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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 부싯돌

作者: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8 22:18:10

향합이 열리고, 마른 풀빛 가루가 재 위로 기울었다.

그 반 호흡 사이에 물가에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첫째, 지붕 위의 사백이 시위를 놓았다. 살촉에 기름솜을 감은 살이 — 언제 불을 붙였는지 — 낮게 날아 향로의 아가리에 정확히 꽂혔다. 둘째, 물가의 지게꾼이 빈 지게를 버리며 단의 발치로 내달았다. 셋째, 왕철의 좌판 쪽에서 늙은 목청이 터졌다.

"불이다! 물맞이 불놀이다! 다들 화로를 열어라!"

향로가 폭 하고 일어섰다.

숯불 위에 겨우 앉으려던 가루가 기름불을 뒤집어쓰고 통째로 타올랐다. 삭은 풀내는 지워지고 그냥 탄내가 — 무해한, 다만 매캐한 탄내가 — 단 위로 치솟았다. 여덟 해 얼음 속에서 벼려진 것은 불 앞에서 힘을 못 썼다. 천적이 천적을 잡아먹는 냄새를, 운설은 향로의 곁에서 맡았다. 제 귀가 성한 채라는 것을 — 물소리가 흐린 채로나마 곁에 있다는 것을 — 확인하면서.

"법정에서 활을 들었다!" 인두의 잿빛이 처음으로 갈라졌다. "전원 포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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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5화 — 첫눈의 파발

    첫눈은 초경에 왔다.물의 도시의 첫눈은 물 위로 내렸다. 수로마다 눈발이 닿는 자리에서 소리 없이 녹고, 지붕과 다리 난간에만 얇게 앉았다. 팥죽 솥의 김과 눈발이 섞이는 물가를, 사람들은 잔치의 끝자락 삼아 오래 서성였다.운설은 폐가의 문지방에서 그 눈을 보았다.첫눈이 머지않았다던 어머니의 서리 굵던 아침이, 눈발 사이로 지나갔다. 무한에 눈이 오면 북쪽은 벌써 쌓였을 것이다. 창가의 어머니가 — 심지를 아껴 태우던 등잔이 — 이 눈을 보셨을까. 내기의 셈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을까.어미도 사실은 첫눈이 보고 싶거든. 그 작아지던 목소리가 눈발 속에서 자꾸 돌아왔다. 기다려 보마 — 약조는 못 한다던 사람의, 약조보다 무거운 그 말이."보셨을 거요."곁의 그가 말했다. 묻지 않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부부의 오랜 버릇이었다."북쪽 눈이 먼저니까. 파수의 셈으로는 — 사나흘은 먼저요."사나흘 먼저. 그러면 어머니는 첫눈을 보신 것이다. 내기에서 지신 것이다. 지는 게 이기는 내기라 했으니 — 운설은 그 셈의 끝을 오늘도 미뤘다. 미루는 버릇이 어느새 살림이 되어 있었다.이튿날부터 도시는 뒷정리로 바빴다.우물마다 사수가 내려가 가죽 주머니를 걷었다. 걷힌 주머니 서른일곱 개가 물가에 쌓이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 불에 들어갔다. 타는 것을 보겠다고 몰린 사람들이 우물가 시연 때보다 많았다. 물지기 조직은 그날로 풀렸고, 물지기였던 자들 몇이 제 발로 거름틀 짜는 일에 붙었다. 두려움을 팔던 손이 숯을 굽는 그림을 두고, 왕철이 벌써 이야기 한 자락을 지어 팔았다.법의 뒷정리는 더 컸다. 한겸이 임시로 집법당의 인을 맡았다. 젊은 법은 첫 영으로 재조사 청원의 접수를 전부 되살렸고, 둘째 영으로 인두의 수배를 강호 전역에 띄웠다. 수배 방의 인상서는 가는눈이 그렸다. 이번에는 — 낯까지, 무섭게 정확한 붓으로."북서쪽이오." 사백이 지도를 짚었다. "자국이 그쪽인 것이, 마음에 걸리오. 북서로 곧장 가면 — 옛 삭월 땅이오."가루 두 섬을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4화 — 잿빛

