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53화. 봄손님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5 19:02:49

제 발로 이어지러 온다더니— 온 것은 실이 아니라, 행렬이었다. 십 리 밖에서부터 소문이 먼저 도착했다.

남문 저자의 아이들이 관도까지 마중을 나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왔다. 수레마다 기름 먹인 남색 포장이 덮였고, 방울 단 노새들이 끌었으며, 맨 앞 수레에는 경성에서부터 모셔 왔다는 화분— 아직 망울도 안 맺힌 모란 화분이 비단 방석 위에 실려 있다 했다.

수레가 열둘, 호위가 서른, 시비만 여덟이라 했다. 노강은 그 숫자를 받아 적으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감찰의 행렬은 창끝이 백이라 무서웠는데, 이번 행렬은 수레가 열둘이라 무서웠다. 창은 세우면 그만이나, 수레 열두 대의 손님은 재워야 하고 먹여야 하고— 무엇보다, 왕야께 아뢰어야 했다.

"허 승상 댁 여식이 도착하였사옵니다."

장계를 읽던 눈이 들리지도 않았다.

"별채."

"예. 한데 저— 그 별채가······ 왕비마마 처소와 담 하나 사이온데."

"먼 별채."

먼 별채는 겨우내 비어 곰팡내가 났다. 노강은 반나절 만에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80화. 먼저 간 이름

    내관의 이름은 그날 저녁 세 갈래로 남쪽을 향했다.하령현 장꾼 하나는 소금값 장부 여백에, 농부 하나는 쟁기 주문서 뒤에, 떠돌이 의원은 약첩 봉투 안에 적었다. 자녕궁 내관 조복. 현령의 발을 때리고 처자를 수레에 묶은 자.온보요는 그 세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본 것을 본 대로 적고, 보지 못한 것은 비워 두라 했다. 똑같은 증언은 한 사람이 시킨 글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눈이 같은 매 자국을 가리켜야 했다.소금 장수는 내관의 죄목을, 농부는 아이의 잠옷 색을 기억했다. 의원은 현령의 상처가 하루 된 것이 아니라는 소견을 덧붙였다. 셋의 글은 달랐으나 한 사람의 이름에서 만났다.증언 한 벌은 하령현 사당 들보에 감추고, 한 벌은 동쪽으로 가는 장꾼에게, 마지막 한 벌은 호송대 문서 궤에 넣었다. 내관이 뒤쫓아 와 한 사람을 막아도 나머지 두 갈래는 살아남을 방식이었다.소월백이 마지막 종이를 접었다."왕비마마의 길은 사람을 많이 빚지게 합니다.""살아 있는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죽은 증인은 못 갚고요.""제가 황제가 되면 첫째로 무엇을 갚아야 합니까.""오늘 이름을 써 준 사람들입니다."진묵이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왕 되기 전부터 갚을 놈이 천지네. 오래 살긴 글렀어.""왕야께서는 빚이 없으십니까.""하나."그의 손이 온보요 가마 발을 들었다."평생 갚아도 모자라."소월백은 더 묻지 않았다. 온보요는 가마에 오르며 진묵의 손등을 한 번 눌렀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 사내의 입매가 느슨해졌다.하령현을 벗어난 행렬은 가벼웠다. 버린 짐 자리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노강은 남은 식량을 세어 저녁마다 죽의 물을 늘렸다. 진묵은 불평 없이 먹었으나 온보요 그릇에만 건더기를 골라 놓았다."왕야 그릇이 물뿐입니다.""물도 죽이야.""거짓말하실 때 목소리가 더 퉁명스러워집니다."보요가 건더기 절반을 도로 덜어 주자 그는 싫다는 말 없이 먹었다. 노강이 놀라 쳐다보았다. 북강에서는 의원이 세 번 청해도 약 한 사발을 거부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79화. 맨발

