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작가: 소광주설
세자 부인의 소문을 생각하며, 소연은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얼굴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녀는 소연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녀의 눈엔 소연의 걸음이 가볍고 빨랐으며 자태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순간 국공 부인께서 왜 소연 언니를 통방으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연이 머무는 곳은 세자 부인의 초하원에서 몇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금방 초하원 입구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소연은 세자 부인의 몸종 하녀인 최홍이 악의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연은 순간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그녀가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자 세자 부인은 최홍을 통방으로 내세웠다. 그러니 최홍은 소연이 자신의 청운길을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부인께서는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으니 여기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려.”

최홍은 팔짱을 끼고, 고소해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순순히 무릎을 꿇었겠지만 소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소부인이 준비를 마쳤는지 아닌지 그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만약 최홍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시간을 지체했다가 문안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한다면, 소부인께서 탓할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었다. 괜히 무릎만 상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늘 준비해 온 이 신발도 끝내 바치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녀는 몸을 약간 굽히고 공손하지만 의지는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최홍 언니, 일깨워줘서 고맙지만, 노부인께서 직접 신발을 소부인에게 전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만약 소부인께서 아직도 준비 중이시라면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최홍은 그녀가 이토록 만만치 않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지금 노부인으로 날 협박하는 것이냐?”

소연이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홍은 노기등등해서 말했다.

“고작 통방이 소부인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건가? 내가 지금 바로 소부인에게 알릴 것이다.”

최홍의 말에 마당에 있던 하녀와 어멈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한씨에게 미움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공 부인 쪽에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소연은 최홍이 소부인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최홍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리고 최홍이 당황한 기색을 띠자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하인는 주인의 시중을 드는 도구일 뿐인데 어찌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단 말입니까? 다만 소부인께서는 평소에 여덕을 지키며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국공 부인께 문안을 드리러 가시는데, 아직도 준비가 끝나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소문이 퍼져서 소부인의 명성에 손해를 입힌다면 뒷감당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투는 지나치게 부드럽지도,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날이 서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홍의 얼굴빛을 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이 일은 확실히 그녀가 지어낸 거짓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소연에게 분풀이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젯밤, 한씨는 안타까운 듯 최홍에게 말했다. 본래 이번 통방 자리는 최홍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소연 그 천한 것이 먼저 차지해 버렸다고.

하마터면 자신이 세자의 사람이 되어 신분을 바꿀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소연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최홍은 분해서 이를 갈 지경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분명 그녀의 당번이 아닌데도 소연을 막기 위해 마당 입구에서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본래는 소연을 뜰에 무릎 꿇려 한바탕 망신을 주려 했건만, 소연의 말이 이렇게 능란할 줄은 몰랐다. 최홍은 말문이 막혀 반박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소연은 최홍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그녀를 넘어 본청으로 향했다.

과거, 소연은 국공 부인의 말을 전하러 이곳에 왔었기 때문에 안내 없이도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당직 이등 시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언니, 하녀 소연이 소부인에게 문안을 드리러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러자 이등 시녀는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말을 전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소연을 불러들였다.

소연은 심호흡을 하고 치맛자락을 정리한 후, 고개를 숙이고 본청으로 들어갔다.

소연은 연꽃무늬를 수놓은 신발 한 켤레를 꺼내더니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하녀 소연, 소부인을 뵙습니다. 이것은 제가 소부인을 위해 만든 신발입니다.”

소연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두 손으로 신발 한 켤레를 높이 들어 올렸다. 갑작스럽게 통방을 뽑는 바람에 임시로 준비한 신발이 정교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진주와 은실로 테두리를 장식하여 적어도 흠잡을 곳은 없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신발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소연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고개를 들어 한씨의 눈치를 볼 염두가 없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이 떨릴 때까지 기다렸다.

“기발한 생각이구나.”

드디어 한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사람은 얌전한 것이 좋단다.”

소연은 머리를 바닥에 대고 대답했다.

“예, 소부인 말씀이 옳습니다.”

그녀는 한씨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가느다란 목덜미에 두드러진 뼈마디는 그녀로 하여금 여리고 불쌍해 보이게 했다.

