해서 안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마침내 한 사무실 앞에 멈춰 서자 백지유는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문을 열었다. 마치 오랫동안 이 사무실을 드나든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아버님, 어머님, 안으로 모실게요.”심용군과 고여진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서며 실내를 둘러보았다.사무실은 우아하고 포근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심성빈의 차갑고 간결한 대표이사실과는 전혀 딴판인 영락없는 여자의 공간이었다.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컵과 화분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백지유의 사진까지 액자에 담겨 있었다.그녀 혼자 찍은 사진과 심성빈과 다정하게 찍은 커플 사진까지!백지유는 곁눈질로 사진들을 훑다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이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전혀 없으니 보나 마나 비서실장이 급하게 합성해 둔 것이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심성빈의 팀이 보여준 이 비현실적인 업무 처리 속도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불과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사무실을 싹 비우고 새롭게 꾸며낸 것도 모자라 사진과 소품까지 완벽하게 배치해 오랜 시간 이곳을 쓴 듯한 분위기를 조성해 놨으니까. 흠잡을 데라곤 한 점도 없었다.잠시 후, 공수현이 과일과 차를 내왔다.“방금 대표님께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번 다국적 프로젝트는 심사 절차가 워낙 까다롭고 파트너사들의 확인 절차까지 겹쳐 있어서 아무리 빨라도 내일은 되어야 돌아오실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심용군과 고여진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심용군이 먼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야겠어. 계속 회사에 머무르면 괜히 업무에 방해되잖아.”고여진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공수현에게 건넸다.“이거 성빈이 주려고 싸 온 건데 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기도 그렇고. 괜찮다면 공 비서가 나눠 먹어 줄래?”공수현은 두 손으로 정중하게 도시락을
백지유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서재에서 차 키를 챙긴 그녀는 심용군, 고여진과 함께 차고로 향했다.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세단을 골라 탄 뒤, 서둘러 별장을 빠져나왔다.가는 길 내내 백지유는 미리 외워둔 경로를 되새기며 조심스레 핸들을 잡았다. 머릿속으로는 심성빈이 보내준 주요 표지판을 끊임없이 복기했다.신호등 세 번을 지나 왼쪽으로 꺾고, 도로변의 대형 은행을 끼고 우회전하자 곧 심하 그룹의 거대한 사옥이 나타났다.차가 회사 정문 앞에 멈춰 서기 무섭게 마침 아래층에서 서류를 챙기던 비서실장이 빠르게 다가왔다.“백지유 씨, 며칠 전에 대표님께 여행 다녀오신다고 들었는데 벌써 돌아오셨네요?”백지유는 차에서 내려 여유롭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행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요. 마침 아버님, 어머님께서 국내에서 오셔서 모시고 구경이나 시켜드릴까 해서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용군과 고여진이 차에서 내렸다.심성빈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비서실장은 두 어르신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놀란 기색과 동시에 예우를 갖추며 깍듯하게 인사했다.“회장님, 사모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언제 오셨어요?”고여진은 인자한 눈매를 접으며 다정하게 대꾸했다.“며칠 전에 왔어. 그동안 성빈이 곁에서 뒤치다꺼리하느라 고생이 많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비서실장은 서둘러 대답하며 몸을 낮췄다. 그 태도에는 깊은 존경심과 겸손함이 묻어났다.“대표님을 모시는 건 제게 큰 영광입니다. 고생이라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그는 곧장 옆으로 비켜서며 공손히 길을 안내했다.“회장님, 사모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일행이 로비로 들어서자 바쁘게 움직이던 직원들이 하나둘 멈춰 서서 백지유에게 인사를 건넸다.“백지유 씨, 안녕하세요.”“지유 씨, 좋은 아침이에요.”주고받는 인사는 예의 바르면서도 능숙했다. 마치 백지유가 이곳의 일상이 된 사람처럼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고여
집사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송하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심성빈이 사람이라도 바뀐 듯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한편 심성빈은 집사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송하나의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되었고 그 바람에 가슴에는 여전히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같은 시각, 별장.심용군과 고여진, 그리고 백지유가 아침 식사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다.고여진은 틈만 나면 현관 쪽을 내다보며 심성빈을 걱정했다.어제 그가 나간 뒤로 마음이 쓰여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던 터였다.고여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성빈이 일은 다 처리했나 모르겠네. 밤새 그림자도 안 보이니.”그때 백지유가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태연하게 받아쳤다.“일이 꽤 까다로운가 봐요.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들어올 겁니다.”고여진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젯밤 두 사람을 한 방에 머물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그렇게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하다가는 몸이 축나기에 십상일 텐데...“성빈이 저 애는 일만 시작했다 하면 목숨이라도 거는 사람처럼 굴어서 도통 제 몸을 돌볼 줄 몰라. 아마 지금껏 아침도 못 먹었을 거야.”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고여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서 간단히 아침이라도 챙겨야겠어. 지유야, 나랑 같이 회사 좀 다녀오자. 성빈이 얼굴 한번 보게.”백지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네?”애써 유지하던 미소가 무너질 뻔했다.이곳에 처음 온 그녀로서는 심성빈의 회사가 어디 있는지, 길은 어떻게 가는지 전혀 알 리가 없었다.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걸까?별안간 고여진이 당황해하는 백지유를 알아채곤 의아한 듯 물었다.“왜 그러니? 지유야, 혹시 어디 불편해?”“아뇨! 그럴 리가요.”백지유는 서둘러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이미 여기
