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아련이 가져온 것은 문짝이었다.느티나무 객주의 오래된 문이었다. 아래가 썩고 가운데에는 칼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진무경이 아이 열셋을 숨기던 밤, 뒤쫓아 온 호위의 칼을 그 문으로 막았다고 했다.“고쳐 주세요.”아련은 선우현 앞에 문을 눕혔다.“나는 목수가 아니다.”“검도 없는데 문은 잘 막았잖아요.”연도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외상 두 푼의 이자를 갚겠다며 사흘째 약방 사랑방에 머물고 있었다.“그 말은 내가 증언할 수 있지.”“그대는 북쪽으로 돌아갈 준비나 하시오.”“하란주가 첫눈을 사람보다 잘 부린다는 편지를 보내서 내가 없어도 된다는군.”첫눈은 아직 짐을 지지 않는 망아지였다. 편지 아래에는 발굽 모양 먹자국이 찍혀 있었다.선우현은 문짝을 뒤집었다.안쪽 널에는 이름 열셋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마소분이 느티나무 잎을 하나씩 새로 그렸고, 묘선은 찾지 못한 이름 둘 옆을 비워 두었다.“객주를 다시 열 겁니다.”묘선은 지팡이 없이 세 걸음을 걷게 된 날 말했다.“돈 없는 손님도 받으려고요?”운설이 물었다.“호적 없는 손님을 먼저 받을 거요.”봄 호적이 닫히기 전, 제 이름을 대신 써 줄 사람을 찾는 아이와 여인에게 열하루씩 방을 내주기로 했다. 약방은 몸을 증언하고, 시장 사람은 생활을 증언하고, 설로상단은 오간 길을 장부에 남겼다.진태오는 첫 번째 수선값을 냈다.그가 낸 것은 문설주였다. 큰집 창고에서 가장 곧은 느티나무를 가져와 묵묵히 대패질했다. 용서받아서가 아니었다. 아련을 열두 냥으로 셈한 일을 갚는 첫날이었다.호적 아전은 관인을 빼앗긴 채 글 모르는 이들의 이름을 베껴 쓰게 되었다. 빈 종이에 미리 도장을 찍는 버릇이 사라질 때까지였다.선우현은 새 문짝 위에 현판을 달았다.여덟째 문.현판을 거는 날에는 잔치라 부르기 민망한 밥상이 차려졌다. 국숫집에서 면을 보내고, 장채령은 새 장부 스무 권을 묶어 왔다. 복칠의 어미는 금 간 약사발에 들꽃을 꽂았다. 온생원 사건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자기 이름 옆
선우현은 증인 난에 이름을 썼다.그날 밤에는 잠들지 못했다.운설이 뒤뜰로 나갔을 때 그는 우물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피는 묻지 않았는데 물이 세 바가지나 비었다.“어깨 보여 줘요.”“괜찮소.”“그 말 하면 벌금이라고 했죠.”선우현이 저고리를 내렸다. 몽둥이가 스친 자리가 짙은 자주색으로 부어 있었다. 운설이 찬 약포를 대자 그의 등이 단단해졌다.“아련이가 아버지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서운해요?”“다행이오.”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운하네요.”“많이.”이번에는 숨길 틈이 없었다.운설은 그의 등 뒤에 이마를 댔다. 검을 메던 어깨, 제 폭주를 받아 심장이 멎었던 등, 오늘은 문짝 하나를 버티다 멍든 몸이었다.“아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름 쓰는 일뿐이었소.”“그 이름을 숨기지 않고 썼잖아요.”“죽인 사람의 딸에게 아비 노릇을 하고 싶었다는 것부터 오만이었지.”“하고 싶었어요?”선우현은 돌아보지 못했다.“아련이 진료대 아래서 자는 걸 보았을 때.”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대와 닮은 아이가 저 자리에 누우면 어떨까 생각했소.”운설의 손이 약포 위에서 멎었다.“그런데요?”“내 피와 내 손이 두려웠소.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내가 벤 것들이 아이에게 갈까 봐.”운설은 그를 돌려세웠다.“저는 아이를 가져야 당신 아내인 게 아니에요.”“알고 있소.”“갖지 않아도 우리 집은 비지 않고요.”“그것도 아오.”“그래도 원하느냐고 묻는 거예요.”선우현은 오래 운설을 보았다. 답을 서두르면 그녀의 몸을 제 소원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그대가 원한다면이 아니라.”그가 천천히 말했다.“나는 원하오. 두렵고, 그래도 원하오. 그대와 오래 살아 보려는 것들을.”운설은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쌌다.“저도요.”말을 한 뒤 운설은 제 배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아직 없는 것을 미리 사랑하는 몸짓으로 오늘을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선우현의 손을 잡아 제 심장 위에 얹었다.“여기부터 오래 살아요.”“명 받들지
