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달아나면 안 된다.
풀비가 종이를 다 바르기도 전에, 운설의 몸이 먼저 그 이치를 알았다. 파장하는 장터에서 등을 보이며 뛰는 자는, 방에 무엇이 적혔든 방이 가리키는 사람이 된다. 그녀는 침통을 개키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어제와 같은 속도로 은침을 닦아 꽂았다. 손끝의 일에 마음을 묶어 두는 것 — 그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부동심이었다.
사람들이 방 아래로 모여들었다. 글을 아는 목소리 하나가 이윽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북막 삭월부의 남은 핏줄로서, 강호에 재앙을 끼칠 씨인 바 —"
장터의 소음이 한 겹 걷혔다. 국밥 김 너머로, 지게 너머로, 사람들의 귀가 일제히 그 목소리를 향해 열렸다.
"— 나이는 열여덟. 낯이 심히 희어 추위에도 붉어지지 아니하고, 머리는 옻같이 검다. 의술에 능하여 침과 약초로 행세할 것인즉 —"
닦던 침이 손끝에서 잠깐 멎었다.
의술로 행세할 것인즉. 그 한 줄이 그녀의 하루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다. 해 질 녘까지 이 나무 그늘에서 침을 놓은 손님이 몇이었나. 얼굴을 보인 눈이 몇이었나. 방은 종이 한 장으로 그녀의 밥벌이와 그녀의 이름을 한 줄에 묶어 버렸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이 그대로 그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도록.
읽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 이지러진 달을 새긴 쇠 패를 지녔을 것이니, 패를 함께 거두는 자는 상을 배로 하리라."
소매 속에서 신패가 문득 무거워졌다. 쇠붙이가 무게를 바꿀 리 없으니, 무거워진 것은 그것을 감춘 팔이었다. 배로 하리라. 맹이 원하는 것이 사람인지 패인지, 그 한 줄이 스스로 답하고 있었다.
"— 산 채로 맹에 넘기는 자에게는 황금 쉰 냥을 상으로 내린다."
쉰 냥, 하고 누군가 낮게 되뇌었다. 그 두 글자가 장터를 지나가는 소리를 운설은 들었다. 쉰 냥이면 소가 몇 마리인가, 밭이 몇 마지기인가. 저녁거리를 사 들고 섰던 손들이 저마다의 셈을 시작하는 소리. 사람의 눈빛이 값을 매기는 눈빛으로 바뀌는 데는 숨 한 번이면 족했다.
그리고 얼굴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 먹으로 그린 여인의 얼굴. 운설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곁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화공은 그녀를 본 적이 없을 것이었다. 코도 입도 남의 것이었다. 그런데 눈이 — 눈만은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물러서지 않는 눈. 누구에게 들어 그렸는지, 먹빛 눈동자가 종이 밖의 그녀를 똑바로 건너다보고 있었다. 낯선 얼굴에 박힌 제 눈과 마주치는 일은, 벼랑 끝보다 서늘했다.
열여덟. 방에 적힌 제 나이가 낯설었다. 종이 속의 여자는 재앙의 씨였고, 나무 그늘의 그녀는 하루 종일 남의 아픈 데를 눌러 준 손이었다. 같은 나이, 같은 얼굴을 두고 세상은 종이 쪽을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종이는 목소리가 크고, 손은 말이 없으므로.
"곱게도 그렸네." 국밥집 여자가 웃었다. "이런 낯이면 눈에 띄어도 벌써 띄었지."
"모르는 소리." 소금 장수가 받았다. "흰 낯이야 두건 하나면 감추지. 침통은 못 감춰."
침통, 이라는 말에 몇 개의 고개가 무심코 돌아갔다. 나무 그늘, 그녀 쪽으로.
운설은 마지막 은침을 통에 꽂고 뚜껑을 닫았다. 서두르지 않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파장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등 뒤의 시선들이 살갗에 낱낱이 만져졌으나 걸음은 저자 사람의 걸음이었다. 두근거림을 걸음에 싣지 않는 법을, 그녀는 이 며칠 사이에 배웠다.
