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것

딸의 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By:  루루원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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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안고 싶고 너무나 좋아하지만 안지 못하고 혹여나 돌려달라고 할까 봐 조용히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사람. 같이 있으면 혜란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 류성재. 딸이 지나쳐 버린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딸이 연을 끊어버린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딸이 더는 연을 이어가지 않기로 한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 모른척하고 외면했던 딸의 눈빛이 엄마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류성재를 다시 원하는 딸의 눈빛이 엄마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신소희의 엄마이자 한 사람의 여자인 도혜란. 도혜란은 망설이고 있다. 자신의 딸이 원하는 류성재를 꺼내어 내어줄지, 마음속 더 깊은 곳으로 숨길지를 망설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딸의 것이었던 류성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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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딸의 것.

도혜란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 신소희.

혜란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라난 소희는 받았던 사랑과 관심 그 이상을 엄마에게 다시 사랑으로 되갚는 딸이다.

엄마가 내려준 사랑 가득한 보살핌으로 다시 혜란을 살피고, 혜란이 내려준 사랑 가득한 관심으로 다시 엄마에게 관심을 갖는 딸이다.

혜란과 소희, 엄마와 딸, 두 사람은 서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으며 부모 자식이자, 동반자 격의 존재로 나아갔다.

몹시 친한, 나이 많은 여자와 나이 적은 여자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은 친구보다도, 형제자매보다도 가까이 지내며 삶의 제법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했다.

새로운 정보를, 맛있는 음식을, 어울리는 화장품을,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예쁜 옷을 서로 공유했다.

새로운 정보에 즐겁게 수다 떨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어울리는 화장품을 추천하고,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선물했다. 새로운 계절 오고 갈 때마다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었었던 몇 벌의 옷들은 서로 주고받았다.

유행에 민감한 소희의 옷들이 혜란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넘겨진 소희의 옷들이 혜란의 옷장을 채우고 채웠다.

소희의 흔적이고 손길이 묻어있음에, 마음에 들지 않고 입지 않을 옷일지라도 혜란은 소중히 보관했다.

소희의 옷으로 채워지기만 하던 혜란의 옷장을 소희가 열어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시 돌아온 유행에, 넘겼던 옷들을 다시 꺼내보고 예쁘다며 소희가 다시 챙겨가는 그런 경우가 있다.

혜란은 소희가 돌려달라고 하면 다시 돌려줬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도, 좋아하는 색깔의 옷도, 좋아하는 질감의 옷도,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의 옷도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말없이 돌려줬다.

신소희의 엄마, 도혜란의 마음에 들었던 옷은 아무런 미련 없이 돌려줬다. 자신이 갖는 기쁨보다 딸의 얼굴에 그려지는 예쁜 미소가 더 값지기에 돌려줬다.

한 사람의 여자, 도혜란의 마음에 들었던 옷은 돌려주지 못했다. 나이에 맞지 않고 연출하기 힘든 스타일일지라도 돌려주지 못했다. 신소희의 엄마 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인 도혜란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몇 가지 옷들은 돌려주지 못했다.

몇 안 되는 그런 것들이 옷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입어보면 스스로가 너무나 예뻐 보이고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옷들이 옷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 입고 싶지만, 눈에 띄면 돌려달라고 할까 봐 숨긴 것들이 옷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옷들도 언젠가 찾아와 몰래 옷장을 열어본 딸에게 내어주곤 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렇게 내어줬다.

어느 날.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혜란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그것이 다시 나갈 생각도 없이 무겁게 마음속으로 자리 잡았다.

너무나 안고 싶고 너무나 좋아하지만 안지 못하고 혹여나 돌려달라고 할까 봐 조용히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사람.

같이 있으면 혜란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

류성재.

딸이 지나쳐 버린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딸이 연을 끊어버린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딸이 더는 연을 이어가지 않기로 한 인연이 엄마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

모른척하고 외면했던 딸의 눈빛이 엄마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류성재를 다시 원하는 딸의 눈빛이 엄마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신소희의 엄마이자 한 사람의 여자인 도혜란.