    하령현령의 버선에는 피가 배어 있었다.급히 뛰어나오다 돌에 베인 것이 아니었다. 발바닥 전체에 가는 매 자국이 겹쳐 있었다. 그는 성문 가운데 엎드리며 군졸들에게 쇠뇌를 내리라 손짓했다."쏘지 마라. 이분들은 황명으로 호송 중이시다."별장이 당황해 창을 거두었다.온보요는 현령 뒤의 검은 가마를 보았다. 발이 푸른 내관 하나가 주렴을 걷고 있었다. 태후전 상궁과 같은 잿빛 옷, 허리에는 자녕궁의 붉은 패가 달렸다."현령께서는 밤새 새 법을 배우셨습니다."내관이 웃었다."황자 사칭범을 돕는 관리는 본인부터 매를 맞고, 처자도 노비가 된다. 그래도 문을 열겠다면 열어 보시지요."현령의 아내와 두 아들이 검은 가마 뒤 수레에 묶여 있었다. 아이 하나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아내의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큰아들의 관자놀이에는 피가 굳었다. 내관은 사흘 전부터 가족을 관아 마구간에 가두고 매일 새벽 문을 열 것인지 물었다.성문 위 군졸들이 눈을 피했다. 현령의 처자가 노비가 되는 광경을 보여 주면, 다음에는 명을 거절할 사람이 없었다.진묵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저 내관 혀를—""왕야."온보요가 부르자 그의 말이 끊겼다.내관이 비웃었다."병부도 군사도 없는 왕께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진묵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온보요를 제 뒤에 세우고 손만 내밀었다. 보요가 그 손바닥 위에 하령현 현상 방문을 올렸다.그녀는 현령에게 물었다."저희를 들이면 가족이 죽고, 막으면 회주현 공문을 어기게 됩니다. 어느 쪽도 현령의 죄가 되겠군요."현령은 피 묻은 발을 감추지 못했다."소관이 못나서 그렇습니다.""아닙니다. 죄를 고를 수 없게 만든 자가 죄인이지요."온보요는 제 아버지를 떠올렸다. 사람 하나를 구할 것인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인지 고르게 하여, 어느 쪽도 죄로 만드는 판이었다.그녀는 현령 앞에 무릎을 굽혔다. 진묵이 허리를 받치려 다가왔으나 보요가 눈으로 멈추게 했다."문을 열어 달라 청하지 않겠습니다. 현령의 백성이 오늘 장에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78화. 온씨

    붉은 종이에는 왕비도 마마도 없었다.온보요. 온가에서 지운 여식. 황자 사칭범을 꾸며 삭왕의 병권을 훔치고 선황의 글을 위조한 요녀. 산 채로 관아에 넘기면 은 오백 냥, 죽은 몸이라도 삼백 냥.그 아래에는 고발자의 죄를 묻지 않는다는 한 줄도 있었다. 현상금은 길 위 모든 사람에게 서로를 의심하라고 내린 명이었다.수레를 밀던 농부 둘이 거리를 두었다. 은 오백 냥이면 흉년에도 두 세대가 먹었다. 아무도 그 숫자를 못 본 체할 수 없었다.진묵이 종이를 기둥째 뽑았다.나무가 땅에서 우지끈 뜯겼다. 근처 장사꾼들이 한꺼번에 물러났다."쓴 놈 손부터 찾아."노강이 종이 끝을 살폈다."형부와 예부 인장이 함께 찍혔습니다. 하령현에서 쓴 글은 아닙니다.""그럼 찍은 놈 전부."온보요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다시 세워 두세요.""네 목값이 붙었어.""그러니 모두 보게 해야지요."그녀는 찢어진 종이를 펴서 거름 수레 판자에 붙였다. 현상금 글 아래에 회주현 관인이 찍힌 스물셋의 방면 명문과 청하현의 백옥 인장 기록을 나란히 걸었다."관아가 지우려는 이름과 다른 관아가 살린 이름을 함께 보여 주세요. 어느 쪽이 거짓인지 백성이 고르게요."보요는 방문 끝에 제 손으로 한 줄을 더 썼다.온보요는 현재 다섯 고을의 공로를 거쳐 형부로 가는 중이며, 숨지 않는다.그리고 온가의 작은 인장을 찍었다. 요녀라 불린 사람이 제 이름을 지우지 않고 도리어 길 위에 내건 순간, 웅성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수레를 밀던 늙은 농부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은 오백 냥이 탐나기는 합니다."진묵의 시선이 칼처럼 돌아갔다. 노인은 무릎이 떨리면서도 말을 이었다."하지만 마마를 넘긴 돈으로 산 쌀을 내 손자에게는 못 먹입니다. 다음 마을까지는 약조대로 밀겠습니다."뒤로 물러났던 두 사람도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의심을 없앤 것은 위세가 아니라, 서로의 입으로 값을 거절하게 만든 공개된 이름이었다.소월백도 제 죄인 방문을 떼어 옆에 붙였다. 그의 얼굴을 그린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77화. 봄갈이

