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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1 23:39:06

마지막 서류에 도장이 찍혔다.

탁.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강수에게 몸을 기울였다.

쪽.

입술을 찍고 떨어지려던 순간이었다.

강수의 손이 허리를 잡았다.

“어?”

몸이 그대로 들렸다.

사라가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책상 위에 엉덩이가 닿았다.

뒤에 놓여 있던 서류가 밀려났다.

“야.”

강수가 사라의 무릎 사이로 들어왔다.

사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도장 찍으라고 했지. 누가 책상에서 하자고 했어?”

대답은 없었다.

강수는 사라의 턱을 들어 그대로 입술을 막았다.

“읍…….”

장난처럼 반복하던 뽀뽀와는 달랐다.

사라가 뒤로 밀리자 강수의 팔이 허리를 받쳤다.

책상 위 서류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사라가 입술을 떼며 숨을 삼켰다.

“오빠.”

“왜.”

“회사야.”

“알아.”

짧은 대답과 함께 다시 입술이 내려왔다.

사라의 손이 강수의 목 뒤를 감쌌다.

밀어내기는커녕 가까이 끌어당겼다.

짧았던 입맞춤이 길어졌다.

숨이 뒤섞였다.

고요했던 회장실에는 간간이 책상 위 서류가 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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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168화

    “서희한테…… 언제 말할 거야?”사라의 질문에 강수의 손이 멈췄다.잠깐의 침묵.“아직은 아니야.”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아직?”“어.”강수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임신 사실을 안 지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다.사라조차 이제야 자기 배 안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서희에게 말하는 순간 모든 게 움직인다.더는 되돌릴 수도, 잠시 멈춰 세울 수도 없었다.강수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다만 순서가 필요했다.사라와 아이가 먼저였다.병원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사라의 몸 상태.그리고 자신이 정리해야 할 것들까지.그걸 사라에게 하나하나 늘어놓지는 않았다.“내가 알아서 해.”사라가 가만히 바라봤다.예전 같으면 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알아서 해.혼자 결정하고 혼자 처리하겠다는 차강수 특유의 말.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회피하는 얼굴이 아니었다.이미 뭔가를 정리하기 시작한 얼굴이었다.사라는 더 묻지 않았다.“알았어.”강수의 시선이 올라왔다.“오빠가 알아서 해.”그리고 딸기를 하나 더 입에 넣었다.우물우물 씹던 사라가 문득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평평했다.여전히 신기했다.“근데 오빠.”“왜.”“얘 계속 애라고 부를 거야?”강수가 사라의 배를 봤다.“그럼.”“태명 지어야지.”“태명?”사라의 눈이 동그래졌다.“설마 몰라?”강수는 말이 없었다.정말 몰랐던 모양이다.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뱃속에 있을 때 부르는 이름 있잖아. 태명.”강수가 다시 배를 내려다봤다.“지어.”“같이 지어야지. 오빠 애 아니야?”“맞아.”사라는 의자를 끌어 강수 책상 옆에 바짝 붙었다.일은 이미 뒷전이었다.“뭐가 좋지?”강수는 서류를 봤다.“생각해.”“생각하고 있잖아.”“…….”“튼튼이?”강수의 미간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너무 흔해.”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탈락시켰다.“복덩이?”이번에도 혼자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너무 옛날 사람 같아.”강수는 아무

  • 불온한 정착   167화

    사라는 딸기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그러면서도 강수를 계속 흘겨봤다.커피 머신까지 없애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오빠.”대답이 없다.“차강수.”그제야 서류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왜.”“나 임신한 거지 환자 아니거든?”“알아.”“근데 왜 다 못 하게 해.”“뭘.”사라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구두 못 신게 하지. 커피 못 마시게 하지. 간식은 하루 종일 먹이지.”잠깐 생각하다 덧붙였다.“아침에 계단 내려갈 때 내 허리도 잡았지.”강수는 다시 서류를 넘겼다.“미끄러워.”“안 미끄러웠어.”“미끄러워.”사라가 기가 막혀 웃었다.저렇게 우기면 끝이었다.그때 책상 위 강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수가 화면을 확인했다.정민이었다.“어.”잠깐 듣는다.“보내.”끝.사라가 딸기를 씹으며 물었다.“뭘 보내?”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후 사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정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파일 하나를 열어본 사라의 눈이 점점 커졌다.산부인과 진료 일정.정기 검진 시기부터 받아야 할 검사까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다.“……뭐야, 이거.”강수는 태연했다.“병원.”“그건 나도 알아.”사라가 화면을 위아래로 내렸다.“이걸 왜 정민 오빠가 보내?”“내가 시켰어.”사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내 병원인데?”“어.”“내가 알아서 다닐 수 있는데?”“알아.”또 안다는 소리다.사라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근데 왜 오빠가 다 해?”이번에는 강수의 시선이 올라왔다.“같이 갈 거니까.”사라의 입이 다물렸다.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매번?”“어.”“오빠 바쁘잖아.”“빼면 돼.”“회의 있으면?”“옮겨.”“출장이면?”강수의 대답이 잠깐 늦었다.“안 잡아.”사라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차강수 일정 하나 움직이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를 리 없었다.해외 사업부터 CH건설, 그 뒤에 있는 사뇌파 일까지.그런 남자가 산부인과 진료 날짜에 맞춰 자

  • 불온한 정착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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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165화