성문을 셈해 보았다. 이 마을에 문은 둘. 방이 붙었으니 저녁부터 문지기의 눈이 달라질 것이다. 오늘 밤을 마을 안에서 나면 내일은 나가지 못할지도 몰랐다. 어두워지기 전에, 사람들이 아직 제 저녁에 바쁜 동안에 빠져나가야 했다.
저자 어귀, 약재전 좌판 앞을 지날 때였다.
마른 약초 냄새가 훅 끼쳤다. 당귀, 감초, 진피 — 의원의 약장 냄새. 저도 모르게 걸음이 반 박자 느려진 그 찰나, 좌판 안쪽의 늙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낮에 그녀에게서 지혈초를 사 간 약재상 노파였다. 그때는 스치던 눈이, 지금은 멎어 있었다. 노파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서 장터 벽 쪽으로 — 벽에서 다시 그녀의 얼굴로 돌아왔다.
노파가 좌판을 돌아 나왔다. 마른 약초 단을 든 채, 곧장 그녀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대전은 비어 있었다.도열한 무사도, 시립한 시녀도 없었다. 화로 여남은 개가 굴 벽을 따라 낮게 타며 바위 결에 붉은 그늘을 던질 뿐, 산의 심장을 파 낸 넓은 어둠 속에 사람의 기척은 상석 쪽 하나뿐이었다. 독대였다. 백 사람의 눈을 거느린 이가 단둘의 자리를 골랐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운설은 문턱을 넘으며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생각으로 건널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걸음을 옮기며 그녀는 화로 빛이 비추는 것들을 보았다. 굴 벽에 걸린 낡은 활 한 자루와 부러진 창 하나. 그 아래 돌 선반에 나란히 놓인 흰 사기 위패들 — 글자 없는 위패가 수십이었다. 잿마을 사당의 빈 단이 떠올랐다. 거두어 간 이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아는 이는 이름을 부르며 모셨고, 모르는 이는 빈 위패로 모셨을 것이다. 이 대전은 알현의 자리이기 전에 제(祭)의 자리였다.상석은 어둠에 잠겨 윤곽뿐이었다. 높은 등받이의 돌 좌(座), 그 위에 앉은 사람의 형체. 화로 빛이 미치는 곳까지 걸어가 운설은 멈추어 섰다. 절은 하지 않았다. 눈도 내리지 않았다. 어둠 속의 형체가 그런 그녀를 오래, 아주 오래 바라보았다.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리가 났다.가늘고 낮은, 세 음이 오르내리는 가락. 뼈피리였다. 사백의 것보다 낡고 깊은 소리가 굴의 어둠을 천천히 채웠다. 삭월의 아이들이 업혀서 듣던 가락. 몸이 먼저 기억하는 가락. 운설의 안에서 강이 그 가락을 따라 순하게 일렁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그녀는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가락이 그쳤다."그 가락에 우는 것을 보니,"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왔다. 낮고, 갈라진 데 없이 매끄럽고, 어딘가 운설 제 목소리를 닮은 목소리였다. "피는 속일 수가 없구나."형체가 일어섰다.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돌바닥을 쓸며 다가왔다. 화로 빛 속으로 먼저 들어온 것은 옷이었다. 먹빛 바탕에 핏빛 실로 이지러진 달을 수놓은 긴 옷. 그다음이 손이었다. 뼈피리를 쥔 손등에 가늘고 오랜 흉 하나가 달빛처럼
