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민하윤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도진이 보낸 문장 하나에 시선이 걸렸다.[사람 보내서 데리러 갈게. 어차피 같은 방향이야.]민하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민하윤은 하도진이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이미 안 간다고 했는데 설마 사람까지 보내 억지로 끌고 가겠다는 걸까.그때 이남주가 슬쩍 다가오자 민하윤은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 화면을 꺼 버렸다.“언니, 뭔가 수상한데요? 그것도 아주 수상하다고요.”이남주가 손가락으로 민하윤의 등을 콕 찌르며 물었다.“남자랑 문자하는 거죠?”그러자 민하윤의 얼굴이 굳었다.민하윤은 이남주의 손을 탁 쳐 내고 말이 새어 나갈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언니도 이제 서른인데 연애하는 게 뭐가 어때요?”이남주는 자칭 연애 박사였다.남녀 사이의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라 결국 목소리 조절에 실패했다.그 순간,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민하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뭔가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원래부터 표정이 좋지 않던 남자가 손을 한 번 들더니 발표를 끊었다.그러더니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방금 누가 떠들었죠?”부서 발표를 맡고 있던 송 행장은 그대로 굳어 버렸고 민망한 듯 헛기침이 새어 나왔다.프로젝트 제안서는 회사 측에서 문제를 한가득이나 잡아냈고 게다가 송 행장은 프로젝트를 직접 맡았던 사람도 아니라 PPT를 그대로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이미 좋지 않던 안색은 더 어두워졌지만 스타 라이트의 대표가 버젓이 앉아 있는 앞에서 함부로 성질을 낼 수도 없었다.이남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하필이면 이런 난감한 상황이었다.이 프로젝트는 원래부터 성사되기 어려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 판이 자기들 같은 실무진 때문에 망했다는 누명은 절대 쓸 수 없었다.그런 뒤집어쓰기야말로 직장인 목숨줄을 바로 끊어 버릴 일이었다.스타 라이트는 이제 막 떠오르는 스포츠 게임 회사였다.산하에 세계
‘오늘은 정말 귀신에 홀린 날이네. 누구보다 침착한 사람이 고작 한 마리도 못 낚았다는 게 말이 돼? 오히려 제일 성질이 급하고 생각 없는 놈이 대어를 낚아 올렸네. 이게 맞아?’송지훈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 봤지만 도무지 이해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그는 옆에서 한껏 우쭐해진 진호영을 힐끗 쳐다봤다.진호영은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들떠 있었다.당장이라도 자기가 잡은 잉어를 끌어안고 왈츠라도 출 것 같은 기세였다.‘설마 저 자식이 도진의 미끼에 약이라도 탄 걸까?’송지훈은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그는 곧장 연못가로 가 하도진의 낚싯대 끝에 달린 바늘을 잡아당겼다.빈 바늘이었다.‘빈 바늘이었다고? 미끼는? 지렁이는? 아니... 그래서 한나절 내내 입질이 없었구나. 여기서 강태공 흉내 내고 있었던 거네. 낚일 놈만 낚여라... 뭐 이런 건가?’송지훈은 손에 든 빈 바늘을 흔들며 하도진을 한번 돌아봤다.송지훈의 눈빛은 참 묘했고 의미심장하고 수상쩍기 그지없었다.그런데도 하도진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값이 수천만 원대의 낚싯대를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두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꼬고 있던 긴 다리를 풀고 느긋하게 일어났다.그러고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며 진호영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고추장 양념으로 해. 걔는 매운 거 좋아하니까...”‘걔가 매운 걸 좋아한다고? 누구를 말하는 거지? 도진이는 고추 하나도 안 먹는 사람이잖아.’하도진은 나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휴대폰을 들어 민하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러자 민하윤은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이를 바득바득 가는 원숭이 이모티콘 하나와 함께 도착했다.[저리 가세요.]하도진은 민하윤하고 상의나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고 그냥 제멋대로 혼자서 일정을 바로 확정해 버렸다.기분이 한껏 좋아진 하도진은 다시 다른 채팅창으로 넘어가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송지훈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차를 따라 준다는 핑계로 슬쩍 하도진의 옆에 붙었다.그러더니
