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용화 성격이라면 오래지 않아 너를 찾아올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미리 하지율 씨에게 연락해 둔 거야. 동시에 사람들을 붙여 용화의 움직임도 계속 지켜보게 했고. 주용화가 이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설령 끝까지 뒤를 쫓지 못하더라도 하지율 씨만큼은 먼저 도착해 있도록 하려고 했어. 그런데 두 번 만에 정말 용화를 마주치게 된 거지.”진소현은 욱신거리는 목을 손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야. 하지율 씨가 이제는 나를 믿게 됐잖아. 이 정도 상처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만했어.”남시온은 그런 진소현을 말없이 바라봤다.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하지율과 주용화는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뒤 문을 닫은 하지율은 물 두 잔을 따라 서로의 앞에 내려놓았다.잠시 침묵이 흐른 끝에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화야 씨는 원래 현실 회피하는 성격 아니잖아요. 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문제를 지적한 사람부터 없애려고 하시는 거예요?”주용화는 이미 하지율이 그 자리에 나타난 이상 더는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낮게 웃음을 흘렸다.“문제를 해결한다고요? 어떻게요? 최면이라도 받으라는 건가요? 지율 씨도 아시잖아요. 저는 절대로 최면은 받지 않을 겁니다.”하지율은 급히 말했다.“꼭 최면만이 답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다른 치료법을 찾을 수도 있고요...”주용화는 하지율을 똑바로 바라봤다.“정말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제가 왜 최면을 받았겠어요?”하지율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최면을 받더라도... 저는 계속 화야 씨 곁에 있을 거예요.”주용화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문득 물었다.“그러면 지율 씨는 제가 왜 진소현 씨와 남시온과 친구였으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는지 알고 있나요?”하지율은 숨이 턱 막혔다. 주용화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
주용화는 하지율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지율 씨... 진소현 씨와는 개인적인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하지율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주용화를 바라봤다.“개인적인 일이요? 도대체 어떤 일 때문에 소현 씨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하신 거예요?”주용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율은 말없이 주용화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화야 씨, 저희 사이에도 말하지 못할 일이 있나요?”주용화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지율 씨...”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주용화의 반응만으로도 하지율은 이미 답을 얻었다.하지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옅은 실망이 어린 눈빛으로 진소현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소현 씨... 정말 죄송해요.”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지율은 진소현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하지만 이제는 진소현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주용화가 직접 랜스 가문까지 찾아와 이런 일을 벌일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진소현은 몇 차례 기침을 한 뒤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습니다.”진소현은 주용화를 원망하지 않았다.진소현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주용화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 병을 이겨내는 것뿐이었다.곁에 서 있던 남시온은 괴로워하는 진소현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당장이라도 입을 열고 싶었지만 끝까지 이를 악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율은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진소현을 향해 말했다.“소현 씨,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진소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조심히 들어가세요.”하지율은 주용화와 함께 랜스 가문을 떠났다.주용화가 떠난 뒤에야 남시온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너는 두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애썼는데, 용화는 오히려 널 죽이려고 했잖아. 그때 일도 결국은 내가 용화한테 진 빚이지, 너랑은 아무 상관 없어.”진소현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진소현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역시 지율 씨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군.’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하지율의 도움이 없다면 주용화를 치료하는 일은 훨씬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무엇보다 주용화가 제대로 치료를 받게 하려면 결국 하지율의 협조가 필요했다.진소현은 시간이 더 지체될수록 주용화의 상태가 더욱 악화할까 봐 걱정스러웠다.진소현이 대책을 고민하던 그때였다.문득 인기척이 느껴지자, 진소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천천히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본 진소현은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내 늘 차갑기만 하던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용화 씨, 어쩐 일이세요?”랜스 가문의 경비는 삼엄했지만, 진소현은 주용화가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사실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주용화는 아무런 표정 없이 진소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율 씨한테 무슨 말을 한 거죠?”진소현은 서서히 미소를 거두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더 이상 모르는 척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흔적을 감추려 해도 결국 주용화가 알아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역시 용화 씨는 속일 수가 없네요.”바로 그 순간이었다.순식간에 목이 강하게 조여 오자, 진소현은 숨이 턱 막혔다.가늘게 떨리는 속눈썹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주용화의 손이 목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주용화의 눈에는 인간다운 온기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차갑고 공허한 눈빛을 본 진소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정말... 이대로 용화 씨 손에 죽을 수도 있겠어.’주용화는 냉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는 한때 친구였습니다. 저는 진소현 씨와 남시온에게 빚질 만한 일을 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계속 제 일에 개입하며 저를 방해하는 겁니까? 설마 제가 정말 진소현 씨를 죽이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진소현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숨쉬기조차 힘겨운 상태에서 진소현은
