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죽어납니다: 하늘 위의 낙화(落花)

그녀에게 죽어납니다: 하늘 위의 낙화(落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By:  요정리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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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의 처절한 사투, 그 끝에 남은 것은 하늘로 밀려난 도시 '벽류진'과 검게 타들어 간 지상의 대지뿐이었다. 벽류진의 7명의 무사들에게 그녀, 야츠키는 무엇인가. 세상을 멸할 도깨비의 혈통인가, 아니면 하늘 위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희망인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혹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칼을 쥐는 7명의 남자들. "나의 밤을 오직 당신으로만 채우고 싶습니다." 어떤 이는 헌신으로, 어떤 이는 독점욕으로 그녀의 곁을 파고든다. 지상이 다시 생명의 빛을 되찾기까지 500년.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독(毒)이고, 누군가에겐 유일한 희망인 여자. 야츠키는 과연 누구의 곁에서 안식을 찾게 될 것인가. 전장의 흉터를 공유한 그들의 비밀스러운 밤은 오늘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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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구름 위의 도망자들

제1화

150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짧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땅’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상을 요괴들에게 내어준 그날 이후, 인류가 기워 붙인 하늘 위 징검다리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악력으로 짓이겨! 도깨비의 가죽은 바위보다 단단하다!”

전장은 승리를 향한 진군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본디 지하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햇빛조차

보지 못하던 괴물들은, 겁도 없이 지상을 집어삼킬 야욕으로 기어 올라왔다. 놈들은 인간의 살점을 씹어 삼킬수록 뱀처럼

허물을 벗고 더 단단해졌다. 

머리를 잘라도 재생했고, 낮이 되어도 죽지 않았다.

무사들은 피로 물든 칼자루를 놓지 못했다. 철퇴가 뼈를 으스러뜨리는 둔탁한 소리, 시퍼런 칼날이 도깨비의 살점을 파고들 때 나는 비릿한 파열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도깨비의 이빨과 손톱이 갑옷을 긁어대며 내는 ‘끼이익-’ 하는 금속음은 무사들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지키다가 손목이 잘려 나가는 것은 차라리 양호했다. 동료의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사들은 멈출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징검다리는 무너지고 뒤에 남은 가족들은 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땅이 갈라지고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무사와 도깨비는 서로의 목을 조른 채 끝까지 추락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광기에, 도리어 도깨비들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기이한 풍경조차 연출되었다.

참혹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동료가 죽어 있었고, 매일 저녁에는 새로운 어린 동료가 빈자리를 채우러 칼을 잡았다. 비릿한 피 냄새는 하늘 위 대기 속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막사 안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팔을 동여매며 내일의 칼을 갈았다.

끝내 도깨비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지상은 놈들의 발악으로 지각이 뒤틀려 갈라졌고, 그나마 숨 쉴 곳이었던 대지마저 산산이 부서져 사라져 버렸다. 지하를 잃고 지상마저 잃은 소수의 도깨비들의 굴욕은 뼈아팠으나, 인간 또한 갈 곳을 잃은 신세가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너져가는 세상 끝에서 협상을 맺고 하늘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건설했다. 그것은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잔인한 등굣길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등에 짐을 짊어지고 구름 사이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징검다리를 오르던 평민들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허공과 무너져 내리는 대지를 본 순간, 공포에 질린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발을 헛디뎠다. 비명은 짧았다. 떨어지는 자를 붙잡을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는 동료의 시신을 껴안고 오열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다리를 끌며 신음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던 무사들도, 정작 살아남은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아비규환의 와중에도 기이한 풍경은 있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영주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수십 명의 쿠노이치(여닌자)에게 호위를 받으며 가장 앞서서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들은 발밑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외면했다.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목숨을 밟고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 씁쓸한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승자의 대가였다. 우리는 이겼지만 무너졌고 지상을 얻지 못했으며, 그저 하늘 위 작은 섬에 매달려 숨을 헐떡이는 도망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 모든 광기와 비극이 멈춘, 구름 너머의 사각지대. 그곳에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정원이 있었다.

전쟁의 포화가 대지를 찢고 있을 무렵, 홀로 하늘로 도망쳐 숨어버린 존재가 있었다. 야츠키. 그녀는 인간을 죽이지도, 놈들의 피와 살을 탐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섭고 두려워서 안개라는 장막 뒤로 제 몸을 숨겼을 뿐이다.

“……또, 바람이 차구나.”

