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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왜군의 보급을 털어라 2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6 06:38:56

​"이쪽은 '흑(黑)누님'이야."

​왜군들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자, 나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감히 너희들 따위가 미숙이 본명을 입에 올릴 순 없지. 흑누님이라 불러라. 갈 때 가더라도 예의는 지켜야지?"

​"이, 이야압!"

​창병 하나가 기겁하며 창을 질러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미숙이는!"

미숙이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불의를!"

​빠각!

​창대가 썩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졌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놈의 턱을 올려쳤다.

"참지 않아!"

​퍼억!

​놈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새끼가 예의가 없네. 누님 앞에 쇠꼬챙이를 들이대?"

​나는 빙글 돌며 옆에 있던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갑옷? 소용없었다. 내 괴력과 흑단목의 중량이 합쳐지면 쇠 갑옷도 종잇장이다. 갈비뼈와 함께 갑옷이 찌그러지며 놈이 꼬꾸라졌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왜군들이 나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이치 전투에서 살아남아 도망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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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7화: 금산의 반격 1

    ​콰직!​내 손에 들린 미숙이가 왜병의 투구를 강타했다. 쇠가 찌그러지는 소리와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끔찍한 화음을 이뤘다.​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역시 흑단목이다. 참나무였다면 벌써 부러졌을 텐데, 이놈은 쇠몽둥이마냥 짱짱했다.​"비켜!"​나는 쓰러지는 놈을 발로 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앞을 막아선 왜군 창병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당연하겠지.멀쩡하던 진영이 갑자기 폭발하고,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더니, 산 위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내려왔으니까. 놈들의 지휘 체계는 이미 박살이 난 상태였다.​"죽여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최가가 낫을 휘두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익호군 녀석들은 신이 나서 날뛰었다. 훈련 때 흘린 땀방울이 전장에서의 생존율로 보상받고 있었다. 놈들은 3인 1조로 움직이며 당황한 왜군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하고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이놈들! 네놈들이 조선 땅을 더럽히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백발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노인. 조헌이었다.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죽으러 가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꼰대 영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늙은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낸 것 같았다.​서걱!​조헌의 칼이 왜병의 어깨를 깊숙이 베었다. 문신(文臣) 출신이라 무시했는데, 칼솜씨가 제법이었다. 악과 깡으로 싸운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다.​"나무아미타불! 지옥으로 가거라!"​그 옆에서는 영규 대사가 거대한 철장(쇠지팡이)을 풍차처럼 돌리고 있었다. 스님의 쇠지팡이에 맞은 왜군들은 허수아비처럼 날아갔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佛家)의 제자라기엔 타격감이 너무 찰졌다.​전황은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하지만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놈들의 지휘관은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 승려 출신의 다이묘였다. 그래서인지 적들 중에는 머리를 깎고 기괴한 승복에 갑옷을 걸친 승병들이 섞여 있었다.​"조센징! 죽어라!"​승병 하나가 나기나타(월도)를 휘두르며 내게 덤벼들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6화: 물리적 설득 2

    붉은 불기둥이 치솟고,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폭심지 근처에 있던 일본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 있던 놈들은 충격파에 휩쓸려 낙엽처럼 날아갔다.​"끄아아악!""화산이 터졌다!"​아비규환.정돈되었던 일본군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조총수들은 총을 버리고 도망쳤고, 승병들은 염불을 욀 새도 없이 불타올랐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보셨습니까, 영감님."​나는 넋이 나간 조헌을 내려다보았다.​"저게 제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내 피는 한 방울도 안 흘리고, 놈들의 피로 강을 만드는 거."​"......"​"의(義)요? 좋습니다. 훌륭하죠. 근데 죽어서 지키는 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살아서 놈들 목 하나라도 더 베는 게 진짜 의 아닙니까?"​조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불타오르는 적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평생 믿어왔던 '죽음의 미학'이,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그때, 옆에서 "으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영규 대사가 깨어났다.​그는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산 아래의 불바다를 보고 눈을 비볐다.​"허... 내가 지옥에 온 것인가? 염라대왕이 불놀이를 하는구먼."​"아직 이승입니다, 스님."​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저 불놀이는 제가 한 겁니다."​영규 대사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허허허! 대단하군. 자네가 우리를 살렸어."​그는 조헌의 어깨를 짚었다.​"중봉(조헌의 호). 고집 그만 피우시게. 부처님도 개죽음은 원치 않으실 걸세. 저 젊은이 말이 맞아. 이기는 게 중요해."​조헌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강한 노인이었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서 독기가 빠져나가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이 들어차고 있었다. 인정. 그리고 전율.​"네놈... 이름이 뭐라고 했지?"​"김덕령입니다."​"덕령이라..."​조

  •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75화: 물리적 설득 1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이 무식한 놈! 상놈! 도적놈!"​등 뒤에서 찰진 욕설이 랩처럼 쏟아졌다.조헌 영감님.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폐활량 하나는 기가 막혔다. 산을 오르는 내내 쉬지도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영감님. 혀 깨무십니다. 좀 조용히 가시죠."​나는 짐짝처럼 둘러멘 조헌을 추스르며 산길을 올랐다.​내 왼쪽 겨드랑이에는 기절한 영규 대사가 끼여 있었다. 덩치 큰 스님이 축 늘어져 있으니 무게가 꽤 나갔지만, 내게는 솜이불 정도였다.​"네놈이 감히 의병장을 능멸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 당장 내려가서 왜적과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게 선비의 도리거늘!"​조헌이 내 등짝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안마받는 기분이었다.​"도리 좋아하시네. 개죽음 당하는 게 도리입니까?"​나는 씩씩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뒤를 돌아보니 가관이었다.700명의 의병들이 쭈뼛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대장이 납치되어 가니 구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납치범(나)이 너무 강력해 보여서 덤비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가자니 의리가 없고.​그야말로 오리 떼가 어미 오리 따라오듯 줄줄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빨리 가자! 밥 줄 테니까!"​최가가 맨 뒤에서 양치기 개처럼 의병들을 몰았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금산성 맞은편, 험준한 산봉우리였다.아래로는 조헌이 원래 진을 쳤던 연곤평(눈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다.​"도착했습니다."​나는 조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영규 대사도 옆에 뉘었다. 스님은 아직도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내가 급소를 너무 정확하게 쳤나 보다.​"쿨럭! 이, 이 괘씸한..."​조헌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지팡이를 찾았다. 없으니까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나를 겨눴다.​"네놈이 나를 욕보였어! 내 오늘 너를 죽이고 저승에 가겠다!"​독기 어린 눈빛.진짜로 찌를 기세였다.​나는 피하지 않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죽이려면 죽이쇼. 근데 그전에 구경이나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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