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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눈길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6:26:21

노인은 성읍 밖 언덕에 묻혔다.

운백천이 사람을 시켜 양지바른 자리를 골랐다. 이름조차 모르는 주검에 그만한 예를 갖추는 일은 흔치 않았다. 운설은 아버지가 어찌 그리 정성을 들이는지 묻지 않았다. 그날 밤 이후로 아버지의 둘레에는,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될 침묵이 서리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초승달 패는 약방 마룻장 아래에 감추었다. 밤마다 운설은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보곤 했다. 이지러진 달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럼에도 쥐고 있으면 노인이 마지막으로 건네던 온기가 손금을 따라 되살아나는 듯했고, 강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라던 말이 귓가에 낮게 감돌았다. 그녀는 아직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성읍의 눈길이 달라진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눈 내리는 밤에도 약방을 찾던 노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오는 이들조차 예전처럼 선뜻 손을 맡기지 않았다. 검신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운씨 가주의 여식이 쫓기던 죄인을 숨겼다는 소문이, 눈 위의 발자국보다 빠르게 성읍을 돌았다. 사람들은 운설을 마주하면 눈을 오래 두지 못하다가도, 등을 돌리고 나면 그 뒤를 오래 좇았다. 그녀가 평생 사랑한 것은 눈 오는 밤의 그 비어 있음이었는데, 이제 그 고요 속으로 낯선 시선들이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하루는 어린것의 손을 잡고 온 아낙이 있었다. 아이의 손등이 얼어 터져 있었다. 운설이 늘 하던 대로 그 작은 손을 제 두 손으로 감싸 데우려 하자, 아낙이 저도 모르게 아이를 반걸음 끌어당겼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운설은 그 반걸음을 오래 잊지 못했다. 언 손을 녹여 주던 그녀의 손이,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함부로 닿아서는 안 될 손이 되어 있었다.

이따금 마른 약재를 부러뜨리다, 문득 그 서늘한 눈이 떠올랐다. 벨 수 있었으면서 베지 않은 사람의 눈. 떠올릴 적마다 운설은 손을 멈추었고, 어찌하여 하필 그 얼굴인지 스스로도 헤아리지 못한 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러뜨리다 만 당귀가 손끝에서 어정쩡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 밤 이후로 말이 줄었다. 사랑채의 불이 늦도록 꺼지지 않았고, 새벽이면 홀로 언덕에 다녀오는 날이 잦았다. 아침 문안을 올려도 운백천은 딸의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운설은 그 무너짐의 기척을 느꼈으나, 무엇이 무너지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 밤, 운설은 잠들지 못했다.

사랑채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등을 켜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눈은 내리지 않았고, 얼어붙은 달빛이 세상을 창백하게 적시고 있었다. 운백천의 발자국이 언덕으로 곧게 이어졌다.

운설은 발소리를 죽여 그 자국을 따라 걸었다. 아버지의 걸음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갈 곳을 아는 걸음, 여러 밤을 오갔을 걸음이었다. 언덕을 오를수록 바람이 매워졌고, 눈을 인 마른 억새가 서걱이며 몸을 뉘었다. 알지 않는 편이 나을 무언가를 향해 제 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예감이 그녀를 붙들었다. 그럼에도 걸음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노인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윽고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평생 누구의 앞에서도 무릎을 굽힌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눈이 그 무릎을 적시는데도 운백천은 오래도록 그대로였다. 무덤과 사람 사이에, 산 자만이 아는 어떤 빚이 고요히 놓여 있는 듯했다.

바람이 잠시 잦아든 사이, 운설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늙고 갈라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결국, 그 아이에게로 돌아왔군." 운백천이 무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십팔 년을 감추었건만. 자네가 기어이."

