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다시 손형서를 마주한 순간, 연정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형서, 너... 너 왜 이렇게 변했어?”눈앞의 여자는 평소와 전혀 다른, 막 우아함을 입은 듯한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흩날리고 있었다.손형서는 가볍게 머릿결을 정리했다.“화야가 그러더라. 내 뒷모습이 자기 기억 속 그 사람이랑 좀 다르대. 화야가 기억하는 그 뒷모습은 더 여성스럽대.”여기에서 손형서는 잠시 말을 멈췄다.“내가 알아보니까, 임채아가 평소에 딱 이런 타입이더라. 그러니 화야가 착각할 만하지. 그리고 하지율도...”하지율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손형서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하지율도 예전에 이런 이미지였지.”연정미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형서, 화야 씨가 이제 그 사람이 확실히 너라고 생각해?”손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도 더 확신하게 만들고 싶어.”연정미가 위아래로 손형서를 훑어보았다.“근데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거... 정말 그럴 가치가 있어?”손형서는 미소를 지었다.“내가 어떻게 남자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겠어? 이건 그냥 화야를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고 나만 보게 만드는 수단일 뿐이야.”연정미는 손형서의 손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아직도 바이올린 연습해?”손형서의 손에 난 상처는 아직 다 낫지 못했다.굳은살도 어렴풋이 보였다. 오랜 시간 바이올린을 붙잡고 연습한 흔적이었다.손형서는 잠깐 흠칫하더니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화야가 그러더라. 내 바이올린 연주에는 감정이 너무 비어 있다고. 오래 바이올린을 거의 안 만진 데다 ‘백월광’은 고난도 곡이라 기술에 집중하다 보면 감정선을 놓치기 쉽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었어.”연정미는 손형서를 보며 망설였다.손형서는 그런 연정미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잖아. 못 할 말이 어딨어.”연정미가 입을 열었다.“나는 네가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애쓰는 거 처음 봐.”손형서는 미소를 머금
연정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칼? 손형서, 너 너무 한 거 아니야? 들어보니 심서원은 어렸을 때부터 싸우는 걸 좋아하고 수단도 더럽기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을 때려죽였다던데. 심씨 가문이 어쩔 수 없어서 M국 군대로 보내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오히려 싸움 실력만 늘어서 왔다잖아. 제대하고 다른 가문의 사람들을 때리고 다녔다는데, 그런 사람이 화야 씨를 정말 다치게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소녀처럼 수줍어하던 손형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정한 모습만이 남았다.“만약 정말 심서원한테 맞아서 죽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운인 거지. 적자생존이잖아. 살아남지 못했다는 건 강하지 못하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더 볼 필요도 없지.”손형서와 연정미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다 강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연정미에게 있어서 남자는 야망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그러나 손형서에게 있어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남자는 죽어도 아깝지 않았다.연정미가 손형서를 보면서 물었다.“그럼 지금은?”손형서의 머릿속에서 화야가 손형서를 구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손형서가 웃으면서 말했다.“화야는 아주 훌륭해.”연정미가 귀띔했다.“심서원한테 보상해 주는 것도 잊지 마.”“응, 알고 있어.”두 사람은 조금 더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손형서가 떠났다.30분 뒤 손형서의 비서가 바이올린을 가져왔다.손형서는 뒷마당에서 ‘백월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연주가 끝나고 손형서가 물었다.“화야 씨, 어때요?”주용화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비슷하긴 한데...”손형서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그런데요?”주용화는 손형서를 보면서 실망을 드러냈다.“그 사람의 바이올린 실력은 아주 좋았어요. 임채아보다 더 뛰어날 정도로요. 하지만 지금 형서 씨의 실력은 임채아보다 못하니... 어쩌면 제가 정말 사람을 착각한 걸지도 모르겠네요.”손형서는 어렸을 때부터 존경의 눈빛을 받아왔다. 그러니 실망한 화야의 시선
