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 화

서정원은 그대로 뒤돌아서자 최성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최성운이 그녀를 따라 나온 것임이 분명했다.

“누가 제가 집 가는 것마저 최성운 씨에게 보고를 올려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죠? 최성운 씨, 지금은 퇴근 시간이고 저희는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도 아닌데 제가 뭘 하던 제 자유죠.”

서정원은 최성운이 뜬금없이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한 대의 차량이 두 사람 앞에 멈춰 섰고 기사가 나와 두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서정원은 그 차가 최성운의 차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최성운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혼자 차 타는 건 위험합니다. 저랑 함께 가시죠. 괜히 혼자 탔다가 나중에 책임을 저희 가문에 따지지는 마시고요.”

서정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돈을 뜯어낼까 봐 걱정인가 본데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 가문의 돈은 어차피 제 성에도 안 차거든요.”

서정원이 그냥 가려고 하자 최성운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강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냥 타세요!”

서정원의 화가 난 눈빛을 본 최성운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전 당신과 3개월 동안 함께 지내기로 할아버지와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전 당신을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요.”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무슨 일이 생긴 후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이었기에 서정원과 함께 집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서정원은 자신의 손목을 확 빼내더니 이내 잔뜩 짜증 난 얼굴로 먼저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최씨 가문으로 오기 전에 3개월 동안 절대 최성운과 어떤 관계든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최성운은 성격이 더러울 뿐만 아니라 고집도 세고 막말하는 남자였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이런 사람을 사위로 눈여겨보신 거야!’

손윤서는 최성운이 나가는 모습에 따라 나왔다. 기둥 뒤에 숨어서 최성운과 서정원이 함께 같은 차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에 질투가 난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만약 최성운과 약혼을 하기로 한 사람이 그녀였다면 지금 최성운과 같은 차를 타게 된 사람은 필시 그녀였을 것이고 서정원이 끼어들 틈도 없었을 것이다!

손윤서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에 저랑 친구 하고 싶다고 하셨죠? 친구가 되어줄 테니 그럼 성의를 보여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은별은 최성운의 비서였고 비록 운 좋게 다른 파티에서 손윤서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들의 모임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손윤서가 먼저 걸어온 전화에 하은별은 황급히 승낙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손윤서 씨 제가 뭘 하면 되죠?”

“아주 간단해요. 서정원 씨가 하은별 씨가 있는 부서로 들어갔다면서요? 몰래 서정원 씨가 고생 좀 하게 신경 써주세요. 어때요, 어렵지 않죠?”

상대가 말이 없자 손윤서가 이어서 말했다.

“일이 잘 끝나게 되면 신상 명품백들을 마음껏 고르게 해드리죠.”

원래부터 살짝 고민하고 있던 하은별은 신상 명품백이라는 소리에 바로 받아들였다.

“역시 손윤서 씨가 손이 크시네요. 걱정하지 말고 이 일은 제게 맡기세요!”

“아주 자신 있나 보죠?”

“물론이죠. 서정원은 어차피 일개 제 부하 직원일뿐이잖아요. 최 대표님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거든요. 회사 직원들도 그녀를 꺼리니 그녀를 괴롭히는 건 아주 식은 죽 먹기라고요.”

최성운이 회사에서 서정원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하은별의 말에 손윤서는 순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잘만 해주신다면 하은별 씨에게도 많은 이익이 생길겁니다!”

...

최성운과 서정원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최성운은 고개를 돌려 처음부터 끝까지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서정원을 보았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시던데 언제부터 배운 겁니까?”

서정원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최성운이 먼저 말을 걸어 올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잘 쳤다고요? 배운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어이없어하는 최성운의 모습에 서정원은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손윤서 씨가 치는 걸 듣고 따라 한 건데, 어때요? 저 아주 대단하죠?”

최성운은 화를 억누르며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이지 당신 같은 여자와는 대화도 안 통하는군요.”

“그럼 대화하지 마시죠.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서정원도 고개를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