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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1 15:07:06

그곳에는 붉은 장미가 자수된 칠흑 같은 고급 비단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금실로 짠 우아한 머리채가 촛불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고, 짙은 베일 너머로 드러난 백옥 같은 피부와 매혹적인 붉은 입술은 좌중의 숨을 멎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밀레디 데 윈터.

리슐리외 추기경의 그늘이자,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치명적인 여 스파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밀레디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주막 안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칠흑 같은 속눈썹 아래 자리 잡은 푸른 눈동자가 삼총사를 지나쳐, 그들 사이에서 가장 앳되면서도 오만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다온에게 머물렀다.

'저 소년인가? 숲속에서 친위 대원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가지고 놀았던 그 이상한 검객이?'

밀레디의 입꼬리가 자극적인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쥔 채, 마치 길을 잃은 고귀한 귀족 영애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다온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아아, 고귀한 국왕 전하의 총사대원 신사분들이셨군요. 소란스러운 시골 주막에 이토록 훌륭한 기사님들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밀레디의 목소리는 마치 잘 가다듬은 바이올린 현에서 흘러나오는 음율처럼 달콤하고 매혹적이었다.

포르토스와 아라미스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모자를 조아리며 경의를 표했다.

"아름다운 레이디, 이런 누추한 곳에서 당신처럼 눈부신 분을 뵙게 될 줄은 몰랐군요."

아라미스가 신사다운 태도로 응대했지만, 다온은 밀레디의 일거수일투족을 펜싱 피스트 위에서 상대를 탐색하듯 매섭게 관찰하고 있었다.

밀레디는 시선을 슬그머니 다온에게 옮겼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장미꽃을 살랑거리며 다온의 바로 옆자리로 다가왔다. 짙은 장미 향수 냄새 뒤로 아주 미세하게 풍겨오는 금속성 냄새... 그것은 소독약이나 기름이 아닌, 암살용 독약과 은장도의 냄새였다.

"젊은 기사님, 외지인이신가요? 눈빛이 파리의 기사들과는 전혀 다르군요.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생의 매처럼 날카롭고... 아름다워요."

밀레디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다온의 어깨깃을 살짝 스치며 중얼거렸다. 그 스킨십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제3자가 보기에는 가벼운 흠모의 표시로 보였지만, 다온은 그 손가락 끝이 자신의 경동맥 부근을 정확히 지향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다온은 피식 웃으며 조금의 동요도 없이 밀레디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채 멈춰 세웠다.

착.

다온의 손가락이 밀레디의 맥박이 뛰는 요골 동맥을 정교하게 눌렀다. 밀레디의 푸른 눈동자에 미세한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다온의 악력은 부드러웠으나, 밀레디가 손에 쥐고 있던 장미 줄기 속의 은밀한 암살 침을 발동시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봉인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과찬을 해주시는군요. 하지만 귀족 영애의 부드러운 손 치고는 손가락 마디에 검 자루를 쥔 굳은살이 지나치게 잡혀 있으시네요. 혹시 장미 가시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를 다루시는 건 아닌가요?"

다온의 낮은 목소리가 밀레디의 귓가에 작게 울렸다.

밀레디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수많은 정적과 사내들을 자신의 아름다움과 피상적인 미소로 농락해 왔던 그녀였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체를 이토록 단번에, 그것도 겨우 시골에서 올라온 앳된 소년에게 간파당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자... 대체 뭐지? 단순한 검객이 아니다. 내 동작의 의도를 전부 읽고 있어!'

밀레디는 눈빛을 살짝 가다듬으며 매혹적인 미소를 더욱 짙게 띠었다.

"어머나, 무례하기도 하셔라. 시골 신사분은 장미를 건네는 여인의 손길도 이렇게 거칠게 다루시나요? 기사도 정신이 조금 부족하신 것 같군요."

