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노인은 성읍 밖 언덕에 묻혔다.
운백천이 사람을 시켜 양지바른 자리를 골랐다. 이름조차 모르는 주검에 그만한 예를 갖추는 일은 흔치 않았다. 운설은 아버지가 어찌 그리 정성을 들이는지 묻지 않았다. 그날 밤 이후로 아버지의 둘레에는,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될 침묵이 서리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초승달 패는 약방 마룻장 아래에 감추었다. 밤마다 운설은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보곤 했다. 이지러진 달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럼에도 쥐고 있으면 노인이 마지막으로 건네던 온기가 손금을 따라 되살아나는 듯했고, 강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라던 말이 귓가에 낮게 감돌았다. 그녀는 아직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성읍의 눈길이 달라진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눈 내리는 밤에도 약방을 찾던 노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오는 이들조차 예전처럼 선뜻 손을 맡기지 않았다. 검신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운씨 가주의 여식이 쫓기던 죄인을 숨겼다는 소문이, 눈 위의 발자국보다 빠르게 성읍을 돌았다. 사람들은 운설을 마주하면 눈을 오래 두지 못하다가도, 등을 돌리고 나면 그 뒤를 오래 좇았다. 그녀가 평생 사랑한 것은 눈 오는 밤의 그 비어 있음이었는데, 이제 그 고요 속으로 낯선 시선들이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하루는 어린것의 손을 잡고 온 아낙이 있었다. 아이의 손등이 얼어 터져 있었다. 운설이 늘 하던 대로 그 작은 손을 제 두 손으로 감싸 데우려 하자, 아낙이 저도 모르게 아이를 반걸음 끌어당겼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운설은 그 반걸음을 오래 잊지 못했다. 언 손을 녹여 주던 그녀의 손이,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닿아서는 안 될 손이 되어 있었다.
이따금 마른 약재를 부러뜨리다, 문득 그 서늘한 눈이 떠올랐다. 벨 수 있었으면서 베지 않은 사람의 눈. 떠올릴 적마다 운설은 손을 멈추었고, 어찌하여 하필 그 얼굴인지 스스로도 헤아리지 못한 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러뜨리다 만 당귀가 손끝에서 어정쩡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 밤 이후로 말이 줄었다. 사랑채의 불이 늦도록 꺼지지 않았고, 새벽이면 홀로 언덕에 다녀오는 날이 잦았다. 아침 문안을 올려도 운백천은 딸의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운설은 그 무너짐의 기척을 느꼈으나, 무엇이 무너지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 밤, 운설은 잠들지 못했다.
사랑채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등을 켜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눈은 내리지 않았고, 얼어붙은 달빛이 세상을 창백하게 적시고 있었다. 운백천의 발자국이 언덕으로 곧게 이어졌다.
운설은 발소리를 죽여 그 자국을 따라 걸었다. 아버지의 걸음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갈 곳을 아는 걸음, 여러 밤을 오갔을 걸음이었다. 언덕을 오를수록 바람이 매워졌고, 눈을 인 마른 억새가 서걱이며 몸을 뉘었다. 알지 않는 편이 나을 무언가를 향해 제 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예감이 그녀를 붙들었다. 그럼에도 걸음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노인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윽고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평생 누구의 앞에서도 무릎을 굽힌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눈이 그 무릎을 적시는데도 운백천은 오래도록 그대로였다. 무덤과 사람 사이에, 산 자만이 아는 어떤 빚이 고요히 놓여 있는 듯했다.
바람이 잠시 잦아든 사이, 운설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늙고 갈라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결국, 그 아이에게로 돌아왔군." 운백천이 무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십팔 년을 감추었건만. 자네가 기어이."
