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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1 03:52:10

사라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왜 대답을 못 해.”

강수는 앞을 바라본 채 맞잡은 손만 조금 고쳐 잡았다.

“했어.”

“뭘?”

“상상.”

이번에는 사라가 조용해졌다.

놀리려고 던진 말인데 너무 쉽게 인정해버렸다.

“진짜?”

“어.”

“나 웨딩드레스 입은 거?”

“그것도.”

“또?”

“내 옆에 서 있는 거.”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강수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거운 의미를 얹어 사라를 압박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잠깐 떠올랐고, 떠올랐으니 그렇다고 말한 얼굴이었다.

사라는 슬쩍 앞을 봤다.

마침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뭐가.”

“결혼식. 생각해본 적 없어.”

“알아.”

“근데 왜 물어.”

“궁금해서.”

사라가 픽 웃었다.

“나 따라 하네.”

“너도 나한테 물었잖아.”

“나는 결혼해본 사람한테 물어본 거고.”

“나는 안 해본 사람한테 물어보는 거고.”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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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229화

    사라는 잠깐 생각했다.“응.”대답은 짧았다.그러다 정확한 주수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9주인가?”휴대전화를 귀에서 조금 떼고 옆에 선 강수를 올려다봤다.“오빠. 뜬금이 9주지?”강수의 눈이 사라에게 내려왔다.“어.”“9주래.”사라는 다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서희야?”-……뜬금이?“응.”-그게 뭐야.“아기 태명이야.”서희의 손끝이 떨렸다.태명까지 있었다.임신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자신과 달리 두 사람에게는 이미 아이를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9주.서희는 그 숫자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9주 전에도 자신은 강수의 아내였다.그보다 훨씬 전부터 두 사람은 만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머리로 알고 있던 관계와 아이의 존재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언제 알았어?”“병원에서.”-그건 알아. 임신한 거 언제 알았냐고.“얼마 안 됐어. 생리 안 해서 검사해봤는데 두 줄 나와서 병원 갔어.”사라는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그때 강수 오빠도 같이 갔어?“응.”서희가 눈을 감았다.“오늘도?”“응. 오빠는 계속 같이 가.”너무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그래서 더 아팠다.특별한 날 한두 번 따라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처럼 들렸다.서희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말할 상황 아니었잖아.”-그날 우리 몇 시간이나 얘기했어.“응.”-내가 너 어디 아프냐고도 물었잖아.“응.”-술 마시냐고도 물었고.사라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대답 안 했잖아.”-그게 대답이었어?“아니.”사라는 차분하게 말했다.“그때는 말하고 싶지 않았어.”서희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왜?“오빠가 자기가 말한다고 했고.”사라는 잠깐 강수를 봤다.“나도 그날 네가 우리 관계 알자마자 찾아온 건데 임신 얘기까지 바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그럼 언제

  • 불온한 정착   228화

    강수의 걸음이 멈췄다.주차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조금 앞에서 걷던 사라는 그가 따라오지 않자 돌아봤다. 강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전화기 너머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서희는 그 침묵만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아니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 사람이다.“맞아?”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향했다.사라는 가방끈을 잡은 채 눈으로 물었다.왜?강수는 짧게 대답했다.“어.”서희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었다.손에서 힘이 빠져 휴대전화가 미끄러질 뻔했다. 겨우 고쳐 잡았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맞다.사라가 임신했다.그것도 강수의 아이를.“……몇 개월인데?”“아직 초기야.”“언제 알았어?”강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언제 알았냐고.”“얼마 안 됐어.”“그래서 그날 술 마시냐고 물었을 때…….”말끝이 흐려졌다.그제야 모든 게 확실해졌다.사라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도, 강수가 다리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곧바로 움직였던 것도, 두 사람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일이 있다는 것도.서희는 헛웃음을 흘렸다.“이거였구나.”강수의 눈이 가라앉았다.“그날 당신이 있다고 했던 거.”“어.”“나한테 말 안 한 게 임신이었어?”“내가 말하려고 했어.”“언제?”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서희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언제 말하려고 했는데?”“정리되면.”“뭐가 정리되면?”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이혼? 아니면 내가 당신이랑 사라 관계를 이해하면?”“서희야.”“나 이해 못 해.”서희는 단호하게 잘랐다.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라가 했던 말도, 강수가 했던 말도 머리로는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그런데 그 사이 아이까지 있었다.“나한테는 집이 왜 중요하냐고 물었어. 내가 지키고 싶은 게 집인지, 결혼인지, 당신인지 묻더라.”서희가 울면서 웃었다.“근데 둘은 이미 아이까지 만들었네

