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된다면 그녀가 한 짓들이 전부 까발려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상상만 해도 송민영은 두려움에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강한서에게 통하지 않자 바로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유현진은 아직 그 여자아이의 존재를 모르는 거지?”강한서는 느긋하게 고개를 들더니 휴대폰을 꽉 움켜쥐고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수많은 얼음 조각이 된 것 같은 그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느껴졌고 송민영은 저도 모르게 오한을 느끼게 되었다.그녀는 여전히 겁도 없이 말했다.“은서라는 아이 말이야. 유현진은 아직 그 여자아이 존재를 모르고 있는 거지? 몰래 그렇게 큰 딸을 뒀다는 거 유현진이 알기라도 하면 정말로 끝까지 너를 선택하고,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아?”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마저 느껴지지 않아 너무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송민영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네가 날 도와주지 않는다면, 은서의 존재를 내가 알릴 거야. 너 죽고, 나 죽고 한번 끝까지 갈 거야!”“너 죽고, 나 죽고...”강한서는 그녀가 한 말을 곱씹으며 음험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가당키나 해?!”송민영은 두려운 듯 살짝 움찔거리더니 이내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네가 날 도와주기만 한다면, 나도...”“지성거리 83번지.”강한서는 뜬금없이 주소를 읊었다. 그러나 송민영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송민영,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로 널 어쩌지 못할 거라 생각해?”강한서는 마치 저승에서 보낸 사자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은서의 존재를 알린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하지만 그것의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송민영은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 어차피 넌 법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강한서는 베란다 난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시도해 보든가.”“강한서, 내 충전기 어디에다 뒀어?”이때, 유현진의 목소리가
강한서는 거실에 서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유현진이 거실로 내려오는 모습에 그는 전화를 끊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찾았어?”“응.”유현진은 대답하긴 했지만,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는 것 같았다.“왜 그래?”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한서가 물었다.유현진은 그를 보며 말했다.“서랍에 유전자 검사, 그거 정말이야?”강한서는 멈칫하였다.“봤어?”유현진은 그를 째려보았다.“보라고 일부러 충전기를 그 안에 넣어둔 거 아니야?”보통 사람이라면 충전기를 쓰고 굳이 깊숙한 서랍 안에 넣어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강한서는 웃더니 대답했다.“그냥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그는 송씨 집안 사람들의 방법을 찬성하지 않았다.일말의 소식도 유현진에게 흘리지 않고 바로 찾아가는 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현진은 한동안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만약 송민영의 일로 유현진이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할 것이 아니었다면 그는 일찍 이렇게 했을 것이다.그는 원래 유현진이 그 자료를 발견하고 며칠 동안이나 혼자 끙끙 고민하다 그에게 물어볼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유현진도 아주 많이 심란했다.강한서는 혹여라도 그녀가 자료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아주 상세하게 만들어 넣어두었다. 그래서인지 그 자료에는 송민준뿐만 아니라 송민준의 친모 한아람의 자료도 있었고 그녀와 송병천, 그리고 송민준의 친자확인 검사서도 있었다.그녀와 송민준은 어릴 때만 닮아 있었지만, 한아람과는 지금도 똑 닮아 있었다. 눈썹뿐만 아니라 얼굴 곳곳이 다 닮아 있었다. 그녀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얼굴선이었다. 한아람의 얼굴선과 이목구비는 유현진보다 더 뚜렷했고 기품이 있었으며 더 온화해 보였다.어릴 때도 그녀는 다소 의문이었다. 그녀는 하현주뿐만 아니라 유상수와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학교 학부모 면담 때거나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도 전부 똑같은 말을 했었다. ‘너는
