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주원영은 손에 든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주희애는 계속 업무를 처리했다.주원영은 고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고강도 업무가 오래 몸에 배어, 주희애에게는 전문직 특유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있었다.주희애는 고모지만 주원영과 나이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지금 커리어의 절정에 선 사람이었다.일에 집중한 주희애를 보자 주원영은 강한 열등감을 느꼈다.같은 주씨 집안의 여자인데, 고모는 유능했고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심지어 사랑에 눈이 멀어 대학 진학마저 포기하고 부경민을 뒷바라지했다.생각할수록 주원영은 자기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남자의 진심과 양심을 믿으면 평생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하다니, 참 주제도 몰랐다.여자로서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건 주원영 자신이었다.주희애는 주원영의 시선을 느꼈는지 일을 멈추고 부드럽게 웃었다.“무슨 생각해?”주원영은 시선을 거두고 눈을 내렸다.“별거 아니에요. 고모가 일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주희애는 웃었다. 주원영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했다.“A국에 도착해서 자리 잡으면, 고모가 네게 맞는 일도 알아봐 줄게.”주원영은 기뻤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고모, 제가 A국에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구사하는 외국어도 없어요.”주희애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원영아, 어떤 처지에 놓여도 자신을 믿어야 해. 내가 처음 A국에 갔을 때 가진 돈은 몇십만 원이 전부였어.”“그래도 버텼다. 반드시 이 나라에서 살아남겠다고. 설거지도 했고, 청소도 했고, 배달도 했어. 힘든 일은 다 해 봤다.”“낮에는 일해서 학비를 벌고 밤에는 공부했어. 졸업했고, 취업했고, 지금의 내가 됐다.”고모의 말을 듣던 주원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주희애와 주원영의 삶은 닮아 있었다. 둘 다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다만 고모는 번 돈을 자신에게 투자했고, 주원영은 부경민에게 쏟았다.고모는 자신의 삶을 세웠고, 주원영은 남자의 발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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