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국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송석석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던 그가 잠시 멈추고 송석석에게 물었다. "큰아들과 함께 가도 되겠소?" 송석석은 그가 바로 위이준임을 알아 차렸고 또한 그가 위국공의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이오." 위이준은 당황해 잠시 멍해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부친이 자신을 썩 탐탁치 않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 그가 너무 유부단하고 느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셋째나 넷째와 상의했었고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넷째가 아닌 자신을 부른 것이다. 너무 예상밖이 없던 거이다.서재에 다다른 위국공은 하인들에게 안정을 돕는 향을 피우게 했다. 성격이 급하고 화가 많은 탓에 이 향을 항상 서재에 두었으나, 오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송석석을 위해 준비했다. 그는 송석석이 밖에서 반 시진을 기다리고 물세례까지 맞을 뻔한 일을 모조리 잊기를 바랐다. 자리에 앉은 송석석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숨기지 않고 말하겠소. 전날 전하께 보고하였고 상황을 알게 된 전하께서는 고부진의 서녀와 첩들을 모두 피해자로 인정하셨소. 국공부는 그 후에 찾아왔소." 위국공은 잠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오?" 그러나 위이준은 이미 눈치를 채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송석석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송 지휘사께서 국공부를 아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럴 필요는 없소. 나는 국공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소. 그녀들은 모두 사온의 협박을 받았던 것이고 유청과 같이 생모의 목숨이 사온의 손에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랐던 것이오. 유청과 같은 이는 여러 명이었고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었소. 그러나 국공부의 이 서녀가 가장 위험했던 이유는 장공주부에서 발견된 무기와 갑옷이 병부에서 제작된 것과 유사했기 때문이오. 공부부터 조사하고 전하를 뵈었다면 이 모든 여인들이 공범으로 여겨졌
위국 공부를 하려고 떠난 송석석의 마음이 아직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내일은 또 제씨 가문으로 가야 했고, 그 외에는 휘왕도 있었다. 사온이 휘왕에게도 사람을 보냈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석석은 경위를 대동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사여묵과 함께 방문하여 이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다. 회왕은 자손들이 모두 봉지에 있기에 홀로 돌아왔고, 황제도 그를 경계했다. 특히, 사온의 배후 인물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에 황제는 지방에 있는 번왕들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밤이 되어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휘왕부로 향했다. 손에는 선물이 들려 있었고 당연히 문병의 명목하에 찾은 것이라 했다.저녁 식사를 마친 휘왕은 소위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었으니, 부중에서 있는 가희들이 번갈아 가며 한창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했을 때,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 휘왕이 손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며 가벼운 춤을 추고 있었다. 가희는 얼굴을 가린 채 고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목소리는 마치 숲 속에서 날아오르는 꾀꼬리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가희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현을 튕길 때마다 고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과 물이 흐르는 듯한 선율에 마음이 평온해지고,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송석석과 사여묵 역시 이름 모를 선율에 점점 빠져들었다. 한 공연이 끝나자 휘왕은 눈을 떴다. 그제야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휘왕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늦은 밤에 찾아온 걸 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 같지는 않구나." 사여묵은 손에 든 선물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숙부님, 선물을 드리는 일이 어찌 나쁜 일이겠습니까?" 송석석도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숙부님께 문안 드립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송석석을 바라보던 회왕은 입꼬리를 올렸다."상국의 첫 여성 관리라니, 정말 당당하고 기개가 넘치는 모습이구나. 