민하윤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뭐라도 쏘아붙이려는 순간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잠금을 풀어 보니 이남주가 몰래 보낸 메시지였다.[어디예요? 스타 라이트의 대표님이 벌써 회의실에 들어오셨어요. 임원진도 다 와 있어요. 빨리 오세요!][임 행장님께서 연락해 보래요. 두 분이 싸우셨어요?]민하윤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락통을 든 채 본관 쪽으로 뛰어갔다.하도진은 허겁지겁 달아나는 민하윤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민하윤은 도시락과 가방을 1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 맡긴 뒤 바로 카드를 찍고 최상층 회의실로 올라갔다.이남주는 업무용 노트북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나란히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하이힐 굽이 흡음 카펫 위를 연달아 두드렸다.“스타 라이트의 대표님이 진짜 잘생겼어요. 전에도 신용대출팀에서 연합 회의할 때 스타 라이트 사람들이랑 몇 번 부딪힌 적 있는데 다들 성격 좋고 일도 깔끔해서 같이 일하기 편했거든요. 근데 대표님은 잘생기기는 했어도 진짜 까다로워요.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서 프로젝트가 진짜 엎어질 수도 있어요. 우리 부서 직원들이 몇 달 동안 고생한 게 다 물거품 될 판이에요. 이따가 발표하실 때 절대 저 사람 눈에 띄지 마세요. 본점 주주들도 다 왔고 중간 이상 간부들도 전부 회의실에 앉아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거의 틀어질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뒤집어쓸 수는 없잖아요. 그건 막아야죠.”이남주는 쉴 새 없이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민하윤은 눈썹을 살짝 모은 채 거친 숨과 콩닥콩닥 빨리 뛰고 있는 심장을 가라앉혔다.그러고는 손을 펴 노트북을 받아 들고 마지막으로 자기 차림새를 점검했다.“제 머리나 입술은 괜찮죠?”그러자 이남주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손가락으로 민하윤의 뺨 한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여기 하얀 게 뭐가 묻었어요.”민하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화장까지 지워질까 봐 덜컥 겁이 나 얼른 휴지를 꺼내
하도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민하윤의 얼굴을 감싸 쥔 뒤 가볍게 입을 맞췄다.“어때? 생각 다 했어? 네가 고개만 끄덕이면 내가 서 비서를 시켜서 바로 사직 처리하게 할게.”“싫어요. 제가 앞으로 30년도 더 일하면 은퇴할 텐데 그때 가서 도진 씨가 말한 사모님 같은 생활을 해도 안 늦어요.”민하윤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방금까지 다정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더니 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을 탁 쳐내며 말했다.“비켜 주세요. 저 진짜 늦어요.”“너처럼 멍청한 여자는 처음 봐.”하도진은 어이없다는 듯 숨을 들이켠 채 계단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가느다란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민하윤은 아직도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5센티가 되는 하이힐을 신고 걷자니 발걸음이 더 비틀거렸다.그때 서명인이 검은색 포르쉐 918 옆에 서서 민하윤의 앞을 막아섰다.“사모님, 타시죠.”“네? 저를 뭐라고 부르셨어요?”민하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서명인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말을 고쳤다.“민하윤 씨, 타시죠. 지금 출발하면 10시 반 전에는 은행에 모셔다드릴 수 있을 겁니다.”‘10시 반? 10시 반이라고!’민하윤은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조수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기사님은요?”민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다가 창문에 기대어 조심스레 물었다.“설마 서 비서님께서 저를 데려다주시는 건 아니죠?”그러자 서명인은 예의 바르게 미소만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그러더니 차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본능적으로 내리려던 순간, 하도진이 바깥에서 차 문을 붙잡더니 손으로 민하윤의 머리를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하도진은 서명인이 가져온 새 맞춤 정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온몸에서 상쾌하고 말끔한 기운이 돌았다.하도진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도진 씨가 직접 운전하시게요?”민하윤은 눈을 크게 뜬