    물목 밖 추격은 반나절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일곱째 배는 있었다. 어귀 갈대밭의 후미진 물굽이에, 닻줄만 끊긴 채. 인두는 거기서 배를 버리고 뭍길로 올랐다. 사백이 자국을 이틀 치까지 읽었다. 북서쪽. 관도를 피한 샛길. 발은 셋 — 심복 둘이 미리 말을 대 놓고 기다린 자국이었다."질 셈까지 셈해 둔 자다." 가는눈이 말했다. 포승이 풀린 손목을 주무르지도 않고, 그는 감찰의 목소리로 보고부터 했다. "배에 실렸던 예비 독이 전부 사라졌소. 가루로 두 섬 — 향으로 치면 골짜기 하나를 채울 양이오."가는눈의 장부가 그날로 법정의 종이가 되었다.감찰의 버릇으로 그는 다 적어 두고 있었다. 가루의 물목. 향선의 뱃바닥 도면. 우물 주머니를 박으라는 지시와 봉인을 찍으라는 지시. 인두의 수결이 앉은 영(令) 서른두 장의 등본. 제 손으로 받든 명을 제 손으로 적어 둔 까닭을 묻자, 그는 처음으로 감찰이 아닌 낯을 했다."옛 짝이 있소. 저보다 붓이 무딘데 — 죄를 셋이나 제 발로 진 사람이오. 그 사람이 지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언젠가 질 죄를 하나 골라 두고 싶었소. 명을 적는 죄를 골랐지. 형당에서 그것은 — 죽을죄요."한겸은 그 말을 세 걸음 밖에서 들었다. 듣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두 감찰은 서로 낯을 안 보는 채로 한참 나란히 서 있었고, 그것이 두 사람 몫의 회포였다.법정은 그날 안으로 다시 섰다.이번에는 단 위에 형틀이 없었다. 젊은 감찰이 — 죄인의 옷 그대로 — 단에 올라 종이들을 차례로 읽었다. 가는눈의 장부. 만군의 수결. 휘월의 자백. 진눈의 증언. 그리고 열두 줄의 전말. 낭독이 끝나자 간수문이 단 아래에서 소리를 얹었다."법의 이름으로 — 처분을 무효로 하고, 죄 없는 자를 방면하며, 격문 네 판을 전부 거둔다. 이 판결의 임자는 내가 아니다." 노인이 단 위를 가리켰다. "저기, 종이를 끝까지 놓지 않은 젊은 법이다."물가가 응답했다. 만 개의 목청으로.낭독이 끝난 종이들은 서기 여섯의 손으로 밤새 베껴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3화 — 여섯 척

    여섯 척이 물살을 갈랐다. 노 대신 삿대로, 좁은 수로를 빠르게.저 배들이 단에 닿아 뱃바닥의 것을 태우든 쏟든 — 만 명의 물가는 한 사람에게 재앙의 도가니가 된다. 저들이 처음부터 그린 그림이 그것이었다. 법정이 무너지면 법정째 태우는 그림."배는 물에서 잡는다." 혈비가 삿갓을 벗었다. "물목을 막아라!"첫째 배는 우르가 받았다.거한은 다리 난간에서 그대로 뛰어 뱃머리에 앉았다. 배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그 무게를 그대로 빌려 뱃전을 밟아 뒤집었다. 물보라 속에서 우르가 웃는 소리가 났다. 둘째와 셋째는 불화살이 받았다. 사백과 사수 — 두 자매의 활이 지붕 두 곳에서 같은 박자로 울었다. 기름솜의 살이 돛과 뱃바닥에 꽂히고, 배 두 척이 물 위에서 화톳불이 되었다. 실린 것이 통째로 탔다. 삭은 풀내 대신 탄내가 물 위로 번졌다. 여덟 해 치 독이 반 시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드는 냄새였다.넷째 배는 왕철의 사람들이 받았다. 거룻배 다섯이 수로를 가로질러 뱃길을 막고, 낮에 거름틀을 짜던 손들이 갈고리로 뱃전을 잡아챘다. 다섯째 배는 스스로 멎었다. 사공이 삿대를 놓고 물로 뛰어든 것이다. 명을 받드는 것과 만 명 앞에서 재앙이 되는 것 사이에서, 이름 없는 사공 하나가 제 셈을 했다.여섯째 배가 문제였다.그 배는 불을 피하는 길을 알았다. 좁은 수로를 버리고 넓은 물목을 크게 돌아, 화살의 사거리 바깥으로 — 단의 등 뒤로 붙었다. 뱃전에 물지기들이 도끼를 들고 섰다. 저들의 셈은 불이 못 잡는 쪽에 있었다. 뱃바닥의 독을 — 생가루 그대로 — 물에 쏟는 것. 물의 도시의 물 전체에."저건 활로 못 잡아." 혈비의 목소리가 조여들었다. "불이 붙으면 저들이 쏟는다. 안 붙이면 저들이 닿는다."운설은 단 위에서 그 배를 보았다.흐린 귀로도 물이 보였다. 배의 밑을 받친 겨울 물. 낮게, 무겁게 흐르는 강. 강을 패에서 뺐다 — 그 셈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데 지금 이 물가에서 그 패를 도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저 하나뿐이었다.그녀는 향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2화 — 부싯돌

