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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1 03:50:55

아침 햇빛이 거실 창을 타고 주방까지 길게 들어왔다.

강수는 먼저 일어나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실 진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우유를 넉넉히 넣은 사라의 바닐라 라테.

시럽을 넣으려던 순간, 뒤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렸다.

강수가 돌아보기도 전에 허리에 두 팔이 감겼다.

등에 작고 따뜻한 몸이 폭 붙었다.

헝클어진 긴 머리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사라였다.

“깼어?”

“응…….”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 사라가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

강수의 손이 멈췄다.

“또?”

“응.”

“뭐가 좋은데.”

사라가 졸음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빠 냄새.”

강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몸을 돌리자 허리를 안고 있던 사라도 함께 딸려왔다.

강수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라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좋은 아침.”

“응.”

그러곤 허리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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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외전 7

    아침부터 르베르는 시끄러웠다. 정확히는 차건 혼자 시끄러웠다. “엄마!” “왜.” “아빠가 내 공룡 숨겼어!” 주방에서 계란을 뒤집던 사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빠가 왜 네 공룡을 숨겨.” “내가 안 치웠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강수가 눈도 들지 않고 말했다. “안 숨겼어.” 건이가 아빠 앞에 섰다. “없잖아.” “장난감 통.” “없어.” “밑에.” 건이가 장난감 통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있다!” 사라가 어이없는 얼굴로 강수를 봤다. “오빠.” “왜.” “저걸 왜 숨겼다고 생각한 거야?” 강수가 그제야 아들을 한번 봤다. “어제 치우라고 했으니까.” 건이가 공룡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아빠가 숨긴 줄 알았어.” “아니야.” “미안.” 사과는 빨랐다. 그리고 바로 다음 말이 이어졌다. “아빠, 티라노 해.” “싫어.” “해.” “안 해.” 건이는 잠깐 생각했다. “그럼 엄마 해.” 사라가 뒤집개를 든 채 눈을 크게 떴다. “왜 또 나야?” “엄마는 해주잖아.” 맞는 말이었다. 사라가 뒤집개를 내려놓고 두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었다. “크아아앙!” 건이가 비명을 지르며 식탁 주변을 뛰었다.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차건. 뛰지 마.” “티라노 온다!” “넘어져.” “아빠도 도망가!” “안 가.” 사라가 방향을 틀어 강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럼 아빠부터 잡아먹는다!” 강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라가 그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크아앙.” “…….” “무서워해야지.” “안 무서워.” 건이가 달려와 강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아빠 잡혔어!” 강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양팔을 움직였다. 한쪽에는 사라. 다른 쪽에는 건. 둘이 동시에 들렸다. “아!” “우와!” 건이는 신났고 사라는 강수의 어깨를 잡았다. “차강수! 나 내려!” “잡아먹는다며.” “그거랑 이건 다르지!” 강수는 두 사람을 그대로 소파까지 옮겼다

  • 불온한 정착   외전 6

    5년 만이었다. 김서희는 한참 동안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 누를 때마다 짧은 전자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렸다. 마지막 숫자를 누르자 익숙한 잠금 해제음이 들렸다. 문이 열렸다. 서희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서 있었다. 강수와 살았던 청담동 펜트하우스. 이혼할 때 강수가 자신에게 남겨두고 간 집이었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에도 사람을 두어 꾸준히 관리했다. 청소도, 환기도, 시설 관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했다. 거실도. 소파도. 긴 식탁도. 그대로였다. 서희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구두 소리가 넓은 집 안에 작게 울렸다. 침실 문을 여는 순간에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강수의 옷이 있었다. 한쪽 드레스룸을 채우고 있는 셔츠와 재킷, 넥타이. 그가 쓰던 시계 보관함도 그대로였다. 강수는 이혼하던 날 거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필요한 건 이미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서희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버리지 못했다. 5년 동안. 옷 한 벌조차. 서희가 검은 셔츠 소매를 손끝으로 만졌다. “……여전하네.” 집이 여전한 건지. 자신이 여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여러 나라를 돌았다. 한곳에 오래 있기도 했고, 아무 계획 없이 다른 도시로 떠나기도 했다. 왜 사라가 그렇게 떠돌았는지 알고 싶었다. 왜 떠나면서도 결국 돌아올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는 여전히 어려웠다. 차강수. 5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이름만큼은 완전히 과거가 되지 않았다. 서희는 드레스룸 문을 천천히 닫았다. 강수를 찾아온 건 아니었다. 만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떠났던 곳으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그 시각 CH건설 회장실. 강수는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 마흔둘이 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며 얼굴선은 더 짙어졌고,

  • 불온한 정착   외전5

    회장실에는 정민과 덕배가 앉아 있었다. 업무 이야기는 이미 끝난 뒤였다. 정민이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강수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강수가 내려다봤다. “뭐야.” “청첩장입니다.” “결혼해?” “네.” 덕배가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왜 그렇게 놀라요.” “9년을 만나길래 그냥 평생 연애만 하는 줄 알았지.” 정민이 피식 웃었다. “형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덕배의 얼굴이 바로 썩었다. 첫째 네 살. 둘째 두 살. 거기에 며칠 전 태어난 세쌍둥이까지. 졸지에 다섯 아이의 아빠가 된 덕배의 얼굴에는 요즘 피로가 떠날 날이 없었다. “야, 결혼하지 마.” “왜요.” “하면 애 생겨.” 정민이 웃었다. “그건 형님이 많이 낳은 거고.” “너도 낳아봐. 세쌍둥이 한 번에 나오면 인생관 바뀐다.” “축하한다면서요.” “축하는 하지. 근데 너도 여섯 낳아라.” “왜 갑자기 여섯이에요.” “나보다 하나 더.” “싫습니다.” “의리 없네.” 강수는 두 사람의 쓸데없는 대화를 무시한 채 청첩장을 한번 펼쳐봤다.