눈송이 하나가 그녀의 속눈썹에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녹았다. 운설은 그것을 털어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열여덟 해 동안 딛고 서 있던 발밑의 언 땅이, 소리도 없이 갈라지는 감각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운설은 눈 속에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죽은 노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흘러나온 '그 아이'가 누구인지 —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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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50화 —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이었다.굵은 눈송이가 약방 처마 끝에 소리 없이 쌓였다.운설은 머리를 반쯤 묶은 채 약방 문을 열었다. 열 난 아이를 업은 아비가 눈밭에 서 있었다. 선우현은 옷고름을 잘못 맨 채 등잔을 들고 뒤따랐다.“언제부터 열이 났어요?”“해 지기 전부터요. 의원님이 돌아왔다기에—”“안 돌아왔어도 옆집 의원을 불렀어야죠.”운설은 아이를 받아 침상에 눕혔다. 젊은 의원도 안채에서 뛰어왔다. 두 사람은 맥과 목, 손발 온기를 나눠 살폈다. 단순한 겨울 열병이었다.선우현이 물을 끓이는 동안 단도 잠옷 차림으로 나왔다. 환자 아이의 언 손을 보고 자기 털신을 벗어 침상 아래 놓았다.“물어보고 줘야지.” 운설이 말했다.단이 아비에게 물었다.“빌려줘도 돼요?”아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신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은 곧 잠들었고, 어른들은 약 달이는 불을 지켰다.날이 밝을 무렵 열이 내렸다. 아비가 가진 돈이 없다고 하자 선우현은 장부에 외상 두 푼을 적었다. 단이 그 옆에 봄에 갚음이라고 삐뚤게 덧붙였다.“못 갚으면?” 아이 아비가 물었다.“그때 다시 정합시다.” 운설이 답했다.아침에는 편지가 네 통 도착했다.첫째는 혈비에게서 왔다. 북쪽 배수로에서 소맥의 남은 뼈를 찾았고, 다음에는 채령의 고향으로 간다고 했다. 사백은 갈림길마다 각자 다른 곳으로 갔다가 이상하게 같은 주막에서 다시 만난다고 썼다. 편지 끝에는 왕인 없이 언니가라고만 적혀 있었다.둘째는 명주의 것이었다. 흑요와 조각 반쪽을 한곳에 보관하지 않고 각자 품기로 했으며, 첫 매화가 지던 날 정무가 동쪽 물그릇으로 떠났다고 했다. 명주는 사흘을 울고 넷째 날 서쪽 약초를 캐러 갔다. 맥은 이제 아침에 두 번, 저녁에 한 번 뛴다고 적었다.담우의 편지는 같은 봉투에 없었다. 그는 백로진 이웃 마을에서 열병 환자를 돌보고 있었고, 명주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 답은 없다고 했다. 세 번째는 성가시다 했으니 한 달 더 기다리겠다는 줄에 운설이 웃었다.셋째는 연도하와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9화 — 돌아온 사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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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7화 — 자매의 무덤

    어머니 봉분에는 이름패가 둘 놓여 있었다.운설이 첫 사흘 동안 죽은 아이 둘의 이름을 찾아 가져온 패였다. 하나는 마도가 기억했고, 다른 하나는 왕가 옛 부엌 장부에서 발견했다. 빈 동그라미가 채령과 무진으로 채워졌다.혈비는 북쪽 배수로에서 찾은 소맥의 작은 신을 들고 왔다. 아비에게 뼈와 함께 돌려주고 남은 한 짝이었다. 소맥의 아비가 왕가가 기억하라고 맡겼다.두 자매는 서로 절하지 않았다. 봉분 앞에 나란히 앉아 각자 가지고 온 것을 어머니 수놓은 달무리 천 위에 놓았다.운설은 약패 첫 사흘을 소리 내 읽었다. 혈비는 밀지의 문을 열라는 줄을 읽었다. 좋은 줄만 고르지 않고 같은 목소리로 끝까지 나눠 읽었다.선우현과 사백은 들리지 않을 만큼 물러나 있었다. 사백이 물었다.“저 자리에 끼고 싶지 않습니까?”“많이.”“그런데 왜 여기 있습니까?”“운설이 부르면 갈 거다.”사백은 그 말을 곱씹었다. 혈비가 부르지 않아도 늘 앞서 달려가던 자신과 달랐다. 그는 활 없는 손으로 무덤길의 마른 가지를 치웠다.“어머니를 용서했어?” 혈비가 물었다.“아직 그 말을 정하지 않았어.”“미워하고?”“첫 사흘을 생각하면. 밀지를 보면 또 보고 싶고.”운설은 마른 풀을 뽑아 손가락으로 비볐다.“언니는?”“어머니가 밀지를 내게 닿게 하지 못한 게 원망스럽다. 그런데 내가 왕인을 깨지 않은 세월까지 어머니 탓으로 할 수는 없더군.”혈비는 왕의 옷을 입지 않았다. 짧은 푸른 소매 아래 밧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북쪽 길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왕이라 부른 적도, 우물 죄인이라 욕한 적도 있었다. 어느 이름도 막지 않았다고 했다.“하진은?”“겨울 궁을 떠났다.”“어디로?”“말해 주지 않았다.”혈비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도 찾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찾지 않는 것이 그 아이를 잃는 일과 다르다. 살아서 자기 길을 숨기겠다고 했으니까.”야란은 겨울 궁에 남아 지하 약방을 작은 병소로 바꾸는 일을 보고 있었다. 왕가 의원은 들이지 않았고, 빨래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6화 — 각자의 물길