야츠키는 매화나무 아래 앉아 제 손끝에서 피어난 분홍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전쟁의 참혹함을 엿보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깊고도 슬펐다. 그녀는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피워낸 꽃들,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흩뿌리는 안개뿐이었다.

그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을 막아내기 위해, 본의 아니게 꽃의 향기를 섞은 요력을 끊임없이 뿜어내야 했다. 그것은  생존의 몸짓이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안개와 섞여 바람을 타고 흘러나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이성을 갈아먹는 마약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꽃을 피워낸 그녀 자신은,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홀로 매화 꽃잎을 쥐고 흔들 뿐이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정원. 그녀는 지상의 비명과 하늘 위의 오열도 듣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꽃을 피워내며 스스로를 안개 속에 가두었다.

이곳은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정찰을 나온 렌은 무의식중에 그 안개 너머로 발을 들였다. 

안개 너머로 달콤한 향기가 렌의 코끝을 찔렀다. 그것은 전쟁터의 비릿한 피 냄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붉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비녀가 꽂혀 있었고, 옅은 손짓으로 가지를 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야츠키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고, 그녀가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가느다란 손끝에서 안개와 섞인 꽃가루가 렌을 향해 흩날렸다.

“……아.”

렌의 입술이 갈라지며 멍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꽃가루가 섞인 안개가 렌의 폐부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독이었다. 하지만 달콤한 독이었다. 렌의 심장이 기이하게 박동했다. 마치 이성이 무너져 내리는 감각.

렌은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분명 도깨비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기모노 아래 드러난 그녀의 가녀린 목선과, 꽃을 만지는 하얀 손가락을 보며 렌은 자신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칼집이 박혔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도깨비의 함정인가, 렌은 뒤를 돌아 징검다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폐 속 깊숙이 박힌 꽃향기가 마치 낙인처럼 그의 안을 헤집어 놓았다. 이미 그의 몸은 놈들의 방식대로 침식되고 있었다.

무사에게 더 깊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쩌면 저 안개 너머의 고요함일지도 몰랐다.

렌은 다급하게 징검다리를 건너며,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옷자락에 묻은 매화 꽃잎 하나는