높은 의자에 앉아 소연의 부드러운 자태를 바라보던 한씨는 갑자기 눈밑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노부인께서 노망 난 거 아닌가? 어떻게 세자 부인인 나를 건너뛰고 통방을 선택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제 소식을 들었을 때, 한씨는 집사 어멈에게 크게 화를 냈다.

친정에 있을 때, 한씨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첩실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하녀 중에서 골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갑자기 소연이라는 여인이 나타났고, 노부인이 직접 선택한 사람이었다. 한씨는 노부인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한씨는 노부인에게 화를 낼 엄두가 없어 소연에게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대놓고 소연이를 괴롭힐 순 없으니 한씨는 최홍에게 분부했다.

“불경을 가져오너라.”

최홍이 불경을 꺼내자 한씨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그 말에 소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씨의 얼굴이 약간 부은 것으로 보아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가 한씨를 보는 동시에, 한씨도 그녀를 훑어보았다. 세자와 첫날밤을 보낸 소연의 얼굴은 불그스름한 복숭아 같아서, 가장 수수한 통방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을 전혀 감출 수가 없었다. 반면, 한씨는 총애를 잃어 원망만 하는 부인처럼 초췌해 보였다.

한씨는 손에 든 염주를 꽉 쥐었다. 그리고 집사 어멈이 가볍게 일깨워주자 그녀는 그제야 마지못해 어멈에게 소연의 신발을 받으라고 분부했다.

한씨가 마침내 자신의 신발을 거두는 것을 보고, 소연의 긴장했던 마음은 다소 내려앉았지만, 그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한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연아, 이제 초하원의 사람이 된 이상 이곳의 규칙을 지켜야 한단다. 이 불경을 너에게 맡길 테니 매일 피로 베끼거라. 천불절에 백 권의 불경을 국공부의 작은 불당에 보내 노부인과 세자 저하의 복을 빌어야 한다.”

소연은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한씨가 자신을 만나자마자 이런 요구를 제기할 줄은 몰랐다.

‘천불절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백 권의 불경을 베끼라고? 그럼 거의 매일 잠을 자지 않고 베껴야 하는데, 거기에다 피로 베끼라니. 다 쓰고 나면 얼마나 빈혈이 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군. 정말 그렇게 되면 회임은커녕 목숨마저 부지할 수 없게 될 것이야.’

소연이 말을 하지 않자 한씨는 염주를 비비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싫은 것이냐?”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30화

    하지만 기뻐서 폴짝폴짝 뛰는 소연을 보니 허준안의 입가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옆에서 보고 있던 장풍은 깜짝 놀랐다.‘세자 저하께서 이렇게 웃는 것이 얼마 만인가? 소 아씨는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줄을 잘 섰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세자 저하의 첩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허준안은 생각하더니 말했다.“장풍아, 가서 내 바둑 판을 가져오거라.”장풍은 오랫동안 그를 모셔, 당연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더욱 놀랐다.‘세자께서 옥기 바둑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심지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데 소 아씨에게 내주다니. 세자께서 정말로 소 아씨를 마음에 품으셨나보군.’그는 빠른 걸음으로 창고로 바둑을 가지러 갔다. 허준안은 소연에게로 돌아서서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인생은 바둑과 같아. 넌 성격이 너무 소심해 오늘부터 나랑 바둑 한 시진씩 하면서 담력을 길러보자꾸나.”소연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세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세자께서 그녀를 이렇게 추켜세워줄 줄은 몰랐다.세자가 매일 그녀에게 바둑을 가르친다는 소문이 외부로 퍼지기라도 하면 아무도 그녀를 일반 통방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큰 주방에 식재를 가지러 갈 때도 하인들이 다시는 그녀에게 눈치를 주지 못할 것이었다.이에 소연은 기뻐하며 무릎을 꿇고 허준안에게 절을 올렸다.“세자 저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풍은 바둑을 들고 돌아왔다.허준안이 두껑을 열자 안에는 흑백 바둑알이 가득 차 있었고, 등불 아래에서 따뜻한 옥기 특유의 광택이 감돌았다.그는 눈을 들어 소연을 바라보았다.“바둑을 배운 적이 있느냐?” 소연은 솔직히 고개를 저었다. 소씨 가문에 있을 때, 왕씨는 그녀에게 일만 강요할 뿐, 이런 아씨들만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배우게 할 리가 없었다. 허준안은 자신의 예상과 어긋나지 않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보거라.” 소연은 백돌를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29화

