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한지 5년째 되던 해, 이혼을 제안했더니 남편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정말 나 없이 살 수 있겠냐는 남자의 삐딱한 반응에 진리은은 쓴웃음만 나왔다. 리은에 대한 해성시 사람들의 평가는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까지 써서 주씨 가문과 허씨 가문의 혼약을 깨뜨린 나쁜 여자다. 주유한이 허씨 가문 딸을 사랑하기 전, 리은과 몰래 연애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의 사랑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바로 돌아서 버렸다. 결혼하고 나서는 쌀쌀맞게 대하고 온갖 비난과 조롱을 해대는가 하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와 썸을 타고 데이트했다. 리은은 5년의 결혼생활 끝에 드디어 알아차렸다. 사랑은 모래알과 같아서, 한번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을 얻고 난 뒤, 두 사람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했더니 차갑기만 했던 남편이 집착하면서 마음을 되돌리려고 애를 썼다. 배가 불룩 나온 리은을 보자, 유한은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서서 따져 물었다. “그 아이 누구 아이야?” 리은은 덤덤하게 남자를 바라봤다. “당신 아이는 아니야.”
View More모든 일이 이제는 정말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리은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다만 지난 반년 동안, 리은이 유한을 본 건 단 두 번뿐이었다.그마저도 만날 때마다 나눈 이야기는 전부 루이에 관한 것뿐,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시간 돼? 할 말이 있는데.]리은은 유한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유한은 더 이상 예전처럼 독단적으로 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예 돌아보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다.두 사람이 만나는 일은 드물었지만, 주유한이라는 사람이 리은의 삶과 세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적은 없는 듯했다.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이는 두 사람 사이를 영영 끊어 낼 수 없는 매듭 같은 존재였다.루이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지금 루이의 생활은 꽤 공평하게 나뉘어 있었다.일주일은 엄마 집에서, 또 일주일은 주씨 가문 본가에서 지냈다.그래서 직접 마주치지 않는 날이 많아도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시간 돼.”[오늘 저녁 같이 밥 먹자.]“그래. 주소 보내.”리은은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생각했다.‘우리 사이에 이렇게 감정 섞이지 않은 말투로,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를 나눈 게 대체 얼마 만이지?’저녁이 되자 리은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이미 먼저 온 유한이 자리에 앉아서 리은을 기다리고 있었다.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유한은 머리를 더 짧게 자른 모습이었다.거의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았지만, 좀더 세련된 느낌이었다.그 때문에 주유한이라는 사람 전체가 더 차갑고 더 날카로워 보였다.여전히 시선을 끄는 남자였지만, 지금의 유한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런데도 유한은 리은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직접 의자를 빼 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왔어? 앉아.”고맙다고 말한 뒤 자리에 앉은 리은이 곧바로 물었다.“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5년 전 그 교통사고 때문이야.”리은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무슨 일인데?”“인영이 미리 모영
대화가 끊어진 뒤, 리은은 핸드폰만 가만히 내려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런데 유한이 리은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미안해. 그때 내가 너를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질투에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오해가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이런 일들도 없었을 거고. 다 내 잘못이야. 사과할게.”하지만 리은은 손을 빼내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이미 끝난 일이기도 하고.”유한은 리은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리은을 겁주면서까지 자기 곁에 붙잡아 둘 자신이 없었다.“정말... 나한테 다시 기회를 줄 생각이 없는 거야?”리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만으로도 리은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이제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리은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한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어딘가 간절하게 매달리는 기색도 묻어 있었다.“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리은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진작 너를 포기했어. 앞으로 우리는 루이의 부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동안 네가 루이한테 못 해준 건 앞으로 두 배로 갚아. 너한테 바라는 건 그거 말고는 없어.”이번에는 유한이 말을 잃었다.차가 멈추자, 리은은 내리기 직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내가 주강그룹을 탐낼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주식도 너한테 돌려줄게. 난 내가 가져야 할 것만 가질 거야.”리은은 더는 빈손으로 돌아서는 선택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자기가 받아야 할 몫은 분명히 챙길 생각이었다.더이상 억지로 참고, 혼자만 손해 보는 식으로 살지 않을 거였다.리은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잘못하고 실수한 적도 있었다. 유한을 향한 마음은 그래서 더 복잡했다. 이제는 그 감정을 하나로 정리해 말할 수도 없었다.사랑한 적도 있었다.원망한 적도
