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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Author: 묵묵연화
검은 마이바흐는 부드럽게 운서원 안으로 들어섰다.

이재는 뒷좌석에 기대 앉은 채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가슴 안쪽에서 치솟던 분노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거칠게 뛰면서 머릿속을 두드리는 듯 아팠다.

이재는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도우가 룸미러로 힐끗 바라봤다.

이재는 약병을 꽉 쥔 채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등의 핏줄까지 선명했다.

도우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앞쪽 도로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재는 뚜껑을 열어 하얀 알약 두 정을 손바닥에 덜었다.

한동안 약을 내려다보던 이재는 턱에 힘을 준 뒤 약을 다시 병 안으로 넣었다.

창문을 내리자 청해만의 짭짤한 바닷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이재에게 남은 희미한 피 냄새를 흩어 놓았다.

이재는 약병을 쥔 채 잠깐 망설이다가 창밖으로 던졌다.

검은 약병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길가 관목 사이로 떨어졌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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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8화

    수술실 표시등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복도의 공기는 숨 쉬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다. 소독약 냄새와 사람들의 초조함이 뒤섞여 있었다.슬비는 복도의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을 무릎 위에서 꽉 맞잡고 있었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어 반달 모양의 붉은 자국이 여러 개 남았다.눈은 새빨갰지만 더 울지는 않았다. 입술을 단단히 다문 모습은 한계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위태로웠다.이재는 슬비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엄지로 눈가에 남은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았다.“여보, 나 봐.”초점이 흐려져 있던 슬비의 눈이 천천히 이재의 얼굴을 향했다.맑은 눈 안에는 실핏줄이 가득했고 불안 때문에 동공도 조금 커져 있었다. 평소와 달리 한없이 약하고 막막해 보였다.“처남은 괜찮을 거야.”이재는 낮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세인트폴고등학교 바로 근처에 호강시에서 의료진이 가장 좋은 사립병원이 있어. 구급차도 10분 안에 왔고 현장 처치도 빨랐어. 괜찮을 거야.”슬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이재의 손을 더 꽉 잡았다.손가락은 얼음 조각처럼 차가웠다.이재는 슬비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자신의 체온을 천천히 나눠줬다.호흡이 조금씩 안정될 때까지 곁에 앉아 있다가 이재가 일어났다. “전화 하나만 하고 올게. 금방 와.”슬비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놓았다.이재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서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계단 안은 고요했다. 비상등의 희미한 녹색빛이 옆얼굴을 칼날처럼 차갑게 비췄다.도우가 뒤따라 들어왔다. 문이 닫히면서 복도의 소음이 차단됐다.그제야 이재의 미간이 깊게 일그러졌다. 차가운 기색을 더는 숨기지 않았다.“어떻게 된 거야?”“때린 학생은 5명입니다. 전부 세인트폴고등학교 학생이고, 주동자는 한태오, 17살입니다. 한씨 집안의 유일한 손자고, 호강시에서 약재 유통 사업을 크게 합니다.”“저희와도 거래가 조금 있습니다. 최상위 집안까지는 아니어도 지역에서는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습니다.”도우가 잠깐 말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7화

    전화를 끊은 슬비는 현관으로 뛰었다. 두어 걸음 가다가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신발을 갈아 신었다. 마음이 급해서 끈을 두 번이나 잘못 묶었다.“무슨 일이야?”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슬비가 고개를 들자 이재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셔츠 깃은 열려 있었고 재킷도 챙기지 못했다. 아래층의 소란을 듣고 급히 나온 게 분명했다.뒤에는 희천도 심각한 얼굴로 따라오고 있었다.슬비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도 붉어졌다. “지범이... 학교에서 맞고 있어요. 통화가 아직 연결돼 있는데, 계속 때리는 소리가 들려요. 경찰에는 신고했어요...”이재가 슬비 앞에 와서 허리를 숙이고 풀린 신발 끈부터 단단히 묶어줬다. 그런 뒤 슬비의 손을 잡았다. 건조하고 따뜻한 손바닥이 차가운 손가락을 감쌌다.“가자. 나도 같이 갈게.”...차가 세인트폴고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구급차가 와 있었다.지범은 얼굴이 피투성이인 채 들것에 누워 있었다. 교복도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짙은 남색 천은 검붉게 변해 있었고 눈은 감겨 있었다. 입술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구급대원이 거즈로 지범의 뒤통수를 누르고 있었지만 금세 피로 물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온 피가 손목을 타고 흘러 흰 시트 위에 떨어질 때마다, 검붉은 핏자국이 번졌다.슬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이재가 뒤에서 팔을 뻗어 허리를 단단히 받쳤다. 거의 안다시피 하면서 슬비의 몸을 겨우 붙잡아 세웠다.“지범아! 지범아...”들것 위의 지범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도 새하얬다.구급차 문이 닫히자 사이렌이 다시 울렸다. 붉고 푸른 불빛이 빠르게 번쩍이며 멀어졌다.이재는 곧바로 슬비를 데리고 차에 올라서 구급차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은 상태라 지범은 도착하자마자 수술실로 옮겨졌다.슬비는 복도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맞잡았다. 손가락이 얼음처럼 차가웠다.눈가는 여전히 붉었지만 더는 울지 않았다.수술실 문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6화

