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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 한 치의 고백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10 21:46:15

구담의 초청장은 정중했다.

적온산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강호 제일의 치유법을 지녔던 설야 의원에게 배합을 직접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끝에는 온생원에 머무는 환자 백여 명이 소란으로 약을 못 받고 있다는 문장이 붙었다.

"환자를 방패로 세웠군."

선우현이 말했다.

"그래도 환자는 안에 있어요."

운설은 봉투를 접었다.

연도하는 열이 내렸으나 낯빛은 창백했다. 그는 침상에 기대 초청장의 종이와 먹 냄새를 맡았다.

"온생원 종이가 아니오. 관아에서 쓰는 닥종이요."

"관아가 초청장을 대신 썼다는 뜻입니까?"

채령이 물었다.

"둘이 한 장부를 쓴다는 뜻이겠지."

"누군가 우리 수를 알려 줬소."

선우현이 말했다.

"관아 포졸 중 하나겠지. 온생원 은표를 받은 자가 몇인지 아직 모르오."

"그러면 정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포위될 수도 있어요."

채령의 목이 굳었다.

운설은 초청장을 화로 불에 대지 않고 접어 품에 넣었다.

"그래서 가야 해요. 저들이 준비한 얼굴을 직접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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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35화 — 서고의 불

    채령은 저녁 종이 세 번 울릴 때 지하문을 열었다.불침번이 교대하고 약동들이 죽을 먹는 짧은 틈이었다. 훔친 열쇠는 녹이 슬어 두 번이나 걸렸다. 세 번째에 쇠문이 낮게 울며 열렸다.지하는 약고가 아니었다.좁은 방 다섯에 아이와 노인 스물셋이 누워 있었다. 잇몸은 붉게 부었고 손발은 밧줄로 침상에 묶여 있었다. 경련하다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물을…"가장 가까운 아이가 속삭였다.운설은 무릎을 꿇어 입술을 적셨다. 맥은 가늘고 빨랐다. 적온산을 거둔 뒤에도 온생원은 중독 환자를 감춰 두고 있었다. 밖의 칠백열세 명을 지키기 위해 안의 스물셋을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방마다 작은 목패가 걸려 있었으나 이름은 없었다. 첫째 방 열둘, 둘째 방 여섯. 사람 대신 숫자로 부르기 위한 패였다.채령이 목패를 하나씩 떼었다."이 아이는 소미예요. 어머니가 빨래터에서 일해요. 이분은 마 노인. 문 앞에서 매일 바둑을 뒀어요."기억나는 이름을 목패 뒤에 적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붓을 멈추고 직접 물었다. 말할 힘이 없는 환자는 손가락으로 성의 획을 그렸다.운설은 침을 아껴 가장 위급한 셋에게 놓았다. 기침을 억누른 가슴이 조금 열리자 지하에 사람 숨소리가 돌아왔다."전부 위로 옮겨야 해요.""정문은 이미 막혔소."연도하가 계단 위를 보았다.구담은 처음부터 알았다.쇠문 밖에서 빗장 거는 소리가 났다. 이어 원주의 목소리가 들렸다."설야 의원, 그들을 광장에 내놓으면 온생원은 끝입니다. 그러면 내년 겨울에는 마흔일곱이 아니라 사백이 죽어요.""문을 여세요.""사흘만 주십시오. 새 배합으로 바꾸고 저 환자들은 제가 끝까지 돌보겠습니다."채령이 문을 두드렸다."복칠이에게도 끝까지 돌본다고 했잖아요!"밖이 잠깐 조용해졌다."채령이구나. 네가 숫자를 훔쳐 이름을 붙였어.""원래 이름이 있었어요. 원주님이 지운 거예요."선우현은 문과 벽을 살폈다. 쇠문은 부술 수 없었다. 천장 가까이에 약재를 나르는 작은 환기구가 있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34화 — 온생원