도혜란은 망설이고 있다.

자신의 딸이 원하는 류성재를

꺼내어 내어줄지, 마음속 더 깊은 곳으로 숨길지를 망설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도혜란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 딸의 것에 관한 이야기다.

딸의 것이었던 류성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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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딸의 것.도혜란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 신소희.혜란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라난 소희는 받았던 사랑과 관심 그 이상을 엄마에게 다시 사랑으로 되갚는 딸이다.엄마가 내려준 사랑 가득한 보살핌으로 다시 혜란을 살피고, 혜란이 내려준 사랑 가득한 관심으로 다시 엄마에게 관심을 갖는 딸이다.혜란과 소희, 엄마와 딸, 두 사람은 서로 사랑과 관심을 주고받으며 부모 자식이자, 동반자 격의 존재로 나아갔다.몹시 친한, 나이 많은 여자와 나이 적은 여자 같기도 했다.두 사람은 친구보다도, 형제자매보다도 가까이 지내며 삶의 제법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했다.새로운 정보를, 맛있는 음식을, 어울리는 화장품을,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예쁜 옷을 서로 공유했다.새로운 정보에 즐겁게 수다 떨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어울리는 화장품을 추천하고,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선물했다. 새로운 계절 오고 갈 때마다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었었던 몇 벌의 옷들은 서로 주고받았다.유행에 민감한 소희의 옷들이 혜란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그렇게 넘겨진 소희의 옷들이 혜란의 옷장을 채우고 채웠다.소희의 흔적이고 손길이 묻어있음에, 마음에 들지 않고 입지 않을 옷일지라도 혜란은 소중히 보관했다.소희의 옷으로 채워지기만 하던 혜란의 옷장을 소희가 열어보는 경우가 가끔 있다.다시 돌아온 유행에, 넘겼던 옷들을 다시 꺼내보고 예쁘다며 소희가 다시 챙겨가는 그런 경우가 있다.혜란은 소희가 돌려달라고 하면 다시 돌려줬다.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도, 좋아하는 색깔의 옷도, 좋아하는 질감의 옷도,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의 옷도 다시 돌려달라고 하면 말없이 돌려줬다.신소희의 엄마, 도혜란의 마음에 들었던 옷은 아무런 미련 없이 돌려줬다. 자신이 갖는 기쁨보다 딸의 얼굴에 그려지는 예쁜 미소가 더 값지기에 돌려줬다.한 사람의 여자, 도혜란의 마음에 들었던 옷은 돌려주지 못했다. 나이에 맞지 않고 연출하기 힘든 스타일일지라도 돌려주지 못했다. 신소희의 엄마 이기 이전에,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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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지난주에 잡았던 데이트 약속을 위해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정돈하던 그때 문자메시지 하나를 받았다.[성재 오빠. 나 오늘 몸이 좀 무겁네. 머리도 아프고... 다음에 보자. 오빠 미안해.]지난주에 잡았던 데이트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자는 내 여자 친구 신소희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미뤄진 데이트 약속이 아쉬우면서도 아프다는 소희의 소식에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데이트 복장으로 죽 전문점을 찾았다.신소희.소희와 나는 대학교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만난 지 4년 차인 커플이다.내가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한 그해 봄에 같은 학년으로 만났던, 2살 어린 소희에게 첫눈에 반해 인연으로 맺어졌다.같이 학교를 다니고,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힘들었던 취업 준비생 기간을 보내고, 너무나 다행으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취업에 성공했다. 4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름의 인생 역사를 함께한 커플이다.소희와 나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취업에 성공하기 전까지 무척이나 붙어 지냈다. 여느 커플들처럼 종종 다투기도 했지만, 웃음 가득한 대화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채운 시간이 더 많았기에 서로에게 행복을 느끼며 인연을 이어갔다. 금전적 여유가 부족했던 학생 시절과 취업 준비생 시절을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통해 행복을 느끼며 보냈다.취업에 성공하고 같은 지역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먼 지역에 위치하게 된 소희와 나는 함께 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사랑에 있어서 거리는 장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소원해진 지금의 관계를 설명할 방법이 서로에게 애정이 식었다는 말밖에 없기에, 거리 때문에 서로 조금은 멀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만난 지 7년 차. 서로 다른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 커플인 서소희와 나, 류성재는 지금 권태기를 겪고 있었다.