    슬비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따뜻한 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시선은 자꾸 위층으로 향했다.희천이 올라간 지 벌써 30분 가까이 됐다. 이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슬비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딱 좋은 온도였다. 첫맛은 조금 쌉쌀했지만 뒤에는 은은한 단맛이 남았다. 이재가 자주 마시는 진한 발효차였다.슬비는 원래 이런 차를 좋아하지 않았다. 향이 진하고 떫은맛이 먼저 올라와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쓰게 느껴졌다.하지만 이재가 좋아했다.몇 번 따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슬비도 조금씩 그 맛을 알 것 같았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지범의 이름이 떠 있었다.[누나, 결혼 축하해.]전화를 받자마자 지범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슬비가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워.”[저기... 하 회장이 누나 괴롭히진 않지?]“걱정 마. 나한테 잘해줘.” 슬비가 웃었다. “너 아직 애면서 그런 걱정까지 하지 마.”[누가 애야? 나 15살이거든!]지범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누나가 혹시 힘들까 봐 그러지. 지민 누나가 예전부터 하 회장이 중병이라느니 오래 못 산다느니 재수 없는 소리만 했잖아. 나도 걱정이 됐다고.]“그런 건 다 헛소문이야.”[그럼 다행이고.]지범이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하 회장이 누나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가서 패줄게.]슬비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네가 이길 수는 있고?”[못 이겨도 싸워야지.]“됐어. 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는 학교는 어때? 잘 적응했어?”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잘... 잘 지내지. 누나 동생이 얼마나 잘나가는데. 어디 가든 인기 많아. 적응 못 할 리가 있어?]“진짜?”[진짜라니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누나나 잘 지내.]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슬비가 더 물으려고 했지만 지범이 먼저 화제를 돌렸다.[아, 맞다. 누나한테 말할 게 있어. 지민 누나가 돌아왔어.]슬비의 숨이 멎는 듯하면서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지범은 눈치채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5화

    희천은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들어오더니 서류가방까지 자연스럽게 소파 위에 내려놨다.희천을 본 슬비의 눈이 반짝였다.“유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 보러 오셨어요?”“저는...”희천은 말을 하려다다 이재가 눈을 가늘게 뜨는 걸 보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아, 아닙니다. 하이재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지난번에 회장님을 소개해 주셨잖습니까. 하하...”슬비는 희천이 이재의 몸 상태를 보러 온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계세요. 물 가져다드릴게요.”희천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천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걸음으로 탕비실 쪽에 가더니 느긋하게 녹차 한 잔을 우려 들고 나왔다.슬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차를 들고 나오는 희천을 바라보는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희천은 그 시선을 마주치자 속으로 뜨끔했다.운서원이 너무 익숙해서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지금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행동한 셈이었다.“유 선생님, 전에 여기에 오신 적이 있어요?”“아... 전에 하이재 회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몇 번 왔습니다.”“아, 그렇군요.”슬비는 그제야 납득했다.희천이 이곳을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돌아다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가죠. 서재에서 이야기합시다.”희천이 애써 둘러대는 모습을 보던 이재가 드물게 구해줬다.“네, 네. 그러시죠.” 희천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이재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서재 문이 닫히자 희천이 바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형수님께 제가 예전에 형 지시로 북명시에 가서 치료해드렸다는 걸 왜 말씀을 안 했어요?”“그렇게 오래 좋아했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형수님도 형한테 더 마음을 열지 않겠어요?”이재는 책상에 기대 두 팔을 가슴 앞에 겹쳤다. “그건 달라.”이재가 원하는 건 슬비가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었다.은혜 때문에 마음이 묶이거나 다른 이해관계가 섞인 감정은 원하지 않았다.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4화