호적 심리는 관청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밤의 습격과 위조 인도장을 보고받은 백로현의 현승이 직접 내려왔다. 선우현은 시장 한복판에 책상을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 호적 아전의 수결이 의심받는 판을 그의 방 안에서 가를 수는 없다고 했다.현승은 책상 끝에 관인을 놓고 앉았다. 오늘 내리는 결정이 구경꾼의 말로 끝나지 않게 할 무게였다.비가 갠 뒤의 장터에는 젖은 짚 냄새가 났다. 약방을 지킨 이웃, 국숫집 주인, 붙잡힌 사내들의 가족까지 둘러섰다.진태오는 오른귀의 흉터를 문지르며 나왔다.“집안일을 구경거리로 만드는군.”“아이를 값으로 매길 때 이미 장삿일이 되었소.”선우현이 답했다.아련은 어머니 옆에 앉았다. 묘선은 혼자 걷지 못했으나 제 손으로 수결하겠다며 붓을 쥐었다.첫 장은 위조 인도장이었다.호적 아전은 처음에는 부인했다. 아련이 세 장의 옛 서류를 나란히 놓자 입을 다물었다. 그는 빈 관인이 찍힌 종이를 처남 진태오에게 건넸고, 밤에 사람을 보낼 줄은 몰랐다고 했다.“몰랐다는 빈칸이 사람을 몇이나 삼키는지 나는 아오.”연도하가 낡은 장부를 펼쳤다.운송품 — 아이 열셋.진태오의 얼굴이 굳었다.“옛 상단도 돈을 받았소.”“그래서 내가 여기 서 있소.”연도하는 변명하지 않았다.“그 길이 번 돈으로 컸고, 이제 그 길의 이름으로 증언하러 왔소.”장터 끝에서 여자가 하나 앞으로 나왔다. 오른발이 안쪽으로 굽어 걸음마다 몸이 기울었다. 여섯째 약길 소금집을 맡은 마소분이었다.그녀는 밤낮으로 말을 갈아타고 왔다.“나는 그 짐 열셋 중 일곱째였어요.”마소분이 탁자 아래에서 베껴 온 이름들을 읽었다. 열셋 가운데 살아 있는 자 여덟, 죽은 자 셋, 찾지 못한 자 둘. 제 이름 옆에는 작은 느티나무 잎을 그렸다.“진무경이 줄을 끊었고, 오묘선이 사흘 동안 죽을 먹였어요.”진태오가 눈을 감았다.그가 받은 호위값은 은 열두 냥이었다. 수레를 잃은 뒤 구매자가 값을 물렸고, 그는 진씨 큰집 논을 팔아 갚았다. 그 빚을 집안의 빚이라
첫 사람은 문에 손대지 않았다.긴 장대로 빗장부터 밀었다. 문 안쪽 구조를 아는 솜씨였다.선우현은 진료상 끝을 발로 눌렀다. 장대가 빗장을 벗겨 내는 순간 상이 기울며 문을 받쳤다. 바깥에서 둘이 동시에 밀었다.반쯤 박아 둔 위쪽 경첩 못이 빠졌다.문짝은 안으로 열리지 않고 비스듬히 쓰러졌다. 앞선 사내 하나의 장대와 뒤 사내의 어깨가 문짝 아래 함께 끼었다.첫 합이었다.약방 앞은 세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없는 골목이었다. 왼쪽에는 빗물 도랑, 오른쪽에는 국숫집의 장작더미가 있었다. 칼을 든 자라도 한 번에는 하나씩 들어와야 했다. 선우현은 낮 동안 그 좁음을 여섯 번 걸어 보았다. 일곱 번째에는 무릎이 부어 운설에게 들켰다.지금 그 여섯 번의 걸음이 검 대신 남아 있었다.칼날 대신 욕설이 튀었다.세 번째 사내가 창문을 깼다. 운설은 유리 없는 창 옆에 붙어 있다가 팔이 들어오는 순간 약 찧는 절굿공이로 손목을 눌렀다. 뼈가 부러질 만큼 치지 않았다. 손가락이 펴질 때까지 힘줄 위를 밀었다.사내가 쥔 짧은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오른쪽 둘.”연도하가 낮게 말했다.그는 문에 끼인 사내를 밟고 넘지 않았다. 빈 약궤짝을 세워 방패처럼 밀었다. 오른쪽 골목에서 들어온 몽둥이가 궤짝을 부쉈고, 다음 타격에 그의 떨리는 손이 궤짝 손잡이를 놓쳤다.선우현은 소리를 듣고 반 보 움직였다.몽둥이가 있던 자리에 지팡이가 걸렸다. 막지 않고 궤도만 바꿨다. 나무 끝이 선우현의 어깨를 스치고 약장 모서리를 때렸다.통증이 팔 아래로 퍼졌다.그는 이를 악물고 지팡이를 당겼다. 사내의 발이 문턱 안 밀가루를 밟았다. 흰 가루가 미끄러졌고, 뒤꿈치가 빨랫줄에 걸렸다.몸이 넘어지는 동안 연도하가 어깨로 밀었다.둘째 합의 값은 선우현의 어깨와 연도하의 찢어진 손바닥이었다.다섯째 사내가 뒷담을 넘었다.운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방에서 묘선의 숨이 가빠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련이 빗장 뒤에서 작은 종을 들었다.싸우러 나오지