권태기라고 말하고 넘어가고 싶었다.권태기라고 말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행복했던 그 시절 그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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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아픈 소희가 걱정되어 방문한 그녀의 자취방에서 그녀의 어머니, 도혜란씨를 마주했다.어깨까지 내려오다가 목으로 살짝 감기는 단발머리.단정하고 단아하게 뻗은 눈썹.쌍꺼풀을 지닌 채 그윽하게 깊이 들어간 옆으로 길고 커다란 눈.탄탄하고 시원하게 뻗은 코.촉촉하게 아주 살짝 얇은 입술.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따라 올라가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살 없이 마른 얼굴임을 느낄 수 있는 날렵한 턱선과 주름 없는 광대.아름다운 얼굴에 고혹적이며 섹시한 느낌을 결정지어버리는 중안부가 긴 얼굴형.이목구비 사이사이를 가르는 주름이 없었더라면 중년임을 유추하기 상당히 어려웠을 정도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주름마저도 소희의 어머니에겐 세월의 흔적인 동시에 성숙한 느낌을 완성해 주는 또 하나의 이목구비였다. 애인의 어머니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얼굴이기에, 소희의 눈을 피해서, 그 아름다운 얼굴을 칭하는 존함을 조심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도혜란.신소희의 어머니, 도혜란씨가 아픈 신소희와 함께 병원에 있지 않고 아무도 없어야 하는 801호에서 내게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의 집에 몰래 숨어지내는 부랑자가 아니기에 걱정을 많이 내려놓고는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택배기사 같지 않은 복장과 어색한 듯한 미소를 짓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시던 도혜란씨가, 나보다는 늦게, 나를 알아봤다.“성재... 맞지? 성재 맞구나. 어쩐 일이야? 소희가 고기 갖고 오라고 했구나? 놀러 간 곳에서 사 먹으면 되지. 뭘 또 갖고 오라고 잘생긴 애인을 이렇게 부려 먹는지 몰라. 정말...”나를 향해 생글 웃으시며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혜란씨가 내게 한 말들 속에서 몇 가지만 파악할 수 있었다.소희는 아프지 않다.아프지 않은 소희는 놀러 갔다.지난주에 나와의 데이트를 약속했던 소희가 내게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또는 누군가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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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소희의 이야기 중에 소희한테서 연락이 오자, 놀라고 당황한 도혜란씨가 젖은 손으로 전화를 받으려다 핸드폰을 놓쳤다. 놓친 핸드폰을 잡으려던 젖은 손가락이 스피커폰 버튼을 눌렸고, 그렇게 나는 소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신소희와 함께한 4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처음 만났던 어느 한 강의실, 사랑을 고백했던 늦은 밤거리, 졸업을 축하했던 학교 정문, 취업 준비생의 고통을 나눴던 독서실, 서로의 취직을 축하하던 술자리, 끌어안고 누워서 미래를 그렸던 침대 그리고 어딘가에서 즐겁고 놀고 있을 너의 모습과 이별에 슬퍼하는 내 모습까지 4년이라는 우리의 역사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까만 화면 위로 몇 개의 물방울을 올려둔 도혜란씨의 핸드폰을,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도혜란씨의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나와의 이별을 마음먹은 소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조만간에 정리할 사이라는 말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조만간이라는 기간이 얼마큼의 시간인지 묻고 싶었다.길지 않을 조만간이라는 기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내가 뭔가를 한다면 이별을 막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이별을 막는다면 우린 예전처럼 다시 웃고 사랑하며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이별을 마음먹은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정말로 나와 이별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다.소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지만, 친구들과 어딘가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소희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이곳에는 아무런 반응 없는 핸드폰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살피며 젖은 손을 조용히 닦는 도혜란씨 그리고 신소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류성재만 있었다.애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았음에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비참했다. 내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당사자들의 입이 아닌, 제3자의 핸드폰을 통해서 그것도 본의 아니게 스피커폰을 통해서 전해 듣는 게 너무나 비참했다. 