이튿날 아침의 두 사람은 서툴렀다.회랑에서 마주치자 그는 반 박자 늦게 목례를 했고, 그녀는 반 박자 빠르게 눈을 내렸다. 스무날을 나란히 걸어온 사이에 새삼스러운 인사였다. 어젯밤의 못가가 두 사람 사이에 그대로 있었다. 치우지도 못하고 들여놓지도 못한 채, 눈처럼 쌓여 있었다.어젯밤, 못가에서 돌아온 뒤의 일을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처소에 누워 그녀는 제 안의 고요에 오래 귀를 대고 있었다. 강이 멎어 있던 그 완전한 침묵. 그의 팔이 풀리고 반 시진쯤 지나자 물소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왔지만, 한 번 들은 고요는 지워지지 않았다. 노인이 준 힘이고 삭월의 피가 기른 힘인데, 그 힘이 멎는 자리가 하필 선우가의 팔 안이라는 것 —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다. 다만 위험한 이름이 되리라는 예감만 있었다."감추라 했더니." 지나치던 사백이 혀를 찼다. "궁 안의 눈이 백이 넘는다. 어제 노천에 든 것이 너희 둘뿐이었을 것 같으냐."운설의 걸음이 멎었다."본 자는 없다. 봤으면 내 귀에 먼저 왔지." 사백은 앞을 본 채 말을 이었다. "한데 볼 것도 없어. 오늘 아침 너희 낯이 방(榜)이다. 마님 앞에서는 그 방을 찢어라. 사흘째 밤이 내일로 당겨졌다. 마님께서 — 오늘 밤 초승이 뜨면 보자 하신다."오늘 밤. 준비할 사이도 없이 하루가 접혔다.저녁부터 유민 여인들이 처소로 들었다. 더운 물과 향유와, 그리고 옷이 들어왔다. 눈빛 바탕에 먹색 선을 두른 삭월의 예복이었다. 십팔 년 묵은 옷이라 했다. 달무리 부인의 것은 아니고, 그 아래 항렬 여인의 것이라 했는데, 그 말을 하는 늙은 여인의 눈이 젖어 있어서 운설은 더 묻지 않았다.여인들의 손이 그녀를 빚어 갔다. 머리가 빗기고, 기름이 발리고, 옷고름이 여며졌다. 벽감의 나전 빗이 그녀의 머리를 지나갈 때, 등 뒤에서 늙은 시녀가 소리 죽여 울었다. 부인께서 쓰시던 빗이라고, 우는 대신 누군가 말해 주었다.향유 냄새 사이로 문득 마른 약초 냄
말 없는 늙은 시녀가 이튿날 저녁 그녀를 데려간 곳은, 바위 굴 깊숙이 숨은 탕이었다.굴 안쪽에서 더운 물이 솟아 돌로 짠 탕을 채우고, 넘친 물은 물길을 따라 굴 밖 노천의 작은 못으로 흘러 나갔다. 등잔 두 개가 물낯에 흔들렸다. 왕족 여인들의 탕이라 했다. 십팔 년 동안 물만 홀로 솟고 흘렀을 자리였다.옷을 벗으며 운설은 제 몸을 보았다.거울 없이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갈라진 손끝, 물레방아의 밤이 남긴 발가락의 검붉은 자국, 활대처럼 여윈 허리. 스무 날 넘는 눈길이 몸에 적어 놓은 글이었다. 의녀의 눈은 그것을 읽고, 여인의 눈은 그 글이 부끄러웠다. 두 눈이 한 몸에 사는 것이 새삼 낯설었다.물에 잠기는 순간, 몸이 낮게 소리를 냈다.뼈까지 스몄던 겨울이 물속에서 풀려나가는 소리였다. 발끝에서 무릎으로, 허리로, 굳은 것들이 마디마디 녹았다. 머리를 풀자 검은 머리카락이 물 위에 부챗살로 펴졌다. 김이 등잔 빛을 안고 굴 천장으로 올랐다. 몸속의 강이 더운 물에 화답하듯 순하게 뒤척였다. 물이 물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이 물에 어머니도 잠겼을 것이다.이 돌턱에 팔을 얹고, 이 김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배가 불렀을 때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아이에게 말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저인지 언니 쪽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운설은 어머니가 보았을 굴 천장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눈물도 물이 되는 모양이었다.탕에서 여인의 눈과 의녀의 눈이 다투는 동안 미뤄 두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몸을 씻고 나면 사람은 제 몸과 화해하게 된다. 화해한 몸은 정직해진다. 눈길 스무 날 동안 접어 두었던 것들이 물속에서 하나씩 펴지는 것을 그녀는 느꼈고, 그중 어떤 것은 펴진 채로 접히지 않았다.몸을 덥히고 나오는 길에, 눈을 쐬고 싶어졌다.노천의 못가는 비어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 오르는 물낯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으며 지워지는 것을, 그녀는 홑옷에 겉옷 하나를 걸친 채 서서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듣