    온생원은 따뜻했다.높은 회벽 안에 화로가 스무 개나 놓였고, 지붕 아래에는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약초가 매달려 있었다. 무료 죽을 받는 줄이 안뜰을 한 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붉은 뺨으로 뛰어다녔다.사람을 죽인 곳이라고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운설은 뜰을 지나는 동안 세 번이나 붙잡혔다. 동상 자국이 남은 노인이 손을 맞잡고 온생원 덕에 발을 자르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아이를 업은 아비는 죽 한 그릇 때문에 산을 내려오지 않아도 됐다고 울었다.거짓말하는 얼굴들이 아니었다.채령의 검은 장부와 이들의 살아 있는 손이 같은 전각 안에 있었다. 운설은 어느 한쪽도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온생원이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이 죽인 죄를 없애지 못하듯, 죽인 죄가 살아난 사람까지 거짓으로 만들지는 못했다."그래서 저도 오래 믿었어요."채령이 하녀의 두건 아래에서 속삭였다.구담 원주는 정문까지 마중 나왔다.쉰을 조금 넘긴 사내였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었고, 남은 손톱에는 오래 밴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말할 때 상대의 얼굴보다 손과 입술을 먼저 보았다. 환자의 병색을 읽는 의원의 버릇이었다."설야 의원을 뵙습니다."그는 운설에게 깊이 절했다."강을 한 사람의 소유에서 놓아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원이 의술보다 커지는 세상에 귀한 선택이지요."칭찬 안에 탐색이 있었다. 힘이 정말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말이었다."그래서 지금은 맥을 오래 봅니다."운설이 답했다.구담의 눈이 잠깐 빛났다.연도하는 새 약재 견본 궤를 내밀었다. 정상적인 계피와 생강, 감초였다."적온산 소란을 끝낼 물건이오. 값은 전보다 세 배지만 내가 절반을 대지.""설로상단주께서 장터에 전 재산을 건다더니 사실이었군요.""소문이 빠르오.""아픈 사람은 소문으로 먼저 옵니다."구담은 운설 일행에게 먼저 죽을 대접했다. 제 몫도 같은 솥에서 퍼 왔다. 숟가락을 들 때 없어진 새끼손가락 때문에 그릇이 한쪽으로 기울었다."역병 돌던 해 환자에게 물려 잘랐습니다."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33화 — 한 치의 고백

    구담의 초청장은 정중했다.적온산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강호 제일의 치유법을 지녔던 설야 의원에게 배합을 직접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끝에는 온생원에 머무는 환자 백여 명이 소란으로 약을 못 받고 있다는 문장이 붙었다."환자를 방패로 세웠군."선우현이 말했다."그래도 환자는 안에 있어요."운설은 봉투를 접었다.연도하는 열이 내렸으나 낯빛은 창백했다. 그는 침상에 기대 초청장의 종이와 먹 냄새를 맡았다."온생원 종이가 아니오. 관아에서 쓰는 닥종이요.""관아가 초청장을 대신 썼다는 뜻입니까?"채령이 물었다."둘이 한 장부를 쓴다는 뜻이겠지.""누군가 우리 수를 알려 줬소."선우현이 말했다."관아 포졸 중 하나겠지. 온생원 은표를 받은 자가 몇인지 아직 모르오.""그러면 정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포위될 수도 있어요."채령의 목이 굳었다.운설은 초청장을 화로 불에 대지 않고 접어 품에 넣었다."그래서 가야 해요. 저들이 준비한 얼굴을 직접 봐야 하니까."선우현은 역할을 나눴다. 운설은 초청받은 의원으로 정문에 들어간다. 연도하는 적온산 대신 새 약재를 대겠다는 투자자가 된다. 선우현은 손이 불편한 상단주의 장부 서기."나는요?"채령이 물었다."남으시오. 이미 낯이 알려졌소.""지하 서고 길은 저만 압니다.""그래서 더 안 되오. 저들이 가장 먼저 잡을 사람도 당신이오."채령의 얼굴이 굳었다. 선우현은 명령하듯 말했지만 빈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사람을 두고 가는 판단이 옳아도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운설은 연도하의 맥을 마지막으로 짚었다."오늘은 쉬어야 해요.""초청받은 의원이 투자자 없이 가면 문전박대당하오.""다른 사람을 보내요.""내 도장으로 사람을 죽였소. 내 얼굴로 들어가야지."그가 손을 뒤집어 운설의 손바닥을 받쳤다. 진맥받는 모양이었으나 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선우현의 시선이 두 손에 내려앉았다.연도하는 놓지 않은 채 물었다."어젯밤 답을 얻었소?""무슨 답 말이오.""그대가 내 손을 놓으라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32화 — 흔들리는 밤