이별을 마음먹은 애인의 거짓말에 속아 걱정하는 마음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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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조금은 진정된 듯한 내 기척을 느낀 도혜란씨가 내 얼굴을 바라보다, 가느다랗고 따뜻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쥐고는 부드러운 엄지로 내 눈물을 닦아줬다.“성재야. 아줌마가 소희를 그렇게 낳아서 미안해. 자리에 없는 못난 내 딸을 대신해서...”“이 가슴... 빌려줄게. 마음껏 안겨도 좋고, 안아봐도 좋아.”나를 향해 두 팔 벌리는 도혜란씨의 품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포근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내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나를 안아줬다는 도혜란씨의 고백에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부드럽고 따뜻한 포옹 덕분에 답답할 정도로 숨 막히게 잠기던 내 마음이 빠르게 다시 숨 쉴 수 있었다. 정말로 마음껏 안기고 안고 싶었지만, 고맙고 아름다운 도혜란씨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품에 안겨 두어 번의 깊은숨을 쉬고는 너무나도 아쉽고 그리울 그 품을 멀리했다.도혜란씨가 멀어지던 나를 가볍게 살짝 안고는 앞 뒷말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소희가 있어서 지난 4년, 행복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소희와의 마지막이 이렇게 되어서 오히려 제가 어머니께 많이 죄송합니다.”가볍게 안긴 품을 풀고는 도혜란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소중한 딸의 젊다 못해 어리다고 볼 수 있는 20대 초반의 4년이라는 시간을 묶어뒀음에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소희의 다음 사랑은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며 걸음을 돌렸다.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듯한 도혜란씨에게 인사를 남기고는 현관을 향해 걸었다.현관에 놓인 내 신발에 가까워질수록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도 진하게 느껴졌다. 서두르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내 몸과 마음이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느릿하게 걸어가던 내 걸음이 현관 앞에 섰다. 내 신발이 보이고 그 옆에 적당한 굽에 예쁘게 반짝이는 검은색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도혜란씨의 구두였다.앞굽에 금색 포인트가 들어간 검은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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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간단한 반찬 몇 개와 정말 딱 먹기 좋게 식은 전복죽이 나와 도혜란씨 사이에 차려졌다.몸과 마음은 하나라며 마음만 아픈 경우는 없다는 말과 함께 도혜란씨가 내 그릇으로 자신의 전복들을 골라내어 넘겼다. 나를 걱정하며 살피려는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거절을 전하려다 속으로 삼켰다. 나를 걱정하는 도혜란씨의 마음이 전복으로 내 그릇에 가득 쌓였다. 거절할 수 없었던 고마운 마음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숟가락을 들었다.간단하고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금은 느릿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느릿하고 천천히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빠르게 입속으로 떠넣고는 휴식을 취했을 시간이지만 지금은 안쪽에 들어간 재료까지 살필 정도로 천천히 먹었다. 도혜란씨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안겨있는 것도,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지만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그릇을 얼추 비워갈 때쯤 테이블 밑, 발가락에 뭔가 살짝 닿았다. 아마도 도혜란씨의 발가락일 그 뭔가를 모른척하며 가만히 닿아있었다. 내게 닿은 줄 모른 채, 작고 귀여운 리듬을 발가락으로 한참을 타던 도혜란씨가 시선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발가락에 전해지던 작고 귀여운 리듬이 멈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웃었다. 나를 보고 웃는 도혜란씨의 미소에 나도 미소 짓게 되었다.참으로 귀여웠다. 자신도 모르게 닿았던 발가락에 수줍은 미소로 눈웃음을 짓는 생긋한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좀 더 닿아있고 싶었던 내 마음이 전해 졌는지, 미소 짓는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는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발가락이 닿아있었다. 서로 이어져 있었다.---식사는 마쳤지만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짙은 아쉬움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식사가 끝난 자리를 정리하는 도혜란씨를 도왔다. 