눈송이 하나가 그녀의 속눈썹에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녹았다. 운설은 그것을 털어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열여덟 해 동안 딛고 서 있던 발밑의 언 땅이, 소리도 없이 갈라지는 감각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운설은 눈 속에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죽은 노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온 '그 아이'가 누구인지 —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백도겸은 자기 군세에게 버림받았다.봉쇄 명령을 따르던 병사들은 바깥 지휘자가 바뀌자 회장 문을 나무수레로 막았다. 진짜 인수도, 회주의 목소리도 소용없었다. 이미 더 그럴듯한 검신의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새 검신이 누구요?”한겸이 문틈으로 외쳤다.“선우현 대협.”바깥 병사가 답했다.회장 안의 선우현이 눈을 감았다. 살아 있는 사람보다 북쪽으로 간 깃발이 더 빨리 그가 됐다.혈비는 지붕 구멍을 가리켰다.“한 명씩 나가.”“밖에 궁수가 있습니다.”남궁완이 말했다.“그래서 내가 먼저 간다.”“언니가 화살을 맞으면 뒤 사람은요?”운설의 질문에 혈비가 칼을 도로 넣었다. 먼저 몸을 내놓는 습관은 선우현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하란주가 문밖에서 붉은 고삐를 흔들었다. 강길로 갔던 그는 빼앗긴 수레 둘을 되찾고 봉쇄군 후미에 섞여 있었다. 말발굽을 세 번 울리자 회장 안 연도하가 방울로 답했다.밖과 안의 동선이 처음 연결됐다.선우현은 수레바퀴 소리와 병사 수를 셌다. 북문에 열둘, 남문에 스물, 지붕 궁수 여섯. 하란주가 말 떼를 동쪽으로 몰면 궁수 시선이 움직일 터였다.“누가 내 명을 따르겠소.”그가 회장 사람들에게 물었다.옛 맹원 몇이 즉시 손을 들었다. 선우현은 고개를 저었다.“내 이름이 아니라, 지금 말하는 동선을 따를 사람만.”유족석의 나루꾼, 남궁가 무사, 승검회 병사, 백지장 사람까지 서로 눈을 보았다. 손을 든 사람은 서른둘이었다. 나머지는 남거나 다른 길을 고르기로 했다.선우현은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하란주의 말 떼가 동쪽 담을 스쳤다. 궁수 화살이 말발굽 뒤를 따라갔다. 혈비가 지붕으로 올라 첫 활줄을 끊었고, 남궁완은 부채살로 둘째 궁수 손을 쳤다.안에서는 한겸이 물에 젖은 탁자를 북문으로 밀었다. 연도하가 나루 밧줄을 쇠빗장에 걸었다. 밖의 수레가 당기자 문짝이 안으로 반 치 움직였다.“한 번 더!”하란주의 목소리가 들렸다.두 번째 당김에 빗장 고리가 빠졌다. 문이 열리며 병사와 안의 사람들이 뒤엉켰다
붉은 옷자락이 지붕에서 떨어졌다.혈비는 열린 구멍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기와를 세 장 더 걷어 내 빛이 들게 한 뒤, 가장 낮은 들보에 앉았다. 검은 머리에는 눈이 아니라 북방 먼지가 묻어 있었다.“문을 잠가 놓고 심판 놀이라니. 중원 것들은 좁은 곳을 좋아해.”백도겸이 회장으로 돌아왔다.“혈비.”“내 이름을 허락 없이 쓴 자가 너냐.”“나도 내 이름을 도둑맞았소.”“그러면 둘 다 멍청한 주인이군.”