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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Author: 송진
집으로 돌아온 성유리는 바로 화장부터 지우려 했는데 순간 편집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

성유리가 그린 만화가 사이트 규정에 어긋난다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편집장의 통보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디가 어긋난다는 거죠?”

“회사에서 방금 전해 들은 소식인데 그리시고 있는 만화가... 한 분의 초상권을 침해했다네요.”

편집장의 말을 들은 성유리는 박한빈의 짓임을 알아챘다.

박한빈은 평소에 성유리가 하는 일에 크게 관여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방금도 그는 말 한마디로 성유리가 일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성유리는 바로 박한빈에게 연락해 따지려고 했으나 이곳에 사는 이상 박한빈과 부딪쳐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성유리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만화 주인공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박한빈이었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했다.

그때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아까 성 회장님께 연락 드렸는데 이번 달부터 오 여사님 병원비는 아가씨께서 부담하신다고요?”

“네, 내일 병원 갈게요.”

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난 성유리는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계좌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긴 했지만 평소에 박한빈이 주는 카드를 안 쓰고 다 본인의 카드로 결제했던 터라 성유리의 잔액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약값 한번 결제하면 사라질 돈이었다.

갑자기 벼랑 끝에 선 듯한 기분이 든 성유리는 소파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두가 저를 낭떠러지 아래로 미는 것 같았다. 그냥 떨어져서 온몸이 부서져 버리라는 듯.

이튿날, 성유리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성씨 집안 집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윤청하가 성유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집에 돌아오라는 전화였지만 성유리는 역시나 거절했다.

“안 가요.”

그 단호한 대답에 집사는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

“유리 아가씨, 진짜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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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40화

    “설윤지 씨?”“네. 주소 보내줬어요.”성유리는 박한빈의 옷깃을 다듬어주며 물었다.“전에 혹시 무슨 얘기한 적 있어요?”박한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넌 어떻게 알았어?”“회사가 금성에는 없다고 들었는데 오늘 굳이 여기까지 와서 얘기를 꺼낸 거라면 이미 미리 연락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잖아요.”박한빈은 그저 웃을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가고 싶지 않으세요?”성유리가 다시 물었다.“그건 아니야.”“다만 설윤지 씨가 꾸미는 일이 워낙 커서 내가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해.”“그럼 오늘 저녁은...”“일단 가보자.”박한빈은 담담히 말했다.“네가 이미 약속했잖아.”“싫으면 안 가셔도 돼요.”“내가 왜 안 가겠어?”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감싸 쥐며 말을 이어갔다.“시간이 지난 뒤 설윤지 씨가 내놓을 조건이 어떤 건지 나도 보고 싶어.”성유리는 설윤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그런데도 박한빈이 큰 판을 벌였다고 할 정도라면 분명 간단한 일은 아닐 터였다.혹여 그가 원치 않는 길을 자기 때문에 억지로 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성유리는 솔직히 털어놓았다.그러자 박한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도 선은 지켜.”그제야 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 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전에 설윤지 씨랑 알던 사이예요?”“아니.”“그런데 어쩌다...”“설윤지 씨 전남편을 알지.”박한빈은 차에 올라타며 담담히 대답했고 오늘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어서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성유리도 차에 오르며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물었다.“전 남편이요? 누군데요?”“해청시 선진 그룹 대표 노 대표님이야.”“네?”성유리는 처음 듣는 듯 낯선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러자 박한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설명을 보탰다.“노을이 돌잔치 때, 금수저 세트를 보낸 사람 있잖아. 그때 네가 나한테 저 사람 졸부 아니냐고 물었던 기억 안 나?”그 말에 성유리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아, 기억났어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39화

    그리고 박한빈은 방에 없었다.성유리는 꽤 편히 잠들었던 터라 어제의 감정은 아침이 되자 말끔히 가신 듯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녀는 서재로 들어가 디지털 패드를 켰다.그런데, 곧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손님이요?”“네. 사모님 친구라고 하시는데요.”성유리는 의아했지만 더 묻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섰다.“유리 씨.”마당에 서 있던 여인은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상대는 성유리를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설윤지 씨?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전에 말했잖아요. 저 곧 금성으로 돌아올 계획이 있다고.”설윤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때 유리 씨가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저는 허락한 줄 알았죠.”“일 때문에 온 거예요?”성유리는 곧장 그녀의 차림새에 눈길이 갔다.정장 차림의 깔끔한 슈트, 친구를 만나러 온 모습이라기보다는 협상을 하러 온 분위기에 가까웠다.곧 설윤지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맞아요. 회사 일 때문에 왔어요.”“여기에도 회사가 있어요?”성유리는 조금 놀란 듯 물었다.“네. 금성은 아니고요.”설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이번에 협상할 일이 있어서 잠깐 들른 거예요.”“그럼 왜 미리 연락 안 하셨어요? 제가 알았으면 공항이라도 갔을 텐데.”“괜찮아요. 예전에 금성에 산 적 있으니까 이곳이 낯설진 않아요.”설윤지는 말하면서 집 안을 둘러보았다.그러고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정말 예쁜 집이네요.”이 집을 오간 손님이 적지는 않았지만 집을 두고 예쁘다고 칭찬한 건 처음이었다.그 말에 성유리는 무심코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런 식의 기분 좋은 말은 언제 들어도 나쁘지 않았다.뭔가 말을 더 잇고 싶었는데 도우미가 다시 다가와 이런 말을 전했다.“사모님, 또 다른 손님이 오셨습니다.”그 말에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누군데요?”“백 대표님의 새 부인이십니다.”그 말에 성유리의 표정이 삽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38화

