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노파는 그녀의 소매를 잡지 않았다. 다만 스쳐 지나며,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흘렸다. "지혈초가 더 있으면 뒤꼍으로 오시게."
약재전 뒤꼍은 처마가 낮고 어두웠다. 마른 약초 두름이 발처럼 드리워, 골목의 눈들로부터 한 뼘의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운설이 들어서자 노파는 새끼줄로 약초 단을 묶으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낮에 자네가 판 지혈초, 볕에 말린 게 아니라 그늘에 말린 것이더군. 성한 의원에서 배운 손이야." 새끼줄이 매듭지어졌다. "방(榜)의 그림은 코가 글렀어. 허나 눈은 옳게 그렸데."
부인할 길을 그녀는 찾지 않았다. 이 뒤꼍에 불러들인 것부터가 이미 답이었다. 노파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늙은 눈이 그녀의 얼굴을 오래, 값을 매기는 법 없이 들여다보았다.
"세상이 재앙이라 부르는 것치고," 노파가 말했다. "아픈 데를 종일 눌러 주고 다니는 재앙은 내 평생 처음일세."
노파는 좌판 밑에서 낡은 봇짐 하나를 꺼내 왔다. 약초 두름과 마른 뿌리들이 삐죽 나온, 어느 산이든 어울릴 행상의 짐이었다. "약초꾼은 침통을 져도, 흰 낯을 해도, 산길을 밤에 타도 이상할 게 없지. 의녀는 못 감춰도 약초꾼은 감춰지네."
봇짐은 보기보다 무거웠다. 미숫가루 주머니와 부시, 기름 먹인 밀랍 초 두 자루가 약초 밑에 눌러 담겨 있었다. 하루 이틀에 꾸린 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 짐이 여기서 누군가를 기다렸는지, 노파의 세월 어디에 이런 짐을 꾸리게 된 사연이 있는지 — 물으면 안 되는 것들만 자꾸 늘어났다.
"어찌 나를 —" 운설은 말을 맺지 못했다.
"묻지 마시게. 나도 안 물을 테니." 노파가 봇짐을 그녀의 등에 지웠다. 지우고 나서, 끈을 고쳐 매 주며 지나가듯 덧붙였다. "그보다 급한 소문이 있네. 오늘 방을 바른 관원들이 주막에서 하는 말을 들었어. 맹이 토벌 수장을 세웠다더군."
봇짐 끈이 어깨를 조였다.
"젊은 검객이라데. 이름이 높아. 검신(劍神)이라고들 부른다지." 노파의 손이 매듭을 지었다. "선우현. 그 사람이 자네를 잡으러 북으로 온다네."
이상한 일이 몸에서 일어났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는데, 그 서늘함이 두려움의 온도와 달랐다. 눈 내리던 골목, 한 걸음 비켜서던 그림자. 북으로 가시오, 하던 낮은 목소리. 길을 열어 준 손이 이제 그 길의 끝을 막으러 온다. 세상은 어찌하여 하필 그 사람을 — 물음은 거기서 얼어붙었다. 답 대신, 골목의 눈발 속에 서 있던 그의 마지막 눈빛만이 떠올랐다. 그 눈빛의 뜻을 그녀는 아직 한 번도 풀지 못했다.
"아는 이름인가." 노파가 물었다.
"모르는 이름입니다." 절반은 참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오늘 처음 들었다.
"모르는 이름에 낯빛이 그리 바뀌나." 노파는 더 캐지 않고 등을 돌렸다. "서문은 버리게. 방 붙은 날은 큰 문이 먼저 매워져. 북쪽 물문(水門)으로 가면 빨래터 아낙들이 드나드는 쪽문이 있네. 문지기가 눈이 어둡지."
운설은 허리 숙여 절했다. 노파는 받지 않고 약초 단만 뒤적였다. 그 굽은 등이, 어젯밤 잿불을 뒤적이던 농가 노파의 등과 겹쳐 보였다. 온정은 어디서나 등을 돌린 채로 왔다. 얼굴을 마주치면 서로가 위험해지는 세상의 온정이었다.
