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29화

Author: 복덩이
오후의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바닥을 영롱하게 비추었다.

강민아는 산소마스크를 얼굴에 쓴 채 병상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머리카락은 베개 위에 부드럽게 흐트러졌고, 눈은 가볍게 감은 채 긴 속눈썹이 눈꺼풀 아래로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조용한 병실 안에는 산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반용화는 휠체어에 앉아 강민아의 창백한 얼굴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강민아가 고비를 넘겼다며 곧 깨어날 거라고 말했다.

강민아는 막 병원에 실려 왔을 때만 해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비서가 반용화의 휠체어를 밀고 오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며 반석현을 넘겨준 뒤 마지막 기력을 다하고 기절해 버렸다.

강민아가 기절하기 전 반용화에게 건넨 미소는 아직도 반용화의 뇌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반용화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손이 홀린 듯이 강민아의 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하얗고 여린 피부에는 광택이 감돌았다.

강민아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렸을 때 반용화의 손끝이 움찔하며 그대로 다시 손을 거두었다.

마디가 분명한 가느다란 손가락이 휠체어 손잡이를 문질렀고 그는 자책하는 듯한 눈빛으로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짓을!’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하고 전화를 받자 부하의 보고가 들렸다.

“반하준 씨가 뵙고 싶어 합니다.”

“반현민 데리고 사당에서 무릎 꿇고 있으라고 해!”

반용화가 타협할 여지가 없는 듯 싸늘한 어투로 명령하자 부하가 덧붙였다.

“여사님도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현민 도련님이 학교 강당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을 듣고 감정이 격해져서...”

부하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반용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한 여사님이 형수 연진숙이라는 건 잘 알았다. 그녀와 몇 번 만난 적도 없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데다 여러 번 강민아를 괴롭혔던 것도 전부 반용화의 귀에 다 전해졌다.

그러니 반용화는 더더욱 형수님이라는 사람을 곱게 볼 수가 없어 거침없이 명령을 내렸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80화

    강민아는 그녀가 방금 한 말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강민아는 눈을 반짝이며 심은호가 다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심은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녀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결국, 심은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민아 씨가 원하는 거 다 줄게요.”심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위해 차를 우리러 갔다.강민아는 그가 물을 붓고 찻잎을 우려내는 동작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장면이었다.그녀는 여유롭게 책상 앞에 앉아 자료를 훑어보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잠시 후, 심은호는 차를 다 우려내고는 컵을 조심스럽게 들어 살짝 불어낸 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은은한 차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바로 그때, 강민아의 컴퓨터 화면에 또다시 우경아의 영상통화 요청이 떴다.강민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통화를 수락했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화면에 비친 우경아를 바라보았다.우경아는 강민아의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우경아는 곧 깨달았다. 강민아는 그녀가 다시 연락할 거란 걸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우경아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우경아는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었다.그녀의 눈빛 속에 감춰져 있던 투지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안 이사랑 방금 연락했어요. 안 이사가 내 의도를 완전히 오해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민아 씨 컴퓨터 접근 권한을 그녀에게서 회수했어요.”우경아는 자신이 한발 물러섰으니, 이제 강민아도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뜻이었다.우경아는 결코 호의를 그냥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경아는 언제나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되찾아가려는 사람이었다.“듣자 하니, 민아 씨랑 하준 씨가 진행하던 협상이 꽤 잘 되고 있다면서요? 하준 씨가 적극적으로 양자 테크와의 협력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어요. 민아 씨 전남편이니까, 앞으로도 그 사람이 있으면 일하기도 편하겠죠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9화

    우경아의 사무실 문이 급하게 두드려졌다.우경아의 남자 비서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흥분되는 듯, 그녀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키스를 퍼부었다. 마치 그녀를 놓치기 싫다는 듯이 말이다.우경아는 혀를 차며 남자 비서를 밀어냈다. 그녀의 표정이 불쾌해지자, 남자 비서는 서둘러 행동을 멈추었다.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회사 전 직원이 컴퓨터 앞에서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었다.이번엔 정말 신선한 스캔들이었다!이건 단순히 우경아가 민망한 영상에 노출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전 직원이 지금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남자 비서는 능숙하게 우경아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줬다. 옷깃을 여미고 치마를 곧게 펴 주는 손길이 자연스러웠다.그리고 남자 비서는 문 쪽으로 걸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우경아 사무실의 방음문이 양옆으로 열리자, 행정 비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이건 단순한 해킹이 아니었다. AI 합성 영상이 아닌, 진짜 실시간 방송이었다.“무슨 일이야?”우경아가 물었다.그녀는 얼굴에 묘한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이 태연했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남자를 가지고 노는 걸 들켜도 신경을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행정 비서의 얼굴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행정 비서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우 대표님, 사무실 컴퓨터가 해킹당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우경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컴퓨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우경아의 남자 비서는 조용히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우 대표님! 우리 완전 큰일 났어요!”남자 비서는 우경아를 향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우경아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했다.“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말해.”우경아가 행정 비서에게 물었다.행정 비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우 대표님의 컴퓨터 카메라가 원격으로 켜졌습니다. 아까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전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8화