    네 갈래 길 앞에 수레가 네 대 멈췄다.혈비는 북쪽 배수로로, 고윤은 갈대 나루로, 명주는 서쪽 약초길로 가야 했다. 담우가 갈 남쪽 끝에는 백로진이 있었다.누구도 먼저 작별을 말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겪고 살아남았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듯한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흑수촌에서 온 작은 배가 나루에 닿았다. 노분이 보낸 물항아리와 편지 한 장이 실려 있었다. 항아리에는 노칠 이름패를 단 뒤 처음 길은 흑수촌 우물물 한 병이 담겨 있었다.명주가 마개를 열었다. 붉은 겨자씨와 삭힌 무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가슴 안 정무가 두 번 두드렸다. 노칠이 찾던 집 냄새였다.노분은 글을 몰라 이웃 아이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오라비를 문턱에 달았다. 늦게 왔다고 욕하고, 그래도 왔다고 밥 한 그릇 놓았다. 마지막에는 명주의 뺨에 바를 풀 이름이 적혀 있었다.편지 뒷면에는 노칠이 어릴 때 냇가에서 넘어져 생긴 무릎 흉터와, 삭힌 무를 훔쳐 먹다 들킨 날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시신을 확인할 때 필요했던 표식이 이제는 오라비가 살았던 날을 돌려놓는 이야기가 되었다.명주는 정무에게 들려줘도 되는지 노분에게 묻지 못했다고 했다. 정무가 가슴 안에서 한 번 두드렸다. 듣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남의 가족 편지를 함께 몸에 산다는 이유로 가져가지 않았다.“오라버니가 돌아갔네요.” 담우가 말했다.“우리가 데려다준 거지, 제 몸에서 나온 물만 돌아간 건 아니야.”명주는 노분과 수레꾼, 관을 태운 사람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정무도 가슴 안에서 박자를 보탰다.고윤은 항아리 가까이 오지 않았다. 노칠을 그릇에 넣은 자기 손이 고향물까지 흐릴까 두려운 얼굴이었다.명주가 그에게 한 잔 떠 주었다.“받아도 되느냐?”“제가 주는 게 아니라 노분 어르신이 모두 나눠 마시라고 했어요.”고윤은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물을 마시기 전 노칠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사죄는 덧붙이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받아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감시인들이 고윤 수레의 쇠줄을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445화 — 돌아보지 않는 한 치

    연도하의 수레에는 깃발이 없었다.공동 소금길 사람들은 각자 자기 표식을 되찾았고, 그는 빈 수레 하나만 몰았다. 겨울 궁에 남은 마지막 장부를 무한으로 가져갈 참이었다.운설은 성문 밖까지 배웅했다. 선우현도 곁에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를 막지 않았다.“다음에는 어디로 갑니까?” 운설이 물었다.“길 식솔들이 부르는 곳으로. 내가 갈 수 있는 날까지.”“부르지 않으면요?”“내 작은 창고에서 욕먹으며 장부를 쓰겠소.”연도하가 웃었다. 예전의 화려한 겉옷도 비싼 말도 없었으나 눈빛은 오히려 가벼웠다.하란주는 수레 뒤에서 말편자를 살폈다. 작별이 길어져도 재촉하지 않았다. 운설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도하를 데려가 줘서 고맙다고 하면 싫어하겠죠?”“몹시.”“그럼 흑마장 말을 빌려줘서 고마워요.”“그건 받겠소.”하란주는 연도하와 같은 길을 가지만 그를 거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의 수레와 말은 다음 갈림에서 각자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그는 운설에게 작은 나무자 하나를 내밀었다. 한 치 표시에서 부러져 있었다.“이걸 왜 줘요?”“내가 그대 마음에서 한 치만 달라 했을 때 쓰던 자요. 돌려주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대 것이 아니었소.”운설은 받지 않았다.“당신 것이면 가져가요.”“그럼 부러뜨리겠소.”“그것도 당신이 정해요.”연도하는 자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수레 앞 작은 상자에 넣었다. 자기 욕망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고, 남의 마음을 재는 데 다시 쓰지 않으려는 자리였다.“아직도 나를 사랑해요?”선우현의 손가락이 운설 손 안에서 아주 조금 굳었다. 연도하는 그 움직임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그렇소.”“그 마음 때문에 돌아오라고 하진 않을 거고?”“하지 않겠소.”“잊어 달라고도 안 해요.”“그것까지 그대 일이 되면 안 되니까.”연도하는 운설을 처음 본 밤을 말했다. 칼에 쫓기면서도 쓰러진 낯선 사람 맥을 먼저 짚던 손을 보고, 그 손이 자기에게 닿기를 바랐다고 했다.“그 마음 때문에 그대를 살린 적도 있고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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