    금심각에 있을 때에야 소연은 비로소 알아차렸다. 허준안은 일에 몰두할 때면, 저도 모르게 달콤한 주전부리를 하나씩 입에 넣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연꽃과자를 준비했다.소연이 서재에 들어서자 도시락 안의 유혹적인 향기는 그녀보다 먼저 풍겨 나왔다. 허준안은 여전히 손에 든 서첩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붓을 쥔 손은 어느새 내려놓은 뒤였다.소연은 식합을 조심스레 서안 위에 내려놓고,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세자 저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께서 제때에 오지 않았더라면 전 정말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사실 그가 오지 않더라도 소연은 소씨 가문을 상대할 방법이 있었지만, 세자가 나타난 덕분에, 확실히 그녀는 훨씬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허준안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제법 분수를 아는군.’ 그의 시선은 무의식적을 도시락으로 향했다. 그러자 소연은 바로 일어나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마치 방금 연못에서 따온 연꽃과 같은 과자가 들어있었다. 허준안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자, 얇고 바삭한 겉결이 겹겹이 부서졌다. 곧이어 잣의 고소한 향이 혀끝에 은은하게 퍼졌고, 식감은 더없이 부드러웠다.그는 만족스럽게 삼키고 눈을 들어 소연에게 말했다. “장 수재의 일은 내가 이미 분부했으니 앞으로 절대로 너에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소연은 조금 의외였다. 그녀는 매일 많은 일을 처리하는 세자께서 그런 사소한 일까지 기억해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소연은 촉촉한 눈빛으로 허준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득 세자의 통방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감싸주고 있는 느낌이 혼자 버티던 날들보다 훨씬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의 맑고 준수한 얼굴을 보며 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반응하지 않은 틈을 타서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28화

    “왕씨, 이게 당신이 말한 증거인가? 친딸을 그렇게 모함하다니.”허준안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장풍, 내 영패를 가지고 소씨 가문 사람들 모두 관직으로 보내거라.”그 말에 소씨 가문은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왕씨는 창백한 얼굴로 소연에게 달려들어 울먹이며 간청했다.“나는 정말로 너와 장서환이 그런 관계인 줄 알고 널 도와주려고 그랬던 것이다. 넌 이 어미의 마음도 몰라주느냐?”소하도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언니, 나도 말을 잘 못 들었어. 아무리 그래도 우린 가족인데 정말로 날 탓하는 건 아니겠지?”장서환은 온몸을 떨면서도 억지로 버티고 서서 단언했다.“소인은 소연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그녀가 떠날까 봐 두려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절대 고의로 모함한 것이 아닙니다.”사람들은 소씨 가족과 장서환을 바라보는 눈빛에 약간의 동정이 담겨 있었다. 소연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효도를 제일순위로 여기는 대웅에서, 내가 정말로 그들을 관직에 보낸다면 아마도 불효자식이라고 소문이 나겠지. 난 이제 세자의 사람이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국공부의 체면과 관련이 있어. 국공부는 겉으로 보기엔 끝없이 번성해 보이지만, 실상은 이미 불 위에 기름을 끓이는 형국과 다름없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들이 이 집안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만약 나 때문에 국공부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그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닌가?’소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허준안에게 몸을 굽히고 말했다.“세자 저하,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께서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그랬을 것입니다. 다만 저와 장 수재 사이가 결백하다는 것만 믿어주십시오.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소연이 이 사람들을 놓아준 것은 자신의 명성을 더럽힐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시간은 많으니 그녀는 천천히 그들이 진 빚을 다 받아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국공부로 돌아가면 이자부터 받을 것이니까.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27화