    “내가 말해.”강수의 대답은 거기까지였다.사라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그리고 기다렸다.뭔가 더 말할 줄 알았다.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도 강수는 별말이 없었다.심장 소리를 들으면서도.병원에서 나오면서도.집에 돌아와 자신이 아이를 못 지울 것 같다고 했을 때도.표정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원래 그런 남자인 걸 안다.좋아한다는 말보다 찾아오는 게 먼저였고,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어느새 옆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말보다 행동.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사라였다.그런데 오늘은.조금쯤 달라도 되지 않나.사라의 시선이 강수의 얼굴을 살폈다.“오빠.”“왜.”“아이…… 싫어?”강수의 눈썹이 움직였다.“뭐?”“싫냐고.”“아니.”또 짧았다.사라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그런데 왜 그래?”“뭘.”그 말에 괜히 더 서운해졌다.뭘이라니.자기 배 안에 둘의 아이가 생겼는데.병원에서 심장까지 듣고 왔는데.이 남자는 평소랑 똑같았다.사라는 몰랐다.강수의 머릿속에서는 병원에서부터 단 한 순간도 생각이 멈춘 적이 없었다.여덟 주.사라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기쁨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서희에게 말해야 했다.더는 두 집을 오가며 아무 일 없는 남편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사라를 지금처럼 숨어 있게 둘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이.강수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그 사실이 무엇보다 무거웠다.사라 한 사람을 잃을 뻔했을 때도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바다에 뛰어들어 축 늘어진 작은 몸을 끌어안았던 감각은 아직도 선명했다.그런 사라의 몸 안에 지금은 더 작은 생명이 있었다.기뻤다.생각했던 것보다 훨씬.초음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만큼.그 작은 심장 소리를 기억해버릴 만큼.그래서 오히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좋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사라와 아이를 어디에 둘지.어떻게 지킬지.서희에게 언제, 어떻게 모든 것을

  • 불온한 정착   164화

    집에 도착해서도 사라는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강수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따라오지 않았다.손은 여전히 배 위에 있었다.평평했다.아무리 내려다봐도 달라진 건 없었다.그런데 그 안에 심장이 하나 더 뛰고 있었다.여덟 주.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사라야.”사라가 고개를 들었다.강수가 거실에서 보고 있었다.“왜 거기 있어.”“그냥.”그제야 신발을 벗었다.소파까지 걸어가 털썩 앉았다.평소 같으면 다리를 올리고 드러누웠을 텐데 오늘은 얌전히 앉아 있었다.강수가 물을 가져왔다.뚜껑까지 열어 건넸다.사라는 몇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강수는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사라 옆에 앉았다.가까웠다.그런데도 사라는 그에게 기대지 않았다.한참 동안 자기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강수도 재촉하지 않았다.먼저 입을 연 건 사라였다.“오빠.”“어.”“우리 애.”말하고 잠깐 멈췄다.우리 애.병원에서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입 밖으로 직접 꺼내놓으니 이상하게 가슴이 울렸다.사라가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지워야겠지……?”강수의 움직임이 멎었다.사라는 그를 보지 않았다.“아무래도 그러는 게 맞겠지?”대답이 없었다.“오빠는 결혼했고.”손가락이 더욱 세게 꼬였다.“서희도 있고.”그제야 처음으로 현실이 또렷하게 입 밖으로 나왔다.사라는 웃으려 했다.늘 하던 것처럼 별것 아닌 일로 만들어버리려고.그런데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우리 상황이 좀 그렇잖아.”강수의 시선이 사라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니까…….”사라가 배를 한번 내려다봤다.“지우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강수의 손이 움직였다.꼬여 있던 사라의 손가락을 잡아 풀었다.사라가 그제야 그를 봤다.“왜.”강수가 짧게 물었다.“뭐가?”“네가 원하는 게 그거냐.”사라가 대답하지 못했다.“…….”“지우고 싶어?”또 침묵했다.이번에는 더 길었다.사라가 시선을 피했다.“그렇게 물으면 모르겠어.

  • 불온한 정착   163화

    병원 밖으로 나왔는데도 귓가에 그 소리가 남아 있었다.빠르고 작은 심장 소리.사라는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든 채 한참 내려다봤다.검은 화면 안의 작은 형체.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저게 자기 배 안에 있었다.벌써 여덟 주나.강수가 차 문을 열었다.사라는 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강수의 시선이 내려왔다.“왜.”사라는 초음파 사진을 들었다.“이게 진짜 우리 애래.”“어.”“심장도 뛰어.”“들었어.”“엄청 빨리 뛰던데.”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는 또 사진을 내려다봤다.신기했다.그런데 신기한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현실이 밀려왔다.강수.자기.그리고 서희.사라의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이 사라졌다.강수가 그 변화를 보고 있었다.“오빠.”“왜.”사라가 한참 입술만 달싹였다.“우리 이제 어떻게 해?”처음으로 그 질문을 했다.둘이 처음 선을 넘었을 때도 하지 않았다.연애를 시작했을 때도.강수의 물건이 하나둘 자기 집을 채우고, 어느 순간 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됐을 때조차 묻지 않았다.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사라는 원래 그런 여자였다.좋으면 만났다.싫으면 돌아섰다.내일의 마음을 오늘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이제는 달랐다.둘 사이에 하나가 더 생겼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의 배로 내려갔다.아직 평평했다.겉으로는 어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강수가 손을 뻗었다.큰 손바닥이 배 위에 조심스럽게 닿았다.사라가 그 손을 내려다봤다.“나도 모르겠어.”처음이었다.사라가 그렇게 말하는 건.“좋은 건지,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어.”강수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아까 심장 소리 들을 때는 되게 이상했어.”사라가 작게 웃었다.“진짜 내 안에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잠깐 침묵했다.“근데 나오니까 갑자기 생각할 게 너무 많아.”강수의 턱이 굳었다.사라가 그를 올려다봤다.그리고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서희도 있잖아.”바람이 지나갔다.강수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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