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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바둑

Penulis: 8489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30 09:14:42

"많이 컸구나, 서하야."

차성훈의 목소리는 기억 속 그대로였다. 명절마다 세뱃돈 봉투를 쥐여 주며 "우리 서하 공부 잘하지?" 하고 머리를 쓰다듬던 목소리.

서하는 그 손이 7년 전 무엇을 넘겼는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일정. 아버지의 약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그러니까 지금, 웃어야 했다.

"……아저씨."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게 두었다. 눈가가 붉어지는 것도 그대로 두었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딸이, 7년 만에 아버지의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지을 법한 얼굴.

"장례식 이후로 연락 한 번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아니다, 아니야."

차성훈이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이 닿는 순간, 서하는 소름이 돋는 걸 참았다.

"내가 미안하지. 그때 너희 모녀를 더 챙겼어야 했는데. 윤 회장 일로 나도 경황이 없어서."

"아니에요. 아저씨도 힘드셨을 텐데요."

식탁 맞은편에서 도현이 물잔을 들었다.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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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48화. 네 개

    서하는 뒷좌석 문을 열고 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백미러 속에서 세 사람의 눈이 엇갈렸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출발 안 해요?"서하가 말했다. 도현이 시동을 걸었다. 차가 천천히 강진 본사 앞을 빠져나갔다."선배.""응.""선배가 이 사람 차에 왜 있는지는 안 물을게. 대신 하나만 물을게."서하가 조수석 등받이를 보았다."쌈지공원에서 그랬잖아. 확실해지면 말해 준다고. 확실해진 거야?"민재는 앞만 보았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차가 멈췄다."……아직."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민재의 뒤통수를 보다가, 작게 말했다."선배, 거짓말할 때 왼쪽 귀 만지는 거 알아?"민재의 손이 귓가에서 멈췄다.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 있던 손이었다."7년이야. 모를 리가 없잖아."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민재는 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 그리고 다음 신호에서 차 문을 열었다."여기서 내릴게요."민재가 내리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서하야. 미안. 근데 이번 건, 네가 다치는 게 싫어서야."문이 닫혔다. 민재는 인도로 올라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차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당신도요?"서하가 물었다. 목소리는 조용했다."선배가 당신한테 뭘 보여 줬어요. 선배 얼굴이 하얬어요. 당신도 하얬고."도현은 운전대를 쥔 채 앞만 보았다. 계약서 4조. 갑도 을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대답하지 않을게요."서하가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이번만이라고 했잖아요.""…….""그날 성수동에서. 당신이 무릎 꿇고 부탁했을 때. 내가 그랬잖아요. 이번만이에요. 대신 확실해지면 제일 먼저 나한테 말하기로."서하가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 위로 길게 미끄러졌다."근데 오늘 보니까,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이 내가 아니네요."도현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다."서하 씨. 이건…….""알아요. 나 지키려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47화. 조수석