    향합이 열리고, 마른 풀빛 가루가 재 위로 기울었다.그 반 호흡 사이에 물가에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났다.첫째, 지붕 위의 사백이 시위를 놓았다. 살촉에 기름솜을 감은 살이 — 언제 불을 붙였는지 — 낮게 날아 향로의 아가리에 정확히 꽂혔다. 둘째, 물가의 지게꾼이 빈 지게를 버리며 단의 발치로 내달았다. 셋째, 왕철의 좌판 쪽에서 늙은 목청이 터졌다."불이다! 물맞이 불놀이다! 다들 화로를 열어라!"향로가 폭 하고 일어섰다.숯불 위에 겨우 앉으려던 가루가 기름불을 뒤집어쓰고 통째로 타올랐다. 삭은 풀내는 지워지고 그냥 탄내가 — 무해한, 다만 매캐한 탄내가 — 단 위로 치솟았다. 여덟 해 얼음 속에서 벼려진 것은 불 앞에서 힘을 못 썼다. 천적이 천적을 잡아먹는 냄새를, 운설은 향로의 곁에서 맡았다. 제 귀가 성한 채라는 것을 — 물소리가 흐린 채로나마 곁에 있다는 것을 — 확인하면서."법정에서 활을 들었다!" 인두의 잿빛이 처음으로 갈라졌다. "전원 포박하라!""법정에서 독을 들었으니 셈이 맞소!"모용 가주의 대부가 땅을 때렸다. 만군 증인단 백스물이 일제히 물가의 안쪽으로 돌아섰다. 창은 없었다. 한데 창 없이 서 있는 만군의 등이 병졸들에게는 창보다 넓었다.병졸 여섯이 그래도 단으로 올랐다. 증인을 끌어내리라는 명이었다.지게꾼이 그 여섯 앞에 섰다.운설은 향로의 불길 곁에서 그 등을 보았다. 검을 성 밖에 두고 온 등이었다. 십 년을 한 몸이던 것을 두 겹 천에 싸서 두고, 물지게를 지고, 인상서에 쫓기고 — 그 모든 값을 치른 등이 지금 작대기 하나로 창 여섯 앞에 서 있었다. 물러서라는 말이 목까지 왔다가, 그의 발의 자리를 보고 도로 내려갔다. 그 발은 물러설 줄 아는 발이었다. 물러서지 않기로 정한 발이었을 뿐.검이 없는 검신의 손에는 지게 작대기 하나였다. 첫 합 — 앞선 둘의 창끝이 좌우에서 왔다. 그는 반 보 물러서며 작대기 끝으로 왼쪽 창대를 눌러 오른쪽 창의 길을 막았다. 두 창이 서로 엉키는 반 호흡에 작대기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1화 — 증인석 (한겸)