혈비는 들보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칼은 문밖에 맡기지 않았다. 문지기 셋이 막았으나 칼집을 만져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하문령이 맹추산에게서 나온 붉은 달 가죽을 내밀었다. 혈비는 불빛에 비추고 냄새를 맡았다.“우리 가죽은 맞다. 칼인은 아니야.”“무엇이 다르죠?”운설이 물었다.“나는 사람 이름 위에 칼을 긋지 않아. 목을 벤 뒤 아래에 긋지.”잔인한 버릇이 위조를 가르는 증거가 됐다.혈비는 운설 얼굴을 보고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두 해 동안 직접 만나지 못한 자매였다. 편지는 오갔지만 그 안에는 아이 이야기도, 함께 살자는 말도 거의 없었다.운설이 먼저 손을 잡았다. 혈비 손등에는 새 화상 자국이 있었고 손목에는 말고삐가 파고든 상처가 겹쳤다.“무슨 일 있었어요?”“없었어.”“있었네요.”“겨울 궁 일이야. 네가 와서 의원 노릇 할 일은 아니고.”혈비도 동생을 보호한다는 말로 자기 생활의 문을 닫고 있었다. 운설은 손을 놓지 않았다.“나도 언니가 정한 만큼만 들을 생각 없어요.”혈비가 코웃음 쳤으나 손을 빼지는 않았다. 둘은 살아 있다는 인사보다 다친 곳을 먼저 확인했다.“멀쩡하구나.”“언니도요.”“나는 늘 멀쩡해.”혈비는 거짓말을 하고 선우현을 보았다.“너는 더 초라해졌고.”“오랜만이오.”“인사는 살아 돌아간 뒤 해.”그녀가 가져온 소식은 이미 늦었다. 사흘 전 중원 무사 오백이 붉은 달 깃발과 선우현 이름을 함께 들고 설한협을 넘었다. 북방 마을에는 검신이 삭월 왕녀와 손잡고 새 맹을 세운다는 방이 붙었
칼은 모두 문밖에 있었다.증거 창고를 지키는 사람은 선우현, 연도하, 한겸 셋뿐이었다. 한 사람은 지팡이를 맡겼고, 한 사람은 오른손을 쓰지 못했으며, 마지막은 관복 때문에 검을 들 수 없었다.백도겸은 군세를 북쪽으로 돌릴 명을 내리러 회장 남문으로 갔다. 남궁완은 자기 가문 사람을, 하문령은 맹추산을 지켰다. 운설은 다친 사람 곁을 떠날 수 없었다.“왜 우리 셋이오?”연도하가 물었다.“서로 믿지 않으니까.”한겸이 답했다.“한 사람이 장부를 훔치면 둘이 막겠지요.”“둘이 한편이면?”선우현이 물었다.“나머지 한 사람이 소리칠 겁니다.”“셋 다 한편이면.”연도하가 웃었다.“그때는 장부가 주인을 잘 고른 거겠지.”창고 안에는 백의대 장부, 진짜 인수, 남궁가 칼, 문승의 독 묻은 죄목이 따로 봉해져 있었다. 어느 하나만 가져가도 다른 죄를 만들 수 있었다.셋은 증거를 한곳에 두지 않기로 했다. 선우현이 남궁가 칼의 위치를 맡고, 연도하가 백의대 장부 일부를 외웠다. 한겸은 진짜 인수의 칼금을 종이에 뜬 뒤 인수 자체는 빈 물항아리 밑에 숨겼다.“누가 잡히면 나머지 둘이 거짓말할 수도 있소.”선우현이 말했다.“그러니 서로 무엇을 가졌는지는 알아야죠.”한겸은 숨긴 장소를 세 장에 적어 각각 한 장씩 나눴다. 세 사람이 동시에 배신하면 증거는 사라질 것이고, 한 사람만 배신하면 둘이 찾을 수 있었다.연도하는 종이를 품에 넣다가 손이 떨려 떨어뜨렸다. 선우현이 주워 주자 그가 말했다.“오늘만 두 번이군.”“무엇이.”“그대가 내 떨어진 걸 주운 것.”“세 번째는 값을 받겠소.”“운 의원한테 받아도 되나?”선우현은 종이를 다시 바닥에 놓을 듯하다가 그의 품에 직접 꽂았다.첫 습격은 지붕에서 왔다.습격 직전 창고 밖 당번이 세 번 기침했다. 약속한 위험 신호는 두 번이었다. 셋은 문을 열지 않았다.밖에서 운설 목소리가 들렸다.“다친 사람 있어요. 열어요.”선우현의 손이 빗장으로 갔으나 멎었다. 운설은 자신을 운 의원이라
