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자 일행이 집에 머무는 동안, 송씨 부인은 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특별히 그들의 동행을 허락했고, 그들은 함께 진성 곳곳을 누비며 구경에 나섰다.그해도 어느덧 연말이 가까워져 거리마다 설 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그때, 성문 쪽에서 한 마리의 준마가 황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역마는 목청껏 외쳤다.“속보요! 북명왕이 남강을 수복했습니다! 북명왕이 남강을 수복했습니다!”송석석은 비단 두 필을 안고 원단 상점 문 앞에 서 있다가 그 소리를 직접 들었다.그녀는 사제가 남강 전장에 나선 뒤로 파죽지세로 적을 쓸어내며 연달아 열 개가 넘는 성을 수복했던 것을 기억했다. 다만 마지막에는 이리와 시몬에서 꽤 오랫동안 교착 상태가 이어졌고, 나중에 서경 측에서 지원군까지 보내오면서 다시 시간이 더 지체되었었다.시간상으로 보자면 지금쯤 양측이 팽팽히 대치 중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벌써 대승을 거두었단 말인가?그녀는 사제가 반드시 이긴다고 믿었다. 남강도 반드시 되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역시나 서경 측이 발을 빼자 남강은 순조롭게 수복되었다.그녀는 집에 돌아와 이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알리고, 술상과 안주를 차려 부친과 오라버니의 영전에 올렸다. 남강을 되찾은 데에는 분명 그들의 공이 있었다. 그들이 사제에게 사국과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경험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이윽고 2월이 되고 나서야, 북명군이 전쟁을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왔다.송석석은 본래 성문으로 마중 나가고자 했지만, 어머니가 정월부터 풍한에 걸려 아직 회복되지 못했기에 그녀는 곁에서 병간호를 하느라 백성과 함께 성문에서 맞이할 수 없었다.하지만 정말 그를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며칠만 더 지나 어머니의 병세가 조금만 더 나아지면, 그녀는 직접 북명왕부를 찾아가 그를 만나리라 다짐했다.그는 분명 그들이 지난 생에서 평생을 부부로 함께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남강 전장에 나서기 전, 친히 진북후부를 찾아와 자신에게
전북망은 성릉관에 도착하자마자 고열에 시달렸다. 사실 길 위에서도 이미 버티기 힘든 상태였고, 고통은 그의 정신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정신이 들 때면 만두에게 칼로 자신의 목을 베라고 할 정도로 그 고통은 끔찍했다.군의가 치료를 맡아 상처를 씻고 썩은 살을 도려냈다. 말로 다 못할 고통이 다시 그를 덮쳤다.그 후, 그는 며칠이나 정신이 흐릿한 채 지냈다. 겨우 죽 몇 숟갈만 넘길 수 있었으며 몸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이방의 시신은 결국 진성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성릉관에 묻혔다. 그녀의 공에 대해서는 소 대장군이 직접 상주를 올려 황제께 보고하기로 했다.서경군은 결국 퇴각했다. 군량 보급이 끊긴 탓에 수란석이 군사를 끌고 있다 해도 전투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첩자의 보고에 따르면 수란키 역시 다시 군으로 복귀했다 한다. 원래는 서경 태자가 변방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으러 나섰다가 매복을 당해 부상을 입었고, 그 공백을 틈타 수란석이 움직였던 것이다.애초에 이것은 수란석 당파의 계략이었다. 충분한 승산이 없다면 그들은 결코 이처럼 많은 병력을 성릉관에 추가 배치하지도, 몰래 식량을 운반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수란석이 무리하게 성을 공격하고 상국의 영토를 침범한 탓에, 전쟁이 멈추고 화의를 논의하게 된 지금은 상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그러나 송석석이 회의 협상은 관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보주를 데리러 갔고, 시만자 일행과 함께 진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그들은 먼 길을 달려 마침내 진성에 도착하였다. 동틀 무렵 아침 햇살 아래 든든히 서 있는 진북후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문지기가 반갑게 웃으며 마중 나오는 것을 본 순간,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찰랑이며 솟구쳤으나 겨우겨우 참았기에 흘러내리지는 않았다.누군가 안으로 들어가 소식을 전하자, 가장 먼저 달려나온 사람은 서우였다. 그 작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채,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연신 물었다.“고모, 어디 갔다 온 거예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이방의 부상은 너무도 심각했다. 몽동이가 그녀를 업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이미 숨이 끊어질 듯 미약했고, 힘겹게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저 토막난 말조각일 뿐이었다. “살……려줘… 죽기 싫어…”그들은 그 허름한 집으로 돌아와 먼저 전북망의 지혈을 시도했다. 전북망에게는 아직 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방의 상태는 달랐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 장기까지 손상돼, 지금까지 버틴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그녀의 눈빛에는 완전히 절망이 드리웠다. 그러나 한 손으로는 힘을 다해 송석석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말을 잇지는 못했다. 입을 열면 터져 나오는 건 그저 피 뿐이었다.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지만, 아직도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전북망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만두가 전북망의 지혈을 돕고 상처를 치료하며 왼쪽 어깨의 혈을 눌러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송석석은 이방의 상처를 살피며 지혈약도 써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그때서야 그녀의 시선이 또렷해졌고, 그 눈동자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시만자였다. 그녀의 눈에는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했지만 기력이 바닥나 말도 할 수 없었다.송석석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내가 말했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우리 몇 명만 임무를 수행할 거라고. 너는 다시 돌아와선 안 됐어.”이방의 창백한 얼굴에 비웃음 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 웃음이 송석석을 향한 것인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공을 세우는 게 네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시만자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뱉었다.공이라는 말이 이방의 신경을 건드렸다. 눈을 감은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공도 중요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그녀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전북망은 비록 치료를 마쳤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누운 채 팔 하나를 잃은
