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열녀문 아래, 젊은 과부는 밤마다 다른 남자를 골랐다. 낮에는 정절을 강요받고 밤에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윤해원. 거친 목수 돌쇠는 그녀의 흔적을 훔쳐 품고, 의원 허담은 예법 뒤에 집착을 감춘 채 차례를 기다린다. 한 번 열린 문 앞에서 사랑은 질투로, 질투는 소유욕으로 변한다. 마을은 해원을 색귀라 손가락질하지만 그녀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안길 남자도, 밀어낼 남자도, 끝내 버릴 남자도 오직 해원이 정한다.
View More윤해원의 남편이 죽은 날 밤, 그녀는 다른 사내의 입술을 물었다.
상청에는 아직 향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마당에는 곡을 하다 지친 상여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죽은 남편의 위패 앞에는 흰 촛농이 흘렀다.
해원은 소복을 입은 채 헛간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제 앞에서 얼굴이 새파래진 머슴 만복을 바라봤다.
“왜 떨어?”
“마, 마님. 아직 대감마님 초상도 안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러시면 천벌받습니다.”
해원이 피식 웃었다.
“천벌?”
그녀가 만복의 저고리 깃을 움켜잡았다.
“내가 스무 날을 혼인해서 뭘 얻었는지 알아?”
만복이 입을 다물었다.
“밤마다 기침하는 병신 하나 수발들다가 스물둘에 과부 됐어.”
“마님.”
“낮에는 울어라, 밤에는 위패 끌어안아라, 평생 다른 사내 쳐다보지도 마라.”
해원의 웃음이 차갑게 식었다.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만복이 뒷걸음질 쳤다.
“저는 싫으면 나가겠습니다.”
해원은 손을 놓았다.
“그래. 나가.”
만복이 멈칫했다.
“싫으면 당장 문 열고 나가. 대신 나가면서 똑바로 생각해. 네가 진짜 싫은 건지, 겁나서 도망가는 건지.”
헛간 안에는 한동안 숨소리만 엉켰다.
만복이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열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가 돌아섰다.
“후회하실 겁니다.”
“내가?”
해원이 웃었다.
“내가 평생 한 것 중에 제일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
그녀는 상복 고름을 풀었다.
“남들 시키는 대로 산 거.”
그날 새벽,
만복은 먼저 해원의 입술을 찾았다.해원은 그제야 알았다.
죽은 사내 곁에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원한다는 감각.
그리고 상대 역시 자신을 원한다는 확신.
그것은 죄책감보다 달았다.
문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흘 뒤에는 마구간지기 칠복이었다.
칠복은 처음부터 해원을 피해 다녔다.
“마님, 저한테 이러지 마십시오.”
“왜?”
“만복이 새끼가 술 처먹고 떠들었습니다.”
해원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라고?”
“마님이 자길 먼저 불렀다고.”
“그래서 배 아프다더냐?”
칠복의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새끼 주둥이를 찢어놓고 싶긴 했습니다.”
“왜?”
“…….”
해원이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말해.”
칠복이 이를 악물었다.
“제가 먼저 마님을 봤으니까요.”
이번에는 해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집 남자들은 하나같이 겁쟁이네.”
“뭐라고요?”
“탐나면 탐난다고 말을 해. 뒤에서 개처럼 으르렁대지 말고.”
칠복이 해원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럼 지금 말해도 됩니까?”
“말만?”
그날부터 해원의 밤은 달라졌다.
상복은 낮에만 정절이었다.
밤이 되면 그것은 사내들을 미치게 만드는 흰 껍질에 불과했다.
그러는 동안 최씨 부인은 며느리를 조선에서 가장 불쌍한 과부로 만들기에 바빴다.
“우리 해원이는 남편 죽은 뒤 물 한 모금도 마음 편히 못 넘긴다.”
해원은 옆에서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며느리입니다.”
“세상에 이런 열녀가 또 어디 있겠느냐.”
그날 밤,
해원은 사랑채 뒤뜰에서 처음 보는 사내와 입을 맞췄다.목수 돌쇠였다.
열녀문을 짓기 위해 불려온 사내.
해원의 정절을 기념할 문을 제 손으로 만드는 남자였다.
돌쇠는 해원을 밀어내지 않았지만 곧장 품지도 않았다.
“미친 짓입니다.”
“싫어?”
“싫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그럼 입 닥쳐.”
돌쇠가 헛웃음을 흘렸다.
“성질 더럽다는 소문은 없던데.”
“죽은 남편 집구석에서 착한 척하느라 숨겼지.”
“제가 뭘 믿고 마님한테 손을 댑니까?”
해원은 그의 손을 끌어 제 허리에 얹었다.
“지금 네 손이 어디 있는지 보고도 그런 개소리가 나오니?”
돌쇠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둘이 보기 좋구나.”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원과 돌쇠가 동시에 돌아봤다.
최씨 부인이 서 있었다.
시어머니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뺨을 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어머님.”
최씨 부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돌쇠의 얼굴을 훑어본 뒤 해원에게 말했다.
