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혜진은 소의의 발을 보고 문턱에서 멈췄다.“다치셨네요.”“조금 베었습니다. 앉으세요.”대리시 보호방에는 해가 짧게 들었다. 소의는 발을 낮은 걸상 위에 올리고 있었고, 고환이 맞은편에서 약포 기록을 정리했다. 혜진은 고환이 있는 것을 보고도 돌아가지 않았다.“제가 안 한 말이 있습니다.”붓 긁는 소리가 멎었다.소의는 걸상에서 발을 내리려다 그대로 두었다. 혜진이 상 앞에 앉는 동안 기다렸다.“명산이 걸상을 들었어요.”고환이 새 종이를 폈다.“곽진이 부인을 때렸을 때 말입니까?”“그 뒤에도요.”혜진의 손이 소매를 비틀었다. 소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넘어져 있었어요. 그 사람이. 그런데 명산이 한 번 더…….”밖에서 포졸이 이름을 불렀다. 혜진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제가 말렸어야 했어요.”고환은 걸상이 닿은 곳과 당시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물었다. 혜진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명산의 등 뒤에 있어서 정확히 보이지 않은 것도 있었다.소의는 쓰인 말을 읽어주었다. 혜진이 한 곳을 고쳤다.“넘어졌다는 건 맞는데, 제가 넘어뜨린 게 아니에요. 아이에게 가려다가 걸렸어요.”고환이 고쳤다.혜진은 이름을 적고 나서야 울었다. 소리가 자꾸 목에서 걸렸다.“그분이 죽을 줄은 몰랐어요.”소의도 손을 떨었다. 이 진술이 나오면 명산뿐 아니라 자신이 폭행을 감추려고 돈을 냈다는 의심도 더 커질 수 있었다. 고환이 종이를 걷으려 할 때 그녀는 마지막 줄을 다시 확인했다.혜진이 소의를 봤다.“저 때문에 낭자까지…….”“지금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내겠습니다.”혜진은 눈을 감았다. 소의는 물그릇을 가까이 놓고 더 말하지 않았다.*명산과의 대면은 고환이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혜진이 들어서자 명산은 먼저 의자를 당겼다. 손이 묶여 있지 않았는데도 움직임이 굼떴다. 그는 아내가 앉기 전까지 서 있었다.고환이 진술을 읽었다.명산은 중간에 눈을 감았다. 끝까지 듣고 나서는 아내를 보지 않았다.“왜 거짓말했소.”
복례는 만복의 발치에 신을 놓았다가 다시 치웠다.“어디 가려고?”“뒷간.”“그럼 왜 겉옷까지 입어?”만복은 입었던 소매를 벗었다. 어깨의 상처가 당겨 얼굴이 일그러졌다. 복례는 도와주지 않다가 옷이 붕대에 걸리자 결국 다가가 풀어주었다.의원에서 빌린 작은 방은 약 냄새가 짙었다. 화상 입은 자리를 갈아 싸고 나면 만복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오늘은 그 틈에도 문밖을 보고 있었다.“석규를 찾는다며.”복례가 손을 멈췄다.“알아?”“짐꾼들 삯 떼먹는 놈. 지난봄에 내 사람 셋을 빌려 갔어.”“왜 이제 말해?”“곽진만 찾는 줄 알았지.”복례는 약그릇을 내려놓았다. 손에 묻은 약을 천에 닦고 노탁을 불렀다.만복은 석규가 쓰던 수운창 숙소를 말했다. 불붙은 수레를 몰기 전에도 방앗간 앞에서 그를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뒤쫓아온 자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그럼 불 놓은 놈인지는 모르는 거네.”복례가 물었다.만복이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노탁은 그 말까지 적었다. 만복이 자기도 나가겠다고 하자 붓을 접었다.“서 있지도 못하잖소.”복례는 발치에 치워둔 신을 방 밖으로 가져갔다.*초앵은 십이등루 계산칸에서 손님에게 받은 잔을 돌려놓았다.“그 수레꾼, 아직 배를 못 구했대요?”“네가 그런 걸 왜 물어.”“짐을 맡긴다면서 방까지 비워달랬잖아요. 언제 비워요?”손님은 술을 마시다 말고 초앵을 보았다. 현씨 집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에게 종종 방을 잡아주던 중개인이었다. 전날에도 석규가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가 위층에 올라와 값을 흥정했다.초앵은 그때 들은 배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다시 확인할 생각이었으나 손님이 먼저 잔을 탁 놓았다.“관가에서 왔니?”“아뇨.”“그럼 입 다물어.”그가 초앵의 손목을 잡았다. 초앵은 잔을 놓친 척 상 아래로 떨어뜨렸다.쨍그랑!계산을 하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초앵은 손목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손님이 뒤에서 소리쳤다.“저 여자 오늘부터 내 방에 들이지 마!”주루 주인이