사내놈들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구나." "과찬이십니다, 숙부님." 송석석은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한 여인과 함께 걸어나왔다. 벚꽃이 수놓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풍만한 체형에 둥글둥글한 복부가 특히 돋보였다.매우 뚱뚱한 것은 아니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탓에 더욱 살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살이 쪘어도 미모는 가릴 수 없었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뽀얀 피부, 붉은 입술이 그녀의 매력을 더했다. 집사는 이미 그녀에게 귀빈들이 누구인지 말해두었기에 들어오자마자 예를 차렸다."고청영, 두 분께 문안인사 올립니다." 그녀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고, 예를 다하고 나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달콤한 과일처럼 사랑스러웠다. "고청영이라니, 정말 예쁜 이름이구나." 송석석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고청영은 다른 고씨 서녀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청무처럼 요염한 매력을 풍기지도 고청란처럼 강인한 자존심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게다가 고청아처럼 갸냘픈 면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밝고 사랑스러웠다. 맑게 빛나는 눈은 어떤한 상처도 받지 않은 듯했다. 고청영도 웃으며 답했다. "저희들 이름은 모두 예쁩니다. 아버지께서 다른 건 몰라도 학식은 좀 있는 분이거든요. 고청영, 참 예쁜 이름이죠. 하지만 뜻은 그닥 좋지 않습니다. 평생 그림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이잖습니까? 여기 휘왕부에서 충분히 누릴 만큼 누렸습니다. 이제 데려가셔도 됩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너를 데려가려 했다면, 밝은 낮에 경위를 대동하겠지, 늦은 밤에 선물을 들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청영은 그제서야 눈을 반짝이며 송석석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송 지휘사님은 우리 여인들에게 큰 영광을 안겨주셨습니다. 저도 지휘사님처럼 되고 싶군요... 아니, 이제 그렇게는 될 수 없습니다. 관리는 너무 힘이 드니 차라리 먹고 노는 것이 훨씬 좋을 듯합니다." 송석석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며 휘왕을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보배를 얻으셨군요. 사랑스러운 여인이 곁에 있으니
휘왕부를 떠난 송석석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장공주부의 첩들과 서녀들은 마치 무거운 산처럼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져 그녀를 숨이 막히게 짓눌렀다.송석석은 여인들이 왜 장공주부로 끌려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불행했던 이유가 장공주 때문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부모님을 위해 조금의 죄면도 짊어 질 생각이 없었지만, 너무 괴로웠을 것이다.특히나 고통받아 눈빛이 흐려진 여인들은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몸을 떨곤 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송석석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가 만난 고청영이 잠시나마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거품과 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빛을 받아 반짝여 보이긴 했지만 톡 건드리면 금세 어두운 바닥이 드러났다.밤바람이 거세게 불어 마차의 천막이 '퍽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녀는 사여묵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곱씹고 있었다. 사온을 공격한 것은 염탐하러 어슬렁 거리던 연왕을 다시 머리 숙이게 했으니 당분간은 도망치려 할 테지만 현재 상황에서 함부로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태비의 병이 낫지 않았고, 반역 사건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제가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현명한 처사였다.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사온이 처형되지 않는 한, 연왕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6개월이나 1년 정도야 견딜 수 있겠지만, 시간이 더 길어지면 결국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반역의 뜻을 포기하고 조용히 물러나거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연왕에게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욕심냈으니, 황좌와 명예를 모두를 원했다. 아마 남강을 수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국인들이 이대로 쉽게 물러날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에 잠겼던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꺼냈다. "당분간은 음지에서.