    닫힌 역원 앞에는 말 대신 쟁기들이 서 있었다.셋째 고을 하령현의 농부들이 관도 양편에 모였다. 소식을 들은 이들이 제 말을 끌고 나온 것이었다. 등에는 오래된 안장과 봄 흙이 함께 얹혀 있었다.늙은 농부가 고삐 셋을 진묵 앞에 놓았다."전하께서 북강 군량을 백성에게 돌리셨다 들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은 이것뿐이오니 타고 가십시오."진묵은 말들의 다리를 먼저 보았다. 한 필은 배가 불렀고, 한 필은 오른쪽 뒷발을 절었으며, 가장 튼튼한 갈색 말의 발굽에는 젖은 논흙이 두껍게 붙어 있었다."이놈 빼면 밭은 누가 가나.""사람이 끌면 됩니다.""사람 배는 흙 먹고 차나."늙은 농부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해 늦장마로 볍씨 절반을 썩혔고, 올해 갈지 못하면 관아에 종자로 꾸어 온 곡식까지 갚을 수 없다고 했다. 말을 내주겠다는 말은 충정이 아니라 가족의 가을을 통째로 내놓는 말이었다.진묵은 갈색 말의 굽에 붙은 흙을 손가락으로 떼었다. 축축한 흙 속에 막 돋은 풀뿌리가 섞여 있었다."내가 군사였을 때는 말을 보면 다리부터 셌다. 몇 리를 달리는지, 갑옷 몇 근을 견디는지."그가 흙을 도로 발굽 아래에 눌러 붙였다."지금은 이놈이 사람 몇을 먹이는지부터 세야겠군. 돌아가서 밭 갈아. 그게 나를 돕는 거다."농부가 마침내 고삐를 거두었다. 미안함 대신 해야 할 일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그는 고삐를 받지 않았다. 농부들이 웅성거렸다. 도움을 거절당한 낯이 서운하기보다 불안했다. 왕을 돕지 못한 죄가 될까 두려운 얼굴들이었다.소월백이 앞으로 나왔다. 쇠사슬이 흙 위에 가는 골을 냈다."말을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이름 때문에 벌을 받으면 그때는 내게 값을 물으십시오.""황자가 맞으십니까."누군가 물었다.소월백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경성으로 가는 길입니다."온보요가 농부들 뒤의 수레를 보았다. 빈 거름 수레 여섯이었다. 말 없이도 사람이 밀 수 있고, 역마로 치지 않아 교지에 걸리지 않았다."사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76화. 흑마