물문으로 가는 골목은 좁고 질척했다. 빨래 함지를 인 아낙들 틈에 섞여 모퉁이를 도는데 — 젖은 돌담 너머로 물문 곁 쪽문이 보였다.
쪽문 앞에 흰 무복 둘이 서 있었다.
문지기 대신이었다. 지나는 아낙마다 세워 놓고, 두건을 걷어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함지를 인 여인 하나가 막 두건을 벗는 참이었다. 줄은 짧았다. 그녀 앞에 셋. 돌아서면 등이 보이고, 나아가면 얼굴이 보였다.
운설은 줄 끝에 섰다.
줄이 줄어드는 동안 운설은 젖은 돌담의 이끼를 세었다. 함지의 물 듣는 소리, 언 빨래가 뻣뻣하게 부딪는 소리. 흰 무복의 손이 두건을 걷을 때마다 아낙들은 군말 없이 낯을 들었다. 익숙해진 수모는 수모의 얼굴을 벗는다. 며칠 사이 이 마을이 겪은 일들이 그 무덤덤한 낯들에 적혀 있었다.
셋이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었다.
앞의 여인이 함지를 내리고 두건에 손을 올렸다.
다음은 그녀 차례였다.
왕좌는 장터로 옮겨졌다.혈비가 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우물 유족과 성문 사람, 군사와 길 식솔이 둘러보도록 붉은 방석을 걷어 낸 채 놓았다.“오늘부터 이 자리에 한 사람을 앉히지 않겠다.”대신들이 울부짖었다. 황실군이 문앞에 있는데 왕위를 비우면 삭월은 그날로 끝난다고 했다.“내가 앉아 사람을 넘겨야만 이어지는 삭월이라면 이미 끝난 것이다.”“누가 군사를 막습니까?”“막을 사람을 함께 정한다.”혈비는 성문과 곡식, 약방, 군사의 일을 나눴다. 각 자리에는 우물 유족 한 사람과 기존 관리 한 사람, 장터에서 뽑힌 사람 하나가 함께 수결해야 했다. 급할 때는 먼저 움직이되 해 지기 전 까닭을 공개하게 했다.누가 평의 사람을 고를지를 두고도 다툼이 났다. 혈비가 고르면 왕의 신하가 이름만 바꾸는 셈이었다. 사람들은 성문마다 손바닥만 한 돌을 하나씩 나눠 갖고, 맡기고 싶은 사람 발치에 놓았다. 돌이 많다고 바로 앉히지 않았다. 당사자가 맡을 수 있는지 묻고, 반대하는 사람 까닭도 함께 들었다.빨래꾼 노파는 가장 많은 돌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글을 읽지 못해 장부를 맡기 어렵다고 했다. 묵할멈이 손짓으로 자신도 글을 못 읽지만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둘은 글 읽는 궁녀와 함께 우물 기록 자리에 앉았다.소맥의 아비는 군사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 분노한 자신이 황실 포로를 굶길 수 있다는 까닭이었다. 대신 우물 기록을 맡았다. 성문을 연 젊은 궁녀는 곡식 분배에 이름을 올렸다. 왕가 대신 하나도 남았지만 혼자 도장을 찍을 수 없었다.사백은 활을 평의 앞에 놓았다.“빌려주시겠습니까?”장터 사람들은 그가 먼저 황실 불화살을 쳐 낸 것을 보았다. 우물 유족은 과거 그 활에 죽은 이름도 들었다. 긴 말다툼 끝에 성문 방어에만 쓰고, 성 밖으로 화살을 보내려면 세 사람 동의를 받기로 했다.사백이 활을 다시 찼다. 이번에는 혈비 허락만으로 들 수 없는 무기였다.혈비는 왕관을 왕좌 위에 놓았다. 깨진 왕인과 어머니 밀지는 장터 여러 손을 거쳐 따로