    연도하의 열은 자정 무렵 내렸다.운설은 찬 수건을 갈고 떨림을 가라앉히는 침을 놓았다. 선우현은 한 번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 물도 직접 갈았고 약도 직접 달였다."병구완이 아주 정성스럽군."연도하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빨리 나아야 내 아내 손을 덜 잡을 것 아니오.""그대 아내가 먼저 잡았는데."약탕관 뚜껑이 조금 세게 닫혔다.운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이불을 연도하의 턱까지 올려 주었다."더 말하면 다시 열 올라요. 둘 다 조용히 해요."그날 밤 부부는 국밥집 다락방에서 잤다. 정확히는 눕기만 했다.창밖 장터 불이 꺼질 때까지 선우현은 등을 보이고 있었다. 운설은 그 등의 흉터를 하나씩 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화났어요?""아니오.""당귀 두께가 안 맞을 때랑 똑같은 목소리인데."선우현이 돌아누웠다."그대는 아픈 사람 앞에서 거리를 잊소.""환자를 남자로 보면 진료를 못 해요.""그대가 안 본다고 그 사내까지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오."운설은 대답하지 못했다. 연도하의 눈을 떠올렸다. 열에 젖고도 한 올의 거리를 남긴 눈. 몰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자신을 향해 있었다."알고 있었소?"선우현이 물었다."뭘요.""그가 그대를 원하는 것.""이제는 알아요.""오늘 전에는."운설은 이불 가장자리를 만졌다."아예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선우현의 턱이 굳었다. 화보다 두려움이 먼저 지나가는 것을 운설은 보았다. 검과 내공을 잃은 뒤 그는 빼앗기는 일을 예전보다 현실로 느꼈다.운설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 사람이 잘생긴 것도 알고, 저를 보는 눈이 뜨거운 것도 알아요. 가끔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 눈으로 알게 될 때도 있고요.""위로하려는 말이 맞소?""거짓말로 위로하면 당신이 더 싫어하잖아요."선우현은 손을 빼지 않았다."그럼 흔들리오?"운설은 오래 생각했다. 답이 늦을수록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당신은요?""무엇을 묻는 것이오.""남궁완을 보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