강한서도 그녀가 말한 엄마가 하현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현주가 이 일을 알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여하간에 하현주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은 유현진의 검진 결과가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유현진이 자신의 딸이 아닐 거라고 예상하였을 것이다. 유현진의 혈액형은 그들 부부 사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었으니까.강한서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민준이가 지금 알아보고 있어. 하지만 너에 대한 사랑은 거짓이 아닐 거야.”유현진은 또 한 번 침묵했다.너무나도 긴 침묵에 걱정되었던 강한서는 바로 입을 열고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유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방금 자료에서 본 건데, 그분이 돌아가신 날짜와 내 생일이 같더라. 혹시 나 낳고 바로 돌아가신 거야?”“응.”강한서는 대답했다.그러자 유현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나 때문에...”“너 때문이 아니야.”강한서는 바로 말허리를 잘랐다.“그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네가 세상에 나오길 바랐어. 하지만 언제나 뜻밖이 있기 마련이지. 이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네가 이 세상에 건강하게 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아주 큰 기쁨이야.”유현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나 머리가 조금 복잡해.”“괜찮아.”강한서는 그녀를 끌어안고 귓가에 뽀뽀했다.“네 마음이 정리되기 전까지 그 사람들을 안 만나도 돼.”“응.”유현진은 한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민준 오빠랑 나, 어릴 때 정말 많이 닮았네.”강한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주 많이.”“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거야?”“응.”강한서는 대답했다. 그는 심지어 그때 송민준과 한아람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여동생일까, 아니면 남동생일까 하며 맞춰보기도 했었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로 신기한 인연이었다.유현진은 민경하가 그간 묻지 못했던 것도 물었다.“그럼 나랑 결혼한 거, 설마 내가 민준 오빠랑 닮아서 그런 거야? 죽마고우이니까 포기가 안 되
“송여우가 잡혔어!”차미주는 너무 기쁜 나머지 나무 위에 있다는 것조차 까먹고 벌떡 일어났다.“난 송여우 인성만 문제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악랄한 짓까지 했을 줄이야! 역시 안 좋은 소문 돌던 연예인들은 뒤끝이 항상 이렇게 법으로 끝난다니까!”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성우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야, 너 얌전히 앉아 있어! 나뭇가지가 네 생각처럼 그리 단단하지 않아. 네 몸무게를 못 버티고 끊어질 거란 말이야!”그러나 차미주는 그가 말 한 글자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이미 송민영이 드디어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으로 가득했고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그 여자가 연예계에서 얼마나 갑질을 해 댔는데, 드디어 대가를 치르게 되었네! 이런 상황이면 징역형 몇 년이나 받을 수 있을까? 너무 솜방망이 처벌받아도 안 될 것 같은데.”차미주는 작은 입을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동료를 성폭행할 생각까지 하다니, 분명 세금도 떼먹고 있을 거야. 그 여자 방이진과도 사이가 좋았으니 어쩌면 같이 약도 했을지도 모르겠네! 안 되겠어, 나도 얼른 신고해 줘야지.”그녀는 이내 다시 나무에 앉더니 휴대폰을 고쳐 들었다.“탈세 신고하려면 어디에다 전화해야 하는 거지?”“126.”한성우는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며 재촉했다.“너 일단 내려와서 전화해. 위에서 그러는 건 위험해.”“알았어, 알았어.”차미주는 대답을 하면서 바로 번호를 꾹꾹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발밑에서 ‘빠직'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가 끊어진 것이다. 곧이어 차미주의 짧은 비명이 들리더니 그대로 나무에서 떨어지게 되었다.한성우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바로 손에 든 사과를 던지고 그녀를 받으러 다가갔다.그러나 옷깃조차 스치지도 못한 채 차미주는 잔디밭에 떨어지게 되었다.한성우는 그녀를 잡지 못한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재빨리 차미주 곁으로 달려갔다.“괜찮아?”차미주는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말했다.“아니 왜 사과를 땅에다 버려. 아프잖아.”나무는
“최소한 이 줄은 마저 다 따야 갈 수 있을걸.”차미주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흥, 그러길래 누가 따라오라고 했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으면 될 것을, 네가 굳이 따라와서 무료 노동을 해주겠다고 한 거잖아. 심지어 나까지 힘들게 만들어 놓고 말이야!”“...”한성우는 원래 아주머니 앞에서 잘 보이려고 했다.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차미주는 그를 데리고 시장으로 가서 편한 옷을 몇 벌 사려고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외출하기 직전에 마침 외출 준비하고 있는 차미주의 엄마 김경선을 마주치게 되었다.