첫 등불은 여덟째 문에 켜졌다.붉은 천을 벗긴 흰 등이었다. 산모와 아이를 받을 빈방이 있다는 뜻이었다.두 번째는 백지장 창고 지붕에서 올랐다. 종이통을 비운 방에는 마른 천과 끓인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세 번째는 남궁완 구휼창의 열린 곡식독 위였다. 죽과 장작을 보낼 수 있다는 불이었다.네 번째는 강 건너 갈대둑 산실이었다. 무너진 벽을 아직 고치지 못했지만 늙은 산파가 문을 열고 기다렸다.다섯 번째는 흑마장에서 온 푸른빛이었다. 하란주가 밤길을 달릴 말 네 필을 내놓았다는 뜻이었다.어느 한곳도 사람을 전부 데려오겠다고 하지 않았다.등불 아래에는 작은 장부가 하나씩 놓였다. 받은 사람 수보다 돌려보낸 사람과 이유를 먼저 적었다. 방이 찼으면 못 받음, 산파가 없으면 손이 없음, 약이 모자라면 약이 없음이라 썼다.부끄러운 말을 감추면 다음 수레가 같은 길을 헛달렸다. 할 수 없다는 기록도 사람을 다른 문으로 보내는 길이 되었다.정월은 열을 살피기 쉬운 여덟째 문으로 갔다. 매화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하룻밤의 집을 골랐다. 아이 셋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백지장 빈방으로 갔다. 소담은 그 방들을 차례로 돌기로 했다.가장 큰 아이는 백지장에 도착하자 출구부터 셌다. 앞문과 뒷문, 낮은 창 하나. 류단은 아이가 확인을 마칠 때까지 짐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여기도 우리를 두고 어미가 안 오면요?”“기다릴 날짜를 같이 정하자.”“안 오면 쫓아내요?”“그때 다시 묻고.”아이는 열흘을 골랐다. 열흘 뒤 어미가 오지 않으면 슬퍼할지 화낼지, 어디로 갈지는 그날의 자기에게 남겼다.“나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갈대섬 늙은 산파가 물었다.“가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운설이 되물었다.산파는 잠긴 섬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떠난 뒤 어디에 필요한지 묻는 말은 처음 들었다.“갈대둑 산실을 열고 싶소.”“그럼 거기서 불을 들어 주세요.”다섯 불은 우두머리의 명을 기다리는 불이 아니었다.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 밝히는 불이었다.
부러진 노가 배 바닥을 긁었다.선우현은 허리로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검이 없어진 뒤에도 갑작스러운 소리가 나면 빈 칼집을 찾던 버릇은 오래 남았다. 그날은 밧줄부터 보았다.아침에는 운설의 약상자를 숨겼다. 위험한 것을 눈앞에서 치우면 위험까지 없어지는 줄 알았다. 지금 강물 앞에 서자 그 짓이 얼마나 검을 휘두르던 때와 닮았는지 보였다. 베어 낼 수 없는 것을 만나면 길부터 막았다.섬에 묶인 줄 하나, 강 아래 버드나무에 감은 줄 하나. 마지막 배는 두 줄 사이에 있었다.“노를 버리시오.”뱃사공이 부러진 자루를 놓았다.“그러면 배를 어찌 돌립니까?”“돌리지 않소. 줄을 따라가오.”선우현은 뭍의 장정 둘을 위쪽으로 옮겼다. 연도하는 아래 줄을 맡았다. 배를 강과 맞서 세우지 않고 물이 미는 만큼 비스듬히 흘렸다.