판문은 사람의 어깨보다 낮았다.노탁이 먼저 몸을 숙였다. 문 아래 틈으로 쌀겨와 젖은 짚이 흘러나와 있었다. 안쪽에서는 그릇을 놓는 소리, 사내가 하품하는 소리가 들렸다.소의는 담에 등을 붙였다. 창고길을 지나가는 수레가 먼지를 일으켰다. 발목까지 흙이 내려앉았다.정문에서 경연의 목소리가 났다.“문 열어라. 안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겠다.”잠깐 조용해졌다.그러더니 안쪽에서 뛰는 발소리가 쿵쿵 가까워졌다. 노탁이 소의를 뒤로 밀었다. 판문이 벌컥 열리고 사내 하나가 여자의 팔을 끌고 나왔다.여자가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노탁이 사내의 손목을 붙들었다. 사내는 여자를 놓는 대신 더 세게 당겼다. 소의가 여자의 겨드랑이를 받쳤다.“이쪽으로요!”“놔!”사내가 발을 뻗었다. 노탁이 몸으로 막고 그를 문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뒤따른 포졸이 팔을 함께 붙잡았다.소의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화영약포에서 죽그릇을 들고 오던 약동의 누이였다.“동생은 약포에 있어요.”여자가 그 말을 듣고서야 소의의 팔을 붙잡았다.안에서 궤짝이 넘어졌다.쾅!판문으로 다른 사내가 달려왔다. 그는 노탁을 피해 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소의와 여자가 길을 막고 있었다.소의는 맞서지 않았다. 여자를 끌고 짚더미 안쪽으로 물러났다. 신 한 짝이 진흙에 박혀 벗겨졌다. 사내가 그 자리를 밟고 지나갔다.포졸이 뒤쫓았다. 소의는 신을 찾으려다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서 있지 못하고 있었다.“제 어깨 잡으세요.”두 사람이 창고 모퉁이를 돌 때 정문 쪽에서 싸움이 났다.경연은 달아나려는 사내를 수레와 담 사이에 몰아세웠다. 사내가 짧은 칼을 꺼냈다. 가까이 오던 짐꾼들이 욕을 하며 흩어졌다.“칼 버려.”사내는 뒤의 여자를 보고 방향을 바꿨다.경연이 먼저 다가갔다. 칼날을 피하며 그의 팔꿈치를 잡아 수레채 위로 눌렀다. 사내가 버티자 포졸이 다리를 걸었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수레꾼이 발로 멀리 찼다.경연은 결박을 확인한 뒤에야 돌아봤다.소의가 맨발로 서 있었
약포 주인은 소의가 낸 돈을 상 위에 놓았다.“남은 건 이것뿐이오. 돌려줬다고 적어주시오.”“돌려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안 받으면 내가 뭘 숨긴 것처럼 되잖소.”그는 전꾸러미를 소의 앞으로 밀었다. 소의는 손을 대지 않고 동행한 서리를 불렀다. 약값과 방값으로 쓴 몫을 주인이 말하고, 남은 돈을 서리가 따로 세었다.진료방은 비어 있었다. 침상은 그대로 두었고, 이불은 검시방으로 가져갔다. 약동이 뜰에서 물을 쏟았다. 빈 바가지를 드는 손이 덜덜 떨렸다.“제가 돈을 드린 날 기억합니까?”소의가 물었다.아이는 서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주인어른께 드렸지요?”“저한테도…… 주셨어요.”약포 주인이 돌아섰다.“네게 언제?”“방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소의의 손이 상 모서리를 짚었다. 약동은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누가 있었습니까?”“혼자요.”“누이가 죽을 가져왔잖아요. 이불에 쏟아서 같이…….”“몰라요.”“바깥 골목에서 쌀자루를 나르던 분도 보셨을 겁니다.”아이가 바가지를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줍지도 않았다.“모른다니까요!”약포 주인이 아이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소의가 그 앞에 손을 뻗었다.“잠깐만요.”아이의 볼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소의는 준비해온 종이를 내려놓았다.“누이는 어디 있습니까?”약동은 입술을 꽉 물었다.주인이 한숨을 쉬었다.“삯 받으러 나갔다 아직도 안 왔소. 동생 혼자 남겨놓고 무슨…….”“찾아보셨어요?”“쌀가게에서는 삯 준 적 없다더군. 그 여자가 다른 데서 일했는지는 나도 모르오.”소의는 서리에게 그 말부터 적어달라고 했다. 약동이 갑자기 그녀의 소매를 붙잡았다.“적지 마세요.”“누이 일을요?”“거기 안 갔어요. 그냥…… 그냥 다른 데 있어요.”소의는 아이의 손에서 제 소매를 빼지 않았다. 서리가 붓을 멈추었다.“제가 아까 너무 급하게 물었습니다.”약동은 대답하지 않았다.“누이를 찾는 데 필요한 말만 해
