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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고요가을
부경민의 시선은 성청아와 주원영 사이에서 흔들렸다.

짧은 침묵 뒤, 시선은 결국 성청아의 얼굴에 고정됐다.

부경민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성청아를... 선택하겠다.”

말이 떨어지자 주원영의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갔다.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박건우가 크게 웃었다.

“부경민, 넌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앞길을 위해서라면 아내의 목숨도 버리는 놈.”

박건우는 성청아를 묶은 줄을 끊고 부경민 쪽으로 밀어냈다.

부경민은 몸을 낮춰 성청아를 안았다.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청아 씨, 겁내지 마요. 지금 병원으로 갈게요.”

부경민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밖으로 뛰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성청아의 상처가 깊어질까 두려운 사람처럼.

주원영에게는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박건우는 채찍을 꺼내 주원영의 몸에 내리쳤다.

“날 원망하지 마. 원망하려면 사람 잘못 만난 운명을 원망해야지. 부경민이 진 빚을 네가 갚는 거야.”

채찍이 거듭 몸을 갈랐다. 등은 금세 피로 젖었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숨을 막았다.

주원영은 구조 요청조차 하지 못했다.

의식이 흐려질 무렵, 주원영은 그해 부경민이 실반지 하나를 들고 한쪽 무릎을 꿇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부경민의 눈은 뜨거웠고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원영아, 나와 결혼해 줘. 평생 널 지킬게.”

‘부경민, 네가 말한 평생은 고작 몇 년짜리였구나.’

...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원영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경민은 침대 곁에 기대앉아 있었다. 넥타이는 흐트러졌고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래 지킨 사람처럼 보였다.

“깼어?”

주원영은 고개를 돌려 부경민이 뻗는 손을 피했다.

부경민은 멋쩍게 손을 거두었다.

“그때 상황이 너무 급했어. 먼저 성청아를 데리고 나간 뒤 다시 사람을 보내 널 구하려고 했어. 박건우는 제정신이 아니야.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어.”

부경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고생했어.”

주원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마르고 거칠었다.

“만약 내가 박건우 손에 죽었다면?”

부경민은 굳어 버렸다.

“넌 후회했을까?”

병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몇 초 뒤, 부경민이 겨우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급한 전화벨이 울렸다.

[경민 씨, 어디예요? 나 너무 아파요...]

성청아의 약한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흘러나왔다.

부경민은 본능적으로 주원영을 보았다. 입 모양으로 ‘쉬어’라고 말한 뒤 병실을 나갔다.

부경민이 떠난 뒤, 주원영은 웃었다.

망설인 몇 초가 이미 답이었다.

주원영은 더 이상 부경민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자신을 구하지 못했더라도 부경민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했던 주원영이 어리석었다.

...

퇴원 후, 주원영은 짐을 챙길 틈도 없이 공항으로 향했다.

“원영아, 이게 얼마 만이니? 고모가 너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주희애는 주원영을 꼭 끌어안았다.

몸이 닿자 상처가 욱신거렸다. 주원영은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냈다.

주희애는 그제야 주원영의 상처를 알아차렸다.

“이 상처들은 다 뭐야?”

주원영은 숨을 들이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별거 아니에요. 며칠 전에 넘어졌어요.”

주희애는 의심스러워했지만 주원영이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보고 더 묻지 않았다.

“네 남편은? 아니, 이제 전남편이지. 왜 같이 안 왔어? 너랑 이혼했어도 내가 어른인데, 예의상 얼굴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니니?”

주원영은 눈을 내렸다.

“요즘 회사 상장 준비로 바빠요. 시간을 못 낸대요.”

“상장?”

주희애가 되물었다.

“어느 회사인데?”

“지한그룹이요.”

주희애는 잠깐 멈췄다. 바로 이번에 자신이 감사하러 온 회사였다.

“고모,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요. 고모가 예전에 좋아하던 식당으로 모시고 갈게요.”

식사 도중, 주희애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한그룹 부경민 대표의 사생활을 조사해. 빠짐없이 전부.”

비서는 빨랐다. 식당을 나설 무렵 주희애는 자료를 받았다.

핸드폰 속 내용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주희애의 가슴이 막혔다. 눈가가 젖어 들었다.

주원영은 고모의 기색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고모,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주희애는 주원영의 손을 꽉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우리 원영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이제부터는 고모가 지켜 줄게.”

주원영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지만, 주원영은 겨우 삼켰다.

“저 괜찮아요, 고모.”

그 뒤 며칠 동안 주희애는 감사 업무에 몰두했다.

주원영은 해외 이민 준비를 시작했다.

비자, 항공권, 짐 정리, 필요한 물건 구매까지 하루가 꽉 찼다.

부경민은 성청아를 데리고 섬으로 요양을 떠났다.

부경민의 SNS에는 매일 성청아와 함께한 사진이 올라왔다.

첫 번째 사진은 해변에서 손을 꼭 잡고 걷는 두 사람.

글은 이랬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두 번째 사진은 햇살 가득한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은 모습이었다.

[오늘 햇살이 좋아. 우리는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주웠음.]

세 번째 사진에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폭죽이 담겼다.

[별빛을 예물 삼아, 네게 평생의 평온을 주고 싶어.]

주원영은 보다가 웃었다. 그 말들은 예전에 모두 주원영에게 했던 말이었다.

이제 기쁘게 듣는 사람은 주원영이 아니었다.

사랑이 식으니 마음도 아프지 않았다.

주원영은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은 텅 빈 집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서재로 들어간 주원영은 손가락의 민자 반지를 빼서 부경민의 책상 위에 올렸다.

그 옆에는 지분 양도 계약서를 함께 놓았다.

떠날 때는 깨끗해야 했다.

...

사흘 뒤, 주희애의 감사 업무가 끝났다.

주원영은 주희애를 태우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슬쩍 물었다.

“고모, 이번 일은 잘 끝났어요?”

주희애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번에 감사한 회사에 문제가 꽤 많더라. 결국 상장 감사를 통과하지 못했어. 상장은 어려울 거야.”

“아, 좀 아쉽네요.”

주원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희애가 든 서류 위에 ‘지한그룹’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건 보지 못했다.

도시는 차창 밖에서 점점 멀어졌다. 곧 흐릿하게 흩어졌다.

주원영은 마침내 부경민과 기대어 살았던 도시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탑승 수속을 마친 뒤, 주원영은 핸드폰을 꺼내 부경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웠다.

...

한편 부경민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표님, 이번 재무 감사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부경민의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다시 말해. 뭐가 통과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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