    월요일 저녁 6시 40분. 강진건설 본사 앞.도현은 건물 맞은편 길가에 차를 세워 두고 있었다. 일주일째였다. 퇴근 시간이면 여기서 서하를 기다렸다. 남편이 아내를 데리러 오는 것, 그게 경호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조수석 창문을 누군가 두드렸다.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차민재였다. 코트 깃을 세운 채, 주위를 한 번 살피고 있었다.도현이 잠금을 풀자 민재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혔다."서하는 7시에 내려와요. 20분 있어요."민재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떨리지 않게 애쓰는 게 보였다."이거 보세요. 서하한테 보여 주기 전에."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누렇게 바랜 라벨. 손바닥만 한 갈색 유리병.[한빛약국 /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정 0.6mg / 조제일: 7년 전 3월 / 환자명: 윤정호]도현의 숨이 멈췄다."우리 아버지 서재에 있었어요. 맨 아래 서랍에. 손수건에 싸여서."민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비어 있었어요. 아버지가 밤마다 그걸 꺼내서 들여다봐요. 기도하는 사람처럼."도현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약통 1개. 빈 통. 동행인에게 인계. — 인계자 서명 첫 글자, '차'.7년 동안 찾던 조각이었다. 이름 없는 서명 하나와, 이름이 적힌 병 하나. 그게 지금 한 화면 위에서 맞물리고 있었다."……왜 저한테 가져왔어요.""서하한테 보여 주면, 그 자리에서 우리 집으로 달려갈 거니까요. 아버지 서재 문을 열고, 아버지 앞에서 이걸 내밀 거예요."민재가 창밖을 보았다."그럼 아버지는 그날 밤 회장님한테 전화하겠죠. 서하가 저한테 그랬어요. 쌈지공원에서.""그래도 저는 아니잖아요. 차 변호사님 아드님이 제일 싫어할 사람이 저일 텐데.""맞아요. 싫어요."민재가 도현을 돌아보았다."근데 서하가 그랬거든요. 자기보다 더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믿기로 했다고. 그게 당신이죠?"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저도 한 번만 믿어 볼게요. 서하가 믿는 사람이니까."긴 침묵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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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새벽 5시. 서초동, 차성훈의 집.차성훈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서재 의자에 앉은 채로 창밖이 밝아 오는 걸 보았다.가사도우미는 목요일마다 쉬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은 셋뿐이었다. 자신, 가사도우미, 그리고 아들.그는 현관으로 내려가 도어락 덮개를 열었다. 출입 기록 버튼을 눌렀다. 작은 화면에 숫자가 하나씩 떠올랐다.[목 14:07 — 지문 2번]지문 2번. 3년 전, 민재가 사무소를 차려 나가던 날 아들이 직접 등록한 지문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지워 두지 말라고, 그때 웃으며 말했다.차성훈은 도어락 덮개를 닫았다. 손끝이 차가웠다.오전 8시. 차성훈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지."어제 오후에 뭐 했니."— ……사무소에 있었어요. 의뢰인 미팅 두 건."집에는 안 들렀고?"수화기 너머가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안 들렀어요. 왜요?"아니다."차성훈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법정에서 표정을 들키지 않는 법. 질문을 받으면 반 박자 쉬고 대답하는 법. 전부 자기가 가르친 것이었다. 그 반 박자를, 방금 아들이 썼다.— 차 변호사 아들이 제 아비한테 거짓말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알아봐라.정명수가 전해 준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웃어넘겼다.오전 11시. 휴대폰이 울렸다. 정명수였다.— 회장님께서 아드님 동선을 물으십니다."……무슨 동선 말입니까."— 사무소 앞에 붙여 둔 사람이 있습니다. 어제 오후, 아드님이 뒷문으로 나가 택시를 두 번 갈아탔다고 합니다. 놓쳤답니다.정명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낮이가 없었다.—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아십니까.차성훈은 창밖을 보았다. 서초동 법원 청사가 보였다. 30년 동안 그 건물을 드나들며, 그는 늘 이기는 쪽에 섰다. 7년 전에도 그랬다.— 변호사님?"집에 왔었습니다."차성훈이 말했다."제가 불렀어요. 겨울 양복 몇 벌 가져가라고. 그 애가 요즘 감시가 붙은 걸 알아서, 괜히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45화. 1센티

    목요일 아침 8시. 강진건설 28층.오 상무는 직무 정지 전과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재무본부장실에 들어가기 전, 그는 복도 끝 재무총괄실 문을 먼저 두드렸다."경고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오 상무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출입증 관리 소홀. 20년 동안 받은 첫 경고네요.""축하드려요, 상무님.""축하받을 일은 아니죠."오 상무는 앉지 않았다. 서하의 책상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서하를 내려다보았다."어떻게 하신 겁니까. 정 실장이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닌데.""대답하지 않을게요."오 상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가죽 표지가 해져 있었다."제 업무 수첩입니다. 7년 전 거."서하의 손이 멈췄다."20년 동안 저는 한 번도 편을 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았죠. 윗사람이 시키는 건 하고, 대신 전부 적어 뒀어요. 언젠가 제가 버려질 날을 대비해서."그가 수첩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연필 글씨였다.[서하건설 기성금 38억 — 지급 보류. 정 실장 구두 지시. "회장님 재가 사항." 사유 기재하지 말 것.]날짜는 서하건설이 부도나기 열하루 전이었다."그때 저는 차장이었습니다. 결재 버튼을 누른 게 저예요."오 상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지난주에 버려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수첩을 누구한테 줘야 하는지."서하는 수첩을 두 손으로 들었다. 연필 자국이 번져 있었다. 누군가 여러 번 들여다본 페이지였다."……상무님.""이제 저도 편을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오 상무가 넥타이를 바로잡았다."늦었지만요."같은 날 오후 2시. 서초동, 차성훈의 집.민재는 사무소 앞에 세워진 흰색 승용차를 보았다. 사흘째였다. 그래서 오늘은 뒷문으로 나와 택시를 두 번 갈아탔다.아버지는 오후 내내 강진 법무팀 회의였다. 가사도우미는 목요일마다 쉬었다.2층 복도 끝. 서재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이 집에서 아버지 서재를 여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44화. 새 팔