"위험한 가시를 품은 장미라면 꺾기 전에 줄기부터 잡는 것이 제 스타일이라서요. 유감스럽게도 전 목숨을 건 경기를 수없이 치러본 선수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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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온은 밀레디의 손을 살며시 놓아주며, 그녀가 들고 있던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장미 꽃잎을 살짝 매만지며 그녀를 도발하듯 바라보았다."하지만 레이디의 아름다움만큼은 진짜군요.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독이 없는 진짜 장미를 기대하겠습니다."밀레디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이 남자는 지독하게 위험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완벽한 가면을 단숨에 꿰뚫어 보고 당당하게 받아치는 이 낯선 소년에게 이상할 정도의 강렬한 자극과 호기심이 불타올랐다.---그 팽팽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주막 바깥에서 들려온 거친 포효 소리였다.쿠탕탕!주막의 육중한 나무문이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빗물과 진흙을 뒤집어쓴 십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레이피어와 단검을 빼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문양이 어둡게 새겨져 있었다.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기괴한 인상의 사내, 추기경의 오른팔인 로슈포르 백작이었다."찾았다! 왕실 총사대의 쥐새끼들과 가스코뉴의 놈팽이!"로슈포르의 차가운 고함에 주막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테이블 밑으로 숨거나 창문을 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아토스가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뽑아 들었다."로슈포르! 추기경의 습격대가 이제는 시골 주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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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이이익!숲속에서 번개 같은 신영이 튀어나왔다.콰아앙!친위대장의 레이피어가 아토스의 몸에 닿기 직전, 미지의 검날이 섬뜩한 마찰음을 내며 친위대장의 칼끝을 허공으로 거칠게 쳐올렸다."뭐냐!"친위대장이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 선 것은 갈색 가죽 베스트를 입은 앳된 얼굴의 청년, 강다온이었다.다온은 완벽한 엔 가르드 자세를 잡은 채,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게 친위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비겁하게 뒤에서 노리는 건 체육대회에서도 감점 대상이지. 안 그래?"아토스가 놀란 눈으로 다온을 바라보았다."아이야, 넌 누구냐? 여긴 위험하니 물러서라!"다온은 아토스를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위험해 보이는 건 그쪽인 것 같은데요? 총사대원 신사분들, 가스코뉴의 시골내기 하나쯤 도움이 되어도 괜찮겠습니까?"포르토스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좋아, 꼬맹아! 뒤통수나 조심해라!"친위대장이 이빨을 드러내며 다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놈이 감히 추기경 전하의 일에 끼어드느냐! 저놈도 함께 베어라!"친위대원 두 명이 즉시 목표를 바꾸어 다온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왼쪽 사내가 상단을 노리고 크게 베어 왔고, 오른쪽 사내가 하단을 노리고 직진 찌르기를 날려 왔다.보통의 중세 검객이라면 칼을 크게 휘둘러 막으려 했겠지만, 다온은 현대 스포츠 펜싱의 최첨단 이론과 실전을 몸에 익힌 정점의 선수였다.'상단의 베기는 동작이 너무 크다. 하단의 찌르기는 손목의 각도가 비뚤어졌어.'다온의 눈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다온은 스텝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아주 미세하게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파리(Parry, 막기) 4번 동작!챙!다온의 칼날이 정교한 각도로 상대의 칼날을 받아내어 바깥쪽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곧바로 전신을 스프링처럼 튕겨 내며 찌르기로 전환했다. 리포스트(Riposte)!푸욱!"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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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 착, 착!움직임에 단 0.1초의 지체도 없었다. 완벽했다. 아니, 완벽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발목의 신축성과 반응 속도가 기적처럼 회복되어 있었다.다온은 그제야 자신의 차림새를 둘러보았다.체육복 바지와 샌들 대신, 튼튼한 갈색 가죽 장화와 두꺼운 리넨 셔츠, 그리고 검은색 가죽 베스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는 묵직한 철제 스파드롱 형태의 힐트가 달린 길고 날카로운 레이피어 한 자루가 차여 있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다온은 허리춤의 칼을 스르륵 뽑아 들었다. 스포츠 펜싱에서 쓰던 유연하고 가벼운 펜싱 칼과는 차원이 다른, 실제 사람을 베고 찌를 수 있는 날카로운 진검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칼을 잡은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과 무게 중심은 마치 수십 년 동안 이 칼을 다뤄온 것처럼 익숙했다.가죽 베스트 안쪽 주머니를 뒤지자 붉은 밀봉 왁스가 칠해진 두툼한 양피지 편지 한 장이 나왔다. 편지 봉투 표면에는 미려한 라틴어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국왕 전하의 총사대장, 트레빌 경 앞.가스코뉴의 귀족 맹장 달타냥의 아들, 다온 데 달타냥을 추천하나이다.]편지를 읽은 다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트레빌 경? 가스코뉴? 달타냥?"다온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호흡이 가빠졌다.'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건가? 그것도 주인공인 달타냥의 역할로?'그것이 환상이든 꿈이든 현실이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그를 평생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발목 부상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손에 다시 칼이 쥐어졌다는 사실이었다.다온의 입꼬리가 천천히 호선을 그렸다.'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다시 제대로 칼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소설 속이든 지옥이든 상관없다.'바로 그 순간, 숲속 깊은 곳에서 챙강거리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거기 머물러라! 찰스 추기경 전하의 명이다! 그 무기를 거두지 못할까!""하! 추기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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