장부는 오래된 죄보다 냄새가 먼저 났다.젖었다 마른 종이, 말기름, 곰팡이. 운설은 손을 씻고도 그 냄새가 손톱 밑에 남은 것 같았다.연도하가 빈 도착지 난을 빛에 비췄다.“초창기 설로상단은 길을 빌려주고 내용물은 묻지 않았소. 장부에는 도제 계약이라 쓰고, 사람은 짐으로 셌지.”“그대도 몰랐소?”선우현이 물었다.“열여덟의 나는 비어 있는 난이 깨끗해서 좋았소.”연도하의 오른손이 떨렸다.“묻지 않으면 죄도 안 묻는 줄 알았지.”안방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묘선이 침상에서 내려오려다 물그릇을 엎은 것이었다. 열은 조금 내렸으나 얼굴은 흰 종이 같았다. 운설이 어깨를 받치자 그녀는 장부부터 찾았다.“그 수레가 맞아요.”묘선은 호흡을 세 번 나누고 말을 이었다.진무경은 수레를 모는 품팔이였다. 첫날에는 아이들이 탄 줄 몰랐다. 둘째 날 밤, 짐칸에서 우는 소리를 듣고 천막을 들췄다. 입에 헝겊을 문 아이 열셋이 발목끼리 묶여 있었다.“도제 계약서에는 모두 제 손도장이 찍혀 있었소. 다섯 살짜리까지.”“다섯 살이 무슨 계약을 해요?”아련이 물었다.“그래서 네 아비가 물었지.”호위들은 계약값을 받았으니 물건이라고 답했다. 진무경은 밤중에 줄을 끊었다. 들키자 호송인 하나가 먼저 칼을 뽑았고, 두 사람이 죽었다.“진태오는.”선우현의 목소리가 낮았다.“호위 길잡이였어요. 오른귀는 그날 네 아비 칼에 찢겼고.”아련은 제 손톱의 갈라진 금을 내려다보았다.“왜 저한테는 아버지가 사람을 살렸다는 말만 했어요?”“죄만 말하면 네가 아비를 미워할까 봐. 살린 것만 말하면 죽은 두 사람을 없던 일로 만들까 봐.”묘선의 손이 아이의 뺨에 닿았다.“어미가 겁이 많아 둘 다 늦게 말했다.”“제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안 돼요?”아련이 물었다.“돼.”“그리워해도요?”“그것도 돼.”묘선은 아이 손을 제 가슴 위에 놓았다.“사람 하나를 한마음으로만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선우현은 화로의 재를 고르는 척 고개를 숙였다. 운설은 그 말
연도하는 열하루를 다 기다리지 않았다.호적소에서 돌아온 이튿날, 약방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선우현이 문을 열자 회색 목도리와 웃기 직전의 입이 먼저 보였다.“객점 방값 받으러 왔소.”연도하는 손바닥을 폈다. 동전 두 닢이 놓여 있었다.“빚진 자가 돈을 내미는군.”“채권자가 자꾸 북쪽에 있으라 해서.”“말을 들을 낯은 아니지.”“그대 아내 말은 곧잘 듣소.”선우현이 문을 반쯤 닫았다.안에서 운설의 목소리가 났다.“환자면 들여보내요.”“환자는 아니오.”연도하가 오른손을 들었다. 손끝이 잔잔하게 떨렸다.“환자인 것 같군.”문이 다시 열렸다.아련은 진료대 밑에 앉아 종이를 접고 있었다. 낯선 사내가 들어오자 먼저 회색 목도리, 빈 허리춤, 오른손 떨림을 차례로 보았다.연도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 몸을 낮췄다. 아련은 인사를 받기 전에 그의 신발에 묻은 북쪽 진흙부터 종이에 적었다. 어디서 온 사람인지 말보다 흙을 믿는 눈이었다.“이 사람도 임시 보호인이에요?”“절대 아니오.”선우현의 대답이 너무 빨라 연도하가 웃었다.“자리가 비면 생각해 보지.”“안 비어요.”아련은 선우현 옆에 붙지 않으면서도 답했다. 그 말에 선우현의 굳은 어깨가 한 치 내려갔다.운설은 연도하의 맥을 짚었다. 흑마장에서 백로진까지 닷새를 줄여 달린 몸이었다. 열은 높지 않았으나 빈 맥의 안쪽이 말라 있었다.“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문을 두드리겠다고 했으니까.”“날짜는 안 정했잖아요.”“늦게 오면 누가 또 먼저 두드릴까 봐.”“흑마장은요?”“서른 필은 제 길을 외웠고 하란주는 내 잔소리 없이도 장부를 잘 쓰오.”연도하는 회색 목도리를 풀지 않았다. 늦봄인데도 북쪽의 냉기가 실 사이에 남아 있었다. 붉은 실 한 올은 전보다 조금 헤졌으나 매듭은 그대로였다.“첫눈은?”“장부를 두 장 먹었소. 일은 안 하고 적자는 내고 있지.”운설이 웃었다. 선우현은 그 웃음을 보다가 연도하의 목도리를 보고, 다시 약탕기만 보았다. 예전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