    형틀에서 보는 법정은 낮았다.한겸은 반년 만의 햇빛에 눈이 시렸다. 시린 눈으로 단 위의 의녀를 보았다. 향로 곁에 선 등이 곧았다. 저 향로가 무엇인지 이 물가에서 아는 사람은 열이 못 될 것이다. 그 열에 제가 든다는 것이 — 옥살이 반년의 몇 안 되는 소출이었다.곁 칸의 어른은 형틀에서도 반듯했다. 처분 전날 밤 창살 너머로 그 어른이 딱 한마디를 건넸었다. 젊은 법.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 끝까지 적게. 붓이 없어도 눈으로 적게. 한겸은 그 말대로 지금 눈으로 적는 중이었다. 단의 도면. 병졸의 수. 향합이 나온 소매. 적는 동안은 무섭지 않았다. 그것도 옥에서 배운 것이었다.세 번째 형틀의 옛 짝은 여전히 낯을 들지 않았다.가는눈. 감찰 시절 둘이 한 조였다. 저보다 눈이 밝고 저보다 붓이 발랐다. 수배 인상서를 뭉개던 밤, 저 눈이 곁에 있었다면 제 첫 죄는 첫 밤에 끝났을 것이다 — 그리 생각해 온 세월이 길었다.한데 물장수의 인상서를 옥에서 전해 들은 날, 한겸은 이상한 것을 짚었다.서툰 그림이라 했다. 가는눈의 붓은 서툰 붓이 아니다. 낯을 한 번 본 자의 귀 모양까지 옮기는 붓이다. 그 붓이 어깨와 걸음만 그리고 낯을 비웠다면 — 그것은 못 그린 것인가, 안 그린 것인가.안 그린 것이라면, 그 그림은 그물 노릇을 버린 종이다. 물지게를 접어라 — 그렇게만 이르는.반 시진을 창살 밖에 서 있다 간 것도 그랬다. 물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으면 안 되는 것뿐이라서였는지도 모른다. 감찰의 침묵은 원래 두 가지다. 모르는 침묵과 — 아는 침묵.거기까지 셈하고 한겸은 셈을 접었다. 형틀 위에서 남의 속을 다 읽으려 드는 것은 감찰의 병이고, 저는 이제 감찰이 아니었다.옥의 반년 동안 그는 목록을 만들며 살았다. 옥리들의 입에서 주운 것들의 목록. 향선의 수. 물지기의 교대. 그리고 — 다리 위 상석의 가마가 눈에 들어왔을 때, 그는 제 시선이 반 호흡 길었던 것을 알고 거두었다. 무사하다는 답은 옥에서 이미 받았다. 눈으로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170화 — 저울과 향로

    운설은 단에 올랐다. 향로의 곁, 증인의 자리에.숯의 열기가 옷자락에 닿았다. 재 위는 아직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동안이 그녀의 시간이었다.불이 천적이다 — 휘월의 전언이 침 함 바닥에서 떠올랐다. 숯불 위에 얹히는 향은 절반이 타서 죽는다. 저들이 그 셈을 모를 리 없으니, 향합의 것은 반이 죽어도 남을 만큼 독할 것이다. 그녀는 그 셈을 마치고 접었다. 셈은 거기까지 — 지금 그녀의 몫은 진술이었다."진술하라.""제 진술은 짧습니다." 그녀는 만 개의 귀를 향해 말했다. "십팔 년 전의 침략설은 조작이고, 조작의 자백과 물증이 여기 있으며, 저 형틀의 세 사람은 그것을 세상에 알리려던 사람들입니다. — 나머지는 증인들이 말할 것입니다. 첫 증인을 재청합니다.""이름을 대라.""진눈. 겨울 궁의 무사이며 — 저들의 손끝이었던 자."진눈이 물가의 길을 걸어 나왔다. 젊은 무사는 단 아래 서서, 밤마다 외운 문장들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놓았다. 등잔 셋을 켠 손. 암거로 받은 지령. 장부를 조작한 밤. 그리고 그 값으로 받은 완치의 미끼까지. 제 죄를 앞에 놓고 남의 죄를 뒤에 놓는 증언은 사람을 이상하게 믿게 하는 힘이 있어서, 물가는 점점 조용해졌다.낭독을 듣는 물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완치의 미끼 — 그 대목에서였다. 병을 볼모로 잡힌 손끝의 이야기는, 보름 동안 물을 볼모로 잡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서였다.둘째 증인으로 간수문이 나왔다. 잠적했던 전임 당주의 등장에 병졸들이 술렁였는데, 인두는 손짓 하나로 눌렀다. 격식대로 — 증인은 법의 손님이었다. 노인은 기름 먹인 함 셋을 단 아래 풀었다. 얼음여울의 기록. 만군 서기 마흔의 수결. 휘월의 자백 등본. 서기들이 낭독을 이어받아, 열두 줄의 시대가 만들어진 경위가 물 위에서 낱장으로 읽혔다.낭독이 반쯤 갔을 때, 인두가 처음으로 끊었다."등본은 그림자다. 법은 그림자를 받지 않는다. — 자백의 임자를 세워라. 세우지 못하면 여기까지다.""세웁니다." 운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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