겨울 궁의 문은 두 사람을 따로 삼켰다.선우현은 창을 든 여섯에 둘러싸여 대전 쪽 돌계단으로 올라갔고, 운설은 사백을 따라 옆문으로 들었다. 헤어지며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녀를 위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 등이 계단 위 어둠에 잠기는 것을 그녀는 끝까지 지켜보았다."걱정은 넣어 두어라." 사백이 말했다. "마님은 값을 매기기 전에는 물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물건.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백도 알면서 하는 말이었다.궁은 성이라기보다 산 자체였다. 바깥에서 본 문루와 성벽은 얼굴일 뿐, 몸은 바위산 속으로 뻗어 있었다. 회랑이 굴이 되고 굴이 다시 마당이 되는 길을 사백은 등불도 없이 걸었다. 더운 물이 벽 속 어딘가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산이 통째로 숨을 쉬는 소리 같았다. 십팔 년 전 그 밤, 이 산까지는 토벌대가 닿지 못했다고 사백이 말했다. 길을 아는 자도 여기까지는 몰랐다고. 그 말끝이 잠깐 어두워졌다.안뜰은 뜻밖에 사람의 온기로 붐볐다. 바위를 파고 지은 회랑마다 등불이 켜지고, 더운 물이 도는 돌바닥에서 김이 올랐다. 아이들이 뛰다가 멈춰 서서 그녀를 보았다. 물동이를 인 여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늙은이들이 문가로 나왔다. 백여 개의 눈이 그녀를 따라왔다.절반은 절을 했다. 무릎을 꿇는 이도 있었다. 달무리 부인의 낯을 아는 늙은 눈들이 그녀의 낯에서 죽은 이를 찾아내고 젖었다. 늙은 여인 하나는 그녀의 소맷자락을 두 손으로 받들고 이마를 대었다. 무어라 말릴 새도 없는 일이었다. 받들어지는 일은 쫓기는 일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무겁게 했다.절반은 절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소문 속의 요녀와 그 곁에 왔다는 선우가의 핏줄을 셈하는 눈들. 그 눈들 중 하나가 지나가며 낮게 뱉은 말을 운설은 들었다. 늦게도 왔군. 다 죽고 나서야.늦게도 왔군. 처소에 들어 문이 닫힌 뒤에도 그 말은 벽에 남아 있었다. 열여덟 해를 어디서 무엇으로 살았는지 이 사람들은 모르고, 알
파내는 소리로 아침이 왔다.눈벽 너머에서 삽과 손 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운설은 밤새 갈아 댄 찬 수건을 그의 이마에서 거두었다. 열은 새벽 고비를 넘겼다. 눈을 뜬 그는 제가 어젯밤 무슨 말을 흘렸는지 모르는 낯이었고, 그녀는 굳이 알려 주지 않았다. 그 방에는, 아무도 — 끊긴 말은 그녀의 안에 접어 두었다. 열이 지어낸 헛것일 수도 있었다. 헛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눈벽이 뚫리고 아침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맨 먼저 들어온 것은 사백의 얼굴이었다. 매의 눈이 굴 안을 한 바퀴 돌았다. 타다 남은 초, 널린 옷가지, 꿰맨 어깨, 한 뼘 사이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눈으로 셈을 끝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운설부터 끌어올렸다."포로라 했지." 눈 위로 올라선 뒤에야 사백이 말했다. 