“만복이, 칠복이, 이제는 목수까지.”
해원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사라졌다.
최씨 부인이 어떻게 알고 있는가.
“뭘 그렇게 놀라느냐?”
최씨 부인은 품에서 작은 장부 하나를 꺼냈다.
첫 장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남편이 죽은 날.
그 아래에는 이름 하나.
만복.
그다음 장에는 칠복.
그리고 오늘 날짜 아래에는 이미 적혀 있었다.
돌쇠.
해원의 손끝이 굳었다.
“이게…… 뭡니까?”
최씨 부인이 웃었다.
“네가 어느 놈과 붙어먹는지 적어놓은 거다.”
돌쇠가 욕을 삼켰다.
“이 집 미쳤네.”
“닥쳐라, 상놈아.”
최씨 부인은 돌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해원만 보았다.
“넌 열녀가 되어야 해.”
해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제가 지금 뭘 하는지 보고도 그 말이 나옵니까?”
“그래서 더 열녀가 되어야지.”
“무슨 미친 소리예요?”
최씨 부인이 해원의 뺨을 쓰다듬었다.
“세상에는 깨끗한 열녀보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더러운 비밀을 가진 열녀가 다루기 쉽거든.”
해원이 시어머니의 손을 쳐냈다.
“나를 감시했어요?”
“감시?”
최씨 부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얘야.”
그리고 장부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해원은 그곳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허담.
죽은 남편의 친구이자,
남편의 마지막 밤을 지켰던 의원이었다.그 이름 옆에는 아직 날짜가 없었다.
대신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다음 사내.
최씨 부인이 해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고른 줄 알았니?”
해원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에요?”
“네가 만난 사내들.”
시어머니가 웃었다.
“전부 내가 네 앞에 갖다 놓은 놈들이야.”
“네 첫 번째 남편이었다.”해원은 문서를 내려다봤다.그리고 천천히 웃었다.“또 거짓말이네.”아버지가 눈을 들었다.“해원아.”“아니.”해원이 문서를 찢었다.“이번엔 안 속아.”종이가 두 동강 났다.“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면 전부 진실이 되는 줄 알아?”왕이 굳었다.허담이 찢긴 문서를 살펴보다가 말했다.“맞아.”모두가 그를 바라봤다.“이 문서, 필체가 가짜야.”왕의 표정이 굳었다.허담이 종이를 들어 올렸다.“왕실 인장도 위조됐어.”해원이 왕을 바라봤다.“마지막까지 이것까지 준비했습니까?”왕은 침묵했다.그때 해원의 아버지가 힘겹게 말했다.“태문은 네 오빠도, 네 남편도 아니다.”해원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럼?”“네 어머니가 죽기 전에 데려온 아이였다.”태문이 굳었다.“뭐?”“왕실에서 버려진 아이였어.”아버지가 숨을 몰아쉬었다.“네 어머니는 태문을 친아들처럼 키웠다.”해원이 눈을 감았다.“그래서 모두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거구나.”태문이 고개를 숙였다.“나도 몰랐어.”해원은 그를 바라봤다.“당신도 피해자였네.”태문이 눈물을 흘렸다.“미안하다.”“사과하지 마.”해원이 고개를 저었다.“당신도 속았잖아.”그 순간 왕이 무릎을 꿇었다.모두가 놀랐다.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내가 했다.”해원이 그를 바라봤다.“무엇을요?”“기록을 조작했다.”왕의 목소리가 떨렸다.“네 아버지를 반역자로 만들었고, 네 존재를 지웠다.”“왜?”“네가 왕위를 잇는 순간 내가 모든 것을 잃으니까.”해원은 한참 그를 바라봤다.“그래서 내 아들까지 이용했습니까?”왕은 고개를 숙였다.“그래.”“내 기억까지?”“그래.”해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하지만 이번에는 울면서도 웃었다.“끝났네요.”왕이 고개를 들었다.“뭐가?”“당신들이 내 인생을 대신 결정하는 거.”해원이 아이를 품에 안았다.서하가 작은 손으로 해원의 목을 감쌌다.“엄마.”“응.”“우리 집 가?”