불은 마른 약초부터 먹었다.월계단 아래 연기가 차오르자 운설은 하진 들것부터 밖으로 밀었다. 야란이 명부를 향해 돌아서자 운설이 팔을 잡았다.“몸부터 나가요.”“저 이름이 또 타면 묵할멈과 저만 기억합니다.”“사본이 있어요.”“사본에 없는 몸이 아래 있어요.”야란은 지하 약방 북쪽 벽을 가리켰다. 하진이 나온 우물 말고도 아이들이 옮겨진 배수로가 있었다.묵할멈이 젖은 천을 머리에 쓰고 불 속으로 들어갔다. 야란도 뒤따랐다. 운설은 막는 대신 두 사람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선우현과 사백이 밖에서 줄을 잡았다.혈비도 줄을 잡겠다고 했다. 야란이 허락할 때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 안에서 밧줄이 한 번 울리자 운설이 물었다.“세 번째 자리에 언니 손을 보태도 됩니까?”두 번 당기는 답이 왔다. 혈비는 선우현 뒤에서 줄을 잡았다. 예전처럼 맨 앞을 차지하지 않고도 사람을 끌어낼 힘을 보탰다.“세 번 당기면 나옵니다.” 운설이 말했다.야란이 고개를 저었다.“세 번은 더 들어오라는 뜻으로 하죠. 나올 때는 제가 이름을 부르겠습니다.”이번에는 구조받는 사람이 신호를 정했다.지하 약방 안에서 묵할멈은 왕가 명부를 물통에 던졌다. 종이는 젖었지만 불길은 피했다. 야란은 북쪽 벽에 매달린 아홉 쇠패를 떼었다. 각 패 뒤에 약이 끝난 뒤 몸을 옮긴 곳이 새겨져 있었다.연기 속에서 늙은 사내가 나타났다. 우물 간수 복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불붙은 횃불이 들려 있었다.묵할멈이 그를 알아봤다. 왕가가 무너진 뒤에도 겨울 궁 지하를 떠나지 않은 간수 마도였다. 하진의 쇠사슬을 당겨 맥을 확인한 사람도 그였다.야란이 물었다.“왜 살려 두었습니까?”“문을 열 명이 돌아올까 봐.”“왜 직접 열지 않았지요?”“나는 명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마도는 횃불을 내려다봤다. 이번에도 황실 장수의 명을 받고 원본을 태우러 왔다. 평생 반대되는 명을 기다리며 자기 손을 남의 것으로 살았다.“지금은 누가 명했습니까?”“황실이.”“따를 겁니까?”마도
황실 북이 세 번 울렸으나 성문은 닫히지 않았다.겨울 궁 사람들은 칼 대신 장부 사본을 들고 네 문 밖으로 나갔다. 우물 이름 아홉, 황실 그릇 이름 열여덟, 달무리 부인의 밀지가 서로 다른 손에서 펼쳐졌다.황실 장수는 그들을 반란군이라 부르려 했다. 첫 줄에 선 이는 소맥의 아비였고, 다음은 작은 옷을 빨던 노파였다. 무기를 든 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반란군 지휘자는 누구냐?”“없소.” 소맥의 아비가 답했다.“누구 명으로 나왔지?”“내 발로.”장수는 명령할 목이 없으면 협박할 목도 찾기 어려웠다. 혈비가 왕좌를 지키며 사람들을 내보냈다고 쓰려 했지만, 혈비는 왕관을 벗은 채 성문 안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황실 군사 하나가 사본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 지휘관이 창대로 손등을 쳤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지자 바람이 장을 넘겼다. 군사는 열여덟 이름 가운데 자기 누이 이름을 보았다.“저건 거짓이다!” 지휘관이 외쳤다.“그럼 네 누이 살아 있는지 물어라.” 고윤이 포승줄 사이에서 말했다.군사의 창끝이 그에게 향했다. 고윤은 피하지 않고 누이를 옮긴 날짜와 약고 위치를 불렀다. 군사는 창을 놓지 못한 채 울기 시작했다.성 동쪽에서는 수레꾼들이 소금을 팔았다. 황실군의 은도 받았고 삭월 사람의 동전도 받았다. 군량을 나눠 군을 돕는다는 구실을 주지 않으려 값과 이름을 모두 적었다.황실 지휘관이 소금 수레 바퀴를 부수라고 했다. 수레꾼들은 자루를 등에 나눠 지고 걸었다. 말을 빼앗기면 작은 손수레로, 손수레도 막히면 앞치마와 소매에 한 줌씩 담았다. 길을 끊을 때마다 길의 주인이 더 잘게 나뉘었다.하란주는 흑마장 말의 편자를 벗겼다. 군마로 오해받지 않게 맨발로 성 안을 걷게 했다. 말발굽이 피가 나자 황실군 안 마부들이 몰래 짚을 내주었다. 적과 아군 사이보다 말을 아는 손 사이에서 먼저 길이 열렸다.연도하는 어느 수레에도 명을 내리지 않았다. 황실 기병이 수레 하나를 빼앗자 주인들이 저마다 다른 길로 흩어졌다. 미리 정해 둔 사람
