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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Author: 완경음
낙청연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고 부진환은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가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네가 한 짓이냐?”

낙청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비꼬며 말했다.

“왕야, 이제야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자신이 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부진환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라 호위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낙청연의 목에 겨누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너를 죽일 것이다.”

낙청연은 목을 빼 들면서 고고한 자태로 말했다.

“왕야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면 죽이세요. 앞으로 며칠 동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릴 것인데 섭정왕부 내에 있는 인뇌진을 처리하지 않으면 섭정왕부는 폐허가 되겠지요.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죽을 것입니다.”

“너!”

부진환은 장검을 힘주어 잡고 있다가 갑자기 피를 토했고 소서는 얼른 부진환을 부축하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왕야! 고 신의, 고 신의!”

소서가 고 신의를 부르자 호위가 대답했다.

“고 신의는 불길 속에서 도망쳐 나오고는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그때 낙청연이 앞으로 나섰고 부진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홧김에 낙청연을 밀어내려고 했다.

“왕야, 살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

낙청연은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고 그를 위협했고 부진환은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맥을 짚게 놔뒀다.

고 신의가 쓰러졌으니 지금 그를 치료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낙청연은 그 모습에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그는 분명 그녀의 실력을 믿고 있었고 고충도, 인뇌전 일도 전부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일들을 믿는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낙월영을 감싸고 돌 것이다.

낙청연은 또다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몸의 원래 주인의 억울함이었고 원한이었다.

그런데 억울하다고 뭘 어쩔 수도 없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속에는 낙청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야께서는 화병이 나셔서 피를 토하신 것입니다. 평정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히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하지만 상처에 물이 묻었으니 지금 당장 다시 치료하셔야 합니다. 부상이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낙청연은 맥을 짚고 나서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는 위협이 가득했다.

부진환은 그녀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자기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그녀의 말대로 부상이 심각했다.

“왕야께서 치료를 원하신다면 단독으로 조건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부진환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알 수 없는 표정에 오히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방으로 가서 얘기하지.”

낙청연은 부진환의 치료를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서방으로 향했다.

소서는 문밖에서 지키고 있었고 그녀가 온 걸 확인하자 문을 열어주었다.

서방 안에서는 그윽한 단향목 향기가 났고 그곳으로 들어서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낙청연은 무심결에 서방 안의 장식품을 관찰했고 풍수지리에 영향 주는 사특한 물건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방은 평소에 관리가 엄격히 되고 있어 아무나 서방에 가까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진환을 해치려 하는 사람도 서방에 손을 쓰지는 못했을 터였다.

“뭘 보는 것이냐? 아니면 뭘 찾고 있는 것이냐?”

반쯤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은 부진환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냉담한 목소리에는 경계심과 그녀를 떠보려는 듯한 의도가 있었다.

“이 서방에 인뇌진의 진안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조금 이따가 여기에 번개가 칠까 봐서요. 왕야의 목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나 저는 죽고 싶지 않거든요.”

낙청연은 냉랭하게 말하면서 쪼그려 앉아 부진환의 옷을 풀어 헤쳤다.

부진환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밖은 큰비가 내리고 있어 한기가 돌았지만 서방 안은 온도가 적당했다. 그러나 낙청연이 그의 옷을 풀어 헤칠 때 부진환의 피부에는 소름이 돋았고 여유롭게 의자 위에 놓았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낙청연은 곧바로 피가 묻어있는 면포를 처리하면서 집중한 얼굴로 평온하게 말했다.

“왕야를 치료하는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약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약재가 필요하거든요.”

부진환은 눈을 감은 채로 최대한 그녀의 손길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낙청연의 다소 차가운 손가락은 깃털처럼 그의 피부를 스쳤고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그는 미간을 구기면서 더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

“약재를 해서 뭐 하려고 하느냐?”

“당연히 치료를 위해서지요. 왕야께서는 제가 벽에 부딪힌 것이 연극인 줄 아셨습니까?”

계속 미루면서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후유증이 남아 치료가 어려워질지도 몰랐다.

부진환은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낙청연의 진지한 표정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들에 부진환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그가 알고 있는 낙청연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하지만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낙청연은 봉합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뇌진이라는 게 진짜로 있는 것이냐?”

“당연히 진짜입니다. 왕야께서도 오늘 직접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네 의술 역시 진짜이냐?”

“가짜였다면 왕야께서 절 치료하게 내버려 두셨겠습니까?’

부진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낙청연, 너 또한 진짜이냐?”

낙청연은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그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낙청연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난 네 눈빛에서 애정을 보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을 보는 눈빛은 자결하기 전과는 달랐다.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은 정도로 말이다.

낙청연은 한기가 감도는 눈빛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왕야께서 저를 그리 대하셨는데 저도 그만 체념해야지 않겠습니까? 조건 없이 상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고,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의심을 지웠다. 곧이어 그는 차갑게 말했다.

“약재는 줄 수 있다만 자유롭게 약방을 드나들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낙청연을 경계하고 있었다. 낙청연은 부운주의 사람이었고 그녀가 약방에 있는 약에 손을 쓴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약재만 주셔도 됩니다.”

낙청연은 그의 단호한 말투에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났다.

그녀는 부진환의 치료를 마쳤고 그때 부진환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낙월영을 괴롭히지 말거라.”

낙청연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보더니 벌떡 일어서며 성을 냈다.

“두 분이 뭘 어쩌던 전 상관없습니다. 낙월영이 절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저도 낙월영을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월영이 끝도 없이 절 해치려고 하는 데 가만히 참고 있을 수는 없지요.”

낙청연은 그 말에 부진환이 또 화를 낼 거로 생각했지만 부진환은 드물게도 역정을 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파문도 일지 않았고 더없이 평온했다.

그는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난 너와 상의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명령이다.”

그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직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며 위협적인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럼 왕야께서는 자기 사람을 잘 간수하셔야 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낙청연은 바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으나 불현듯 무언가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몸을 돌렸다.

“후원에 지초라는 아이가 있사온데 앞으로는 제 시중을 들 것입니다.”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있던 부진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뇌전을 해결하거라.”

그것이 조건이었다.

낙청연은 흔쾌히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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