너무 피곤한 나머지 민하윤은 꿈꿀 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민하윤은 두 팔로 하도진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민하윤이 조용하게 잠든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하지만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하도진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속눈썹에도, 코끝에도, 입술에도, 턱에도 차례로 입을 맞췄다.“읍... 아파요.”민하윤은 본능적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손으로 하도진을 밀어냈다.“따가워요.”하도진은 피식 웃었다.제 까슬한 수염이 예민한 민하윤을 찔렀다는 걸 알아차린 하도진은 손을 뻗어 민하윤의 허리를 살짝 꼬집었다.“난 회사에 나가야 해. 넌 좀 더 자.”민하윤은 웅얼거리며 몸을 뒤척였다.그러다가 반쯤 감긴 눈으로 물었다.“지금 몇 시예요?”하도진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9시 40분...”“네... 네? 뭐라고요!”민하윤은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그러다가 바로 뭔가 떠올랐는지 황급히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눈 뜨지 마세요!”하도진은 웃음을 터뜨렸고 느긋하고도 뻔뻔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봤다.“이제 와서 부끄러운 척하는 건 좀 늦지 않았어? 내가 안 본 데라도 있어? 응?”‘진짜 나쁜 사람이야!’베개가 손에 잡히자 민하윤은 바로 집어 던졌다.하지만 하도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베개를 받아냈다.분위기가 다시 묘하게 달아오르려는 기색을 보이자 민하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주 공손하게 두 손까지 모으면서 말했다.“부탁드릴게요. 저 오늘 지각하면 안 돼요.”하도진은 결국 또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정말 순순히 등을 돌렸다.“그래... 빨리 가... 안 볼게.”민하윤은 더 지체할 틈이 없었다.이불을 걷어내고 맨발로 바닥을 딛자마자 서둘러 움직였다.그러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한마디를 덧붙였다.“몰래 보면 안 돼요!”“허리 쪽에 있는 점이 진짜 예쁘네.”하도진
“미안해. 내가 술에 너무 취했나봐. 너한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나 때문에 놀랐다면 정말 미안해.”하도진은 비웃듯 눈을 내리깔며 일부러 몸을 숙여 민하윤의 목덜미와 쇄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민하윤은 이를 악문 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하도진이 더 선을 넘을까 봐 긴장한 탓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묘하게 굳어 버렸다.“하윤아, 듣고 있어? 나 아직 할 말이 있는데...”그러자 하도진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이마에 내려온 잔머리 끝에서 땀방울이 뚝 떨어졌고 까맣게 가라앉은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음침했다.그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할 정도였다.“저는... 선배, 저는 선배한테 화난 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냥 여기까지만 할게요...”민하윤은 다급히 임형섭의 말을 끊고 휴대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어 버렸다.“민하윤, 넌 지금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하도진은 민하윤의 두 무릎 바깥에 몸을 둔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싸늘한 얼굴에는 비웃는 기색이 옅게 번져 있었다.“도진 씨,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왜 남의 전화를 마음대로 받아요?”민하윤은 몸을 가린 채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러더니 하도진의 목덜미를 노려보다가 홧김에 입을 벌려 한입 물어 버리려 했다.그런데 마침 하도진이 움직이는 바람에 그대로 하도진의 목울대를 세게 깨물고 말았다.하도진은 낮게 신음을 삼켰다.그러더니 큰 손으로 민하윤을 받쳐 올리며 낮게 말했다.“하윤아, 늦었어. 이 불은 네가 붙인 거잖아.”민하윤은 깜짝 놀라 입을 떼었다.그러자 하도진의 목울대 위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이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그걸 확인한 순간, 민하윤은 괜히 불을 질렀다가 자기가 먼저 타 버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몸소 깨달았다.‘이걸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거구나. 내가 괜히 도진 씨를 건드렸다가 제대로 화를 자초한 거라고...’낡은 집에 불나는 게 괜히 무서운 게 아니었다.민하윤은 정신이 흐릿한데도 또렷했고 또렷한데도 자꾸만 아득해졌고 머릿속에는 이상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