사여묵은 30분이나 기다렸지만 제상서의 그림자 또한 보지 못해 결국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 씨 가문은 뭐가 그리 잘났다고 늦게 오는 거지? 어젯밤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 알렸는데 오늘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니. 분명 오늘 온 사람이 석석이라고 여기고 오지 않는 거야. 위국공부처럼 문전박대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 건 아니었다.’ 사여묵은 부인을 엄청나게 사랑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면 안 되지만 송석석을 괴롭히는 것은 더욱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화가 난 그는 제상서가 제 씨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 장공주가 그곳에 배치한 사람을 밝혔는데 바로 베상서가 바깥에서 3년 동안 먹여 살린 여자이고, 둘 사이에는 이미 딸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말을 마친 후, 사여묵은 염 선생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제 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잘못 들은거 아니냐며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 씨 가문에서는 대학자가 몇 명이나 나왔는데 예의범절이 엄격해서 위국공부 밖은 말할 것도 없고 저택 안에도 첩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본처와 첩 사이에는 존비가 분명했는데 첩은 본처의 사유재산이니 정처가 관리하고 매 달 첩이 몇 차례 시중을 드는 것은 모두 본처가 안배했다. 그 규칙은 제제사 때부터 줄곧 지켜왔고 제 씨 가문에서는 국법보다 엄격한 규칙이었다. 게다가 제상서는 원래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첩을 방에도 거의들여놓지 않았고 한 달에 기껏해야 두세 번 정도 가고 나머지는 대부분 본처의 방에서 묵었다. 그들 부부는 금슬이 좋고 화목해서 진성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밖에서 외실을 키우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된다.” 제씨 가문의 둘째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모두 놀라 멍해진 제씨 가문의 아들들을 보았다. 특히 제상서의 장남인 제릉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릉서야, 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 안에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것이야.” 제릉서는 삼품관으로서, 지금은 황제
그러나 제릉서는 바깥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저택의 사람들은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저택 안의 식구가 많아서 반드시 조부와 어머니에게 알릴 것이다. 그는 둘째 숙부를 보며 말했다. “둘째 숙부님, 이 일은 제가 송석석에게 가서 증언을 구하고 소식의 출처를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바깥 소문을 듣고 감히 아버지가 외실을 키운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라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그래, 어서 가보려무나!” 제 씨 가문의 둘째 어르신이 급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씨 둘째 어르신은 절대로 형님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상의 가르침이 있는데 형님께서 가문의 가주로서 절대로 저택 외에서 첩을 키울 정도로 어리석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릉서는 말을 타고 경위부로 갔는데, 송석석이 궁으로 불려 갔다는 말만 들을 뿐이였다. 그는 국부라, 언제든지 입궁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황후마마를 뵈러 간다고 아뢴다면 황후가 사람을 보내 그를 데리고 들어갈 수는 있었다. 그는 송석석이 아직 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즉시 황후에게 보고해 사람을 보내 마중 나오라고 했다. 장춘궁에 도착한 그는 두말하지 않고 황후에게 말했다. “지금 송석석이 황실 서재에 있으니 동생이 사람을 보내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면 여기로 모시고 오라고 하게.” “무슨 일입니까?” 오라버니의 엄숙한 기색을 보자 제 황후도 긴장해서 물었다. ‘송석석이 대리사를 협조해서 모역사건을 조사하는데 설마 제씨 가문을 조사해 낸 건 아니겠지?’ “먼저 사람을 보내거라.” 그러자 제황후는 급히 분부했다. “란주야, 어서 가서 황실 서재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송석석이 나오면 바로 장춘궁으로 데려오너라.” 그러자 란주 상궁은 대답하고 바로 떠났다.란주 상궁이 나가자 제황후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보냈다. 제릉서는 그제야 제황후에게 입을 열었다. “어제 송석석이 경위를 데리고 위국공부로 왔는데 밖에서 반 시진을 기다려서야 저택으로 들어갔
제황후는 다소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어쨌든 아버지께서는 절대로 그런 일을 벌일 분이 아닙니다. 분명 그들이 잘못 조사했을 겁니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았지요?” “아직은 저택의 사람만이 알고 있지. 둘째 숙부께서도 밖으로 소문내지 말라고 명령한 상태고.” 그러자 제황후가 물었다. “그럼 오라버니가 궁으로 들어올 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돌아오셨습니까?” “내가 외출할 때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지 않았다. 난 경위부로 송석석을 찾아갔는데 궁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녀에게 물어보려고 부랴부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제황후는 냉정하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아버지가 밖에서 첩을 들였다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제릉서도 처음에는 북명왕께서 한 말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둘째 숙부의 말을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지금은 반신반의한 상태가 되었다. 