주용화는 부정하지 않았다.“분명 지율 씨를 너무 자주 만나지 말고 저희 일에도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그런데 정기석 씨는 제 경고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으시더군요. 이번에는 경고로 끝내지만,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비열하다는 게 어떤 건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주용화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지켜보겠습니다. 정기석 씨에게는 시온이가 더 소중한지, 아니면 저희 일에 끼어드는 게 더 중요한지.”그 말을 들은 정기석의 동공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정기석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용화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역시 주씨 가문다운 방식이군요. 주용화 씨, 지율 씨가 주용화 씨가 뒤에서 계속 주변 사람들을 계산하며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용서해 줄 거로 생각하십니까? 지율 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밝고 따뜻했던 화야 씨입니다.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이해해 주고 언제나 지율 씨만을 위해 주는 그 화야 씨입니다. 뒤에서 온갖 수를 써 가며 지율 씨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밀어내는 지금의 주용화 씨가 아니라요.”주용화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지율 씨가 좋아하는 건 착했던 제 모습이었다는 건가요? 그런데 선과 악을 누가 정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면 단순히 재미 좀 보려고 임채아를 도와주지 않았겠죠.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도 없었을 겁니다.”주용화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정기석 씨 기준대로라면 저는 판사도 아니니 누구를 심판할 자격도 없겠죠. 그들이 악인이든 착한 사람이든 제 손으로 처리해서도 안 되고요. 하지만 저는 지율 씨가 괴롭힘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이유도 악을 벌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천하의 악인이라서 죽인 것도 아니에요. 설령 정말 선한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지율 씨 앞을 가로막는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할게요.”하지율이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정기석이 다급히 하지율을 불러 세웠다.“지율 씨...”하지율은 손을 멈추고 물었다.“기석 씨, 또 하실 말씀 있으세요?”정기석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머뭇거렸다.하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한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지율 씨... 고맙습니다.”전화를 끊은 하지율은 주용화를 돌아보며 말했다.“기석 씨가 허락했어요.”몇 분 뒤 정씨 가문의 대문이 열리고 정기석이 밖으로 나왔다.정기석은 먼저 주용화를 바라본 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오시죠.”일행은 정기석의 안내를 따라 정씨 가문 안으로 들어갔다.정시온은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율을 발견한 정시온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정시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지율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이모!”하지율은 미소를 지으며 정시온을 꼭 안아 주었다.“시온아, 잘 지냈어?”정시온은 옆에 서 있는 주용화를 발견하자 반갑게 인사했다.“화야 삼촌!”주용화는 정시온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시온아, 정말 오랜만이구나.”노자현을 발견한 정시온은 반사적으로 하지율의 뒤로 몸을 숨겼다.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저는 안 갈 거예요! 아빠랑 같이 있을 거예요!”하지율은 정시온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온아, 걱정하지 마. 시온이를 데려가시는 게 아니라 얼굴만 보고 돌아가실 거야.”정시온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정말이에요?”하지율은 미소를 지었다.“이모가 언제 시온이한테 거짓말한 적 있었어?”정시온은 무의식적으로 정기석을 바라봤다.정기석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노자현은 복잡한 심경으로 정시온을 바라봤다. 눈빛에는 손자를 향한 애틋한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노자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정시온의 뺨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정시온이 놀랄까 봐 망설인 끝에 손은 허공에서 멈췄다.잠시 뒤 노자현은 손을 내리며 다정하게 말했다.“시온아, 할머니가 한 번 안아 봐도 되겠니?”정
주용화가 도착하자 하지율은 정시온에게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하지율은 대문 앞에서 간절히 애원하고 있는 노부인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화야 씨, 저분 아세요? 정말 주씨 가문 사람이 맞나요?”주용화는 하지율의 시선을 따라 노부인을 바라봤다.“네. 알고 있습니다. 셋째 숙모님이 맞아요.”주대현은 주씨 가문의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노자현 역시 주용화와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였다.하지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온이를 정씨 가문에서 키우라고 한 건 시온이 아빠가 직접 남긴 뜻이었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분이 이제 와서 시온이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오셨어요. 기석 씨는 시온이 때문에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고...”잠시 말을 멈춘 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봤다.“그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시온이를 친자식처럼 키워 왔잖아요. 그러니 기석 씨는 시온이를 주씨 가문으로 보내는 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실 거예요. 아무래도 같은 주씨 가문 사람이시니까... 화야 씨가 말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지율에게는 노자현 일행을 내보낼 방법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주용화의 친척들이었기에 하지율은 일을 너무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주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주용화는 곧 하지율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노부인 앞으로 걸어갔다. 옅은 미소를 띤 주용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셋째 숙모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주용화의 목소리를 들은 주대현의 어머니 노자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앞에 선 주용화를 바라봤다.노자현은 주용화보다 훨씬 연상이었지만, 주용화를 마주한 순간 어른다운 여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가... 가주님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주용화는 옅게 미소 지었다.“친구한테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한 번 와봤습니다.”주용화는 정씨 가문 쪽을 힐끗
경호원들이 하지율을 둘러싸고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섰지만, 누군가 물건을 던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율은 무언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달걀이 얼굴에 닿기 직전, 한 실루엣이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곧이어 하지율의 시야에 들어온 건, 화야의 손에 잡힌 달걀 몇 개였다.하지율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화야가 다시 달걀을 던졌다.달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떨어졌다.“꺄악!”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순간 현장은 얼어붙었다.하지율은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연정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그대로 잠들 뻔했다.그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문 쪽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꾸벅꾸벅 졸던 연정미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문 쪽을 바라봤다.밖에서는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현 오빠, 어제 정미한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보현 오빠한테까지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단보현이 말했다.“내가 사람 시켜 조사해보니 연정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여기였어.”손형서
손형서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주용화 앞으로 내밀고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얘기했다.“화야 씨, 뭐 마실래요?”주용화는 메뉴판을 받지 않고 말했다.“연정미 씨 말로는 여기 라테가 대표 메뉴라던데요. 라테로 할게요.”손형서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정미가... 왜 그걸 화야 씨한테 말했죠?”이 카페는 연정미가 예전부터 자주 오던 곳이었다.주용화가 태연하게 답했다.“지난번 같이 식사했을 때 들었어요.”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