  • 불온한 정착   227화

    전화기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어? 민사라?”동창이 기억을 더듬듯 이름을 한번 되뇌었다.“어…… 그러네.”서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기다렸다.“맞아. 민사라!”손끝이 차갑게 식었다.“대학 때 몇 번 봤잖아. 너랑 같이 있을 때. 머리가 길어서 바로 생각을 못 했어.”서희는 눈을 감았다.역시 사라였다.다른 여자일 가능성조차 사라졌다.“둘이…… 확실히 산부인과에서 나온 거야?”“응. 나도 거기서 진료받고 나오다가 본 거니까.”“같이?”“같이 나왔어.”동창은 그제야 서희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잠시 말을 멈췄다.“근데 서희야, 무슨 일이야? 사라가 어디 아픈 거야?”서희는 대답하지 못했다.산부인과라고 해서 반드시 임신인 건 아니었다.검진을 받을 수도 있었다.몸이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왜 강수가 같이 갔을까.그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일주일 전 르베르에서 봤던 모습이 다시 선명해졌다.사라가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자마자 움직였던 강수.앉히고.종아리를 살피고.조금만 움직여도 시선이 따라붙었다.술을 마시느냐고 물었을 때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며칠 뒤 준호의 예비 신부와 통화했을 때도 준호는 사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자신의 질문에 애매하게 답했다.있어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요.그 말까지 머릿속에서 이어졌다.서희가 입술을 깨물었다.“사라가 뭐 들고 있지 않았어?”“들고 있었는데 자세히는 못 봤어.”“종이 같은 거?”“글쎄. 멀어서.”동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작은 사진 같은 걸 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서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초음파 사진.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한번 떠오른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서희야.”“응.”“너 진짜 괜찮아?”“……응.”“근데 왜 자꾸 물어? 사라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서희는 입을 다물었다.직접.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사라의 집에 앉아 있었다.그런데 사라는 아무 말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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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가 흘렀다.그동안 사라는 의사가 시킨 대로 비교적 얌전히 지냈다.야근도 하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오래 서 있는 일은 피했다. 처방받은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물론 스스로 챙긴 날보다 강수가 식탁 위에 물과 함께 꺼내놓은 걸 먹은 날이 더 많았다.오늘도 정기검진을 위해 두 사람은 함께 산부인과에 들렀다.초음파 화면 안의 작은 생명은 지난주보다 또 조금 달라져 있었다.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진료실을 채우자 사라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뜬금이 잘 있죠?”“네. 심장도 잘 뛰고 있어요.”의사는 화면을 조금 더 살핀 뒤 지난번 보였던 유산기도 많이 안정됐다고 설명했다.강수가 바로 물었다.“이제 괜찮습니까.”“현재는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초기니까 무리하지 않는 건 계속 지켜주시고요.”“네.”사라가 옆에서 강수를 힐끗 봤다.자기가 진료받는데 대답은 늘 강수가 더 잘했다.“그럼 저 이제 평소처럼 다녀도 돼요?”“일상생활은 괜찮아요. 다만 피곤하면 쉬시고 무리한 활동은 피해주시고요.”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진료를 마치고 나온 뒤 강수는 처방전과 초음파 사진을 챙겼다. 사라가 손을 내밀었다.“사진 줘.”강수가 건넸다.사라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오빠.”“왜.”“또 컸어.”“어.”“뜬금이 나 닮았나?”“저걸 보고 알아?”“느낌이 있잖아.”“없어.”사라가 입술을 삐죽였다.“오빠 안 닮았으면 좋겠다.”강수가 내려다봤다.“왜.”“성격 무서울 것 같아.”“민사라.”사라가 웃으며 먼저 병원 출입문을 빠져나갔다.강수는 곧바로 뒤따라 나왔다. 사라가 초음파 사진을 가방에 넣느라 멈추자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안쪽으로 옮겼다.“앞 보고 해.”“잠깐만.”“차에서 해.”“알았어.”사라는 가방을 닫고 강수 옆에 붙어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여자는 처음에는 강수를 알