    흑마의 안장에는 진묵 대신 온보요의 편지가 올랐다.동이 트기 전, 일영이 검은 융복 위에 역졸의 누런 겉옷을 걸쳤다. 진묵은 말 배 아래 끈을 직접 조이고 발굽의 편자를 하나씩 두드렸다. 말은 주인의 손을 알아보고 콧김을 길게 뿜었다.온보요가 봉한 편지는 두 통이었다. 하나는 형부 옥의 아버지에게, 다른 하나는 큰오라비에게. 안에는 구해 내겠다는 약속도 도망치라는 청도 없었다.아버님이 깨뜨리신 벼루는 받았습니다. 신첩은 다섯 관인을 모두 가지고 가겠습니다.그 한 줄이면 아버지는 딸이 무슨 길을 택했는지 알 터였다.진묵은 벼루 조각을 기름종이에 싸서 일영의 품에 넣었다."노인에게 보여 주고 도로 가져와.""예.""손에 상처 하나 더 있으면 형부 문부터 부숴."온보요가 옆에서 말했다."문을 부수지는 마세요.""그럼 문지기만.""왕야.""안 부숴."일영은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소월백이 쇠사슬 찬 손으로 흑마 목을 쓸었다."전하의 말이면 닷새 길을 사흘에 끊겠군요.""이틀.""사람이 먼저 죽겠습니다.""저 말은 사람 죽을 때까지 안 달려. 먼저 내던져."일영의 낯이 잠깐 굳었다. 열 해 가까이 전장을 함께한 말이 기수를 버리고 혼자 돌아온 적이 두 번 있었다고 노강이 말했다. 한 번은 진묵이 화살을 맞았을 때, 한 번은 얼음 강이 갈라졌을 때였다.진묵은 일영의 신발 안쪽에 얇은 은전 다섯 닢을 꿰매 넣었다. 역패를 빼앗겨도 말을 갈아탈 돈이었고, 시신을 거둘 사람이 없어도 이름을 남길 값이었다. 이어 제 손가락의 검은 옥가락지를 빼 주었다. 병부를 반납한 뒤에도 북강 장수들이 알아보는 마지막 표식이었다."형부 안에 못 들어가면 온가 큰아들에게 줘. 그놈도 못 만나면 북문 약방에 맡기고. 셋 다 막혔으면 태워. 적 손에는 주지 마.""왕야께 돌려드릴 물건은 말과 가락지와 벼루, 셋입니까.""아니."진묵이 일영의 어깨끈을 당겨 조였다."네놈까지 넷이다. 하나라도 빼먹으면 내가 직접 찾으러 간다."일영이 이를 드러내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75화. 부군의 몫

    깨진 벼루 조각은 밤이 되자 진묵의 허리 주머니에 들어갔다.회주현을 떠나기 전 일행은 버려진 염색장에 몸을 눕혔다. 물 빠진 쪽빛 천들이 들보에 걸려 있었고, 마른 쪽 냄새가 찬 바닥에서 올라왔다. 진묵은 가장 안쪽 방에 이불을 셋 겹 깔았다.그는 바닥의 찬 기운을 확인하고 화로까지 직접 옮겼다. 놋대야에는 끓인 물과 찬물을 섞고 손목으로 온도를 쟀다. 지나치게 익숙한 손이었다."이런 일도 해 보셨습니까."소월백의 물음에 진묵이 눈도 들지 않았다."내 부인 수발드는 데 네 허락이 필요하냐.""익숙해 보이셔서 여쭈었습니다.""오늘 익숙해졌어."온보요는 웃음을 눌렀다. 물을 섞을 때마다 그녀 낯을 흘깃거린 횟수를 다 보았다.온보요가 문턱을 넘자 그가 말없이 허리를 안아 들었다."걸을 수 있습니다.""알아.""그런데 왜 안으십니까.""내가 할 수 있어서."소월백이 뒤에서 헛기침했다. 진묵은 일부러 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왕이 되겠다 했으면 남의 부인 침소 앞에서 서성이지 마.""제 방이 이쪽입니다.""바꿔.""왕야."온보요가 낮게 부르자 진묵은 문을 닫는 것으로 끝냈다. 닫힌 문밖에서 소월백의 웃음이 짧게 났다.방 안에는 쪽빛 달빛이 들었다. 진묵은 그녀 비녀를 빼고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풀었다. 낮 동안 단단히 틀어 올렸던 머리가 어깨 아래로 무너지자, 그제야 온보요의 등이 조금 굽었다."속이 불편하냐.""아침보다는 낫습니다.""허리는.""조금 무겁고요."그는 따뜻한 수건을 짜 그녀 발목부터 닦았다. 걷지 않았는데도 흙먼지가 발등까지 올라와 있었다. 보요가 발을 빼려 하자 손가락이 복사뼈를 가볍게 감쌌다."가만있어.""신첩이 할 수 있습니다.""그래도 내가 해."말은 거칠었으나 엄지는 부은 자리를 누를 때마다 힘을 늦추었다. 보요가 따갑다고 하면 곧장 손이 멎었다.그는 그녀를 제 무릎 사이에 앉히고 손바닥으로 허리 아래를 천천히 눌렀다. 전장을 누르던 손이 숨 하나마다 힘을 바꾸었다. 아픈 자리를 찾으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