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끼이익- 쿵.성문이 열렸다.우리는 당당하게 입성했다.전주 백성들이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저게 그 호랑이 잡은 장수가 타는 수레래!""왜놈들도 저거 보고 오줌을 지렸다던데?"현무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쇳덩어리의 육중함이 백성들에게는 든든함으로, 관군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다.감영 앞마당.이미 수백 명의 관군이 창을 들고 도열해 있었다. 기선 제압용이겠지. 하지만 현무 세 대가 마당으로 들어오자, 그들의 기세는 순식간에 쭈그러들었다."주차해."내 명령에 현무들이 관아 건물 정면을 향해 멈춰 섰다. 포구가 정확히 감사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를 겨누고 있었다.나는 미숙이를 어깨에 걸치고 현무에서 뛰어내렸다."담양 의병장 김덕령! 감사 영감을 뵙습니다!"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대청마루 문이 열리고, 이광이 모습을 드러냈다.창백한 얼굴. 깡마른 체구.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마당을 가득 채운 철갑 전차들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자, 자네가 덕령인가?""예. 부르셔서 왔습니다.""오느라 수고했다. 헌데... 저 흉물스러운 쇳덩어리들은 무엇이냐?""흉물이라뇨. 왜놈들 때려잡은 일등 공신입니다. 영감님께 구경도 시켜드리고,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보여드리러 왔습니다.""오해?""네. 제가 이걸로 딴맘 품으면 큰일 나겠다, 뭐 그런 오해요."나는 빙긋 웃었다.말은 공손했지만, 속뜻은 '나 건드리면 이걸로 밀어버린다'였다.이광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그는 알았다. 저 전차들이 맘만 먹으면 여기 있는 관군들을 뚫고 자신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크, 크흠! 그럴 리가 있나. 자네의 충심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이광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내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그 뛰어난 무용을 높이 사서 관직을 내리고자 함일세.""관직요?""그렇네. 내 휘하의 조방장(助防將) 자리를 주겠네. 관군과 합류하여 내 명을 받들라."역시.예상대로다. 벼슬 하나
"장군님! 감사합니다! 익호장군 으뜸이오!"담양으로 돌아오는 길은 꽃길이었다.진짜 꽃을 뿌려주는 건 아니었지만,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의 환호는 그 어떤 꽃보다 화려했다.금산에서 700 의병을 구하고 왜군을 섬멸했다는 소식은 이미 바람을 타고 호남 전역으로 퍼졌다. 나는 더 이상 동네 힘센 형이 아니었다. 호남을 지키는 수호신, '익호장군(翼虎將軍)'이었다."어깨 펴라. 너희가 영웅이다."내가 말하자 흙투성이가 된 익호군 녀석들이 가슴을 쫙 폈다. 최가는 아예 코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봤냐? 내가 바로 그 익호군 조장 최가다!"객주에 도착하자 서백설이 달려 나왔다."왔어요? 다친 데는요?""멀쩡해. 밥이나 줘. 배고파 죽겠다.""하여간... 밥 타령은."서백설은 눈을 흘기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녀도 알 것이다. 내가 이기고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상단(주식회사 익호)의 가치도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는 것을.며칠간은 평화로웠다.참전했던 이들은 전투의 피로를 풀고, 영규 대사는 요양을, 망가진 무기들은 수리를 하고, 논공행상을 했다.조헌 영감님과 영규 대사는 담양에 며칠 머물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 두 사람은 비장한 얼굴로 내게 왔다."호남은 자네가 지키게. 나는 충청도로 가야겠네.""충청도요? 거긴 이미 왜놈들 천지 아닙니까?""그렇기에 가야지. 놈들이 청주성을 점거하고 충청도를 유린하고 있다네. 내 그곳을 탈환하고, 더 많은 의병을 모아 한양으로 올라갈 것일세."조헌의 눈빛은 확고했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나라의 허리를 끊고, 임금이 계신 곳으로 길을 뚫겠다는 우국지사의 결의였다.나는 옆에 서 있던 영규 대사를 바라보았다."스님도 가십니까?"영규 대사가 껄껄 웃으며 육중한 철장을 들어 올렸다."바늘 가는 데 실이 가야지 않겠나. 그리고 자네가 금산에서 구해준 이 목숨, 부처님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백성을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두 분