오랜 침묵 끝에 리은은 성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오빠가 일부러 주유한한테 루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오해하게 만든 거야. 맞지?”성빈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맞아. 그날 네가 내 병실에서 잠들었고, 그래서 내가 일부러 그런 말을 했어. 주유한이 오해하도록.”리은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입술을 떨며 움직였지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오빠는 그게 루이한테서 뭘 빼앗는 일인지 알고 있어?”성빈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내가 한 말 몇 마디에 바로 믿어 버릴 정도면, 애초에 유한은 너를 믿지 않았다는 뜻이잖아.”“리은아, 널 믿지 않는 남자는 가치 없어. 주유한이 루이를 내 아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건, 결국 너를 믿지 않았던 대가라고 생각했어.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는데?”리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정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유한이었다.유한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성빈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성빈을 찢어 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우리 감정이 어땠는지, 네가 감히 끼어들 자격은 없어. 네가 뭔데 멋대로 평가해?”성빈은 유한을 보고도 비웃음을 거두지 않았다.“넌 또 뭐가 다르지? 그렇게까지 리은이를 신경 쓰면서도, 네 눈에는 내가 마치 불륜 상대처럼 보였으면서도, 결국 나 같은 사람까지 살려 두고 돌보잖아.”“그렇게까지 마음에 두면서도 끝내 리은이를 못 믿은 건 너야. 주유한, 네가 제일 우스운 거 알아?”유한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시커먼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어두웠다.“죽고 싶어?”유한이 앞으로 나서려는 걸 리은이 팔을 들어 막았다.리은의 시선은 여전히 성빈에게 머물러 있었다. 가슴이 저릿할 만큼 아팠다.리은에게 성빈은 가족이었다.진짜 오빠처럼 여기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성빈은 그런 리은과 루이를 이렇게까지 짓밟았다.리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오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
최면사의 최면이 끝난 뒤, 루이는 이번 일을 완전히 잊었다.누가 일부러 꺼내거나 강하게 자극하지 않는 이상, 다시 떠올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리은 자신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루이는 네가 먼저 데리고 들어가.”유한이 물었다.“어디 가려고?”리은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말 없이 돌아섰다.성빈이 왜 그때 일부러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유한이 자기 뱃속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믿게 만들었는지, 리은은 직접 확인해야 했다.그 한마디 때문에 루이는 5년 동안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리은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했다.이번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지만, 바깥으로는 아무 소문도 새지 않았다.사정을 아는 사람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지나갔다.리은은 요양병원으로 향했다.직원의 안내를 받아 성빈의 병실 앞까지 갔다.병실 안에는 간단한 재활 기구들이 놓여 있었고, 성빈은 그 안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빈이 고개를 돌렸다. 리은을 보자, 성빈은 곧바로 웃었다.“리은아? 웬일이야?”리은은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오빠 보러 왔어.”“앉아. 나 데리러 온 거야? 집에 같이 가려고?”성빈의 표정에는 기대김이 드러났다. 입가에도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지만 리은은 웃을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뒤, 리은이 조용히 말했다.“허인영이 붙잡혔어.”그 한마디에 성빈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리은은 그런 성빈을 똑바로 바라봤다. 목소리는 갈라질 듯 잠겨 있었다.“왜 그랬어?”성빈은 굳어 있던 미소를 천천히 지우면서 고개를 숙였다.“다 알게 됐구나?”“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왜?”“왜냐고...”성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던 차가운 표정으로 리은을 바라봤다.“당연히 너를 미워했으니까.”리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나를... 미워했다고? 왜? 내가
“그럼 난 아들 데리고 저쪽으로 가볼게요. 세 가족 시간 방해하면 안 되니까.”광윤이 웃으며 인사하자, 리은도 고개를 숙였다.“허 대표님, 안녕히 가세요.”광윤이 멀어지자마자 루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엄마 엄마! 롤러코스터 진짜 재밌어요! 아빠 하나도 안 무서워하고요. 소리도 안 질렀어요! 아빠 진짜 멋져요!”고소공포증이 없는 유한에게 이런 정도의 기구는 아무렇지 않았다.반면 리은에게는 롤러코스터가 거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치에 가까웠다.“멋지지. 루이 다음엔 뭐 하고 싶어?”루이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날 밤 유한은 분명 과했다.하지만 산후 얼마 지나지 않은 리은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그날 밤의 격렬함 이후, 리은은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질 것이라 기대했다.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못 가 무너졌다.유한은 정말로 ‘잠자리’ 말고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다음 날 아침, 리은이 깼을 때 침대에는 이미 유한의 흔적조차 없었다.문자도 전화도 답이 없었고, 다시 얼굴을 본 건 며칠 후였다.유한은 자신이 했던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집에 올 때마다 목적은 하나였
“할머니, 그래도 고모님이랑 같이 올라가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리은이 조심스레 말하자, 주은미는 마치 ‘이제야 알아듣네’ 하는 눈빛을 주며 위아래로 훑었다.“엄마, 제가 올라가서 도와드릴게요.”하지만 강덕순은 단단히 선을 그었다.“필요 없어. 리은아, 할머니랑 같이 올라가자.”이 정도로 못을 박자, 리은도 더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리은은 표정이 굳은 주은미를 흘깃 쳐다보고 난 뒤 강덕순의 팔을 잡고 무대 쪽으로 향했다.무대 아래는 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고, 그 시선들이 한 번에 강덕순과 리은 쪽으로 쏠렸다.
“못 봤어? 강덕순 어르신이 허씨 가문 아가씨를 전혀 예뻐하지 않잖아.”“그렇지. 허인영 씨는 명분도 없는데다, 저 나이대는 특히 예절과 이름이 중요하지. 주 대표님이 아무리 좋아해도 어르신 마음을 못 얻으면 소용없지.”“근데 주 대표님도 참 대놓고 저러네. 이런 날에도 허인영 씨를 데리고 오다니, 감정은 확실한가 보네.”“그래 봤자 어르신이 살아 계신 동안엔 허인영 씨는 이름을 못 올릴 거야. 주 대표님도 이혼 못 할 거고.”“그 말이 맞네...”“...”무대 위에 오른 유한은 아래쪽을 한 번 훑다가 장영옥의 옆에 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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