몇 개 안 되는 식기를 설거지하는 이 순간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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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러면 말이야. 성재야. 하루 정도만 비워놓을 수 있니?” “네!” 멍청한 내 자신을 탓하고 욕하던 그때, 도혜란씨의 작고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무슨 날, 무슨 목적인지도 듣지 않고 바로 대답해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대답해 버렸다.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른 채, 우연히 나를 만나고 어쩌다 보니 위로하게 된 도혜란씨처럼, 나 또한 날짜와 목적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고맙다며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짓는 도혜란씨와 서로의 핸드폰을 주고받았다. 류성재라는 이름과 함께 숫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연락처를 입력했다. 입력을 마치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틀린 것 하나 없었다.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그 자리에서 달력을 띄웠다. 두 번이나 되물어가며 날짜와 요일까지 확인했다. 무슨 일인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연차를 사용할 생각을 먼저 했다. 이대로 두 번 다시 못 볼 사이가 아니라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걸음으로 소희의 자취방을 나왔다. 어느샌가 도착해있는 고기 택배를 발견하고는 다시 한번 도혜란씨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벨을 누르고 헤어지자마자 다시 만난 도혜란씨에게 택배를 전했다. 소희의 택배를 보며 조금은 쓴 미소를 지었다.오늘 도혜란씨의 하루는 아무 일 없이 고기 택배를 무사히 받은 게 전부였던 것으로 서로 말을 맞췄다. --- --- 집에 돌아와 주차를 마치고, 무조건 모든 스케줄을 비워놓아야 할 그날을 확인하다가, 도혜란씨의 연락처가 궁금해졌다. 내 폰에 남긴 도혜란씨의 흔적이 무척이나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부디 ‘소희 어머니’ 같이 거리감이 가득 느껴지는 호칭으로 적어두지 않았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주소록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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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이별의 후유증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확실하게 겪고 털어냈다.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의 감정을 곱씹었다. 소희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했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오해로 싸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 이별의 순간까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그 기억들 속에서 후회와 반성을 했다. 너무나도 좋아했고 사랑했고 행복했으면서 마지막 모습을 이별로 만들어버린 내 행동과 선택에 후회했다. 그렇게나 행복했으면서 이어가지 못하고 이별로 끝나버린 내 사랑에 반성했다. 사랑과 이별을 통해서 좀 더 나은 내가 되었기를, 좀 더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 되었기를 바라며 후회와 반성을 했다.다음번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이별이 아니기를 바라며 마음속에서 소희를 완전히 덮었다.그렇게 며칠이 걸려 소희와 완전히 이별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다.씻고 편한 차림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했다. 여느 때와 별반 차이 없는 퇴근 후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많이 달랐다. 내일 있을 도혜란씨와의 약속에 긴장되고 설레기 시작했다. 입고 나갈 복장부터 만날 장소와 대화 주제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하루만 비워달라는 말만 들었을 뿐, 그 외 다른 것들은 도혜란씨로부터 들은 게 하나도 없었다. 작고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망설이다가 내게 부탁했기에 분명 뭔가 목적이 있어 보였다. 단순히 얼굴이나 보고 식사나 하는 그런 가까운 사이도 아니기에 더 긴장됐다.[우우우웅][우우우웅]요란스럽게 진동하는 핸드폰에 정말 깜짝 놀랐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는 더욱더 놀랐다. 통화 공포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갑자기 긴장되고 몸 어딘가가 뻣뻣해졌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잔뜩 느끼면서 진동이 끊기기 전에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통화가 연결되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이 최고로 긴장됐다.“어. 성재야. 소희 엄마야. 아... 혜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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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설정해 둔 알람 시각보다 5분 먼저 일찍 일어나는, 그 몇 번 없는 최상의 컨디션을 오늘 맞이했다.