    슬비는 얼굴을 붉힌 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급히 떨쳐내고 아래층으로 향했다.계단 모퉁이를 돌자, 도우가 이재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뭔가 보고하고 있었다.그런데 도우의 옷차림이 이상했다.슬비는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오늘 도우는 눈에 확 띄는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왁스를 발랐고 셔츠 단추도 위에서 두 개 정도 풀어서, 화보 속 재벌가 도련님처럼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슬비가 도우를 알게 된 뒤로는 사계절 내내 짙은색 정장만 입은 모습밖에 본 적이 없었다. 넥타이도 검정, 회색, 남색뿐이었다. 이렇게까지 화려한 색의 옷을 입은 건 처음이었다.슬비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틀림없이 도우의 얼굴이었다.계단 쪽 기척을 들은 이재가 고개를 돌렸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슬비를 보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허리를 감쌌다. “잘 잤어?”슬비는 아직 정신이 없어서 이재의 손이 허리께를 은근히 문지르는 것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몸은 이제 안 뻐근하지?”그제야 정신을 차린 슬비가 이재를 노려봤다.요 며칠 이재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연고를 매일 밤 자기 전에 발라줬다.연고만 얌전히 발라주면 좋으련만, 조금 문지르다 보면 손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움직였고 결국 또 다른 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그래도 효과만큼은 확실했다.다음 날 아침이면 뻐근함이 절반 이상 사라졌고, 걸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도 없었다.그렇다고 이재가 매일 그렇게 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회장님, 차 준비됐습니다.”현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슬비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굳었다.‘도우 씨가 둘이야?’‘이게 뭐지?’옷만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면, 정말 눈앞이 둘로 겹쳐 보이는 줄 알았을 것이다.“정신 차려.”이재가 웃으며 슬비 눈앞에서 손을 흔든 뒤 분홍 셔츠를 입은 남자를 가리켰다.“도한이야. 도우의 쌍둥이 동생. 맡긴 일을 끝내고 막 돌아왔어.”도한이 환하게 웃으며 가지런한 이를 드러

  •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제193화

    장여진과 원국한은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이제는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돈을 뜯어내는 것도 아니고, 몸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이 정도면 부잣집 딸만 골라 접근하는 사기꾼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다만 도한이라는 남자가 정말 공작가의 자제라면, 이름이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게 이상했다.도한... 어딘가 동네에서 흔히 들을 법한 이름이라 영국 귀족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렇다고 사기꾼이라기에는 돈도 몸도 건드리지 않았어. 대체 뭘 노린다는 건가?’원국한이 한동안 생각하다 물었다. “정략결혼 상대가 누군지는 물어봤어?”지민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물어봤어. 자기도 모른대. 집안에서 정한 거래. 아빠, 나 영국 가서 도한이 찾을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원국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거길 왜 가? 본인이 집안에서 정략결혼을 시킨다고 했다며. 네가 쫓아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지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도한은 내가 싫어서 헤어진 게 아니잖아! 집안 말을 거스를 수 없어서 그런 거야!”“그럼 기다려. 본인이 정리하고 돌아오면 그때 얘기해.”지민이 발을 굴렀다.“못 기다려! 다른 여자랑 결혼해버리면 어떡해? 내가 가서 다시 데려올 거야!”원국한은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눌렀다. “일단 며칠 집에 있어. 좀 진정하고.”“싫어! 지금 바로 비행기표 살 거야! 도한이 찾으러 갈래!”원국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민아! 그만 좀 해!”지민은 그 소리에 놀라서 잠시 굳었다가 곧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 나한테 소리쳤어... 나 헤어져서 힘든데 아빠까지 왜 그래...”장여진이 급히 분위기를 달랬다. “됐어, 됐어. 아빠가 화낸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 며칠 집에 있으면서 엄마 아빠랑 좀 지내자. 얼굴 못 본 지 얼마나 됐는데.”지민은 훌쩍이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장여진은 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훑어봤다. “살 빠졌네. 밖에서 제대로 못 먹었지? 주방에 보양식 해두라고 할 테니까 이따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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