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함우민이 냉담하게 말했다.“제 말을 못 믿겠다면 소린 씨한테 물어보시죠. 소린 씨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잖습니까.”주용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함우민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정말 나 때문에 지율 씨가 손을 치료할 기회를 놓친 걸까...’주용화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그 사이에도 함우민은 멈추지 않았다.“주용화 씨 때문이잖습니까. 지율 씨가 왜 손형원 같은 사람의 지분을 받을지 고민해야 합니까? 왜 그런 사람에게 빚진 마음까지 품어야 하는데요? 저라면 손씨 가문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어도 지율 씨가 손형원에게서 단 한 푼도 받게 두지 않았을 겁니다.”함우민은 주용화가 손씨 가문에 쫓기다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오히려 주용화가 손씨 가문 사람들의 손에 죽는다면 함우민에게는 일거양득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함우민이 말을 이었다.“손형원이 쓰레기라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용화 씨가 청렴결백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죠. 주용화 씨가 지율 씨에게 준 상처도 절대 작지 않습니다. 당신도 손형원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이에요!”함우민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손형원이 연정미 때문에 지율 씨에게 상처를 줬다면 주용화 씨는 임채아 때문에 지율 씨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잖습니까. 주용화 씨는...”계속해서 비난을 쏟아내려던 순간, 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함우민 씨! 지금 화야 씨한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방에서 나온 유소린은 마침 함우민의 비난을 듣게 됐다.유소린에게 들켰지만 함우민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찔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주용화 씨가 손형원을 죽이지 않았다면 지율 씨가 손형원 지분을 받을지 말지 고민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지율 씨 손도 치료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고요. 도대체 지율 씨 손을 고치는 것보다 다 중요한 일이 뭔데요!”유소
“손형원 씨가 지율 씨 손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찾아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함우민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런 줄도 모르고 손형원 씨를 쏴 죽였겠죠. 지율 씨에게는 치료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시 바이올린을 켤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요.”함우민은 주용화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그 기회를 없앤 사람이 바로 주용화 씨, 당신이에요. 결국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겁니다. 지율 씨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 감정이 우선이었던 거 아닙니까? 주용화 씨는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지율 씨 앞날보다 본인이 더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함우민의 비난을 듣던 주용화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제야 주용화가 천천히 함우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죠?”함우민은 차갑게 답했다.“어제 손형원 씨 비서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이 지율 씨에게 직접 말했어요.”주용화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손형원 씨 비서가 찾아온 이유가 의사를 찾았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였나요?”“아니요. 그 사람은 손형원 씨의 유언을 전달하러 온 거였습니다.”함우민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손형원 씨는 지분 30퍼센트를 하지율 씨에게 남겼습니다. 1년 뒤에도 손형원 씨가 돌아오지 않으면 남은 10퍼센트 가운데 8퍼센트는 하지율 씨가 받고, 나머지 2퍼센트는 손형서 씨가 받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함우민은 주용화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의사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겁니다. 손형원 씨가 생전에 하지율 씨 손을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도 함께 전했고요.”함우민이 이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데에는 당연히 다른 의도가 있었다.그는 주용화를 앞세워 하지율이 그 지분을 받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하지율이 실종됐던 기간 동안 함우민은 유소린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손형원이 반년 넘게 인터넷으로 하지율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하지율의 그림을 사
