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심성빈은 과거 별장에서의 하루하루가 늘 이러했다.그는 껍질을 다 벗긴 새우를 자연스럽게 송하나의 앞접시에 놓아주려다가 차정원이 한발 앞서 담아놓은 것을 발견했다.순간 심성빈은 손이 멈칫하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내가 선 넘었네...’뒤늦게 깨달은 이 남자, 전에는 차정원이 옆에 없어서 그를 대신해 송하나를 챙겨줬지만, 이제는 저렇게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알아서 물러서야 한다.그는 말없이 손을 거두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그런데 송하나가 갑자기 자신의 접시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심성빈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이에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자연스럽게 물었다.“나 주려던 거 아니었어요?”이 남자가 갑각류 해산물을 안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송하나.심성빈은 잠시 멍해졌다가 해맑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씁쓸함이 따스한 온기로 희석되었다.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다시 새우를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맞아, 너 주려던 거야. 방금 딴생각하느라...”송하나의 접시에는 새우 두 마리가 담겨 있었다.하나는 차정원이, 다른 하나는 심성빈이 놓아주었다.그녀는 만족스럽게 새우를 다 먹어치우고 눈웃음을 지었다.“다 너무 맛있네요.”포크를 내려놓은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그윽한 눈길로 심성빈을 바라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성빈 씨, 그동안 저를 극진히 보살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무슨 변화가 생기든 성빈 씨는 언제나 제게 가장 소중한 친구예요.”이 말을 들은 심성빈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목울대가 살짝 출렁였다.이전까지 송하나는 늘 그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고 확고하게 선을 지켰으며 절대 신세를 지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먼저 인정해주다니.이 인정을 통해 연일 이어지던 심성빈의 고통과 미련이 비로소 해소된 듯했다.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속의 희미한 씁쓸함이 천천히 녹아내렸다.둘 사이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으니 적어도 그녀를
“차 대기해. 내가 직접 해변가 소도시로 찾아가서 송하나가 맞는지 확인할 거야!”빅토르는 어깨의 극심한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이불을 확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안간힘을 썼다.이에 경악한 집사가 재빨리 앞으로 나서 그의 팔을 꽉 붙잡고 간절하게 말렸다.“안됩니다, 보스! 상처도 아직 다 안 나았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섣불리 일어나거나 무리하게 장거리 이동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자칫 상처가 벌어지기라도 하면...”“하면 뭐?”빅토르가 집사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힘이 너무 센 나머지 집사가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동자에 서늘한 한기가 감돌았고 말투 또한 차갑기 그지없었다.“네가 언제부터 내 일에 왈가왈부하기 시작했지? 잔말 말고 가만히 있어. 여기서 쫓겨나기 싫으면!”뼛속까지 파고드는 섬뜩한 기세에 집사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곁에 서 있었다.한편 빅토르는 침대 난간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어깨에 두른 붕대에서 피가 서서히 배어 나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눈빛 속의 집착만이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그 여자가 정말 송하나라면 일 초라도 망설일 겨를이 없다.차정원이 이미 그녀를 찾아냈으니 분명 함께 화인국으로 돌아갈 터, 빅토르는 그 전에 제 곁으로 데려와야 한다.그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송하나를 찾아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릴 테니까.“잘 들어, 두 가지 임무야.”빅토르는 통증을 참으면서 차분하고 냉혹한 목소리로 말했다.“첫째, 나랑 체형이 비슷한 대역을 찾아 이 병실에 눕혀둬. 티 안 나게 위장해. 들통나면 끝장이니까. 둘째, 아무도 날 못 알아보도록 가장 평범한 옷으로 준비해둬. 이번 여정에는 단 두 명만 대동할 거야.”그는 소리 없이 움직여 차정원과 심성빈이 눈치채기 전에 그 여자를 찾아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예전처럼 요란하게 움직였다가는 쉽게 낌새를 채게 할 뿐이니까.다만 집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떨
심성빈을 바라보는 차정원의 눈빛에는 일말의 원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절절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잠긴 목소리로 진심을 전했다.“미안하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하나를 구해주고 이렇게 오랫동안 보호해주셔서 정말 너무 고마워요. 성빈 씨가 살린 건 하나뿐만이 아니에요. 제 목숨과 남은 생까지 구원해준 셈이에요.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심성빈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영원히 송하나를 만나지 못했을 터였다. 이 은혜는 평생 가슴 깊이 새겨둬야 한다.한편 심성빈은 억지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별 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죠.”그는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비친 아쉬움은 가릴 수가 없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정원은 송하나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손등을 어루만졌다. 이어서 기대감이 서린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하나야, 이제 나랑 함께 귀국할까?”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송하나를 잘 보살피고 늘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평생토록 두 번 다시 이런 위험한 곳에 송하나를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송하나는 차정원의 눈에 담긴 간절함과 소중함을 엿보다가 이내 옆에서 쓸쓸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심성빈을 보았다. 잠시 머뭇거리긴 했으나 곧장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네, 같이 돌아갈게요.”아직 기억은 없지만, 이 남자가 주는 안도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성빈을 바라보면서 아쉬움 섞인 말투로 물었다.“성빈 씨도 저희랑 함께 돌아가지 않을래요?”그동안 심성빈은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었다. 송하나는 어느덧 그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다.차정원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 남자에게 결국 마음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심성빈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난 여기에 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서 못 돌아갈 것 같아. 너 먼저 정원 씨랑 돌아