하지율은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좋아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화야를 바라보았다.화야는 오늘 하지율과 함께 이곳에 왔다. 그러니 화야를 안 데리고 가는 것은 이상했다.하지만 오늘은 정기석의 생일 때문에 모이는 자리니 화야를 데리고 가는 것도 이상했다.두 사람은 너무 친한 편이 아니니까 말이다.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정기석의 목소리가 울렸다.“화야 씨, 전 이따가 지율 씨랑 같이 저녁을 먹을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제가 지율 씨를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정기석은 아예 화야를 거절해 버렸다.화야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얘기했다.“그럼 먼저 정기석 씨 생일 축하해드리죠.”정기석은 키링을 흔들어 보이면서 얘기했다.“고마워요. 안 그래도 생일에 지율 씨가 직접 만든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거든요.”주용화는 정기석이 들고 있는 키링을 보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그럼 기석 씨의 생일 파티를 방해하지 않을게요.”정기석이 가볍게 웃었다.“지율 씨, 우리 먼저 가요.”하지율은 화야한테 가볍게 인사한 뒤 바로 떠났다.주용화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그 표정은 여전히 담담해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형서는 화야의 기분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손형서가 주용화 옆으로 다가왔다.“화야 씨, 오늘 일을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드렸는데...”하지만 손형서가 다 얘기하기도 전에 주용화가 말을 끊었다.“전에 저를 구해주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구해드리는 게 당연하죠.”손형서가 눈을 반짝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저는 그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걸요. 만약 제가 아니면요?”주용화가 담담하게 얘기했다.“형서 씨가 아니라고 해도 제가 착각한 것이니 형서 씨와는 무관합니다.”손형서가 마음을 놓으려는데 주용화가 갑자기 말을 덧붙였다.“하지만 확실히 제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똑같은 귀걸이만으로 판
하지율이 고개를 돌리자, 화야가 봉투를 들고 빠르게 다가왔다. 화야는 하지율 옆에 앉아 있는 정기석을 보더니 우뚝 걸음을 멈췄다.“정기석 씨?”정기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따라온 손형서를 힐끗 본 정기석이 미소를 지었다.“아까 지율 씨랑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지율 씨가 한참 기다려도 화야 씨가 오지 않으니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제가 지율 씨한테 화야 씨는 바쁜 것 같으니 방해하지 말자고 말렸어요.”화야의 눈빛이 약간 차갑게 가라앉았다.“길을 막던 사람이 칼을 꺼내는 바람에 좀 늦었어요.”그 말에 하지율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다친 데는 없어요?”“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조용히 서 있던 손형서가 한 걸음 나섰다.“지율 씨, 화야 씨는 절 구하느라 늦은 거예요. 너무 탓하지 말아 주세요.”정기석이 웃으며 받았다.“무슨 말씀이에요. 좋은 일을 한 건데 지율 씨가 어떻게 탓하겠어요.”하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말아요. 화야 씨는 원래 불의를 못 참는 사람이에요.”그 말을 들은 손형서의 표정이 굳어버렸다.정기석과 하지율의 말 때문에 손형서를 구해준 화야의 행동은 그저 정의로움이 되어버렸다.마치 다른 사람이었어도 화야는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는 것처럼 말이다.화야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괜히 길게 말하면 부자연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했다.“신발 가져왔어요.” 화야가 봉투에서 신발을 꺼내 건넸다. “먼저 갈아 신으세요.”“네.” 하지율이 돌의자에 앉자, 화야가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살며시 신발을 벗겨 주었다.하지율이 놀라 발을 살짝 거두었다.“제가 할게요.”“움직이지 말아요.” 화야가 낮게 말했다. “발이 조금 부었어요. 염증 생기면 곤란해요.”하지율은 더 사양하려 했지만 화야가 이미 발을 받쳐 들고 있었다. 거절하기 어려운 단단한 배려였다. 주변의 시선이 쏠려 있어 하지율도 더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율은 차분히 신발을 갈아 신고 일어섰다.멀찍이 서 있던 손형서는 그 장면