청묵재 앞에는 소의보다 먼저 사람들이 와 있었다.손님이 아니었다. 현씨 집에서 보았던 하인이 값표를 떼어 상 위에 올려놓고, 옆의 장정에게 서가를 가리켰다.“저것도 실어.”곡우가 서가 앞을 막았다.“손님 물건이에요!”“사람이 죽었는데 글 몇 장이 대수냐?”소의가 문턱을 넘었다.“누가 가져가라고 했습니까?”하인은 그녀 손의 출석 요구서를 보고 웃었다.“같이 가져가면 수고를 덜지 않소.”그가 완성 문서를 집었다. 소의가 반대쪽 끝을 눌렀다. 종이가 팽팽해졌다.“놓으세요. 찢어집니다.”“못 보여줄 내용이 있나 보군.”“수색 명을 보여주세요.”하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곡우가 달려들자 장정이 팔로 밀었다. 소의는 문서를 놓지 않은 채 옆으로 돌아 곡우를 받쳤다. 모서리 한 귀퉁이가 쭉 찢어졌다.문밖이 조용해졌다.경연이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인계할 물건을 확인하러 온 대리시 서리가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손 내려.”하인이 종이를 놓았다.경연은 찢어진 귀퉁이를 집어 상 위에 올렸다.“수색패가 있느냐.”“피해자 쪽에서 필요한 것을…….”“없으면 밖으로 나가.”장정 하나가 먼저 움직였다. 경연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곡우를 민 손을 포졸에게 확인시켰다. 하인이 현 낭중의 이름을 꺼내자 경연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그분이 손님 문서를 가져오라 시켰느냐?”하인은 입을 닫았다.소의는 상 위 문서를 한 장씩 나눴다. 혼서, 외상 약조, 아들에게 보내는 서찰이었다. 누구의 이름이 드러났는지 확인하는 동안 곡우가 앞문을 닫으려 했다.경연이 고개를 저었다.“사람들이 보는 데서 확인하겠소.”정식으로 가져갈 것은 화영약포에 지급한 비용과 소의가 직접 적은 출입 경위뿐이었다. 서리가 물목을 읽자 소의가 하나씩 내놓았다. 곡우는 문밖 손님에게 오늘은 글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언제 여는데?”“아직 몰라요.”“내일 내야 하는 건데.”곡우가 소의를 보았다. 소의는 손님의 은자를 꺼내 돌려주었다. 절반은 이미 쓴 종이값이었지
약동은 누이를 기다리다 부엌 문턱에서 잠들었다.해가 뜨기 전, 누군가 그의 발을 걷어찼다.“불 올려. 뜨거운 물 가져오라잖아.”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뜰 북쪽 진료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약포 주인은 문지방에 서서 안으로도 밖으로도 움직이지 못했다.침상 끝에서 흰 천이 내려왔다.약동은 물바가지를 놓쳤다.철벅.소리가 나자 주인이 돌아봤다.“밤에 무슨 일 있었느냐?”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 안쪽을 씹고 있었다. 주인이 다가오려는데 정문에서 사람 부르는 소리가 났다.소의는 아침 약값을 물으러 왔다가 빈 죽그릇 앞에 멈췄다.“곽진 씨는요?”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주인이 흰 천 쪽으로 턱을 움직였다. 소의는 그제야 침상 둘레의 발들이 모두 바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어제까지 죽을 더 달라던 사람이었다.그녀가 문틀을 짚었다.“의원은 오셨습니까?”“안에 계시오.”의원은 밤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살폈을 때의 상태와 지금 본 것을 구분해 말했으나, 방 안의 누구도 끝까지 듣지 않았다.“객점에서 맞은 게…….”“젊은 사람이 저렇게 가다니.”소의는 약동을 찾았다. 아이가 젖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가지 조각을 줍고 있었다.“다칩니다. 그대로 두세요.”아이의 손이 멈췄다. 소의를 올려다보는 눈이 붉었다.그때 정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저 여자가 돈을 냈습니다.”석규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골목 건너 짐수레 뒤에서 연경부 아전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소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피고발인 쪽에서 치료비를 대고 밤에도 사람을 보냈다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소.”아전이 소의 앞으로 왔다.“치료비를 내셨습니까?”“예.”“명산이 부탁했소?”“아닙니다. 제가 냈습니다.”“무엇을 요구했소?”소의는 잠깐 대답을 놓쳤다. 약포 주인이 끼어들었다.“요구는 무슨. 돈을 안 내면 내가 외상으로 달아야 하는데.”아전은 주인의 말도 적었다. 소의에게 이름과 거처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