차정원, 송하나, 심성빈 세 사람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송하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며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의아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심성빈은 마음 한구석이 찢어질 듯 아팠다.아무리 손을 놓아줄 준비를 다 했어도 막상 딴 남자에게 돌려보낼 순간이 다가오자 쓸쓸함과 아쉬움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목이 타들어 갈 듯한 고통도 참고서 먼저 입을 열었다.“하나야, 이분은 네 가족 차정원 씨야. 오늘은 특별히 널 데리러 왔어.”“가족이요?”송하나는 나지막이 그의 말을 반복하며 눈가에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의식적으로 차정원과의 관계를 되짚어보려 애썼다.이에 차정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외투 안주머니에서 고이 간직해온 혼인신고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면서 잠긴 목소리로 진중하게 말했다.“하나야, 난 네 남편이야.”복수를 위해 머나먼 타국까지 오면서 그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 오직 이 혼인신고서만 품속 깊이 간직해 왔다. 그리움을 달래줄 마지막 보물이니까.송하나가 손을 뻗어 혼인신고서를 받아들었다. 서류에는 남자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조심스레 펼치자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법적 부부임을 증명해주는 혼인신고서,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자신이 진작 결혼했고 눈앞의 남자가 바로 남편이란 것을.송하나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혼인신고서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차정원을 올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남편... 이요?”“응.”차정원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고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지만 좀 전보다 더 세게 안는 느낌은 있어도 여전히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울 따름이었다. 떨어져 지냈던 지난날의 고통, 그리움과 후회까지 모두 담아서 그녀를 안아주었다.“난 네가 이 세상에 없는 줄 알았어. 평생 못 볼 줄 알고 진짜 죽을 것처럼 괴로웠는데... 고마워,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 하나야...”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스치자 송하나의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졌고 치맛자락이 물결치듯 흩날렸다.심성빈은 그녀에게서 한시라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매 순간을 기억 속에 새겨 넣고 싶었다.어쩌면 송하나와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니까.송하나는 걷다가 미끄러운 모래를 밟고 발이 푹 꺼지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심성빈이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송하나는 그대로 남자의 품에 안겼다.안고 있는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뼈가 다 으스러질 지경이었다.심성빈은 좀처럼 그녀를 놓아주지 못했다.이에 그녀도 잠시 멍해졌지만 끝내 밀어내진 않았다.남자의 품은 여전히 엄청 따뜻했지만,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뭐랄까.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꼭 껴안고 있었다.오늘따라 심성빈은 참 이상한 점이 많았다.“성빈 씨, 무슨 일 있어요?”송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물었다.한편 이 남자는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괴었다. 향긋한 샴푸 향이 코를 찔렀다. 심성빈은 그녀를 천천히 놓아주고 목소리가 어느덧 낮게 가라앉았다.“아니, 없어.”송하나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더 캐묻고 싶었지만 정작 뭘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혔다.요즘 심성빈은 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 같기도 하고 이별을 고하는 느낌 같기도 했다.그때,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이리로 뛰어왔다.그러던 중,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날아가 하필이면 송하나의 옷에 떨어졌다. 치마에는 커다란 얼룩이 번졌다.여자아이의 엄마는 황급히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서 달랜 후 곧바로 송하나에게 걸어왔다.여자아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언니, 미안해요.”아이의 엄마도 연거푸 사과하며 꼭 보상하겠다고 진심을 표했다.다만 송하나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괜찮아요. 옷이야 뭐 좀 더러워지면 어때요? 아이만 안 다치면 되죠.”그
어쩐지 차정원이 그날 바닷가에서 김서윤을 봤을 때 그토록 친근감이 들더라니. 정말 송하나였을 줄이야!단지 기억 상실에 걸려서 차정원을 못 알아봤을 뿐이었다.가슴속에서 씁쓸함과 걷잡을 수 없는 기쁨이 뒤섞였다. 차정원의 눈가가 서서히 뜨거워졌다. 그는 목구멍을 뚫고 나올 듯한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하나 지금 어디 있어요?”목소리는 떨릴 정도로 거칠었고 그 안에는 간절함으로 가득 찼다.“해안가 소도시에 머물고 계십니다. 성빈 씨가 줄곧 옆에서 지키며 정원 씨가 오시길 기다리고 있어요.”[더 시걸]의 연락책이 말을 마치고 그에게 새 신분증을 건넸다.“저희가 새로운 신분을 준비해드렸으니 지금 바로 국경을 넘어서 하나 씨 만나러 갑시다.”차정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글을 돌아보았다.이글 또한 그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 그 무엇도 아내가 살아있다는 소식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터.이글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정원 씨,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세요. 저희는 다른 곳에서 계속 잠복하면서 암살 기회를 엿보겠습니다. 정원 씨한테 돈도 받았으니 이 거래는 끝까지 완수할 겁니다.”[더 시걸]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상, 빅토르의 수하들도 머지않아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그들은 서둘러 철수해야 한다.이에 차정원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반드시 안전에 주의하셔야 해요.”송하나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만약 빅토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굳이 그런 시련을 겪을 리도 없고 차정원과도 이토록 오래 떨어져 지낼 리 없다. 심지어 생이별의 아픔까지 겪었으니...차정원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빅토르에 대한 증오가 불타고 있었고 복수심은 단 한순간도 사그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단지 송하나를 만나고 싶을 뿐이었다.차정원은 [더 시걸]의 사람들이 건넨 새 신분증을 받아 들고 그들과 함께 조용히 떠나 국경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