정기석이 곧 생일이라는 것을 안 하지율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직접 선물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정기석은 하지율을 정말 많이 도와주었다. 만약 정기석의 도움이 없었다면 하지율은 진작 고지후의 압박아래 어쩌지 못하고 길가를 떠돌았을지도 모른다. 이혼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율은 정기석에세 정말 고마웠다.정기석은 손에 쥔 키링을 보면서 눈동자가 점점 더 깊어졌다.정기석은 하지율을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고마워요, 선물 정말 마음에 들어요.”정기석의 눈빛은 너무 진지하고 깊어서 피부가 따가워지는 것만 같았다. 이건 친구를 보는 눈빛이 아니다.하지율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세게 뛰어서 일부러 정기석의 시선을 피했다.하지율이 일어났다.“밤이 깊었으니 들어가요.”하지율이 일어나자마자 정기석이 하지율의 손목을 확 잡았다.하지율은 놀라서 정기석을 쳐다보았다.정기석은 검은 눈동자로 얘기했다.“가지 마요. 나도 이번 출장을 다녀오면서 선물을 준비했으니까요.”정기석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본 하지율은 그제야 긴장을 조금 풀었다.정기석도 작은 선물 박스를 건네주면서 말했다.“열어봐요, 마음에 드나.”하지율이 박스를 받았다. 선물 박스는 너무 크지도 않았고 너무 무겁지도 않아서 무엇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포장을 열자 안에 네모난 작은 쿠션이 있었고 그 쿠션에는 예쁜 팔찌가 둘려 있었다. 이 팔찌는 화려하게 장식된 팔찌가 아닌, 심플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팔찌였다.팔찌의 무늬도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았다. 작은 검은 다이아가 팔찌에 박혀있었는데 부드러운 빛을 내뿜으며 우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하지율은 그대로 숨이 멎었다.이 팔찌는 또 ‘영원’이라고도 불린다.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 muses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그리고 muses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해서 값이 하늘을 찔렀다.전에 하지율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정기석과 친구과 함께 밥을 먹다가 유소린과 이 팔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유소린은 하지율이 이
주용화가 떠난 후, 하지율은 홀로 돌의자에 앉아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았다.솔직히 얘기하면 이곳의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조금은 낭만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그래서 홀로 있어도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하지율은 돌로 만든 테이블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이곳의 고즈넉함과 청아함이 하지율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최근의 하지율은 정말 바쁘고 피곤했다.하지율은 테이블에 엎드린 채 조금 잠에 들었다.찬 바람이 불자 하지율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20분이 지나있었다.이곳에서 연회장까지는 너무 멀지 않았다. 갔다 오는데 그저 10분 정도 걸릴 것이다.‘설마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그 생각에 하지율은 핸드폰을 들고 화야의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율은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하지율은 신발을 벗고 직접 가보기로 했다.이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화야라고 생각한 하지율이 고개를 돌렸다.“화야 씨...”하지만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하지율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기석 씨? 기석 씨가 어떻게 여기에...”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이따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서는 범상치 않은 우아함이 흘러넘쳤다.뚜렷한 이목구비에서는 단정함이 드러났고 반짝이는 눈은 마치 유리구슬 같았다.달빛이 정기석을 비추며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정기석이 천천히 하지율한테로 걸어왔다.“금방 비행기에서 내렸어요. 작업실에 찾아가려서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작업실에 없을 줄은 몰랐어요. 유소린 씨한테 물어보니까 교류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여기로 찾아온 거예요.”하지율은 정말 오랜만에 정기석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니 꽤 반갑고 놀라웠다.정기석은 부러진 하이힐을 보면서 눈썹을 까딱였다.“신발이 부러졌네요?”하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화야 씨가 신발을 가지러 갔어요.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안 오길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가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