    심은호라는 남자,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하지만 강민아는 그런 그에게 전혀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그답다고 생각했다.그가 그녀의 삶 속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강민아는 이 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비서가 나가고, 강민아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나와요.”그녀가 명령하듯 말했다.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은호 씨, 이제 정신이 좀 들었겠죠?”심은호는 비좁은 책상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눈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그녀를 보며 물었다.“재밌었어요?”“꽤 재밌더라고요. 은호 씨한테 홀딱 넘어갈 뻔했잖아요.”강민아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심은호는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말은 저한테 아직 안 넘어왔다는 거네요?”그러더니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와 몸을 기울이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까 절 만졌을 때, 기분 좋았죠?”강민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눈에 담긴 장난기와 호기심이 빛을 발했다.“솔직히 말해도 돼요? 나는 심 대표가 이렇게 만질 맛 나는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이제 두 사람 사이엔 예전처럼 어색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강민아가 심은호를 ‘심 대표’라고 부르며, 장난기 어린 어투로 말을 건넸다.심은호는 강민아가 자신의 의도를 간파했다는 걸 알았다.그가 굳이 책상 아래로 들어간 건, 이런 짜릿한 상황을 연출해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목적이었다.하지만 심은호의 계획은 들통나고 말았다. 그 사실에 그는 한편으로 좌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그녀에게 더 깊이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어쩌지, 나는 민아 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심은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민아 씨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져도 돼요.”강민아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사실 저 은호 씨 손을 좀 빌리고 싶어요.”심은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자기 손을 그녀 앞으로 내밀며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7화

    심은호라는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 그 자체였다.복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경련은 그녀에게 지금 몸에 무언가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초여름의 따스한 오후, 사무실 안의 공기조차 눅눅하고 무겁게 느껴졌다.그녀는 전기에 감전된 듯, 척추 끝에서부터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문득 심은호라는 사람에 대해 진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당신 같은 사람이 왜 하필 저를 좋아하게 된 거죠?”강민아의 목소리가 심은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네? 나 같은 사람이라니, 어떤 사람 말이죠?”심은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어떤 방어도 없었다. 마치 그녀가 어떻게 해도 좋다는 듯한 순순한 태도였다.강민아는 눈을 내리깔고 의자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떨림이 피어올랐다.‘상위자’의 시선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녀의 가슴 속에는 마치 날개를 퍼덕이는 나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듯 요동쳤다.심은호가 그녀한테 보내는 시그널은 그를 마음껏 괴롭혀도 좋다는 것이었다.심은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 어떤 과분한 짓을 해도, 그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은호 씨는 본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시나 봐요?”강민아의 말투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심은호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엔 웃음기가 가득했다.“민아 씨도 본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그는 강민아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그래도 은호 씨보단...”“민아 씨, 사람마다 인생의 속도는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빨리 가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죠. 인생이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지, 무슨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봐야 아는 거예요. 어울리느냐 마느냐는, 그저 스스로를 괴롭히는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에요. 감정이란 결국 좋아하느냐 아니냐, 그제 전부예요.”심은호의 큰 손이 강민아의 가느다란 다리를 부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6화