신신과 만두는 그들을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 뒤, 다시 돌아와 송석석의 탈출을 도왔다.이방이 죽으려고 작정해서 몰래 되돌아온 탓에, 그녀가 석석의 발목을 잡을까 두려워 그들도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전북망은 이방을 업은 채 마치 머리 잃은 파리처럼 이리저리 헤매며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고, 이방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직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수비병의 칼이 그녀의 다리 위로 툭 떨어졌다.찢어질듯한 비명이 양식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전북망은 자신을 향한 칼날들을 간신히 막아내며 뒤를 돌아봤는데,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져 있었다. 이방의 왼쪽 다리에는 이미 칼이 깊게 박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장군! 살려주세요......”이방은 비명을 질렀고, 고통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병사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는 듯, 더 이상 치명타는 가하지 않았다.한 병사의 칼날이 그녀의 목에 들이대졌다. 누군가가 그녀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격분한 병사들이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고함쳤고, 이내 다른 병사가 밧줄을 들고 와 그녀를 결박하려 했다.그때,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한 소장이 몇몇 병사들과 함께 달려왔다. 그 소장은 피곤에 지친 듯했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기품이 느껴졌으며, 분명 평범한 가문 출신은 아닌 듯 했다.그를 보자 병사 둘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이방은 그를 보는 순간, 결코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목에 칼이 닿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전북망에게 소리쳤다.“장군! 저 사람을 인질로 잡아야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소장은 이방의 말을 알아들은 듯,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졌다.전북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정신도 흐려졌다. 하지만 이방의 말에 반사적으로 그 소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검은 빛이 번쩍이는 순간, 전북망이 치켜든 팔이 뚝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장군!”이방은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목에 칼이 얹혀 있어 꼼짝할 수 없었다
송석석은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후, 불길이 좀 더 번지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경공을 사용해 양식 창고로 날아갔다.대부분 사람들이 불을 끄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양식 창고는 가장 중요한 장소인 만큼 여전히 수십 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산골 주민 복장을 한 송석석을 보고 다가오려 했다.그러자 송석석은 곧장 들고 있던 기름통을 들어 올리며 서경 말로 크게 외쳤다.“불이야! 불!”그녀는 이렇게 외치며 동쪽 화재 지점으로 달려갔는데, 누가 봐도 불을 끄러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마침 인근 백성들도 불을 끄기 위해 몰려오고 있었기에, 맨 앞줄을 달리는 송석석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두꺼운 천으로 불을 덮는 사람, 물통을 들고 뛰는 사람, 모래를 퍼붓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방법이 총동원되었다.하지만 화력이 강했기에, 불길이 양식 창고로 번지는 것을 막는 건 쉽지 않았다.송석석은 기름통을 든 채 인파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틈을 노려 병사들을 피해 양식 창고 안으로 잠입했다.창고 안에는 양식이 마대자루에 담겨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양만 봐도 수란석이 성릉관을 반드시 함락시키겠다는 결의를 짐작할 수 있었다.송석석은 양식 더미에 기름을 끼얹은 뒤 불씨를 던졌다. 그런데 그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거기 멈춰!”송석석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렇게나 빨리 들켰단 말인가?하지만 불길이 이미 치솟는 것을 본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곧바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수비병들과 한판 붙을 각오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며 손에 채찍을 쥐었다.하지만 두 발짝 채 뛰기도 전에 놀란 듯 도망쳐 들어오는 이방을 보았다.송석석은 당황했다. 모두 도망쳤던 게 아니었나? 설마 다시 잡혀온 건가?주변을 재빨리 둘러봤지만 이방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수비병들은 무려 열댓 명이나 뒤따라 들어오고 있었다.송석석은 전투 태세로 전진함과 동시에 채찍을 휘두르
이방은 감히 송석석의 말에 맞받아치지 못하고, 꿈 참고 전북망에게 말했다."장군, 저랑 하시죠."전북망은 담담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우린 그냥 명령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듯 하오. 공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소.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지."그도 송석석이 진짜 혼자서 양식 창고에 들어갈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주변의 장작에 불이 붙으면 창고는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안에서 불을 지핀다면 그 불길을 어떻게 빠져나온다는 말인가?그러니 전북망은 추측했다. 주위에서 불을 지필 때, 이미 양식 창고 안에 잠복해 있던 사람이 불을 붙일 거라고 말이다. 송석석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전북망은 처음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관직 사회가 참으로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문벌 귀족은 대대로 이어지고, 조상과 부친의 힘만 있으면 손쉽게 출세하거나 공을 세워 가문을 빛낼 수 있었다.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부친은 평범한 인물이었고, 만약 조부가 전장에서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부친은 관직 하나 얻지 못했을 것이며, 이 장군부조차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었다.그리고 그가 지금껏 분투해온 의미도 결국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자신의 자손들이 자신의 덕을 입어 전씨 가문의 문벌을 다시 빛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게다가 송석석은 무공이 엄청나게 뛰어났다. 그녀는 능력이 있었다.조상 대대로 내려온 복이 있고 스스로의 실력도 있으며, 또 누군가의 뒷받침까지 있다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설령 여인일지라도 말이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전북망은 더는 괴롭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능력으로 조금이라도 덕을 볼 수 있다면 다행일 뿐이었다.그는 기름통을 짊어지고 함께 어둠 속으로 출발했다.녹분이성은 신시부터 제진이 시작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지는데, 지금은 제진 시간 안이었기에,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심지어 경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