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반역?”양녕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지금 반역이라고 하셨습니까? 전하?”“그렇습니다.”이도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어느새 한손에 다시 칼 손잡이를 붙잡은 채였다.“무료한 인생 속에서 여인 하나를 만나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어찌 그 꽃을 꺾으려하느냐, 다분히 말초적으로 반박하시는데 제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형님. 그따위 망발은.”“뭐, 뭐라…….”“형님이 폐세자 되신 것은, 형님의 성정이 포악하고 유희만 찾으며 백성보다 당신 한 몸을 더 중히 여기는 그 저열함 때문이오. 왕의 그릇이 아니었기에 폐위된 것이지 그 누구도 강제로 형님을 끌어내린 것이 아닙니다. 아바마마께서 형님을 폐위시킨 그날 밤에 얼마나 크게 통곡하셨는지, 형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어본 적 있소?”“…….”“그리고 어리는 사람의 형상을 한 붉은 용. 단신으로도 한 개 도(道)는 물론이고 일국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개념만 다른 역발산이오. 그런 어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저 운우지정(雲雨之情)에 허덕여 정인으로 남겨두었다고?”이도가 코웃음을 치며 양녕을 노려보았다.“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뻔히 다 알고 있는데. 나를 바보로 아시오, 형님? 형님께서 아무 저의 없이 그리 결정하셨다고 내가 믿기를 바라셨소? 아니, 형님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야심이 있소. 왕에 대한, 정점에 대한. 그러니 붉빛미르의 힘에 기대어 작품이나 하나 만들어보려 하신 것이겠지. 내 말이 틀리오?”이도가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투로 되물었다.그러나
천우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무슨 말씀이신지?”“어리가 완전히 넋이 나간 채로 돌아왔었습니다. 지난밤에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 해도 대답도 않고, 그저 마음 한구석이 아픈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달래도 보고, 캐 물어도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어리가 그렇게까지 실의에 잠긴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참으로.”“대군마마. 그것은…….”“어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양녕이 천우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따져 물었다.“대답해보시오. 물빛미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요?”“…….”“그리고 어리는 새벽녘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떠났소. 편지 하나만을 남겨둔 채 말입니다. 원래 드나듦이 자유로운 아이이기는 해도, 이번만큼은 뭔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단 말입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양녕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붉빛미르가 함께 있었다면 남녀가 쌍으로 불을 뿜는, 괴이한 모습을 볼 수 있을 터였다.여인을 잃은 남자……. 그 강렬한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형님.”천우가 아무 말 않고 있자, 이도가 가만히 양녕을 불렀다.“물빛미르는 물빛미르가 할 일을 하셨던 것뿐입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마시지요.”“…&hel
“형님.”“네. 전하.”“어리는. 붉빛미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이도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그렇게 지치고 외로운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양녕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리와 지금까지 정을 나누며 살아온 동안, 한 번도 우울해하거나 눈물지은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별일이었다고 했다.“반촌에 볼일이 있다기에 잘 다녀오라 보내고선 저는 그저 개천에서 낚시나 하고 있었지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비틀비틀 집으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헤진 채로 말입니다.”“놀라셨겠습니다.”“어떤 외간남자한테 겁탈이라도 당한 것인가 싶어 당장 죽여 버릴 요량으로 뛰쳐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는 나쁜 일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하긴 붉빛미르가 쉽게 해코지를 당할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요.”양녕이 천우를 흘깃거렸다.“붉빛미르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다면 분명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기량이 뛰어난 무사라거나, 기우사를 만나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만 있기에 꿀물 한 잔 타주면서 타일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좀 해달라고요.”“뭐라 했습니까, 그래서?”“일생의 숙적을 만났고,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해묵은 원한을 내려놓