아주 조금 졸린 감이 있지만 설렘 가득한 상상을 하다가 늦게 잠들어서 잠이 부족할 뿐이지, 잠을 이상하게 잤다거나 컨디션이 떨어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간단하게 바나나를 두 개 챙겨 먹으며 출근용 정장이 아닌, 외출용 정장을 꺼냈다. 그녀가 특정 복장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차려입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 부탁받은 역할을 생각해 보면 정장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찬물 샤워를 하며 미라클 모닝 대신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기적적인 진전이 있기를 바라며 차가운 물로 말끔하게 샤워했다. 부탁받은 역할과 관계가 진짜로 그녀와 그렇게 이어지기를,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길 바라며 추위를 견뎠다.그녀의 부탁.나는 어떤 일인지 어떤 절차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협의이혼 의사 확인 기일’이라는 날에, 젊고 어린 애인 역할을 부탁받았다. 지금의 남편이 젊은 애인과 함께 법원에 온다면 홀로 남은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일 것 같다며, 젊고 어린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홀로 남겨진 쓸쓸한 여자이고 싶지 않다며 내게 애인 역할을 부탁한 것이었다.어제 통화로 부탁받으며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내일 하루뿐만이 아니라 좀 더 긴 기간 동안 그녀의 애인 역할을 하고 싶었다.단순히 자리만 채우는 역할만으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내일 하루만큼을 그녀가 절대로 초라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애인 역할을 넘어서 애인 자리에 앉아보고 싶었다.애인 역할이 아닌, 정말로 그녀의 애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법원 근처의 한 카페.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좀 더 일찍 도착했다. 이런저런 다른 이유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물어본다면 잘 보이고 싶어서 빨리 나왔고, 먼저 나와서 기다렸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서두르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조금 먼 거리까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이곳으로 걸어오기를, 카페의 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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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서로 만나기로 약속했던 카페를 지나치는 그녀를 서두르는 걸음으로 따라잡고는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힘든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은 횡설수설해 보이고 불안해 보였다. 그냥 그 카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될 이야기를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기에는 속이 부담스럽다는 둥 너무 자주 가는 카페라 메뉴가 지겹다는 둥 조용한 카페가 좋다는 둥 좀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읽을 수가 없었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그 카페를 반드시 지나쳐야 할, 반드시 피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처럼 보였다.약속 장소를 지나치고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정처 없이 걷던 그녀가 빨간불임에도 횡단보도에 발을 올렸다. 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옆에서 걷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그녀의 표정이 많이 불안해 보였다. 힘없이 풀 죽은 눈빛으로 어느 곳 하나 시선을 두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휴식이 필요함을 느꼈다. 정말로 잠시 쉬어야만 할 것 같았다. 주변에 몇몇 카페가 보였지만 권할 수가 없었다. 카페가 싫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마당에 다시 카페를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잠깐... 차로 돌아갈까요?”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왔던 길을 되돌아 내 차를 향해 걸었다.---지하 주차장.오전 시간이라 텅텅 비어 있는 주차장에 홀로 덩그러니 주차된 내 차의 뒷좌석 문을 열 때쯤 내 손에서 그녀의 손목이 빠져나갔다.“아까 카페 안에... 그 사람이 있어서 그랬어.”“이제는 내 사람도 아니고 이혼한 사이인데도 다른 여자랑 있는 모습이... 많이 속상하네.”색조 화장 없이 단아했던 아름다운 얼굴에 붉은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빨갛게 물드는 코끝과 불안정하게 거칠어지는 호흡, 조금씩 구겨지는 표정에서 이별의 감정에 심란했던 내가 떠올랐다.천천히 고이는 속상함 가득한 눈물을 숨기려 몸을 돌리는 그녀에게서 이별에 눈물 흘렸던 내가 떠올랐다.아주 희미하게 옅은 울음이 들려올 때쯤, 두 팔을 벌린 내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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