끈질기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운명은 그렇게, 하늘 위에서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8명의 무사가 야츠키라는 치명적인 재앙과 마주하게 될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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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구름 위의 도망자들
제1화150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짧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땅’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지상을 요괴들에게 내어준 그날 이후, 인류가 기워 붙인 하늘 위 징검다리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악력으로 짓이겨! 도깨비의 가죽은 바위보다 단단하다!”전장은 승리를 향한 진군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본디 지하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햇빛조차보지 못하던 괴물들은, 겁도 없이 지상을 집어삼킬 야욕으로 기어 올라왔다. 놈들은 인간의 살점을 씹어 삼킬수록 뱀처럼허물을 벗고 더 단단해졌다. 머리를 잘라도 재생했고, 낮이 되어도 죽지 않았다.무사들은 피로 물든 칼자루를 놓지 못했다. 철퇴가 뼈를 으스러뜨리는 둔탁한 소리, 시퍼런 칼날이 도깨비의 살점을 파고들 때 나는 비릿한 파열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도깨비의 이빨과 손톱이 갑옷을 긁어대며 내는 ‘끼이익-’ 하는 금속음은 무사들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지키다가 손목이 잘려 나가는 것은 차라리 양호했다. 동료의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무사들은 멈출 수 없었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징검다리는 무너지고 뒤에 남은 가족들은 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땅이 갈라지고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무사와 도깨비는 서로의 목을 조른 채 끝까지 추락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광기에, 도리어 도깨비들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기이한 풍경조차 연출되었다.참혹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동료가 죽어 있었고, 매일 저녁에는 새로운 어린 동료가 빈자리를 채우러 칼을 잡았다. 비릿한 피 냄새는 하늘 위 대기 속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막사 안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잘린 팔을 동여매며 내일의 칼을 갈았다.끝내 도깨비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지상은 놈들의 발악으로 지각이 뒤틀려 갈라졌고, 그나마 숨 쉴 곳이었던 대지마저 산산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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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어린 기사의 여린 꽃
제 7화 벽류진의 감옥은 어제보다 조금은 온기가 돌았다. 지상을 집어삼킨 멸망의 안개가 아래로 깔리고, 구름을 발판삼아 그 위를 위태롭게 떠다니는 거대한 요새 벽류진. 총대장 테츠잔의 명으로 투옥된 야츠키의 자리에는 딱딱한 흙바닥 대신 푹신한 짚이 깔렸고, 살을 파고들던 밧줄도 풀려 있었다. 신지로는 그녀의 손목 붕대를 조심스레 풀어내더니, 신경계를 자극하여 회복을 돕는 푸르스름한 약물 주사를 투입했다."통증이 가실 거다. 지상이 무너지고 요새의 환경이 변한 뒤로, 도깨비들의 회복력도 예전 같지 않지. 아마 살생의 경험이 없는 넌 더 느릴 거야."신지로의 차가운 목소리엔 학구적인 호기심이 가득했다. 렌은 그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보초를 자처하며 야츠키를 지켰다. 그의 눈빛은 멸망해가는 하늘 위 요새에서 홀로 꽃을 지키려는 어린 기사의 그것과 같았다.신지로가 주사를 놓는 동안, 야츠키의 고통 어린 숨소리가 좁은 감옥을 채웠다. 렌은 그녀가 짚 위에서 편히 기대도록 자세를 고쳐주려 했으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야츠키는 움찔거렸다. 렌은 차마 그녀의 어깨를 만지지 못한 채 허공에 손을 멈추고는 자신의 커다란 손을 꽉 쥐어 속으로 삭였다.그때, 감옥 입구에서 시온이 큼지막한 감자를 우적우적 씹으며 등장했다."신지로, 너 또 여기 있었냐? 밥도 안 먹고 놈의 혈관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시온"왜 왔지?" -신지로"네가 하도 여색을 밝히니까 말이지. 전투의욕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가련한 도깨비 아가씨를 네가 잡아먹을까 봐 막으러 왔다."-시온시온은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야츠키를 훑었다. 지상이 사라지고 오직 벽류진의 삭막한 무기들만 남은 이 하늘 위에서, 그녀의 자태는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매혹적이었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20년을 살아온 무사들에게 이토록 정갈하고 여성스러운 존재는 생전 처음이었다. 신지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코웃음을 쳤다."난 환자는 안 건드린다. 내 관심사는 오직 저 몸 안의 요력이 어디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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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비사의 잔혹한 칼날, 그리고 짓밟힌 ‘꽃’