송하나의 짧은 한마디에 심성빈은 온몸이 덜컥하고 떨렸다.평소 냉철하고 침착하던 남자의 깊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다는 당혹감이 그의 눈빛에 가득 고였다.심장이 제멋대로 날뛰고, 흉곽을 뚫고 나올 듯 요동치는 심장박동과 함께 밀려든 벅찬 기쁨이 온몸을 휘감았다. 자칫하면 이성마저 무너뜨릴 기세였다.그는 송하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눈빛으로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집요하게 응시했다.심성빈은 빈 그릇을 쥔 손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거센 파도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갈라진 음성을 쥐어짜고 재차 확인했다.“하나야... 지금 그 말 진심이야?”섣불리 기뻐할 엄두가 안 났다. 고열에 시달리는 그녀가 순간적인 연민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으니까.그때 송하나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나지막이 대답했다.“네, 진심이에요.”그녀는 이불을 쥔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잠시 망설인 끝에 송하나는 결국 마음속 응어리와 염려를 전부 털어놓았다.“다만...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넘지 못할 벽이 있는 것 같아요. 친밀한 관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랄까. 성빈 씨, 저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당신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가고 싶어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긋하고도 진중한 어조로 덧붙였다.“만약 제가 마음의 벽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우리 그때 진짜 연인이 되어봐요.”말이 끝나고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송하나는 천천히 시선을 떨구었고 길게 뻗은 속눈썹이 떨렸다.“하지만...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면 그땐 너무 탓하지 말아요.”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내디뎠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이토록 솔직한 고백을 들은 심성빈의 가슴 깊은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애틋함과 뭉클함이 벅차올랐다.그는 누구보다 송하나의 성격과 그녀가 가진 내면의 상처를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의 음식은 아무래도 국내에서 먹던 것과 달랐다.그는 막 열이 내린 그녀가 이곳의 음식이 입에 맞지 못할까 걱정했다. 문밖의 여직원에게 방에서 지켜보라고 한 뒤, 자신은 직접 주방으로 가 그녀를 위해 죽을 끓였다.침실에서 송하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머리는 아직 조금 멍했고 온몸은 시큰거리며 힘이 없었다. 지난밤 고열과 두통으로 괴로웠던 감각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그녀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어젯밤 그녀는 일찍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잠결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온몸이 추웠던 것도 생각났다.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지만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흐릿한 의식 속에서 많은 사람이 소란스럽게 움직였고, 관리인이 리조트의 전담 의사까지 부른 것 같았다.그녀는 손을 들어 미간을 가볍게 문지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자기 몸이 갈수록 약해지는 모양이었다.그저 실수로 물에 한 번 빠졌을 뿐이고, 이후 몸을 덥히는 생강차와 감기 예방약까지 먹었는데도 결국 병이 났고 하마터면 버티지 못할 뻔했다.곁을 지키던 여직원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자 즉시 다가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송하나 씨,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지금은 어떠세요? 아직도 불편한 곳이 있어요?”송하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지만 쉬어 있었다.“이제 괜찮아요. 어젯밤 내내 돌봐 주셔서 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송하나 씨,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면 안 돼요.”직원이 연신 손을 저었다.“어젯밤에는 심 대표님이 한 걸음도 떠나지 않고 밤새 곁을 지키셨어요. 저희는 밖에서 대기만 했을 뿐, 제대로 도와드린 것도 없습니다.”‘심 대표님이라고? 그럼 성빈 씨가 온 거야?’송하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굳었다.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어젯밤 고열로 정신이 흐릿할 때 분명 심성빈을 본 것 같았다.설’마 꿈이 아니라 정말이었던 걸까? 하지만 성빈 씨는 회사에서 긴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았나? 어떻게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거지?’그녀의 의문을 알아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