    이 세상은 원래 여인들에게 가혹했다. 설령 장서환이 선 넘는 행위를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소연에게 염치없다고 할 것이다. 방금 장서환의 말을 들은 몇몇 하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장서환은 그 말들을 들으며 마음속으로는 소연에 대한 경멸로 가득했다.‘이미 세자의 침대에 기어오른 년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시집온단 말인가?’소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씁쓸했다.오랫동안 사모해 온 남자가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렇게 거리낌 없이 모욕하다니.만약 국공부에서 정말로 그녀가 부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어떤 운명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소연의 시선은 다시 허준안에게로 향했다.하지만 뜻밖에도 허준안은 장서환의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소연에게로 돌아서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연아, 너와 함께 할 때 이미 처녀의 몸인 것을 확인했으니 나는 널 믿는다.”그의 말에 소연의 가족들은 모두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소연이 이렇게 쉽게 세자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그녀를 믿다니.하지만 그들에겐 마지막 계획이 남아있었다.왕씨는 황공한 목소리로 연신 절을 하며 말했다.“세자 저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는 더 이상 이 악녀를 방임할 수 없습니다. 그건 노부인의 은덕에 너무 죄송한 일이니까요. 이것 좀 보십시오.”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품속에서 매미 날개처럼 얇은 물건 하나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 허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제가 기이한 재주를 지닌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 말로는, 이미 처자의 몸을 잃은 여인이라도 초야를 치르는 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속일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왕씨는 말을 하며 손톱으로 그 얇은 막을 뚫자 바로 피 한 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국공부의 하인들은 그 장면을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26화

    장풍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소연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지만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이미 평생을 약속했다’는 말을 꺼낸 이상 명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이를 어쩌지? 만약 소 아씨가 이로 인해 세자 저하의 신임을 잃는다면 앞으로 국공부에 설 자리나 있겠는가?’ 장풍은 몇 년 동안 세자 곁을 따랐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에 끼어들지 말아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일은 그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일은 소연 스스로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소연을 몰래 훔쳐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고, 심지어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장풍은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소 아씨께서 이미 이 상황을 만회할 방법이 준비되었단 말인가?’ 주변 사람들도 모두 소연의 반응을 주목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사사로운 정분이 들통났다면 진작에 무릎을 꿇고 세자의 선처를 빌었을 터였다. 그런데 소연은 어찌 저리도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그들은 어쩌면 소연이 정말 억울함을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니, 이제 그만 세자 저하께 잘못을 인정해. 이미 장씨 오라버니에게 몸을 바친 이상 국공부에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지. 세자께서 인자하시니 어쩌면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르잖아.” 소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난 장씨 오라버니와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어. 단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일 뿐이야. 그런데 넌 왜 계속 더러운 누명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거야? 명성이 여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진정 모르는 것이야?” 소하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나는 언니를 위해서, 차마 언니가 계속 실수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그런 건데.”소명은 소연이 감히 소하를 꾸짖는 것을 보자,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소연을 때리려 했지만,

  • 세자 저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제25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담담하게 장서환을 힐끗 보았다. 왕씨는 그제야 방금 전에 계획했던 일을 떠올리며 속으로 시기가 엇갈렸다고 생각했다. 막 입을 열려고 하자, 소하가 다가와 걱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 언니와 장씨 오라버니의 일이 알려지면 분명 국공부에서 처리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언니에게 폐 끼치지 마십시오.” 소하는 말을 하며 왕씨를 향해 눈짓을 하자 왕씨는 순간 깨달았다. ‘소연 그 천한 년만 처치하면 세자 부인의 환심을 살 수 있고, 세자 부인의 도움을 받으면 소명의 다리를 치료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친딸이야.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계산이 있는 걸 보면. 저 천한 년은 일이 생기면 숨기만 하고.’ 왕씨는 능청스럽게 눈물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이런 추악한 짓을 하고도 내가 널 보호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그녀의 말이 끝나자 국공부의 몇몇 하인들이 밧줄을 들고 소연의 몸을 묶으려고 했다. 이때 밖에서 한 목소리가 뒷골목으로 들려왔다. “세자 저하 납시오.” 소연이 고개를 돌리자 허준안이 장풍을 데리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고, 검은 눈동자는 그녀에게 고정되어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었다. 왕씨는 세자가 직접 오실 줄은 몰라 약간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자께서 직접 소연과 외간 남자가 사적에서 만나는 것을 목격한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세자 저하, 제가 딸을 잘못 가르쳐 국공부를 망신시켰습니다. 소연을 세자 저하께 맡길 테니 저하께서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왕씨는 무릎을 꿇고 허준안을 향해 연신 절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를 보고 무릎을 꿇었다.장서환은 원래 세자 앞에서 문인의 기개를 뽐내어 세자의 주목을 끌려고 했지만, 세자의 위압이 너무 강해서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