  • 설야팔부 (雪夜八部)   제231화 — 한 치 안쪽

    연도하의 몸은 보기보다 뜨거웠다.운설이 가슴을 받치는 순간 옷 너머의 열이 손바닥에 번졌다.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운설의 어깨 위 허공을 짚었다. 닿을 수 있는데도 닿지 않는 손이었다."선우현, 반대쪽 잡아요."선우현은 붓을 내려놓았다. 잠깐 두 사람의 거리를 보았으나 말없이 연도하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걸을 수 있소?""그대보다는 잘 걷소.""쓰러진 자가 할 말은 아니군.""한 번 죽은 자에게 듣고 싶지는 않소."두 사내는 서로를 기대지 않으려다 똑같이 비틀거렸다. 운설이 가운데에서 소리를 질렀다."둘 다 환자답게 좀 걸어요!"국밥집 안쪽 작은 방에 연도하를 눕혔다. 운설은 그의 모피 옷깃을 풀었다. 열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보려 손등과 목, 갈라진 단전 위를 차례로 짚었다.갈라진 단전 자리에는 오래된 칼흉터가 비스듬히 지나갔다. 안에서부터 터진 상처라 살이 매끄럽게 붙지 못했다. 운설의 손끝이 그 위를 누르자 연도하의 배가 단단해졌다."아파요?""그대 손이 차서.""거짓말.""의원 앞에서는 거짓말이 잘 안 팔리는군.""그러니 값을 치러요. 숨 들이쉬고, 내쉬고."운설이 귀를 가슴 가까이 댔다. 심음은 빨랐으나 박자는 아직 고르게 이어졌다. 문제는 며칠 굶고 달린 몸과, 분노를 누르며 안으로 치솟은 열이었다.문밖에 있던 채령이 따뜻한 죽을 가져왔다. 두 사람의 거리를 보고 발을 멈추자 선우현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환자를 보려면 저렇게 해야 합니까?"채령이 아주 작게 물었다."내게는 저만큼 가까이 안 오던데."선우현의 답에 채령이 웃음을 삼켰다. 질투하는 남편을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오른손 끝의 떨림이 심했다."며칠이나 못 잤어요?""사흘.""제대로 먹은 건요?""그대 약방 죽.""그건 나흘 전이잖아요.""그러니 아직 배가 부른 모양이지."운설은 대꾸하지 않고 그의 턱을 들어 눈동자를 보았다. 열에 젖은 눈이 그녀를 피하지 않았다. 연도하의 웃음은 사라졌는데 시선은 웃을 때보다 노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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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관은 도망치지 않았다.그는 광장 한복판에서 진짜 도장을 제 손으로 꺼냈다. 허리 안쪽에 늘 차고 다니던 물목 인장이었다. 수레 바닥의 문양과 정확히 맞았다."제가 찍었습니다."사람들이 욕을 뱉었다. 돌 하나가 날아와 노관의 이마를 찢었다. 두 번째 돌은 연도하가 손으로 받았다."아직 값을 정하지 않았소.""사람 마흔일곱을 죽인 값이 돌 하나로 모자라오?"복칠의 어미가 소리쳤다."모자라니 멈추라는 것이오."연도하는 피 묻은 손으로 돌을 내려놓았다."이자를 붙여도 목숨 하나를 못 돌려주오. 그러니 죽이는 값부터 받으면 남은 빚을 받을 사람이 없어지지."그 말은 그가 평생 믿어 온 셈과 닮았으나 방향이 달랐다.설로상단 물목 창고에서 장부가 나왔다. 붉은 광석을 실은 수레 스물세 대, 온생원에서 받은 은 마흔여섯 냥. 그 돈은 노관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다. 삽꾼 품삯, 죽은 말 보상, 여섯 마을 외상 약값으로 흩어졌다.노관은 돈이 쓰인 곳을 모두 기억했다. 어느 말이 눈길에서 다리를 부러뜨렸는지, 어느 삽꾼의 아이가 폐병을 앓았는지까지 말했다. 선한 용처가 이어질수록 광장의 얼굴들은 더 복잡해졌다.복칠의 어미가 물었다."내 아이 값으로 어느 아이 약을 샀소?"노관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모릅니다.""그런데 어찌 길을 살렸다고 말해. 누구 피가 어느 눈 위에 뿌려졌는지도 모르면서."노관은 더는 귀의 상처를 만지지 않았다. 두 손을 바닥에 짚고 처음으로 완전히 엎드렸다."그래서 네가 옳아지나?"연도하가 물었다."아닙니다.""훔친 은자가 없으니 배신이 아닌가?""배신입니다.""처음 손 떨린 환자 이야기를 들은 날은."노관이 날짜를 말했다.채령의 검은 장부에서 스물아홉 번째 이름이 죽기 엿새 전이었다. 그는 사람 열여덟이 더 죽는 동안 수레를 보냈다.노관은 왼손으로 오른귀의 잘린 자리를 만졌다."그 길을 닫으면 여섯 마을 아이들이 약 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보지 못한 아이를 죽였군.""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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