예전 같으면 물 위를 밟고 건넜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검신의 첫 움직임만 기다리곤 했다.지금 그의 발은 진흙에 빠졌고 오른쪽 무릎은 오래 버티면 떨렸다.그는 무릎을 숨기지 않고 장정 하나에게 뒤를 받치게 했다.“내가 미끄러지면 줄을 잡되 나를 먼저 당기지 마시오. 배가 먼저요.”장정은 검신을 붙들라는 명을 받을 줄 알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선우현은 자기가 약해졌다는 사실까지 동선 안에 넣었다. 없는 힘을 감추면 줄 끝의 사람들이 그 거짓말까지 견뎌야 했다.“위 줄, 반 자 놓으시오.”장정이 너무 많이 풀었다. 배가 소용돌이 쪽으로 기울었다.선우현은 소리치지 않고 자기가 밧줄을 감았다. 거친 삼줄이 손바닥 살을 벗겼다. 피가 났으나 놓지 않았다.“지금.”연도하가 아래에서 당겼다.배가 돌아와 섬 돌계단에 닿았다.소담이 붉은 등을 한 번 흔들었다. 매화의 진통 간격이 짧았다. 선우현은 당장 섬으로 건너고 싶은 발을 멈췄다. 손목의 흰 끈이 젖어 살에 붙었다.아침의 그는 운설 대신 길을 정했다. 이번에는 안에서 보는 사람의 판단을 빼앗지 않았다.“무엇이 필요하오?”강 건너로 물었다.소담은 흰 천 두 장을 들었다.
다리가 끊긴 뒤에도 갈대섬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소담은 푸른 등을 세 번 들었다. 물이 산실 마당까지 왔다는 뜻이었다.선우현은 떠내려가는 다리 판자를 쫓지 않았다. 강 아래에 세운 장정들에게 빈 배를 당기게 했다. 배는 있었지만 섬으로 건널 노가 하나뿐이었다.“한 번에 넷은 못 타오.”늙은 뱃사공이 말했다.정월과 갓난아이, 산파 하나만 타도 배가 낮아졌다. 섬에는 매화와 아이 셋, 소담과 늙은 산파가 남았다.강바람이 등불 불꽃을 눕혔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상류에서 온 물은 흙빛이었다. 뿌리째 뽑힌 풀과 부엌 바가지가 떠내려왔다. 어느 집 마당이 먼저 잠겼는지 물건들이 말해 주었다.섬의 아이들은 산실 지붕 아래에 앉아 신발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맨발로 물을 건널 수 있어도 건넌 뒤 신을 것이 필요하다고 소담이 가르친 뒤였다.연도하는 설로 수레에서 빈 종이통을 꺼냈다. 물에 젖지 않게 기름을 먹인 큰 통이었다. 여섯 개를 판자문 양옆에 묶자 물에 뜨는 넓은 발판이 되었다.“사람을 태울 물건은 아니오.”선우현이 통 매듭을 당겨 보았다.“짐보다 가벼운 아이 셋은 건넬 수 있소.”“물살이 돌아가면 뒤집히오.”“그래서 그대가 길을 보라는 것이오.”두 사람은 더 다투지 않았다.선우현은 종이통마다 작은 구멍이 없는지 물에 눌러 보았다. 하나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연도하는 망설이지 않고 그 통을 빼냈다.“아까운 물건이오.”“물 위에서는 구멍 하나가 사람 하나요.”남은 다섯 통의 매듭을 서로 다른 사람이 확인했다. 만든 사람의 자신감보다 쓰는 사람의 손이 한 번 더 필요했다.밧줄 한쪽을 섬에 보내야 했다. 장정이 던진 돌은 물에 빠졌고 화살은 바람에 밀렸다. 연도하는 상단 방울을 밧줄 끝에 달았다.“소리로 받게 하지.”두 번째 화살이 산실 지붕을 넘었다. 방울 소리를 들은 소담이 갈대밭에서 밧줄을 찾아 들보에 묶었다.선우현은 물살을 보며 뭍의 고정점을 옮겼다. 정면으로 당기면 발판이 가운데 소용돌이에 걸렸다. 강 아래 버드나무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