    반하준은 연진숙이 자꾸 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게 정말 불편했다.강민아와 이혼하게 된 데에도, 연진숙의 참견이 한몫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작은아버지께서 계속 안 회장네를 챙겼잖아요. 안 회장 딸, 예전에 작은아버지의 추천서를 받아서 유학한 거 말이에요, 기억나세요?”“그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냐.”연진숙이 말을 이었다.“안채린 그 아가씨, 미린국에서 잘 나간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귀국했는데, 지금은 우영그룹 산하의 양자 테크에 입사했대.”반하준은 자리를 뜨려다, 그녀의 말 속에서 익숙한 단어를 듣고는 발걸음을 멈췄다.“안채린 씨가 양자 테크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데요?”연진숙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반하준이 드디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우경아 회장이 꽤 아낀다더라. 입사하자마자 바로 실무 총책을 맡았다고 들었어.”반하준의 머릿속에 바로 의문이 스쳤다.‘양자 테크의 일인자는 강민아 아닌가?’이 말이 사실이라면, 강민아의 회사 내 입지가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뜻이다.미린국에서 하버드를 졸업하고 돌아온 안채린은 이미 금융 잡지에서 여러 번 본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후견인은 다름 아닌 반용화였다.반면 강민아는 배경도 없고 실무 경험도 부족하다. 안채린과 같은 사람을 상대하기엔 큰 부담이 따랐을 것이다.반하준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음 주, 제가 정광사를 떠나면은 안채린 씨와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연진숙은 감격스러울 만큼 기뻤다. 지금 당장이라도 안 회장에게 연락해 안채린과의 만남을 잡고 싶을 정도였다.“알겠어, 산에서 내려가자마자 바로 준비할게.”한편, 양자 테크에서.강민아가 바닥에 발을 딛자, 의자 바퀴가 뒤로 밀려나며 책상에서 멀어졌다.그녀는 책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심은호에게 말했다.“이제 나와요.”심은호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조금 전 그녀가 그를 만졌던 감촉이 남아 있는 듯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었다.“진정 좀 하고요.”강민아의 시선이 자연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5화

    반하준은 요즘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거름을 나르고, 돼지우리를 청소하고, 소를 몰고 양을 방목하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그의 오랜 결벽증도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그는 거침없이 쓰레기 더미 앞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뒤지기 시작했다.반하준은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반현민을 보자, 눈을 번뜩이며 호통을 쳤다.“서서 뭐 하고 있어? 같이 찾지 않고! 청진기 못 찾으면 오늘 밥도 없을 줄 알아.”반현민은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겁먹은 얼굴로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뗐다.“아빠, 장갑이라도 좀 주세요...”“찾아!”반하준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청진기 못 찾으면 너를 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릴 거야!”그는 이번만큼은 아들 앞에서 완전히 인내심을 잃은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 이글거렸고, 굳게 다문 턱선은 날카롭게 경직되어 있었다.반현민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숨을 참은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쓰레기들을 뒤적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빠, 제가 청진기 새로 사드릴게요... 열 개라도 사드릴 수 있어요.”그러자 반하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가 백 개를 사 와도 소용없어. 그건 내가 아끼는 청진기야.”반현민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청진기, 아빠한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그 말에 반하준은 인츰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쓰레기 더미를 한참 동안 뒤적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그 청진기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거야.”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쓰레기통 안의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졌지만, 문제의 청진기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반현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오전에 버렸거든요... 혹시 이 쓰레기통, 이미 비워졌을지도 몰라요.”반하준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팔뚝의 핏줄이 울컥 솟구쳤고,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부숴버릴 듯한 기세였다.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4화

    반하준은 멍하니 있다가 이불을 확 젖히였다. 그는 텅 빈 침대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차가운 기류가 휘몰아쳤다.방 문 앞에는 반용화가 붙여놓은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 반하준은 그 경호원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내 청진기 어디 있어? 누가 내 물건 건드리랬어!”경호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떼내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반 이사님, 진정하시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반하준의 눈빛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물었다.“내가 베개 밑에 둔 청진기, 누가 건드렸냐고!”경호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오전쯤이었나, 반현민 군이 청진기를 갖고 노는 걸 본 것 같습니다.”반하준의 눈동자가 순간 수축됐다.‘현민이가 내 방에 들어와서 청진기를 가져갔다고?’‘이놈, 가만 안 둬.’반하준은 이를 악물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회색 승복을 입은 반현민은 절 앞마당에서 향을 피우러 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며칠 동안 그는 본당 청소를 맡아 하다가,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 덕분에 뜻밖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참배객들은 그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전국에서 제일 귀여운 꼬마 스님과의 우연한 만남]눈에 띄는 해시태그는 이미 수천만 조회수를 넘겼다.반하준은 정광사에서 수양 중이라 하루에 세 시간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기에, 인터넷 접속도 업무에만 집중하느라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심지어 비서가 그에게 전송한 ‘좋아요 10만 개’ 영상조차 그는 확인하지 않았다.“반현민!”반하준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반현민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그를 향해 무섭게 다가오는 반하준의 기세에 반현민은 자연스레 몸을 움츠렸다.“아빠...”반현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뭘 잘못했는지는 몰랐지만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와, 잘생겼다!”“꼬마야, 지금 아빠라고 했어? 저 사람이 네 아빠야?”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3화

