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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2)

作者: 이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9 21:50:24

오래지않아 사랑채 안으로 김초시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쌀밥에 두부를 넣은 된장국, 간장에 졸인 쇠고기와 들기름을 넣어 무쳐낸 푸성귀 등 간소하면서도 맛좋은 것들이 모락모락 김을 뿜어댔다.

“전하.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

양녕이 숟가락을 들어 국과 밥을 한입씩 먹었다.

먼저 기미(氣味)를 본 것인데,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국왕과 신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가려야 할 것이 있는 듯했다.

먼저 음식을 맛본 양녕은 멀쩡했다.

“맛이 좋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양녕이 이도에게 권했다.

“전하께서 특히 좋아하시는 간장 조림도 아낌없이 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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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군왕과 대군 (2)

    오래지않아 사랑채 안으로 김초시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쌀밥에 두부를 넣은 된장국, 간장에 졸인 쇠고기와 들기름을 넣어 무쳐낸 푸성귀 등 간소하면서도 맛좋은 것들이 모락모락 김을 뿜어댔다.“전하. 제가 먼저 맛을 보겠습니다.”양녕이 숟가락을 들어 국과 밥을 한입씩 먹었다.먼저 기미(氣味)를 본 것인데,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해도 국왕과 신하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가려야 할 것이 있는 듯했다.먼저 음식을 맛본 양녕은 멀쩡했다.“맛이 좋습니다. 어서 드시지요.”양녕이 이도에게 권했다.“전하께서 특히 좋아하시는 간장 조림도 아낌없이 내었습니다.”“육질만 봐도 짭조름하게 맛있을 것 같습니다.”“간장이며 고기도 모두 좋은 것으로만 담근 것입니다. 자네도 어서 한술 뜨게.”양녕이 별안간 천우에게도 권하며 말했다.“시장할 터인데. 손님들이 먼저 숟갈을 떠야 나도 먹지.”“네. 그럼 외람되오나 먼저 입을 대겠습니다.”천우는 이도가 밥 한 숟갈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렇게 한동안, 세 사내는 조용히 식사를 했다.“전하.”양녕이 가만히 이도를 불렀다.“네. 형님.&rd

  • 붉빛미르   군왕과 대군 (1)

    “제가 사람을 부르겠습니다.”천우가 문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전하께서는 조금 뒤로 물러나시어 거리를…….”“이리 오너라!”그러나 그게 무어냐 하는 투로 문 쪽으로 외치는 이도였다.천우는 그런 이도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왜 그러십니까?”이도가 천우를 돌아보며 물었다.“무슨 문제라도?”“전하…….”“물빛께 아랫사람의 일을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안 그렇습니까?”이도가 피식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하여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마당인데 이렇게 장난까지 치는 여유로움이라니. 국왕이라는 자리는 역시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니었다.“뉘시오?”조금 있으니, 문 안쪽에서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틀림없는 김초시의 목소리였다.“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았는데, 누가…….”끼익- 대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김초시의 얼굴이 쑤욱 나타났다.그리고 이쪽을 바라본 김초시가 순간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대문을 양옆으로 열어제꼈다.“저, 저, 전하…….!&rdq

  • 붉빛미르   대책 (4)

    말이 이어졌다.“조선의 천문이 연구되어 더 이상 하늘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다. 붉빛미르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의 주도권이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천문 연구를 기를 쓰고 막으려 드는 것이고.”“그렇기에 학사들도 해친 것이겠지요.”“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다. 홀로 전 조선 땅을 불태울 작정이었다면 애초부터 형님 옆에서 정인 행세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터. 그것도 이 나라 대군의 옆에서 말입니다. 붉빛미르는 영악하고 영리한 짐승입니다. 하필이면 왕실의 옆에 빌붙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이도가 자신을 가리켰다.“그렇다면 더더욱 왕실의 정점인 나에게는 섣불리 달려들지 않겠지요.” * * *“전하.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하십니다.”천우가 헐레벌떡 옆을 지키며 앞서가는 이도를 말렸다.그러거나 말거나, 이도는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알고 있습니다.”이도가 중얼거렸다.그리고 천우를 흘깃거리며 싱긋- 웃는데, 어쩐지 모르게

  • 붉빛미르   대책 (3)