  • 불온한 정착   225화

    준호는 맞은편의 사라를 한번 바라봤다.사라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말해라, 말하지 마라 하는 눈치조차 없었다. 턱을 괴고 앉아 그저 준호가 알아서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준호가 입을 열었다.“아뇨. 없는 것 같아요.”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있어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요.”사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준호가 사라를 여행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신나면 시끄럽게 떠들고 별것 아닌 이야기는 끝도 없이 늘어놓으면서, 정작 자기 속에 깊숙이 들어간 일은 먼저 꺼내지 않았다.-그래요?“예.”-준호 씨한테도요?준호가 피식 웃었다.“사라 원래 그렇잖아요.”서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준호는 괜히 말을 보태지 않았다. 사라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말할 수 없었고, 어젯밤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아는 척할 일도 아니었다.잠시 후 서희가 말했다.-알겠어요. 괜히 물어봤네요.“아닙니다.”-결혼식 때 봬요.“예.”전화가 다시 예비 신부에게 넘어갔다.그녀는 서희에게 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 뒤 통화를 끝냈다.휴대전화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준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야.”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왜?”“너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해야 되냐.”“내가 뭐 했는데.”“옆에 네 남자친구 앉아 있고 전화기 너머에는 그 남자 와이프가 있는데 안 긴장하게 생겼냐?”예비 신부가 준호의 팔을 툭 쳤다.“목소리 낮춰.”“우리밖에 없잖아.”“그래도.”사라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웃었다.“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지.”“너는 그게 돼?”“응.”“대단하다, 진짜.”사라는 어깨를 으쓱했다.강수는 말없이 사라 앞에 놓인 접시를 한번 내려다봤다.“다 먹었어?”“응.”“가자.”“벌써?”“피곤하잖아.”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 안 피곤한데?”“아침부터 졸았어.”준호가 바로 끼어들었다.“회사에서 또 잤냐?”사라의 표정이 굳었다.강수의

  • 불온한 정착   224화

    사라는 예비 신부의 난처한 얼굴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턱으로 가리켰다.“전화받으세요~.”“지금요?”“네.”사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물잔을 들었다.“저희랑 있다고 이야기 안 하면 되니까.”예비 신부가 잠깐 망설였다.준호도 맞은편에 앉은 사라를 봤다.“괜찮겠어?”“뭐가?”“서희 전화잖아.”“그러니까 받으라고.”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나랑 오빠 여기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잖아.”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 위에 놓였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예비 신부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라는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준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전화기 너머로 서희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지금 통화 괜찮아?“응. 괜찮아.”-청첩장 받았어. 고마워.“벌써 봤어?”-응. 아까 확인했어.예비 신부의 시선이 순간 테이블 위 청첩장으로 향했다.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남은 음식을 뒤적였다.“결혼식 올 거지?”-응. 간다고 했잖아.“그냥 다시 확인하려고.”-갈 거야.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예비 신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서희야.”-응?“너 목소리 왜 그래?”잠깐 정적이 흘렀다.-그냥 좀 피곤해서.“어디 아파?”-아니야. 잠을 잘 못 잤어.사라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아주 짧았다.곧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음식을 집었다.강수는 그 움직임을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비 신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아니.대답이 늦었다.“진짜?”-응. 그냥 잠이 안 왔어.“밥은 먹었어?”이번에는 더 긴 침묵이 흘렀다.사라는 천천히 씹던 것을 삼켰다.-아직.“지금 몇 신데 아직도 안 먹었어.”-입맛이 없어.“그래도 뭐라도 먹어. 그러다 쓰러져.”-알았어.예비 신부는 서희가 신경 쓰이는지 몇 마디를 더 했다. 죽이라도 시켜 먹으라고 하고, 너무 힘들면 연락하라고 했다.사라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강수의 얼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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