“전하?”양녕이 크게 놀란 얼굴이 되어 이도를, 그리고 천우를 바라보았다.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빛마저 공포에 질려 흔들릴 정도였다.“붉빛미르라니요? 그게 무슨…….”“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형님께서 사모하시는 그 여인, 어리가 붉빛미르라면 형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전하! 외부인이 듣고 있습니다! 미르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면 아니되옵니다!”양녕이 목청을 높이며 천우를 실쭉한 눈으로 노려보았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광기(狂氣)가 서린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송구합니다. 전하.”갑자기 양녕이 성큼성큼 병풍 쪽으로 가더니, 그 뒤에 거치되어 있던 환도를 꺼내들었다.“국왕 앞에서 칼을 빼는 대역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르를 듣게 된 작자를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부디 이 불충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그리고 성급하게 칼을 빼는 양녕이었다.“형님!”이도가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소용없었다. 양녕의 칼날이 이미 공기를 갈랐다.“윽…….!”천우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그러자 물그릇에 담겨있던 식수가 순식간에 솟구쳐 천우의 앞을 감쌌다.단단하게 굳어진 물이 칼날을 붙잡아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틈에 천우는 턱을 갈라버릴 듯이 덮쳐드는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슈욱-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천우를 스치고 지나갔다.“가만있으세요! 형님!”이도 또한 급하게 일어서며 소리쳤다.여차하면 베어버릴 기세로 숨겨놓은 칼을 빼드는데, 그 소리가 사뭇 살벌했다.칼, 물, 그리고 왕의 명령.사랑채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춰버린 듯했다.“저, 전하……!”양녕이 칼을 떨어뜨리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놈에게 부디 극형을 내려주소서!”“당장 칼 치우시고, 형님께서 해치려했던 분께 사죄부터 하시지요.”“물론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양녕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방금 전…….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오래지않아 사랑채 안으로 김초시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쌀밥에 두부를 넣은 된장국, 간장에 졸인 쇠고기와 들기름을 넣어 무쳐낸 푸성귀 등 간소하면서도 맛좋은 것들이 모락모락 김을 뿜어댔다.“전하.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양녕이 숟가락을 들어 국과 밥을 한입씩 먹었다.먼저 기미(氣味)를 본 것인데,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국왕과 신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가려야 할 것이 있는 듯했다.먼저 음식을 맛본 양녕은 멀쩡했다.“맛이 좋습니다. 어서 드시지요.”양녕이 이도에게 권했다.“전하께서 특히 좋아하시는 간장 조림도 아낌없이 내었습니다.”“육질만 봐도 짭조름하게 맛있을 것 같습니다.”“간장이며 고기도 모두 좋은 것으로만 담근 것입니다. 자네도 어서 한술 뜨게.”양녕이 별안간 천우에게도 권하며 말했다.“시장할 터인데. 손님들이 먼저 숟갈을 떠야 나도 먹지.”“네. 그럼 외람되오나 먼저 입을 대겠습니다.”천우는 이도가 밥 한 숟갈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렇게 한동안, 세 사내는 조용히 식사를 했다.“전하.”양녕이 가만히 이도를 불렀다.“네. 형님.&rd
“제가 사람을 부르겠습니다.”천우가 문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전하께서는 조금 뒤로 물러나시어 거리를…….”“이리 오너라!”그러나 그게 무어냐 하는 투로 문 쪽으로 외치는 이도였다.천우는 그런 이도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왜 그러십니까?”이도가 천우를 돌아보며 물었다.“무슨 문제라도?”“전하…….”“물빛께 아랫사람의 일을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안 그렇습니까?”이도가 피식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하여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마당인데 이렇게 장난까지 치는 여유로움이라니. 국왕이라는 자리는 역시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니었다.“뉘시오?”조금 있으니, 문 안쪽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틀림없는 김초시의 목소리였다.“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았는데, 누가…….”끼익- 대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김초시의 얼굴이 쑤욱 나타났다.그리고 이쪽을 바라본 김초시가 순간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대문을 양옆으로 열어제꼈다.“저, 저, 전하…….!&r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