그는 아무 생각 없이 김경선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고, 김경선은 사과 농장으로 가서 사과 따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한성우는 바로 김경선에게 잘 보일 기회라고 생각해 스스로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그는 미래의 장모님에게서 점수를 따둘 생각에 차미주가 그에게 보낸 눈빛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렇게 과수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과 따는 것이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아무리 한 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고 해도 사과의 색깔과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과나무는 다른 품종과 다른 품종과 접목한 것이었기에 따면서 분류해 줘야 했다.두 사람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총 7그루의 사과를 땄고 부단히 허리를 굽히면서 나무에 오르기도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열심히 사과를 땄지만, 여전히 한 줄이나 남아있었다.차미주의 말에 한성우는 저도 모르게 변명했다.“난 아주머니께서 힘드실까 봐 우리라도 도와드리자고 말한 거야. 아주머니께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하시면 좋잖아.”“우리 엄마를 걱정해서라고? 너무 기뻐서 웃음밖에 안 나오네. 우리 둘의 무료 노동 덕에 엄마는 하루 알바비를 아끼게 된다고!”“...”그가 입을 열고 반박하려던 순간, 등 뒤로 온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둘이서 뭐 해요?”차미주는 깜짝 놀라더니 바로 몸을 일으켰다.“엄마.”김경선은 자외선을 피하고자 전신 무장한 상태
차미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할머니께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니신 거야.'한성우는 오히려 빨리 입을 열었다.“아저씨, 아주머니들 안녕하세요.”“그래그래. 도시에서 온 놈이라고 하던데, 인사성은 싹싹 바르고 좋네.”“아이고 참으로 잘생겼네. 키도 훤칠하니, 183인가?”한성우는 미소를 지으며 바로잡았다.“185.6이에요.”“아이고, 그렇게나 커? 사내 총각 이름은 뭔가?”“그냥 성우라고 불러주시면 돼요.”넉살이 좋았던 한성우는 바로 아주머니들과 섞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런 그의 모습에 차미주는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한성우는 인싸 중의 핵인싸였고 어디서든 잘 어울려 지냈기 때문이다.그녀는 물을 많이 마셨던 탓에 화장실에 가게 되었고 이곳엔 한성우만 덩그러니 남아 과일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아주머니들은 한성우가 참 잘생겼다며 이내 끌고 와 사과를 분리하는 일에 끼워주었고 덕택에 일도 한결 편해졌다.한성우는 그들에게 과일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면서 수다를 떨었다.“아주머니, 여긴 과일 분리하는 기계가 없는 거예요? 전부 수작업으로 직접 분리하시는 거예요?”“있지, 근데 그 기계는 크기만 분리할 수 있더라고. 이런 생채기가 난 것들은 분리가 안 돼. 그래서 직접 사람이 해야 해. 그래야 하나하나 포장 잘해서 상자에 넣을 수 있거든.”“그럼 생채기가 난 사과는 어떻게 처리하는 거예요?”“사과술이나 식초 만드는 곳에 보내지. 아니면 통조림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든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공장 하나씩은 소유하고 있어. 만들고 나면 전국 각지에 배송하는 거지 뭐. 그래도 남는 거 있으면 가져다가 돼지 사료로 쓰고 그래. 여기 올 때 알록달록한 지붕 봤지? 거기가 돼지농장이여. 이따 미주가 오면 데려가서 구경시켜달라고 해. 어차피 그거 다 미주네 것이여.”한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전부 미주네 농장이라고요?”“아, 미주가 말 안 한 거여? 여기 과수원도 전부 미주네 과수원이여.”“...”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이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미소마트의 최대 주주도 성이 차 씨였다.모든 정황이 딱딱 들어맞았다.한성우는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다.그는 그제야 왜 어젯밤 그가 한주시에서 산 선물을 김경선에게 건넸을 때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그가 산 송편 세트는 바로 미소마트에서 독점 판매하고 있던 명절 선물 세트였다. 그가 체면을 차릴 수 있을 거라며 산 선물 세트는 바로 마트의 주인이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그가 주인이 판매하던 세트를 사와 주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확실히 김경선이 그런 표정을 지을 만한 것 같았다.“아이고, 성우 총각. 미주랑 팔자 궁합은 봤어?”통통한 아주머니는 측은한 눈길로 물었다.정신이 든 한성우가 물었다.“팔자 궁합이요?”“아이고~ 미주가 아무것도 말 안 해준 거여?”한성우는 답답했다.“뭘 말해요?”“미주 엄마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미신을 철썩 믿거든. 사윗감도 팔자 궁합, 사주를 보고 선택할 거라고 했어. 사주가 미주랑 안 맞는 사주면 두 사람은 아마 이어지지 못할 거여.”“...”한성우는 자신이 김경선에게 온종일 잘 보이려고 노력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김경선은 사윗감을 사주로 고르기 때문이었다....송민영의 사건으로 팀도 촬영을 중단하게 되었다.제작진 단톡방에서는 이미 여주가 바뀐다는 소식이 떠돌고 있었고 송민영의 촬영 부분을 전부 다시 촬영하게 될 것이라 했다. 드라마 완성까지 아마 2주 정도 시간을 미루게 될 것이니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다행히 송민영 부분을 전부 찍기 전에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었다. 만약 모든 촬영을 마친 후 사건이 터진 것이라면, 절대 제날짜에 개봉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언제 촬영이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하간에 시나리오는 아주 좋았고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방영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아쉬운 일이었다.아직 송민영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제작진들도 급하게 다른 여