나는 땅을 박차고 놈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회전 회오리 슛... 이 아니라, 회전 방망이질.부웅- 퍽! 억!360도 회전하며 휘두른 미숙이에 놈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갑옷이 찌그러지고 뼈가 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꺾인 놈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괴물이다! 도망쳐!"놈들의 전의가 완전히 꺾였다.안코쿠지 에케이는 이미 상황이 글렀다는 걸 파악했는지, 본대를 이끌고 금산성 쪽으로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쫓지 마라! 성 안으로 들어가면 못 잡는다!"나는 흥분해서 쫓아가려는 익호군들을 말렸다.금산성은 견고하다. 공성 장비 없이 들이닥쳤다가는 위에서 쏘아대는 조총과 화살에 역관광 당하기 딱 좋다. 궁지에 몰린 쥐를 너무 몰아붙이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여기서 만족해야 했다.적의 기습 부대를 섬멸하고, 700 의병을 살려낸 것.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상황 종료!"내 외침에 전투가 멈췄다. 전장에는 신음 소리와 피 냄새만이 남았다.나는 미숙이에 묻은 피를 풀밭에 쓱쓱 닦고 조헌에게 다가갔다.영규 대사는 의병들의 부축을 받고 지혈 중이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조헌은 멍하니 불타버린 왜군 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영감님.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내가 묻자, 조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이겼어... 우리가... 이겼어...""네. 이겼습니다. 아주 압도적으로요."나는 씨익 웃었다."제가 말했잖습니까. 죽는 것보다 이기는 게 낫다고. 죽어서 이름 남기면 뭐합니까? 살아서 승전보 울리는 게 진짜 애국이지."조헌의 어깨가 들썩였다.평생을 성리학적 명분에 갇혀 살았던 늙은 선비. 그에게 전쟁은 곧 '충(忠)을 위한 희생'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화약과 전술, 그리고 압도적인 무력이 만들어낸 승리의 쾌감을. 그리고 살아남은 부하들의 안도하는 표정을."살아서... 내 병사들이 살아서 돌아가는구나.
콰직!내 손에 들린 미숙이가 왜병의 투구를 강타했다. 쇠가 찌그러지는 소리와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끔찍한 화음을 이뤘다.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역시 흑단목이다. 참나무였다면 벌써 부러졌을 텐데, 이놈은 쇠몽둥이마냥 짱짱했다."비켜!"나는 쓰러지는 놈을 발로 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앞을 막아선 왜군 창병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당연하겠지.멀쩡하던 진영이 갑자기 폭발하고,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더니, 산 위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내려왔으니까. 놈들의 지휘 체계는 이미 박살이 난 상태였다."죽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최가가 낫을 휘두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익호군 녀석들은 신이 나서 날뛰었다. 훈련 때 흘린 땀방울이 전장에서의 생존율로 보상받고 있었다. 놈들은 3인 1조로 움직이며 당황한 왜군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하고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이놈들! 네놈들이 조선 땅을 더럽히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백발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노인. 조헌이었다.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죽으러 가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꼰대 영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늙은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낸 것 같았다.서걱!조헌의 칼이 왜병의 어깨를 깊숙이 베었다. 문신(文臣) 출신이라 무시했는데, 칼솜씨가 제법이었다. 악과 깡으로 싸운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다."나무아미타불! 지옥으로 가거라!"그 옆에서는 영규 대사가 거대한 철장(쇠지팡이)을 풍차처럼 돌리고 있었다. 스님의 쇠지팡이에 맞은 왜군들은 허수아비처럼 날아갔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佛家)의 제자라기엔 타격감이 너무 찰졌다.전황은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하지만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놈들의 지휘관은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 승려 출신의 다이묘였다. 그래서인지 적들 중에는 머리를 깎고 기괴한 승복에 갑옷을 걸친 승병들이 섞여 있었다."조센징! 죽어라!"승병 하나가 나기나타(월도)를 휘두르며 내게 덤벼들