“죽었다던 해원의 친아버지였다.”해원은 문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아버지?”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해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서하야.”아이가 해원을 바라봤다.“엄마.”그 한마디에 해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아이에게 달려갔다.“서하야!”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남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해원은 아이의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다친 데 없어?”“응.”“무서웠어?”“아니.”“누가 데리고 있었어?”아이가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켰다.“할아버지.”해원의 몸이 굳었다.천천히 남자를 바라봤다.“정말…… 내 아버지예요?”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왕이 벌떡 일어났다.“그럴 리가 없다.”남자가 왕을 바라봤다.“당신이 죽였다고 했지.”왕의 얼굴이 굳었다.“네가 어떻게…….”“십오 년 동안 숨어 있었다.”해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왜 나한테 나타나지 않았어요?”“네가 나를 찾으면 네가 죽으니까.”“그럼 왜 이제 나타났어요?”남자가 서하를 바라봤다.“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어졌으니까.”해원이 왕을 돌아봤다.“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다고 했잖아요.”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버지가 차갑게 웃었다.“저 사람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그럼 누가 죽었다고 속였어요?”“최씨.”최씨 부인의 얼굴이 굳었다.“제가 아니라…….”“당신이 내 시체를 만들었지.”최씨는 입을 다물었다.해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왜?”최씨가 울먹였다.“네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네가 왕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그래서 죽은 척하게 만들었다?”“그래.”“그런데 내 아이는?”최씨가 고개를 숙였다.“그 아이까지 이용하면 네가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해원이 이를 악물었다.“당신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야.”최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알아.”“나를 키운 것도.”“…….”“내 아이를 빼앗은 것
“네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내가 죽였다.”해원은 왕을 바라봤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웃었다.“그래서?”왕의 표정이 굳었다.“뭐?”“이제 또 누구를 바꿀 겁니까?”해원이 장부를 들어 올렸다.“아버지도 가짜. 어머니도 가짜. 아이도 가짜. 남편도 가짜.”그녀가 장부를 왕의 발밑에 던졌다.“도대체 언제까지 사람 인생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거예요?”왕이 낮게 말했다.“네 아버지는 반역자였다.”“그래서 죽였어요?”“그가 왕실을 배신했다.”“그래서 딸인 나까지 없애려고 했습니까?”왕이 입을 다물었다.해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아니면 나를 살려둔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까?”왕은 대답하지 않았다.해원이 한 걸음 다가갔다.“말해.”왕이 결국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는 네가 태어난 날 왕실의 비밀을 훔쳤다.”“무슨 비밀?”“왕위 계승 문서.”해원이 굳었다.왕이 말했다.“그 문서에는 네 이름이 있었다.”“왜?”“네가 적통이었다.”대전 안의 사람들이 술렁였다.해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럼 지금까지 왕실이 찾은 건 내 아들이 아니었네.”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였어.”“그래.”“내 아들을 이용해서 나를 끌어내려고 했던 거야?”왕이 침묵했다.해원이 웃었다.“참 더럽게도 꼬아놨네.”그때 허담이 장부를 펼쳤다.“잠깐.”모두가 그를 바라봤다.허담이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이 기록 날짜가 이상합니다.”해원이 다가갔다.“뭐가?”“아이 교환 기록이 네가 기억을 잃은 날보다 사흘 전입니다.”현수가 굳었다.해원이 그를 바라봤다.“그럼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이미 아이를 바꿨다는 거야?”현수는 고개를 숙였다.“그래.”“왜?”현수가 대답했다.“네가 직접 시켰어.”해원이 그를 노려봤다.“또 그 말.”“이번엔 진짜야.”현수가 품에서 낡은 편지를 꺼냈다.“네가 내게 남긴 거야.”해원이 편지를 펼쳤다.자신의 글씨였다.‘현수에게.내 아이를 살리고 싶다
“내 아들을 데려가려면 먼저 나부터 죽여야 할 거라고.”해원의 말이 끝나자 군사들이 칼을 뽑았다.“마지막 경고다.”해원은 아이를 태문에게 넘겼다.“서하를 맡아.”태문이 놀랐다.“해원아.”“내가 돌아올 때까지.”“혼자 가려고?”“아니.”해원이 뒤를 돌아봤다.현수와 현우, 허담, 태율이 서 있었다.“다 같이.”강헌이 칼자루를 잡았다.“나도 간다.”해원이 고개를 저었다.“넌 여기 있어.”“왜?”“누군가는 서하를 지켜야 하니까.”강헌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해원은 군사들을 향해 걸어갔다.“길 안내해.”왕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아무도 해원을 막지 않았다.오히려 모든 사람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허담이 낮게 말했다.“이상한데.”해원도 느끼고 있었다.“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왕실 대전의 문이 열렸다.그 안에는 왕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왕의 옆에는 최씨 부인이 있었다.해원의 눈이 굳었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최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왕이 말했다.“윤해원.”해원이 앞으로 나섰다.“왜 부르셨습니까.”“네 아들을 데려와라.”“싫습니다.”“그 아이는 왕실의 혈통이다.”해원이 웃었다.“증명부터 하시죠.”왕의 표정이 굳었다.그때 해린이 앞으로 나왔다.“제가 증명하겠습니다.”해원이 그녀를 돌아봤다.해린은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저는 왕실이 만든 가짜 후계자였습니다.”왕이 얼굴을 굳혔다.“해린.”“하지만 진짜 기록은 따로 있습니다.”해린이 품에서 장부를 꺼냈다.“왕실은 십 년 전 아이를 바꿨습니다.”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장부를 내놓아라.”해린은 웃었다.“싫습니다.”“감히!”“왜요?”해린이 장부를 펼쳤다.“여기 왕실이 숨긴 모든 이름이 적혀 있는데.”왕의 얼굴이 굳었다.해원이 장부를 빼앗았다.첫 장.아이의 출생 기록.둘째 장.아이 교환 기록.그리고 마지막 장.해원의 손이 멈췄다.“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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