네 성문이 열린 뒤에도 혈비는 빈 문서 앞에 앉아 있었다.황실이 내민 종이에는 왕명을 찍을 자리만 남았다. 그녀는 붓을 들어 맨 위의 삭월왕 세 글자를 지웠다.대신들이 숨을 삼켰다.“무엇을 쓰시려는 겁니까?”“내가 한 일.”혈비는 첫 줄에 효월을 썼다. 왕호도 성도 없는 어린 이름이었다. 여덟 살에 야란을 고르고 하진을 두고 온 일, 기억을 잃었다는 말로 월계단을 열지 않은 일, 왕이 된 뒤 묵할멈 침묵을 충성으로 받은 일을 차례로 적었다.사백은 여덟 살 선택까지 죄로 적지 말라고 했다. 소맥의 아비는 반대로 아이였다는 말을 함께 쓰면 변명이 된다고 했다. 혈비는 둘의 말을 한 줄씩 여백에 붙였다.“어느 쪽이 맞는지 제가 정해야 합니까?” 성문을 연 궁녀가 물었다.“아니다. 내가 한 일과 그대들이 본 것을 함께 남겨라.”혈비의 고백은 깨끗한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죄라 부르는 사람과 강요받은 선택이라 부르는 사람의 글이 같은 종이 가장자리에서 부딪쳤다.“전하, 이 문서는 황실이 가져갑니다.”“그러니 더 적어야지.”“개인의 허물과 나라의 죄를 섞으시면 안 됩니다.”혈비가 붓을 멈췄다.“그 말로 왕들은 언제나 자기 손을 나라 뒤에 숨겼다.”그녀는 삭월왕이 된 뒤 우물 기록을 찾지 않은 일을 더했다. 무너진 나라를 세우느라 몰랐다는 까닭도 함께 적되 변명으로 앞세우지 않았다. 자기 선택과 알 수 없던 일을 다른 줄에 놓았다.하진은 두 걸음 밖에서 그 글을 지켜봤다. 야란 손바닥에 내 이름을 왕의 죄 아래에 쓰지 말라고 썼다. 혈비는 하진 이름을 지우고 빈칸을 남겼다. 당한 사람이 원할 때 자기 줄을 붙일 자리였다.황실 사자가 재촉했다.“수결 시각이 지났소. 왕인을 찍지 않으면 제안은 거둔다.”“거둬라.”혈비가 왕인을 집었다. 대신들이 막아서자 사백이 길을 열었다. 활 없이 두 팔만 벌리고 왕과 신하 사이에 섰다.“저분은 왕좌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이 외쳤다. “나라를 버리려는 것이다!”혈비는 망치를 들었다.“
성문 안쪽 빗장을 뽑은 것은 수레꾼들이었다.밤새 서쪽 길을 달려온 공동 소금길 수레가 문 앞에 늘어서 있었다. 설로상단 깃발은 없었다. 흑마장, 약재 창고, 길 식솔 모임의 작은 표식들이 수레마다 따로 걸렸다.연도하가 맨 앞 수레에서 내렸다. 왼손에는 장부, 불편한 오른손에는 고삐 한 줄만 들려 있었다. 하란주가 검은 말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다.“저 사람에게 지휘를 맡긴 적 없습니다.”문지기가 물었다.“그럼 누가 수레를 움직입니까?”“각 수레 주인이요.”연도하는 겨울 궁까지 오는 길과 황실군 빈틈을 설명했을 뿐, 어느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지 않았다. 수레꾼들은 네 성문 앞에서 스스로 멈췄다.황실 장수가 성 밖에서 소리쳤다.“군량을 들이면 반역에 가담한 것으로 친다!”첫 수레의 늙은 마부가 소금자루를 열었다.“팔러 왔소.”“누구 허락으로?”“내 물건 파는 데 누구 허락이 필요하오?”수레에는 군량만 있지 않았다. 왕가 명부 사본과 황실 열여덟 이름이 소금자루 사이에 들어 있었다. 한 대를 붙잡으면 다른 문으로 세 대가 움직였다.혈비가 연도하를 왕좌 앞으로 부르려 했다. 그는 가지 않았다.