  • 불온한 정착   외전4

    아침부터 집이 조용했다.강수는 출근했고 건이는 어린이집에 갔다.혼자 남은 사라는 거실 바닥에 캐리어를 활짝 펼쳐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두 달이 거의 다 되어갔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세계 와인 축제가 코앞이었다.“이거 가져가고…….”얇은 원피스를 캐리어 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아닌데. 이것도 입을 것 같은데.”옷은 이미 산더미였다.강수가 보면 분명 한마디 할 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부족하면 현지에서 사면 되고, 많으면 강수가 들어줄 것도 아니었다.사라는 휴대전화를 집어 친구들과 만든 단체 채팅방을 확인했다.항공권.숙소.이동 일정.가장 중요한 와이너리 예약까지.완벽했다.그런데 캘린더를 넘기던 손가락이 문득 멈췄다.“……어?”사라는 화면을 조금 가까이 당겼다.이번 달 생리 예정일.한 번 더 날짜를 세었다.그리고 지난달을 확인했다.“잠깐만.”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가 다시 돌아왔다.눈썹이 천천히 모였다.예정일이 지났다.그것도 며칠 정도가 아니었다.“내가 기록을 안 했나?”혼잣말을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그럴 수도 있었다.여행 준비에 건이 어린이집 행사까지 겹쳐 정신없던 날이 많았다.그런데 이상했다.가슴이 묘하게 묵직했던 것도.며칠 전부터 유난히 졸렸던 것도.무엇보다 아침마다 속이 미묘하게 울렁거렸다.사라의 시선이 천천히 제 배로 내려갔다.“설마.”한 번 경험해본 몸이었다.그것도 두 번이나.아무리 성격이 덤벙거려도 이 감각까지 낯설 수는 없었다.사라는 벌떡 일어났다.욕실 수납장 깊숙한 곳에 혹시 몰라 사두었던 테스트기가 있었다.몇 분 뒤.사라는 변기 뚜껑 위에 앉아 테스트기를 내려다봤다.선명한 두 줄.“…….”눈을 한번 깜빡였다.다시 봤다.여전히 두 줄이었다.“미친.”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사라는 그대로 휴대전화를 들었다.강수에게 전화하려다가 멈췄다.아직 테스트기 하나뿐이었다.확인부터 해야 했다.“병원.”사라는 곧장 옷을 갈아입었다.산부인과에서 초

  • 불온한 정착   외전 3

    안방 문이 닫히기도 전이었다.강수가 사라를 끌어당겼다.사라도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입술이 다시 맞붙었다.거실에서 나눴던 키스보다 훨씬 깊고 거칠었다. 와인 향이 아직 서로의 입안에 남아 있었다. 사라가 숨을 쉬려고 잠깐 고개를 틀면 강수는 그 틈마저 오래 내주지 않았다.“하…… 오빠.”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강수의 손이 사라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았다.“왜.”“오늘 왜 이래.”대답은 없었다.대신 다시 입술이 내려왔다.사라가 웃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침대 가장자리에 다리가 닿았다.강수가 사라를 내려놓자 매트리스가 깊게 꺼졌다. 곧 커다란 몸이 따라 기울었고 사라의 손이 강수의 셔츠를 움켜쥐었다.“잠깐.”강수가 멈췄다.“왜.”사라는 숨을 몰아쉬면서 그를 올려다봤다.“나 와인 더 마실걸.”“충분히 마셨어.”“아까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강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사라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뭐야. 왜 웃어?”“아무것도.”“수상한데.”“늦었어.”“뭐가?”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입술이 다시 겹쳐졌다.사라의 질문은 금세 끊겼다.짙어진 호흡 사이로 옷자락이 흐트러졌고, 침대가 작게 삐걱거렸다. 사라가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웃다가 다시 입술을 찾았다.몇 년을 함께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눈이 마주치는 순간.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

  • 불온한 정착   외전 2

    출근한 뒤에도 강수의 머릿속에는 아침에 사라가 한 말이 남아 있었다.두 달 뒤 친구들과 세계 와인 축제를 간다.그건 상관없었다.가라고 했다.결혼하기 전부터 그랬듯 사라는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갔고, 강수는 더 이상 그걸 붙잡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돌아온다는 걸 아니까.문제는 그 뒤에 붙은 말이었다.두 달 동안 건들지 마.임신하면 와인을 못 마시니까.회의실 상석에 앉은 강수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한 장 넘겼다.“계속해.”보고하던 임원이 바로 다음 내용을 이어갔다.강수는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생각했다.두 달 동안 부부관계를 안 한다고?굳이?콘돔을 쓰면 된다고 사라는 말했다.강수의 손끝이 멈췄다.잠깐의 정적.그리고 입꼬리가 아주 느리게 올라갔다.씨익.회의실이 조용해졌다.보고하던 임원의 목소리마저 순간 흔들렸다.강수가 웃었다.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 웃었다.평소 그의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임원들의 등이 서늘해졌다.뭔가 마음에 든 게 아니라 누군가 끝장날 때 나오는 표정처럼 보였다.“왜 멈춰.”“아, 아닙니다. 회장님.”“계속해.”강수의 얼굴에서는 이미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회의가 끝난 뒤 강수는 정민을 불렀다.“와인 구해.”“와인이요?”“맛있는 걸로.”정민이 눈을 깜빡였다.강수가 와인을 직접 찾는 일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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