붉은 불기둥이 치솟고,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폭심지 근처에 있던 일본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 있던 놈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낙엽처럼 날아갔다."끄아아악!""화산이 터졌다!"아비규환.정돈되었던 일본군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조총수들은 총을 버리고 도망쳤고, 승병들은 염불을 욀 새도 없이 불타올랐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보셨습니까, 영감님."나는 넋이 나간 조헌을 내려다보았다."저게 제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내 피는 한 방울도 안 흘리고, 놈들의 피로 강을 만드는 거.""......""의(義)요? 좋습니다. 훌륭하죠. 근데 죽어서 지키는 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살아서 놈들 목 하나라도 더 베는 게 진짜 의 아닙니까?"조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불타오르는 적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평생 믿어왔던 '죽음의 미학'이,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그때, 옆에서 "으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영규 대사가 깨어났다.그는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산 아래의 불바다를 보고 눈을 비볐다."허... 내가 지옥에 온 것인가? 염라대왕이 불놀이를 하는구먼.""아직 이승입니다, 스님."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저 불놀이는 제가 한 겁니다."영규 대사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허허허! 대단하군. 자네가 우리를 살렸어."그는 조헌의 어깨를 짚었다."중봉(조헌의 호). 고집 그만 피우시게. 부처님도 개죽음은 원치 않으실 걸세. 저 젊은이 말이 맞아. 이기는 게 중요해."조헌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노인이었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서 독기가 빠져나가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이 들어차고 있었다. 인정. 그리고 전율."네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김덕령입니다.""덕령이라..."조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이 무식한 놈! 상놈! 도적놈!"등 뒤에서 찰진 욕설이 랩처럼 쏟아졌다.조헌 영감님.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폐활량 하나는 기가 막혔다. 산을 오르는 내내 쉬지도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영감님. 혀 깨무십니다. 좀 조용히 가시죠."나는 짐짝처럼 둘러멘 조헌을 추스르며 산길을 올랐다.내 왼쪽 겨드랑이에는 기절한 영규 대사가 끼여 있었다. 덩치 큰 스님이 축 늘어져 있으니 무게가 꽤 나갔지만, 내게는 솜이불 정도였다."네놈이 감히 의병장을 능멸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 당장 내려가서 왜적과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게 선비의 도리거늘!"조헌이 내 등짝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안마받는 기분이었다."도리 좋아하시네. 개죽음 당하는 게 도리입니까?"나는 씩씩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뒤를 돌아보니 가관이었다.700명의 의병들이 쭈뼛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대장이 납치되어 가니 구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납치범(나)이 너무 강력해 보여서 덤비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가자니 의리가 없고.그야말로 오리 떼가 어미 오리 따라오듯 줄줄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빨리 가자! 밥 줄 테니까!"최가가 맨 뒤에서 양치기 개처럼 의병들을 몰았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금산성 맞은편, 험준한 산봉우리였다.아래로는 조헌이 원래 진을 쳤던 연곤평(눈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다."도착했습니다."나는 조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영규 대사도 옆에 뉘었다. 스님은 아직도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내가 급소를 너무 정확하게 쳤나 보다."쿨럭! 이, 이 괘씸한..."조헌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지팡이를 찾았다. 없으니까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나를 겨눴다."네놈이 나를 욕보였어! 내 오늘 너를 죽이고 저승에 가겠다!"독기 어린 눈빛.진짜로 찌를 기세였다.나는 피하지 않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죽이려면 죽이쇼. 근데 그전에 구경이나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