“길 식솔들과 계산부터 끝내야 하오.”“왕명이면?”“그 말로 부르면 문밖에 있겠소.”혈비는 왕명을 거두고 장터 빈 상으로 내려왔다. 왕과 전 상단주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장부를 들여다봤다.연도하는 성 안 창고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다. 수레 주인들이 어느 집에 얼마를 내릴지 정하게 했다. 황실군에 가족이 징집된 사람에게도 곡식을 팔았다. 적군 가족이라는 까닭으로 굶기면 열린 성의 뜻이 첫날부터 거짓이 될 터였다.운설은 장터에서 그를 만났다. 연도하의 얼굴은 사흘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거칠었다.“왔네요.”“내 길이 여기까지 닿았소.”“당신 길이요?”“벌써 틀렸군. 내가 함께 낸 길.”그가 웃었다. 오래전이면 운설이 웃어 준 한 번을 마음의 빚으로 적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웃음이 지나가도록 두었다.“그대에게 남겨 달라던 한 치를 기
닫힌 문 너머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밤새 갈라졌다.운설은 그 문밖에서 돌아섰다.문 안에서는 대신들과 우물 유족이 밤새 다투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가 어느 한쪽 손을 잡으면 혈비가 그 온기를 답으로 삼을 것 같았다.선우현은 빈 겨울 처소에서 창문을 막고 있었다. 찬바람이 종이를 들썩일 때마다 못 대신 부러진 화살대를 끼웠다.“언니한테 안 갔어요.”“보았다.”“잘한 건지 모르겠어요.”“나도 모른다.”운설은 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안았다. 선우현의 손이 창틀에서 멎었다.“도망가고 싶어요.”“나도 그렇다.”“같이 갈까요?”선우현은 뒤돌아 그녀 얼굴을 보았다.“지금 나가면 새벽 전에 산길에 닿을 수 있어.”운설은 그가 말뿐인 위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원하면 함께 갈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망설였다.“단이 있는 집까지?”“그보다 멀리도.”“그리고 언니 소식은 평생 묻지 않고?”“네가 할 수 있다면.”운설이 이마를 그의 가슴에 댔다.“못 해요.”“나도 네가 못 할 줄 알았다.”“그런데 왜 끝까지 물어봐요?”“네가 남는 일이 내 명령이 되지 않게.”“당신이 가자고 했으면 잠깐은 원망했을 거예요.”“평생은?”“아마 따라가 놓고 매년 겨울마다 언니 탓을 했겠죠.”“그러면 나는 그 탓까지 들었을 거다.”“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요.”“아무렇지 않지 않아.”선우현은 운설의 손을 자기 목에 댔다. 긴장할 때마다 굳는 맥이 손가락 아래에서 뛰었다. 그 역시 도망치자는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운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내일 성문이 닫히거나 황실 화살이 날아들 수 있었다. 마지막 밤처럼 굴지 않기로 했지만, 살아 있는 지금을 아껴 두고 싶지도 않았다.“오늘도 물어봐요.”“나와 함께 있겠느냐.”“오늘은 끝까지.”운설이 입맞춤으로 답했다. 선우현은 한 번 받아들인 뒤 그녀 뒷목을 감싸 더 깊이 끌어당겼다. 추위에 굳은 입술이 금세 뜨거워졌다.“하아…….”숨을 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