“어차피 집에 사람들이-”송민준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더니 격동된 어투로 말했다.“방, 방금 뭐라고 했어요?”그와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지만, 말을 더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오빠라고 했는데요? 뭐 적응 안 되면 전처럼 대표님, 아니면 민준 씨라고 불러드릴까요?”“...한서가 전부 알려준 거야?”“네.”유현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강한서가 오빠 어릴 때 사진 보여줬는데, 확실히 저랑 많이 닮았더라고요.”송민준은 이를 갈았다.‘이 개자식, 나랑 상의 한 번도 없이 말한 거야? 난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그는 나직하게 말했다.“그건 네가 아직 우리 어머니 사진 못 봐서 그래. 어머니가 너랑 더 닮았거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계시는 집에 있을 거야. 언제 다시 그쪽으로 가게 되면 내가 그때 보여줄게.”전에 했던 영상통화가 떠오른 유현진이 나직하게 물었다.“오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서도 이 일로 찾아오신 거야?”“그래.”송민준은 더는 숨기지 않았다.“원래 그날에 널 만나려고 했었는데, 그런 일이 생겨서 못 만나게 되었지. 그래도 알아서 다행이야. 우린 얼른 너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거든. 세상에 네가 우리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도 공개하면 그런 피곤한 일도 더는 엮이지 않게 될 거야.”송민준이 말한 피곤한 일은 당연히 유현진의 이혼에 관해 뒤에서 쑥덕대는 소리였다.유현진은 강한서와 이혼한 후에 이런저런 소리를 많이 듣게 되었었다. 그녀는 처음에 다소 신경 쓰였지만 자주 듣게 되니 무감각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녀보다 더 그런 소리에 신경 쓰고 있었고 파티나 행사에 갈 때마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되니, 항상 집에 돌아오면 화를 냈었다.“오빠, 그 일은 잠깐 미뤄두면 안 돼요?”유현진은 그와 상의했다.“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만약 미리 제 출생을 밝힌다면 제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거든요.”송민준은 머리가 아주 좋았다. 그녀의 말에 바로 알아들은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이번 일의 경위를 할 번 곱씹은 홍혜림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해금은 항상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조차 없었다. 조금만 먼저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으면 도와줄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서해금은 늘 홍혜림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는 타이밍에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당연히 홍혜림은 평소처럼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손길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서해금이 어떤 인간인데?’서해금은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지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와줄 리가 없어.’‘애초부터 이 모든 것이 서해금이 꾸민 짓이라면 말이 되긴 하지.’‘하지만 대체 왜?’홍혜림은 순간 자신에게도 조향대회의 투표권이 있다는 사실을 또 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서해금 의도를 파악하게 된 홍혜림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가식적인 X. 감히 날 두고 수작을 부려?’생각에 잠긴 홍혜림이 인상을 폈다 찌푸렸다를 반복하며 가끔은 이를 악무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윤이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홍혜림이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역겨운 일이 떠올라서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아직 어린 나이라 홍혜림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한 진윤이 말했다.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부정행위도 하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제가 신고까지 했으니 저희가 여기저기 부탁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희에게 사정을 해야겠죠. 엄마도 이젠 회사로 나가 보세요.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너만 괜찮으면 엄마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아. 회사에는 네 아빠와 형이 있어. 내가 할 일은 널 지키는 거야.”그 말에 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떠올렸다.“너한텐 좋은 부