    “뭐 하시려고요?”성유리가 물었지만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한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던 끝에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됐어.”“네?”“남우미 씨는 이제 이 세상에 없잖아. 지금 뭘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박한빈은 담담하게 계속 말했다.“게다가 네가 말했듯 현호는 이미 자기 몫을 지킬 수 있게 됐어. 그걸로 충분해.”“저는 그냥 백지환 씨가 꼴 보기 싫을 뿐이었어요.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그건 어디까지나 성유리의 감정일 뿐, 다른 사람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박한빈은 원래 남의 일에 간섭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단지 그녀가 속상해하는 게 보기 싫었을 뿐이다.“됐어. 이제 신경 쓰지 말자.”그의 속내를 짐작한 성유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어서 씻고 오세요.”그녀의 손길에 밀려 일어난 박한빈은 몇 발짝 가다 말고 다시 물었다.“정말 그걸로 끝낼 거야?”“네.”성유리의 확신 어린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향했다.그런데 막상 씻고 나와 보니 그녀가 방문 앞에 서 있는 걸 발견해 멈춰 서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래?”“아직도 화가 좀 나서요.”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서?”“한 번만 물어도 돼요?”박한빈은 곧장 반박하려 했지만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성유리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때마침 그가 허리에 수건만 두른 채였기에 맨살의 팔은 성유리에게 가까웠다.그녀는 곧장 고개를 숙여 망설임 없이 박한빈의 팔을 꽉 물었다.박한빈은 막지 않았다.그러다 이윽고 그녀가 물기를 멈추자 손으로 성유리의 턱을 붙잡았다.“다 했어? 그럼 이제 내 차례네.”“아니, 그건...”성유리가 반박하려는 순간, 박한빈은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였다.“심심하니까 힘이 많이 남나 봐?”성유리는 멈칫했지만 그를 밀쳐내지는 않았다.대신 두 팔을 들어 박한빈의 목을 감쌌고 먼저 입술을 맞췄다.박한빈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랐으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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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36화

    남우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옆집 별장에는 새로운 여주인이 들어왔다.성유리는 하늘이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무렵, 그녀는 늘 하늘이를 데려오면서 남현호까지 함께 집에 데려오곤 했다.하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나온 건 하늘이뿐이었다.“현호가 이번 주말은 집에 안 간다고 했어.”하늘이가 태연하게 말하자 성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아빠랑 싸웠대?”“아니, 아빠가 결혼한다고 해서 집에 가기 싫대.”하늘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지만 아이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성유리는 뜻을 알아들었다.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늘이를 바라보았다.“누가 결혼한다고?”“남현호 아빠.”하늘이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결혼할 여자가 벌써 집으로 들어왔다고 들었어. 게다가 현호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같이 살게 된대. 현호는...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서 집에 안 갈 거래.”성유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한참 뒤에야 겨우 목소리를 찾았다.“그럼 우리는 먼저 집에 가자.”하늘이는 짧게 대답했다.“응.”그게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하늘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유리는 실제로 백지환의 별장 앞에서 새로운 여주인을 보게 되었다.그 여자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듯 앳된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이목구비는 또렷했지만 코와 턱선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어딘가 매끄럽지 못한 날카로움이 묻어났다.게다가 배가 아주 살짝 불러 있었다.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여자 역시 그녀의 시선을 눈치챘다.곧 여자는 성유리를 훑어보더니 턱을 치켜들었다.“아이고, 아가. 내가 뭐라고 했어. 연못가 근처는 미끄러워서 안 된다니까. 산책하려면 다른 데를 가야지.”성유리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여자를 부축했다.할머니의 눈매는 백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435화

    실버 포레스트에 돌아온 뒤, 성유리는 제일 먼저 하늘이에게 검은색 원피스를 입혔다.금성의 날씨는 여전히 차가웠기에 위에 긴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혀 주고 귀 옆에는 작은 흰 꽃 한 송이를 꽂아 주었다.박한빈은 이미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처음엔 성노을도 따라가겠다고 나섰지만 성유리가 집에 남는 걸 보고는 곧 마음을 접더니 오히려 기꺼이 그녀와 함께 집에 남기로 했다.성유리는 하늘이의 옷차림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박한빈 곁으로 다가가 넥타이를 가만히 매만졌다.“우리 금방 다녀올게.”박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잠시 망설이던 성유리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조심히 다녀오세요.”“알았어.”박한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이윽고 하늘이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자.”그 말에 하늘이는 바로 아빠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하늘이는 이미 할머니의 장례를 겪어 본 적이 있었다.그때도 박한빈은 최대한 조용히 치르려 했지만 조문객은 끝이 없었다.그래서 이번에 눈앞에 펼쳐진 초라한 영정과 썰렁한 장례식장은 아이의 눈에도 낯설게 느껴졌다.곧, 검은색 어린이 정장을 입은 남현호가 눈에 들어왔다.너무 커서 소매가 손끝을 덮고 어깨도 헐렁해 보였다.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온몸에서 깊은 무력감과 상실감을 뿜고 있었다.그런데 하늘이가 들어서는 순간, 마치 뭔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하늘이에게 곧장 시선을 고정했다.그리고 그보다 먼저 백지환이 다가와 박한빈에게 인사를 건넸다.“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박한빈은 그가 진심으로 애도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짧게 대답했다.“수고 많습니다.”백지환은 그 말에 맞춰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하늘이는 어른들의 형식적인 대화를 개의치 않고 단숨에 남현호에게 다가갔다.잠시 아이를 바라보던 남현호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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