    이도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고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로 가버렸다.그리고 뒤에 남은 천우와 장영실이 함께 주변에 널린 기계며 천문 자료 따위를 어색하게 뒤적이고 있을 때, 색다른 모습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저, 전하.”장영실이 황망해하며 말했다.“전혀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어떠하냐?”이도가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로 양소매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선비의 모습이었다.용포를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로 갈아입은 후에 높은 갓을 빈틈없이 눌러쓴 것이 저명한 학사를 방불케 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학문적 성취를 충실히 이루고 이리저리 명산(名山)과 산천초목을 거니며 시조를 읊을 듯한……. 그런 고명한 선비 같았다.“내 사복(私服)모습은 영실이 너도 처음 보질 않느냐?”“그러하옵니다. 전하.”“가끔 궐 밖으로 잠행을 나갈 때 입는 것이다. 한동안 잠행 나갈 일이 없어 한쪽에 놔두기만 했었는데, 오늘로서야 겨우 먼지를 털게 되었구나.”이도가 허리춤을 여미며 중얼거렸다.그 바람에 도포 옷자락 밑으로 감춰둔 환도의 칼끝이 살짝 비쳐들었다.“전하.”천우가 그걸 보고 말했다“무장을 갖추셨습니다.”“형님을 뵈러 가는데 혹시 또 모르니 말입니다.”“전하. 설마 지금 당장 대군마마께 가실 생각이십니까?”“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이도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겸사겸사 붉빛미르도 옆에 있으면 얼굴이라도 볼까 합니다.”“전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천우가 펄쩍 뛰며 말렸다.“저 또한 물빛미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장영실도 옆에서 거들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였다.“전하. 상대는 어떤 패악을 저지를지 모르는 맹수이옵니다. 실로 가벼이 여길 상대가 아니며, 전하의 옥체를 상하게 할 위험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아니. 괜찮다.”이도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물론 나도 붉빛과 대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쪽도 쓸 만 한

  • 붉빛미르   대책 (2)

    “자.”이도가 학사들 목록을 다시 보라는 투로 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여기 있는 영실이를 포함하여 모두 9명입니다. 이 중에 이여립을 빼면 이제 8명이 조선 역법을 연구 중에 있는 셈이고요. 붉빛미르가 이들을 모두 없애겠다고 위협했으니 우리는 이들을 지켜내야 합니다.”“자료가 거의 수집되었으니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지요?”“그렇습니다. 마패를 지급하였으니 역(驛)을 이용해 징검다리처럼 지나오고 있을 겁니다. 학사들의 행적을 추적하려면 역과 그 주위의 고을 따위를 뒤지는 것이 우선이겠지요.”“붉빛미르의 권능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반촌에서 싸우다 순식간에 산중턱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축지법이나 경공술에도 능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용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고요.”“아마 그럴 것입니다.”이도가 맞장구를 쳤다.“아바마마께서 이르시길, 미르들은 불과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눈 깜짝할 새에 움직일 수 있다 하셨습니다. 물빛께서도 정말 가능하십니까? 그게?”“저는 아직……. 그렇게 움직여 본 적은 없사옵니다.”“붉빛보다 얼마나 더 신속히 기동하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이도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옆머리를 긁적였다.“그래서 지운 권사를 먼저 보낸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8도에서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니.”“아, 그렇지 않아도 안 보

  • 붉빛미르   대책 (1)

    “모두 아홉 명.”이도가 종이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조선 8도의 천문 자료 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들 목록이라 했다.“하나같이 명민하고 끈질긴 자들입니다. 영실과 제가 직접 시험하고 선발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모두가 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겁니다.”“이여립 학사가 실종되었다고 하셨지요? 그 배후에 붉빛미르가 있다 하셨고.”장영실이 심각한 얼굴로 천우를 보며 물었다.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반촌에서 숙식하던 관리 하나를 처리했다고 붉빛미르 본인이 직접 말하였습니다.”“이여립……. 가장 어린 축에 속했지만 그만큼 또 재기발랄한 사람이었는데.”장영실이 종이를 들춰보며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창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방안을 가득 메웠다.서늘한 감촉에 압도당한 세 사람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무릎 아래만 바라보았다.온갖 천문 사료와 모형 따위가 어지러이 놓여있는 곳이었다.이도가 역법 연구를 위해 궁궐 내에 따로 마련한 공간으로, 조정신료들은 물론이고 금군에 심지어 중전조차 모르는 비밀 연구실이라고 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도에게 선택받은 이들로, 예산 또한 내탕금(內帑金)으로 충당하여 바깥에서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른다고 하였다.“그러니 더더욱 천문 연구를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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