“물론 용화 씨는 웬만한 일로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정신력이 워낙 강한 사람이니까요.”하지율은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반년 전에 재발했다고 하셨죠. 그때는 왜 그런 거예요?”핵심을 정확히 짚어낸 질문이었다.진소현은 하지율을 한 번 바라본 뒤 솔직하게 답했다.“용화 씨는 원래 만성적인 불면증을 앓고 있었어요. 게다가 지난 1년 동안은 거의 모든 신경을 지율 씨에게 쏟았죠. 지율 씨를 지켜야 했고, 여러 일을 대신 계획하고 처리해야 하다 보니 늘 긴장 상태를 유지했고 제대로 쉬거나 생각을 비울 시간도 없었을 거예요.”진소현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과도한 피로 자체는 제때 쉬기만 했어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어요. 아마 용화 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치료를 중간에 끝내고 돌아온 거겠죠. 괜찮을 거라고 믿었을 테니까요.”잠시 말을 멈춘 진소현의 시선이 다시 하지율에게 향했다.“하지만 지율 씨가 실종된 그 한 달이 문제였어요. 그 일은 용화 씨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지난 반년 동안의 치료 효과도 대부분 사라졌고, 상태는 오히려 더 악화했어요.”하지율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진소현은 그런 반응을 보면서도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그래도 아직 최악의 상황은 아니에요. 용화 씨는 지금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판단력도 유지되고 있고요. 무엇보다 지율 씨를 통제하려 들지 않고, 지율 씨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거리를 둘 줄도 알아요.”진소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그건 아직 스스로를 붙잡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제대로 치료만 받는다면 상태는 조금씩 좋아질 수 있어요.”그러나 곧 현실적인 이야기도 덧붙였다.“다만 시간이 필요해요. 생각보다 긴 과정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율 씨의 인내와 이해가 정말 중요해요. 중간에 조급해지거나 지쳐서는 안 돼요.”잠시 후 진소현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사실 용화 씨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따로 있을지도 몰라요. 바로 지율 씨예요. 지율 씨
하지율의 부탁이라면 주용화는 거절하지 않았다.주용화의 동의를 얻은 하지율은 그날 저녁 곧바로 진소현에게 연락했다.진소현도 이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기에, 두 사람은 다음 날 바로 만나기로 약속했다.진소현은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다음 날, 진소현은 약속한 시각에 맞춰 저택을 찾았다.남시온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남시온을 데려오지 않았다.주용화를 본 진소현은 먼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주용화도 인사를 받기는 했지만 특별히 차갑지도,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은 형식적인 대답뿐이었다.하지율은 진소현을 서재로 안내한 뒤 주용화를 바라봤다.“화야 씨, 소현 씨랑 잠깐 둘이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요. 화야 씨는 거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주용화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표정에는 아쉬움이 스쳤다. 분명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하지율의 뜻을 존중했다.“알겠어요.”서재는 2층에 있었지만 1층 거실에 있어도 서재 쪽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그런데 방을 나온 주용화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복도 난간에 기댄 채 두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통증을 버티고 있었다.서재 안으로 들어선 진소현은 곧바로 하지율을 바라봤다.별다른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저는 지율 씨가 용화 씨에게 숨길 줄 알았어요.”하지율은 담담하게 답했다.“화야 씨는 원래 눈치가 빠른 사람이잖아요.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짐작했을 거예요. 앞으로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화야 씨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진소현의 눈빛에 옅은 안도감이 스쳤다.“잘하셨어요. 지율 씨가 잘 판단해 주신 것 같네요.”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하지율도 안부를 주고받는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화야 씨 상태가 어떤지부터 말해주세요.”진소현은 가방에서 서류 한 묶음을 꺼내 하지율에게 건네며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설명했
하지율은 조금 전 유소린과 나눴던 이야기를 주용화에게 다시 설명해 줬다.그러자 주용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하지율과 유소린은 잠시 시선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주용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유소린은 원래 하지율과 따로 주용화 이야기를 해보려 했지만, 주용화가 계속해서 하지율의 곁을 지키고 있어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결국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뜬 유소린은 하지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율아, 내 생각에는 화야 씨 어디 아픈 것 같아.]하지율 역시 주용화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다만 어느 정도 심각한 상태인지는 알지 못했다.하지율은 주용화에게 지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증상이 심해지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남시온에게서 주용화가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면 치료까지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 주씨 가문을 둘러싼 여러 소문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주용화의 병에 대해 어렴풋한 짐작은 하고 있었다.하지만 주용화가 곁에 머문 시간 동안 하지율이 직접 본 증상은 심한 불면 정도뿐이었다.그래서 주씨 가문의 병이 세간의 소문처럼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인지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오히려 세간의 소문에 과장이 섞여 있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하지율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하지율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율 씨, 진소현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신가요?”