그녀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묶은 줄이 꽤 튼튼하더구나."운설은 대꾸할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볼이 붉어지지 않는 낯이 평생 처음으로 아쉽지 않았다.부대의 셈은 다행히 가볍지 않게 끝났다. 말 셋을 잃고, 기수 둘이 뼈를 다쳤으나 목숨은 다 붙어 있었다. 강이 눈을 가른 자리 덕에 매몰이 얕았다고 했다. 기수들이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두려움 반, 다른 것 반. 뼈피리 가락에 울던 여자가 눈 벌판을 갈랐다. 겨울 궁에 닿기 전에 이야기가 먼저 닿을 것이었다.사백은 두 기수를 데리고 벼랑 위를 살피고 내려왔다. 손에 검게 탄 헝겊과 끊어진 노끈, 그리고 쇠 부스러기를 들고 있었다."화뢰(火雷)다." 여자가 그것들을 운설의 손바닥에 부렸다. "눈시렁 밑동에 묻고 심지를 태웠어. 두 군데. 눈이 저절로 내려온 게 아니라 내려앉힌 거다.""맹의 것입니까.""맹의 화뢰에는 낙인이 있다. 이건 민짜야." 사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맹이 낙인을 지웠거나, 맹이 아니거나. 어느 쪽이든 — 협곡에 우리가 드는 날과 시각을 안 자다."또 새는 곳. 나루에 이어 두 번째였다. 운설은 쇠 부스러기를 쥐었다. 누군가 그물을 짜고 있었다. 맹의 그물도
강이 갈라 놓은 눈의 틈은 사람 둘이 들 만한 굴이 되어 있었다. 운설은 그 안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무너진 눈으로 입구를 반쯤 막아 바람을 죽였다. 밖은 이미 저물어, 협곡 어딘가에서 기수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눈벽 너머 아득하게 오갔다. 목청껏 답해 보았으나 눈은 소리를 먹었다. 구조는 아침의 일이 될 것이었다.봇짐에서 밀랍 초가 나왔다. 약재상 노파가 눌러 담아 준 두 자루 중 하나였다. 부시를 치자 좁은 눈굴에 노란 불이 앉았다. 눈벽이 그 빛을 되쏘아, 굴 안은 뜻밖에 환했다."옷을 벗어야겠습니다." 운설이 말했다.반쯤 의식이 돌아온 그가 눈을 떴다."등의 상처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젖은 옷은 이 추위에 수의(壽衣)입니다." 그녀는 의녀의 목소리를 꺼내 썼다. 꺼내 쓴다고 꺼내지는 목소리가, 오늘은 어딘가 삐걱거렸다. "돌아누우세요."그는 잠깐 그녀를 보다가, 순순히 몸을 돌렸다. "……환자요." 낮게 그 한마디를 하면서였다. 언젠가 환자가 아니라고 두 번 우기던 사람의 항복이, 하필 이런 데서 나왔다.찢긴 옷을 어깨에서 걷어 내렸다.촛불 아래 등이 드러났다. 낙석에 맞은 왼 어깻죽지가 검붉게 부어오르고, 그 아래로 손바닥 길이의 열상이 벌어져 있었다. 운설은 상처부터 보았다. 상처를 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런데 상처를 다 보고 난 눈이, 일 없이 그 곁의 것들에 가 닿았다.흉터들이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오래된 흉이 저마다의 세월을 지고 흩어져 있었다. 살이 아문 결을 보면 상처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열둘이나 열셋의 것, 스물의 것, 작년의 것. 검신이라 불리기까지의 세월이 등 하나에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함부로 산 몸이 아니라, 함부로 살도록 내몰린 몸이었다.손끝이 지혈초를 개다가 한 번 떨렸다.수없이 본 남자의 등이었다. 의원에서, 장터에서, 뼈를 맞추고 고름을 짜며 본 등이 백이 넘었다. 떨린 적은 없었다. 살은 살이고 상처는 상처였다. 그런데 지금 이 등 앞에서 침을 쥔 손이 낯선 박자를 탔다. 살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