제릉서는 그 사건은 왕야께서 조사한 것이 아니라 경위가 조사한 것이기에 송석석이 무공은 뛰어나지만 아무래도 여자이니 떠도는 소문을 믿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씨 가문은 요 몇 년 동안 너무 잘 나가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샀고 종종 나쁜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그는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감정이 너무 좋은 것을 보고 질투해서 그런 소문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진성 귀족들 사이에서 질투심이 강하고 시비를 걸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제릉서가 말했다. “어쨌든 송석석에게 어디에서 얻은 소식인지 물어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슬퍼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명성도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제황후는 안 그래도 마음속으로 송석석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예전에 황제가 그녀를 입궁시키려 했던 일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모든 게 제왕이 북명왕에게 병권을 넘기게 하기 위한 권모술수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 황후는 황제가 그녀와 이 일을 얘기할 때 눈에서 발하는 뜨거운 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눈빛이었다. 심지어는 황제가 수민을 볼 때
한바탕 비교해 보니 장공주부의 갑옷 재료와 기술은 병부의 것보다 더 좋고 섬세했다. 특히 무장이 입는 갑옷이 더 정교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황실 서재에서 실험하였는데 몇 번을 베어도 금만 가고 잘 베이지 않았다. 그리고 활뇌기의 실험 결과도 나왔는데 병부의 것보다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노한 숙청제의 기색이 그제서야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가 다르기에 국공부의 고청아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활뇌기와 갑옷의 도면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해철에겐 아마 죄를 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병기도면 같은 중요한 물건을 이미 유출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황제는 그 여자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송석석이 제안한 통일적인 관리에도 찬성했다. 어쨌든 그 여자들의 죄는 확실히 조작된 것이었고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그는 마음이 인덕 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승은백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고청우도 숙청제는 저울질을 해보았다. 결국엔 량소가 못난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세가로 들어갔지만 큰 풍랑을 일으키지 못했는데 유독 승은백부만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니 그들도 큰 책임을 져야 했다. 송석석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숙청제는 병부상서들을 물러나게 하고 송석석만 남게 하고는, 지칠 줄 모르고 역모사건에 정력을 쏟았다. “송 경, 내가 하나만 물을 테니 사실대로 대답하라.” 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 “예.” 숙청제는 높은 자의 압박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온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송석석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실은 이 문제에 관해서 사여묵이 이미 황제에게 보고를 했었는데, 지금 다시 묻으니 송석석은 황제의 뜻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번엔 내가 묻지. 사여묵은 연왕 숙부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송석석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
시만자는 그제야 송석석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 부인이 사람을 데리고 왕 씨 저택으로 가서 추태를 부렸으니, 당연히 사죄도 왕 씨 저택으로 가서 해야한다. 이렇게 소 세자의 일로 약점을 잡고 있으면 지아가 시집을 가더라도 감히 박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에게는 이제 후원자도 있고 소 씨 가문의 약점도 쥔 셈이 되었다. 하시만 시만자는 오늘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일 뿐, 소 부인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쉽게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명 등 인이 모두 떠난 후에야 소 부인에게 말했다. “안백작부가 명망가라니, 정말 뻔뻔하군요. 어느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 양첩을 유괴하고 다른 가문으로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겠어요? 오늘 원래는 당신들의 가면을 모두 뜯어내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소민이 진심으로 지아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두 아이가 민망해할까 봐 참았습니다. 하지만 지아가 당한 억울함을 계속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키운 아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꼴을 볼 순 없습니다. 당신이 백작부를 믿고 작위가 없는 왕 씨 가문을 괴롭혔으니, 다른 이가 같은 방식으로 갚아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고작 백작부 따위, 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소 세자가 고주의 용서를 빌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만, 지아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면 일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들의 보귀한 작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소 부인은 시만자의 말에 얼굴이 금새 붉어졌지만,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시만자는 진성에 오래 머물며 문제가 생기면 이치를 따지는 성향이었으나, 상대가 막무가내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소 세자의 양첩 유괴는 사실이었고, 이미 경위부에 압송된 상태라 시만자가 이를 빌미로 소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소 부인도 알았다. 그러자 소 부인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고, 안 백작만 계속 사죄하며 두 아이가 원래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며, 소 부인이 다른 사람의 헛소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