    이번엔 반하준이 확실히 보았다. 강민아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연한 분홍에서 진한 분홍으로 변한 것을.그녀의 피부는 마치 활짝 핀 모란꽃처럼 붉게 타올랐고, 긴 속눈썹은 살짝 떨리며, 검은 눈동자엔 촉촉한 윤광이 번져 있었다.마치 사랑의 마음이 싹튼 듯한 표정이었다.이러한 생각이 반하준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눈을 크게 떴다.‘강민아가 왜 갑자기 나를 보고 수줍어하는 거지?’반하준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의 속눈썹 한 올 한 올까지 생생하게 보였다.그는 시선을 왼쪽 상단의 작은 화면으로 옮겼다.반용화가 그를 산에 보낸 뒤, 정광사 스님더러 그에게 머리를 깎아주라고 하였다. 반하준은 정식 출가자가 아니었기에 스님은 그에게 삭발이 아닌 짧은 스포츠머리로 깎아주었다.그리고 반하준은 며칠 동안 바람과 햇볕에 그을려 피부는 제법 어두워졌고, 얼굴의 윤곽이 더 뚜렷해졌다.‘이런 모습이 강민아의 취향이었던 건가?’반하준의 가슴이 달아올랐다. 마치 물 끓는 주전자처럼, 마음속에서 보글보글 뜨거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듯했다.‘그래, 그녀가 다시 나에게 설레기 시작한 거라면...’반하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일부러 단단하고 냉정한 목소리를 냈다.“걱정 마. 부신 그룹더러 양자 테크 프로젝트에 전면적으로 협조하라 할 거야. 오늘 안으로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내가 하산하면...”그는 일부러 권위 있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직접 만나서 얘기하지.”“훗.”강민아는 모니터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동자의 초점은 흐트러져 있었다.그녀의 손바닥에 다시금 포근한 감촉이 스며들었다.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손은 어느새 심은호의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그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실크처럼 매끄러워 손끝이 간질간질할 정도였다.강민아는 문득 고양이 카페에서 만난 푸른 눈의 랙돌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을 처음 만졌을 때 느꼈던 묘하게 중독적인 촉감을 말이다.심은호는 마치 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72화

    심은호의 눈동자는 마치 햇살이 비친 잔잔한 호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우리 안에 갇힌 대형견처럼 강민아만을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꼬리가 있다면, 아마 지금쯤 회전하는 선풍기처럼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강민아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이거, 진짜 큰일 났다! 이건 장난이 아니라 사고야, 사고!’그녀의 시선이 발끝으로 떨어졌다.“읏...”그녀는 황급히 발을 걷으려 하였지만 중심을 잃은 몸이 의자와 함께 뒤로 휘청거렸다.그 순간, 심은호의 손이 날렵하게 뻗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강민아의 심장은 한 박자 멎어버렸다.차가울 줄 알았던 심은호의 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단단했다.강민아는 다시 의자에 안착했지만,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커다랗게 떠졌고, 동공은 산란하게 흔들렸다.“강민아, 무슨 일이야?”화면 속 반하준의 목소리가 급하게 튀어나왔다. 그녀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려는 걸 보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하준은 그녀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졌다.‘강민아가 균형을 잡아 다행이야. 그런데 양자 테크 대표실 의자 퀄리티가 왜 이렇게 나쁜 거야!’반하준은 화면 너머에서 가만히 숨을 토해냈다.“우리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어?”강민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차갑게 굳은 얼굴에 감정이 스며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손의 뜨거운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심은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힘을 주어 잡았다.“읏...”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떨렸다.발목 하나를 쥐었을 뿐인데, 허리와 다리에 있던 힘이 빠지고 전신이 찌릿해났다.강민아는 스물일곱 해를 살아오며 처음 알게 됐다. 그녀의 약점이 발목이라는 사실을.심은호의 손길은 마치 불에 달군 족쇄 같았다. 그 열기에 그녀의 심장까지 떨려왔다.그녀의 모든 신경은 발목에 쏠려 있었다.심은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