제 8화 렌이 정찰을 위해 하늘 요새 벽류진의 외곽으로 떠난 직후, 비사는 기다렸다는 듯 감옥의 휘장을 걷어찼다. 비사는 여전히 총대장 테츠잔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깨비의 목을 따고 그 요기를 흩뜨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에게, 총대장의 유예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꼴이었다. 그에게 도깨비는 그저 멸종시켜야 할 바퀴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비사는 미리 가란과 신지로를 찾아가 야츠키의 정체를 캐물었었다."고작 요물같은 계집 하나 살려두자고 벽류진의 대기가 이리도 찝찝해야 하나? 정말 저게 그 흉물들과 다른가? 신지로, 너는 연구랍시고 놈을 눈으로 핥고 있고, 가란 너는 도끼만 갈고 있군. 내 눈엔 놈의 목을 따지 못해 안달 난 것으로 보이는데."가란은 대답 대신 자신의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았다. 쇳소리가 예리하게 처소 안을 울렸다. 신지로는 안경 너머로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며 '실험 가치가 있다'고 답했을 뿐이었다. 비사는 그 답변들을 비웃으며 생각했다.'하..!..약해 빠진 도깨비라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그저 교활하게 숨을 죽이고, 인간의 동정심을 이용해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지.'비사는 처소 밖으로 나섰다. 가란은 열린 창틈으로 야츠키가 있는 감옥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비사는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감옥으로 들어서자마자 야츠키의 멱살을 낚아채듯 끌어냈다. 차가운 쇠사슬이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쓸고 지나갔다."어이, 계집. 일어나 봐. 네가 그렇게 특별하다고?"야츠키는 비사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얼어붙는 공포를 느꼈다. 렌이나 테츠잔에게서는 느껴본 적 없는, 순도 100%의 악의와 파괴 본능이 비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비사는 야츠키를 텅 빈 훈련장의 마당에 내동댕이쳤다."말해봐. 징검다리에서 죽은 내 동료들의 비명소리, 너도 들었지? 너희 같은 것들은 심장이 찢겨나가기 전까지는 죽지도 않잖아. 지상이 사라진 지금, 네놈들이 우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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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벼랑 끝의 대치, 가란의 침묵과 렌의 포효
제 9화 지상을 잃고 부유하는 하늘 위 요새, 벽류진의 밤은 언제나 금속의 냉기로 가득했다. 150년에 걸친 긴 전쟁의 끝자락, 이제 인류의 마지막 보루가 된 이곳에서 무사들은 살육에 길들여진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총대장 테츠잔은 감옥 내부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8명의 무사가 순번을 정해 야츠키를 감시하는 ‘밀착 보초’ 명령을 내렸다. 비사와 유우는 여전히 이 명령을 모욕으로 받아들여 보초를 거부했지만, 가란은 아무런 군말 없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보름달이 창살을 타고 들어와 야츠키의 웅크린 어깨를 비추던 밤, 감시 순번은 가란이었다.그가 감옥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야츠키의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며칠 전 비사에게 당했던 폭행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그녀에게, 징검다리 위에서 도깨비의 목을 가장 많이 쳐온 가란의 존재는 곧 죽음의 예고편과도 같았다.야츠키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다 차가운 감옥 벽에 등을 부딪혔다. 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잘린 손목을 향했다. 붕대는 풀렸지만, 여전히 욱신거리는 환부를 감싸 쥐며 가란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맹수 앞에 내던져진 가녀린 사슴 그 자체였다. 그녀의 눈에 맺힌 원초적인 공포가 가란의 심장을 찔렀다.가란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불개언(默不皆言)한 태도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장에서 숱하게 도깨비들의 목을 쳐오며 몸에 밴 '살기'는, 숨을 쉴 때마다 저절로 배어 나와 야츠키의 숨통을 조였다. 가란은 당혹감을 느꼈다. 놈을 죽이겠다는 살의는 없었다. 그저 여느 때처럼 도깨비를 대하는 서늘한 위압감이었을 뿐인데, 야츠키가 느끼는 고통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가란의 무사 혈통, 즉 뼛속까지 박힌 살육의 본능이 그녀의 공포를 보며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깨비인데, 왜 나를 보며 저리도 비참하게 떨지?' 가란의 미간이 좁혀졌다.그 시각, 렌은 자신의 처소에서 검을 소독하고 있었다. 야츠키의 보초가 가란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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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안개의 역류, 늑대들의 성소에 핀 꽃
제10화 렌과 가란의 대치가 극에 달했던 그날 밤 이후, 벽류진의 공기는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지상을 잃고 150년 동안 살육의 연대기를 써 내려온 이 삭막한 요새는 이제 야츠키의 존재 하나로 인해 그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야츠키의 귓가에는 여전히 비사의 거친 폭언과 주먹의 감각이 맴돌았고, 가란의 서늘한 살기는 그녀의 등 뒤를 항상 맴도는 환영처럼 따라다녔다.참았던 감정의 댐이 무너진 것은 불과 하룻밤 사이였다. 좁고 습한 감옥 안에서 야츠키는 비명 없는 절규를 삼키고 있었다."…무서워…돌아가고 싶어. 그곳으로……."그녀의 간절한 소망이 요력의 기폭제가 되었다. 감옥의 틈새로 흘러나온 요력은 파괴적인 불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요새의 삭막한 먼지와 피비린내를 씻어내듯, 너무나도 슬프고도 향기로운 '매화 향기의 안개'가 되어 벽류진 전체를 뒤덮었다.안개가 벽류진의 삭막한 복도를 타고 흐르자, 무사들은 하나둘 무장해제되었다. 검을 닦던 손이 멈추고, 거친 욕설을 뱉던 입들이 굳어졌다. 그 매혹적인 향기는 단순한 요기가 아니었다. 그 안개 속에서 무사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잊고 지냈던 고향의 평온했던 풍경과 잃어버린 가족의 얼굴을 환상처럼 보았다. 그것은 치유이자, 동시에 거대한 정신적 동요였다.총대장 테츠잔이 집무실 밖으로 나와 안개를 가르며 걸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깨달음이 교차했다. 안개 속에서 자신의 죽은 아내의 향기를 맡은 그는, 이 기이한 현상이 야츠키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이 안개는 그녀의 눈물이다."테츠잔은 굳게 닫힌 감옥 앞에 섰다. 야츠키는 안개 속에 파묻혀 웅크리고 있었고, 그 곁을 지키던 렌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테츠잔은 낮게 읊조렸다."감옥에 계속 가둬두면 이 안개는 요새 전체를 침식해 우리를 미치게 하겠군. 더 이상은 안 된다."주변에 있던 비사와 유우는 격렬히 반대하려 했다. "총대장님! 저것은 도깨비의 술수입니다! 놈을 고문하고,감옥에 더 처박아두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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