    일요일 밤. 별채 욕실.물소리 속에서 도현이 말했다."감사위원회에 내요. 이거면 강 회장 오른팔을 잘라요.""잘라 봤자예요."서하는 휴대폰 속 사진을 보고 있었다. 앞유리 너머, 표정 없는 얼굴."오 상무님 자를 때 봤잖아요. 회장님은 필요하면 누구든 버려요. 정 실장님도 '독단으로 한 일'로 정리하고 새 팔을 달겠죠. 그럼 우린 사진 한 장 쓰고 끝이에요.""그럼요?""저는 이 팔을 쥐고 있을래요. 자르지 말고."도현은 한참 동안 서하를 보았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당신이랑 바둑은 안 둘래요."월요일 저녁 7시. 을지로, 한결은행 본점 지하 주차장.서하는 기둥 옆에 서 있었다. 한 시간 전, 사진 사본을 대여금고에 넣고 내려온 참이었다.검은 세단이 들어와 멈췄다. 12가 7841. 오늘은 기사가 운전석에 있었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정명수가 내렸다."사모님이 부르실 줄은 몰랐습니다.""예전에 실장님이 여기서 저를 기다리셨잖아요. 이번엔 제가 기다려 봤어요."서하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정명수는 화면을 보았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눈꺼풀이 한 번, 아주 느리게 내려갔다 올라왔다."업무상 방문이었습니다.""새벽 0시 40분에, 기사도 없이, 직접 운전해서요. 그리고 1분 뒤에 오 상무님 카드가 같은 문으로 들어갔고요."주차장 환풍기가 낮게 돌았다."원하시는 게 뭡니까.""두 가지요. 오 상무님 복직. 그리고 레미콘 감사 종결.""대가는.""이 사진, 감사위원회에 안 내요."정명수가 처음으로 서하를 똑바로 보았다."회장님께 말씀드리면, 사모님은 곤란해지실 텐데요.""말씀드리세요."서하가 담담하게 말했다."회장님은 저를 못 자르세요. 채권단이 붙잡고 있으니까. 그런데 실장님은요?""…….""오 상무님이 20년을 버티고 하루아침에 치워졌어요. 그 자리에 다음엔 누가 앉을지, 실장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정명수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넥타이를 아주 조금 바로잡았다."오 상무는 목요일에 복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43화. 월급날

    토요일 저녁 6시. 강진건설 본사 지하 2층, 주차 관리실.유리 부스 안에서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모니터 전원을 하나씩 내리고 있었다. 작업복 가슴에 업체 이름이 박혀 있었다. [동진파킹].서하가 부스 문을 두드렸다. 남자가 돌아보았다. 그리고 서하의 얼굴을 보자, 손을 멈췄다."……총괄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메일로 드릴 말씀이 아니라서요. 문석진 대표님."도현은 부스 밖 기둥에 기대 섰다. 들어오지 않았다.문 대표는 의자 하나를 내주고, 자기는 서 있었다."총무팀에서 두 시간 뒤에 사람이 온답니다. 서버를 회수하겠다고요. 해지 사유는 '보안 설비 일원화'. 안 따르면 미지급 대금 석 달 치를 못 준다고 하고, 다른 계열사 계약도 전부 정리한답니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러 번 들어 본 목소리였다. 하청이 원청의 통보를 전할 때의 목소리."그런데 총괄님 메일은 계약서 조항을 들고 왔고요.""대표님이 결정하실 일이에요. 저는 강요 못 해요."서하가 말했다."따르셔도 원망 안 할게요."문 대표는 한참 동안 꺼진 모니터를 보았다. 그러다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쪽, 코팅된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낡은 급여 명세서였다. 7년 전 날짜. 지급처는 [서하건설 협력업체 긴급 지원금 — 대표 윤정호].서하의 숨이 멎었다."그때 저는 서하건설 현장 주차 관리를 했습니다. 직원이 열한 명이었어요."문 대표가 명세서를 쓰다듬었다."부도 나기 사흘 전이었습니다. 원청이 망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다들 월급은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월급날에 돈이 들어왔어요. 한 푼도 안 빠지고. 나중에 들으니 회장님이 개인 집을 판 돈이었다고."— 월급날이 모레입니다. 부탁드립니다.아버지의 팩스. 받침을 크게 쓴 글씨."그 돈으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으려고 강진 하청으로 들어갔죠. 7년 동안 강진 주차장 차단기를 올렸다 내렸다 했어요. 여기가 누구 회사인지 알면서."문 대표가 서하를 보았다."기사에서 따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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