진윤: ...진윤이 흥, 콧방귀를 꼈다. “네가 얘기 안 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한성 그룹 대표지?”진윤이 머리가 떨어질세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엄마,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언변이 장난이 아녜요. 게다가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요. 전엔 우리 형이 세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형도 그 형님 앞에선 꼬마에 불과한 것 같아요.”진윤의 뒤통수를 툭 치려던 홍혜림은 그의 머리에 감싸진 붕대를 보고는 시선을 내려 엉덩이를 차버렸다. “형이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팔이 밖으로 굽어?”진윤이 바지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좋은 건 당연히 형이 더 좋죠.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형님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강한서를 향한 콩깍지가 두껍게 쓰인 진윤의 모습에 홍혜림은 괜히 질투가 났다. 하지만 상대방이 강한서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정인월이 직접 교육한 아이였으니 성품이 우수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진수 그룹과 한성 그룹은 같은 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탓에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어 연계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윤은 한성 그룹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있었고 강한서는 IT 업계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그러니 강한서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진윤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홍혜림은 강한서가 아무 이유 없이 진윤을 도울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서가 여자친구 대신 자신에게서 서해금의 일을 알아내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홍혜림은 그 일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를 지고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한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한 적도 없어 오히려 홍혜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 대표에게 우리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은근슬쩍 오 교수님을 귀띔하게 한 것도 너의 그 스승님 생각인 거야?”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도와주겠다고
입가를 파르르 떨던 홍혜림이 진윤의 손을 툭, 쳐냈다. “저리 가. 엄마한테 그런 농담하지 마.”진윤이 웃는 얼굴로 다가가 홍혜림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러자 홍혜림이 진윤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얌전히 앉아있기나 해. 넌 애가 다치고도 얌전히 있지를 못 해.”잠시 말이 없던 홍혜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신고했어? 오 교수님께도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인데 이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엄마, 만약 학교 측에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었다면 진위 여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얼른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을 거예요. 저희가 오 교수님께 부탁할 시간 같은 건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요.”“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인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고 하겠어요?”진윤의 말에 홍혜림이 멈칫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학교에서 너한테 처분을 내렸다는 말이 가짜라는 얘기야?”진윤이 말했다. “엄마, 서화 대학은 엄마와 아빠가 수많은 인맥과 돈을 들여 고르고 고른 대학이에요. 업계에서의 명성도, 학교 분위기도 말 할 것 없이 좋고요. 오랜 세월을 지내며 명성을 쌓아온 학교예요. 그만큼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는 얘기잖아요.”“그런 학교가 고작 이런 여론에 궁지로 몰려 학생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지금은 예전과 달라요. 요즘은 순식간이면 소문이 퍼진다고요. 이런 일은 조금만 미숙하게 처리해도 오히려 힘들게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봐도 학교 측에서는 함부로 저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편이 학교의 명성을 지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잠시 조용하던 진윤이 말을 이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학교 이사진이라면 부정행위가 사실이었다는 결론과 부정행위가 루머였다는 걸론 중 어떤 게 신입생 모집에 더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홍혜림이 미간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