하지율은 주용화를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같은 공간 안에 있기만 하면 주용화도 굳이 껌딱지처럼 따라다니지는 않았다.주용화는 그저 하지율이 창가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볼 뿐, 자리를 지켰다.“네, 괜찮아요.”진소현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용화 씨가 곁에 있을 것 같아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지율이 보이지 않자, 주용화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곧바로 방을 뛰쳐나와 하지율을 찾아다니느라 탁자 위에 놓인 쪽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었다.하지율은 묘한 불안을 느꼈지만 마음을 가라앉힌 뒤 주용화의 손을 잡고 방으로 걸어갔다.그리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쪽지를 주용화에게 건넸다.[화야 씨, 처리할 일이 있어서 서재에 다녀올게요. 일어나시면 서재로 오세요.]쪽지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뒤에야 주용화의 거친 숨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주용화는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지율 씨,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하지율은 그런 주용화를 지긋이 바라봤다. 이윽고 하려던 말을 삼킨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의 주용화는 하지율에게도 낯설었다.평소처럼 모든 상황을 침착하게 대응하던 모습보다는 오히려 작은 일에도 쉽게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이번에 하지율이 사라졌던 일은 주용화에게 생각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긴 듯했다.한참 뒤, 하지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화야 씨.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다음부터는 어디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꼭 직접 말하고 갈게요. 화야 씨가 걱정하지 않게요.”주용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 마음에 새겨들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한편, 하지율은 막 돌아온 참이라 처리해야 할 일은 아직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주용화를 달랜 뒤, 하지율은 다시 유소린을 찾아갔다.유소린이 먼저 물었다.“지율아, 이제 너도 돌아왔으니... 연정미랑 손형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풀어줄까?”연정미와 손형서는 아직도 주용화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하지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지금 바로 풀어주면 안 돼. 내가 돌아오자마자 두 사람을 풀어주면, 두 사람이 납치된 일이 우리랑 관련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유소린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한데 계속 가둬두는 것도 문제야. 혹시라도 들키면 일이 커져서...”하지만 이내 고민 섞인 투로
하지율 팀이 못해서가 아니라, 문제는 따로 있었다.“하지율, 진짜 너무 대단하네. 해리랑 같은 급인 거야?”“현성 대가가 일부러 해리를 불러 임채아를 받쳐 준 건데... 이런 상황에서는 둘 다 만점이라고 해도 결국 임채아는 하지율을 못 이긴 거야.”“현성 대가는 무슨 생각일까? 임채아랑 하지율 사이에서, 하필 임채아를 제자로 받다니.”“그러게. 실력, 외모, 기품, 재능. 다 봐도 하지율이랑 비교가 안 되잖아?”심사 위원이 말했다. “우리는 공정, 공평의 원칙으로 채점했습니다. 이번은 팀전이고, 하지율 씨와 강병주 씨는
유소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야를 바라보며 물었다. “움직여요? 뭘요?”주용화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당연히 해리의 손을 못 쓰게 만들어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오늘의 추가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유소린이 멍하니 되뇌었다.“해리의 손을 망가뜨려서... 그러면 해리가 아예 경기에 나갈 수 없게 만들겠다는 뜻인가요?”주용화가 미간을 올리며 되물었다.“그럼 설마 정말로 다시는 바이올린을 켤 수 없게 만들자는 그 사람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란 말인가요?”유소린이 고개를
뒤뜰까지 걸어 나온 연재영과 심다희는 그늘 아래에서 발걸음을 멈췄다.심다희가 연재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연재영 씨, 하실 말씀 있으시면 여기서 말씀하세요.”연재영이 조용히 물었다.“심다희 씨가 지율이랑 같은 학교 다닐 때, 지율이 입에서 연씨 가문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까?”심다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 말속에 숨은 뜻을 읽어 냈다.하지율이 먼저 자기 정체를 털어놓고, 그 덕에 심다희와 어울리게 됐다는 식으로 몰고 가고 싶은 건가.마음속 깊은 곳에서 비웃음이 스쳤지만 심다희는 드러내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
연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율을 향한 불만이나 원망은 없었다.“일단은 이렇게 두는 수밖에 없지.”음악적 재능에서 하지율이 앞서도, 연정미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뜻을 둔 곳이 달랐다.손형서도 안다. 바이올린은 연정미에게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라는 걸.연정미의 관심사는 연경 그룹에 있었다.손형서가 물었다.“초기 지분 건은, 지금 어떻게 처리되고 있어?”그 말을 꺼내자, 연정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별로 좋지 않아. 회사에 초기 지분을 들고 있는 주주들이 어떻게든 양도를 안 하겠다네.”손형서가 잠시 머뭇거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